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7_20세기100선

[Ⅰ] 문학 17. 조지 오웰/ 1984/ 1948

忍齋 黃薔 李相遠 2016. 5. 2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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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0qGBMSm-hpQ

[Ⅰ] 문학 17. 조지 오웰/ 1984/ 1948 

017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84(Nineteen Eighty-Four,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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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발간된 우수하고 의미있는 100 열일곱번째 ,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84(Nineteen Eighty-Four, 1948) 시작합니다2차대전후 미국의 2 적색공포로 인한 미국의반공의 실험장이 한국에서 1945 출간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최초의 외국어 버역서로 한국에서 미구의 해외정보국 주도로 한국어로 번역되어 한국 학생들의 교과서에 실리기 위해서 출간되었습니다. 바로 동물농장 작가 조지오웰 1948년에 출간한 작품이 바로 1984년입니다. 그러면,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84(Nineteen Eighty-Four, 1948)’ 속으로 빠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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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George Orwell)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 1903 6 25~1950 1 21) 1903 6 25 인도 뱅갈에서 영국식민국 공무원인 리처드 블레어(Richard Walmesley Blair) 어머니 이다 블레어(Ida Mabel Blair) 사이에서 1 2녀중 둘째로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누나는 마조리였고 여동생은 에이브릴이었습니다. 1905 에릭은 어머니와 함께 영국으로 돌아와서 아버지가 3개월간 휴가로 영국에 돌아 왔던 1907년까지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에릭이 영국상류층이 다니던 이튼 스쿨을 다녔지만 위건 부두로 가는 이란 수필에서 자신의 가족은 '상류 중산층의 하급 계층'(lower-upper-middle class)이라 표현한 것으로 보아 상류층에 대한 열등감이 심각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6살때인 1909 에릭은 누나 마조리가 다니던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헨리온템즈 유치원에 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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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2 뒤인 1911 선생님들의 추천으로 영국에서 최고 명문의 이튼 스툴대비 예비학교인 서섹스에 위치한 세인트 시프리언즈 스쿨에 입학하였습니다. 세인트 시프리언즈 스쿨에서는 우수한 성적으로 반액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에릭은 이곳을 마치고 웰링턴 스쿨과 이튼 스쿨의 입학허가를 받았습니다. 웰링턴 스쿨을 1년을 마치고 이튼스쿨로 옮겨가 1917년부터 1921년까지 왕립장학생으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이때 상류층도 아니고 하류층도 아닌 자신의 위치를 인식했고 이튼의 교육에 대해 '기쁨은 정도로 컸다(Such, Such Were the Joys)'는 수필 에서 '아는 아는 신용 사기를 향한 과감한 준비'만을 시켰다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자신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분개하는 몇몇 교사를 에릭은 노골적으로 미워해서 졸업생 167 중에 138등이라는 형편없는 성적을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릭은 이튼에서 훗날 자신의 지기들이 되는 친구들을 몇몇 사귀었습니다. 그중 싸이릴 코놀리는 잡지 '호라이즌' 편집자가 되어 오웰의 유명한 에세이 대부분을 출간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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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은 형편없는 성적때문에 옥스포드 대학에 진학할 수없어서, 1922 영국식민지 인도제국 경찰간부후보시험에 합격하였습니다. 에릭은 인도 제국 내의 주였던 버마를 부임지로 선택하였습니다. 당시 버마는 90 정도의 영국인 경찰 간부가 13000 정도의 현지인 경찰을 관리했습니다. 그들은 1300 명이나 되는 버마인들을 지배했습니다. 에릭이 식민지 경찰 간부생활을 5년째 하던 ,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에 대한 깊은 자기혐오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24살이던 1927 휴가차 영국으로 돌아오자 마자 에릭은 바로 사표를 제출하였습니다. 아버지가 35년간 근무하며 가족을 영국 '중산층으로 지내게 해주고, 에릭 자신을 이튼 스쿨 졸업생으로 만들어 , 그리고 자신에게 5년간 버마인을 다스리며 영국 신사로 지낼 있도록 했던 식민지 관리 신분을 차버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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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반대가 당연했지만, 에릭은 글로서 먹고살겠다고 선언하며 집을 나와 런던의 빈민가인 노팅힐에서 자취를 시작하였습니다. 에릭의 두번째 저서인 버마시절 시기를 배경으로 소설로, 비극적인 로맨스가 제국주의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고 반제국주의적 정서가 강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주인공 플로리는 식민 경찰로 있던 에릭 자신으로 어떻게 자신이 제국주의를 혐오하게 되었는가를 실감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에릭은 버마에서 보낸 시간들의 이미지가 너무도 강해서 그것을 어딘가에 쏟아붓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을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책을 썼다고 술해했습니다. 1928년에는 이모가 살고 있던 파리로 이주해 프리랜서 작가로 살았지만 벌이가 별로 없어 하루 13시간에서 17시간까지 접시닦이로 개고생을 하며 살아야했습니다. 26살되던 1929년에는 돈도 없고 병도 들어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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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사 일을 잠깐 했고, 집에서는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면서, 대중 사회주의 성향의 잡지 ' 아델피' 정규 기고자가 되어 1935년까지 에릭의 대부분의 글을 발표했습니다. 1931년엔 런던 빈민가에서 홈리스 생활도 했고, 켄트에 가서는 맥주용 홉줍기 노동을 하루 10시간씩 3주간 하기도 했습니다. 그뒤 런던으로 돌아와 호손즈 학교의 교장자리를 얻어 1933년까지 근무하기도 합니다. 에릭은 시기에 엘리노어 자크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조지는 기고문에서는 에릭 블레어라는 실명을 사용했지만 1933 첫저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에서 처음으로 평범한 조지 자신이 좋아하는 서포크의 오웰강을 따서 '조지 오엘'이라는 필명을 사용하여 혹시라도 작가로서 실패할 경우 가족들이 놀라지 않도록 대비합니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에는 에릭의 접시닦이 생활, 구빈원에서의 생활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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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를 탈고하고 , 그동안의 개고생 때문에 폐렴에 걸려 모처럼 잡았던 안정된 교장자리도 사직하고 세번째 저서인목사의 집필을 시작하며 전업작가로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좌파색체가 깊은 작품들로 보수우파에 미움을 받고 교조적인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한다고 좌파지식인의 미움도 함께 받았습니다. 31살때인 1934 10월부터 에릭은 고서점에 근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창작에도 주목하여아델피 발표하곤 했는데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1935 3월에 출간된목사의 교구 목사관이나 여학교의 일상에 대해 사회학적인 분석에 가까운 묘사가 담겨있습니다. 출간 당시 감상적인 중류계급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훗날 스스로 '어리석은 돈벌이를 목적으로 창작품'이라고 혹평했지만 상업적으로는 괜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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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에 에릭은 '엽란을 날려라' 씁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경험이 많이 반영된 소설로 주로 고서점 시기의 경험과 엘리노어와의 사랑을 그렸습니다. 영국 중류계급의 위선에 대한 혐오감을 표출한 것으로 '목사의 '처럼 모호한 결말을 가지고 있는 소설입니다. 1936 초에 에릭은 좌파출판사인 빅토르 골란츠의 의뢰로 영국 북부의 공업지대 실업자에 대한 책을 의뢰받았고 결과물로 1937년에위건 부두로 가는 출간하였습니다. ‘위건 부두로 가는 에릭이 사회주의자로서의 의식을 표출한 번째 본격적인 저서로서 좌파성격의 사회과학서적들을 출판하던좌파 북클럽(Left Book Club)’ 위해 쓰여진 책이었지만 골란츠는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이 포함된 것을 우려하여 그것을 해명하는 서문을 포함하여 출판하였습니다. ‘좌파 북클럽 문고본에 가까운 가격으로 가입자들에게 책을 공급하는 회원제 단체이자, 영국의 좌파 출판사로 당시 영미권 사회주의자들에게 광범위한 영향력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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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부두로 가는 1부에서는 과도한 공업화로 피폐해진 랭커셔와 요크셔의 생활실태와 가계조사 등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북부의 석탄이 북부 사람들을 어떻게 착취하여 남부에 부를 가져다주는지, 그리고 민중들에게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파시즘이 지지를 받고 있는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얼마나 교조적인 태도로 , 마르크스주의를 아무런 비판없이 맹신하는 태도로 민중들과 동료들을 비판하고 있는지를 서술하며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맹목적인 소련 숭배를 비판했습니다. 당시 영국의 좌파 지식인들은 노동운동보다는 공산당에 매몰되는 친소경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부 보수파들은 나치가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아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좌파 지식인들은 에릭이 나치도 스탈린도 모두 전체주의라고 평가하는 것을 소련의 중앙유럽 '진출' 나치의 '침략' 혼동한다고 비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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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에릭의 현실 인식이 관념적이지 않고 정확했다는 아니라 이후 스페인 내전에의 참가로 이어지는 오웰의 행동에서 있는 민중중심적인 아나키즘이 드러났다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릭은 탁월한 현실 인식 능력을 가진 반권력적인 작가였습니다. 에릭은 '배운' 사회주의자들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프롤레타리아의 연대, 수용자들에 대한 수용 등의 말을 씀으로서, 아니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동지'라는 따위를 억지로 사용하는 사회주의자들의 문화가 피착취 계층이자 잠재적 사회주의자들인 중산층의 마음을 떠나가게 했다며 사회주의자들이 종종 사회주의의 적이 되곤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영국의 뿌리깊은 계급문제를 넘어서는 것은 쉽지 않으며, 먹고살만한 노동계급과 가난한 지주계급 같은 서로 다른 계급이 공존할 있도록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에릭은 본질적이지 않은 차이때문에 주적에 대항하는 연대가 깨져서는 안된다는 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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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부두로 가는 2부는 에릭의 자서전이라고 할만한 부분을 담고 있으며 여기서 에릭은 자신이 어떻게 제국 경찰에서 피압제자들의 친구가 되기로 작정하여 사회주의자가 되어가고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태생적 계급을 뛰어 넘을 없어서 사회주의를 위해서는 사회주의를 공격하지 않으면 되는가를 고백했습니다. 이는 그의 번째 르뽀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동기이기도 했습니다. ‘위건 부두로 가는 에서 그는 위건의 탄광노동자에 대한 묘사로 시작해, 결국 계급 차이 따위는 극복하고 전면적인 파시즘 연대로 가야한다는 것을 주장했고 책의 원고를 넘긴지 얼마 되지 않아 이를 실천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건너가게 것입니다. 결과물이 하나의 걸작 르뽀카탈로니아 찬가입니다. 이로서 에릭이 편의 르뽀는 모든 억압에 반대한다는 그의 사상적 궤적을 순차적으로 이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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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은 영국 북부를 방문한 런던 근교에 집을 얻어 시골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시골생활을 하면서 한산한 식료품 가게를 운영했는데 그것은 이득이 되지 않았지만 에릭에게 평화를 주었습니다. 33살때인1936년에 오웰은 하숙집 주인의 소개로 만난 아일랜드계 지적인 여인 아일린 오쇼네시와 결혼했습니다. 아일린은 영문학을 전공하고 교사, 사회복지사를 거쳐 교육심리학을 다시 전공하고 있던 인텔리였습니다. 그녀는 오웰의 사상적 동반자로서 스페인 내전에 오웰과 함께 동행했습니다. 1936 겨울 오웰은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파를 지지하기 위해 참전했습니다. 그는 독립노동자당을 통해 스페인으로 들어갔으며 마르크스주의 통일노동당(POUM) 민병대에 지원했습니다. 당시 카탈루냐 지방은 공화파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으며 노동자의 나라 같은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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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북부의 참혹상을 보고 에릭은 여기서 인간에 대한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의용군의 조직은 형편없었으며 총알이 제대로 나가지도 않는 소총 하나만 들고 아라곤 전선에 배치받았습니다. 하지만 장교에서 사병까지 누구나 똑같은 대우를 받았으며, 계급으로 차별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상 전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전투다운 전투를 하지 못한 추위와 굶주림에 많은 사람이 죽어가던 전쟁이었습니다. 에릭은 전선에서 돌아와 마드리드의 국제여단에 참여하려고 신청했습니다. 국제적인 연대를 받는 곳에서 공화파의 승리를 위해 기여해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바르셀로나에 혁명적 기운은 사라지고 다시 계급이 형성되는 듯한 분위기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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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파는 각종 노선의 차이로 인한 대립이 강해지고 있었으며 마르크스주의 통일노동당(POUM) 점거중인 전화국을 탈취하기 위해 같은 편이라고 있는 공산당이 총격을 가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에릭은 코민테른의 지시를 받던 국제여단으로의 참여를 포기하고 다시 마르크스주의 통일노동당(POUM) 소속으로 전투를 시작했습니다. 누구나 평등했던 부대 내에 다시 계급이 생겨 에릭은 소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투 참여 10 만에 그는 머리를 관통당하는 부상을 입고 후방으로 후송되었습니다. 훗날 에릭은 '총알에 맞는 것이 총알에 맞지 않는 것보다 행운이었던 상황'이라고 회고했습니다. 1mm 왼쪽에 맞았더라면 즉사할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에릭은 극적으로 살아났지만 그는 공산당으로부터 트로츠키파로 의심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미 아내 아일린 또한 가택수색을 당한 상태였고 부부는 간신히 야간열차를 타고 스페인을 빠져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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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은 스페인 국경을 빠져 나오자마자 글을 쓰기 시작해서 영국에 보냈지만 몇몇 곳에서 거부당했습니다. 런던에 돌아가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카탈로니아 찬가 쓰기 위해 골란츠에게 연락했을 때도 골란츠는 출간을 거부했습니다. 에릭이 코민테른에 무조건적인 동조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카탈로니아 찬가 전쟁의 어리석음과 스페인 인민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긴 르포문학의 걸작입니다. 에릭은 스페인 내전 당시의 정치상활에 대한 분석까지 실어서 스페인 내전을 미시적이면서 거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있는 작품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책은 에릭이 죽을 때까지 초판이 팔리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무시당했습니다. 골란츠가 출간하지 않고 마케팅능력에서 한계가 있는 작은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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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 정신적으로 탈진한 에릭 부부는 1938년에 모로코로 요양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쉬면서 중산층 외판원의 삶에 지쳐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그곳에도 마음 곳이 없다는 내용을 담은 소설숨쉬러 올라오기 집필합니다. 1939 골란츠에 의해 출간된 책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는 여기서 산업화로 인해 우리가 잃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집요하게 묘사했습니다. 에릭에게 문명화 혹은 철학없는 개발이나 발전은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결별을 뜻하며 정서는 그의 묵시록적 소설 ‘1984’ 이어집니다. 2 대전 기간 동안 에릭은 농사를 지으면서 에세이집고래 뱃속에서 탈고합니다. 전쟁중이라 사상의 자유가 통제되었기 때문에, 많은 잡지들이 정간되어 에릭은 영화평을 쓰는 일로 근근이 생활을 유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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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은 채플린의 영화들을 특히 좋아했습니다. 1941년에 발간된 에세이사자와 일각수 오웰이 중산층에 대한 비판을 중지하고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것입니다. 파시즘에 대해 승리하기 위해서는 영국이 위선이든 아니든 간에 영국적인고상함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 책은 전쟁기간 동안 많이 팔려나갔습니다. 에릭은 영국을 위해 무엇을 것인가 고민하던 끝에 1941년부터 BBC에서 인도 선전방송의 원고 쓰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전시 검열과 영국의 제국주의적 태도는 에릭으로 하여금 일을 오래 없게 만들었습니다. 1943 말부터 그는 좌파 잡지트리뷴에서 문학편집자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에릭은 자유롭게 글을 기회를 얻어 1947년까지 정기 컬럼 좋을 대로 집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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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은 목공실을 만들고, 동물을 키우고, 아이를 입양하는 평화로운 생활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시기에 에릭은동물 농장 집필하기 시작했고, 아내 아일린이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어동물 농장 이전까지의 에릭작품들과는 다르게 해학적인 면이 많아졌습니다. 1944 2월에 탈고된 '동물 농장' 소련과 스탈린에 대한 신랄한 비유로 가득차 있어 한동안 출간되지 못했으며 와중에 런던 공습에 의해 원고가 불타버릴 하기도 하였습니다. ‘동물 농장 파시즘에 반대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반공산주의로 읽혀 2 적색공포에 떨고있던 미국에 의해 광범위하게 번역되었습니다. 최초의 외국어 번역은 한국어 번역이었으며 이것은 2 대전 이후 가장 첨예하게 냉전이 벌어진 지역이 한반도였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종종 동화로 분류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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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날 무렵 에릭은 옵서버 특파원으로 파리와 쾰른으로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1945 3월에 9년간의 개고생 삶의 동반자였던 오소네시가 그 개고생의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전쟁이 끝나감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계속 언론을 탄압하자 에릭은 '자유방어위원회'에서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전쟁이 벌어졌던 시기 내내 에릭은 참여적 지식인으로 살아왔고동물 농장이외의 글은 대부분 잡지에 기고된 현실적 논평이거나 에세이였습니다. 오쇼네시 사망 마음 곳을 찾지 못했던 에릭은 세명의 여인에게 남은 개고생을 함께 하자고 청혼을 해보지만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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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에는 소냐 브라우넬도 있었는데 그녀는 이후 모리스 메를로퐁티와 연애를 했지만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동물 농장으로 유명 작가가 에릭은 런던이 싫어져 1946년에 스코틀랜드 주라 섬으로 이주했습니다. 여동생 에이브릴의 도움으로 양자 리처드를 자연 속에서 키우면서 ‘1948 집필하기 시작해서 1947 말에 탈고했지만 지난세월 개고생의 후유증인 폐결핵으로 한동안 요양해야 했습니다. 폐결핵의 악화는 그의 심신을 탈진시켰고, 정맥류성 궤양을 앓고 있는 소설 주인공 윈스턴의 처지와 같은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만약 병이 그렇게 심하지만 않았다면 소설도 그다지 어둡지 않았을 '이라고 밝혔듯이 그의 저서 가운데 가장 위트가 없는 책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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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냐 브라우넬의 힘차고 밝은 이미지는 ‘1948 줄리아로 표현되었습니다. 1948 11월에 최종 탈고한 에릭은 1948 48 뒤집어 1984년이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삶의 소박한 것들을 사랑해왔던 에릭은 그것이 박탈된 가까운 미래를 묘사하여 전체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충격적인 이미지로 묘사하였습니다. '1984' 출간되자마자 고전의 반열에 올랐고 인류는 '1984' 불후의 명작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모리스 메를로퐁티와 어긋난 소냐 브라우넬은 걸작을 내놓은 에릭에게 돌아와 폐결핵으로 투병중인 에릭을 돌보며 1949 10월에 결혼해 에릭이 회복해서 계속 집필활동을 하길 바랬지만, 두달 뒤인 1950 1 214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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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엘, 에릭 아서 블레어는 하지 않아도 될 개고생의 삶과 '1984' 작품을 통해 2022 우리들의 삶에 놓여있는 계급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계급에 도전하는 다른 계급을 집요하게 철저히 탄압하고 음해하려는 모습은 기득권을 검어진 기존의 적폐세력이라는 계급이 한국같은 경우, 촛불혁명으로 기것 정권을 검어쥔 어설픈 아마추어 문민정권에게서 교묘하게 정권을 찾아오며 새로운 세력의 계급이 고개조차 들지 못하도록 탄압을 준비하는 모습에서도 여실하게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에릭 아서 블레어, 조지 오웰의 일대기를 다소 소상하게 소개한 것은 그의 자체가 대하소설감이기 때문이며 그의 삶을 이해함으로서 1984년을 보다 깊게 이해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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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Nineteen Eighty-Four, 1948)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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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Nineteen Eighty-Four, 1948) 1948 탈고된 조지 오웰, 에릭 아서 블레어의 디스토피아 소설입니다. 1984년을 전체주의가 극도화된 사회로 상정하고 미래 소설입니다. 올더스 헉슬리의멋진 신세계 더불어 이후 디스토피아를 다룬 대부분의 예술작품에 영향을 원형적인 작품으로 62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소설 이후 사회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오웰리안'(Orwellian)이라고 부르게 정도로 파급력을 가졌습니다. 작품의 제목인 1984 작가가 작품을 최종 탈고한 1948년의 뒷자리 년도를 뒤집은 것입니다. 1949 6 8일에 세커 앤드 와버그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으며 탈고는 1948년에 스코틀랜드의 주라 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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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에릭은 아내를 잃고 주라 섬에서 요양하며 작품 집필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러시아 작가 자먀틴이 1921 발표한우리들 에릭이 프랑스어판으로 읽은 것은 1946년이었습니다. 작품과 이전에 읽었던 캐서린 버드킨이 1937년에 발표한나치의 다시 읽으며 자신의 '유럽 최후의 인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에릭은 출판사의 제안으로 제목을 바꾸기로 했지만 분명하지 않은 이유로 제목을 '1984'으로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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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은동물 농장처럼 소설의 배경 역시 스탈린 시대의 소련에서 차용했습니다. 브라더는 스탈린이고 골드슈타인(Goldstein) 트로츠키입니다. 트로츠키의 원래 본명이 브론슈타인(Bronstein)이기도 합니다. 유라시아, 오세아니아, 동아시아로 구분한 세계의 3 강국은 유럽-공산권, 영미-서구권, 아시아권으로 나눴는데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을 예상한 설정이라고 있습니다. 소설에 묘사된 사회 분위기는 나치 독일과 소련의 분위기를 차용하여 전체주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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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은 소설에서 다층적인 체계를 구성하였습니다. 윈스턴과 쥴리아가 살아가고 있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와 골드슈타인이 쓴 책속의 책인  '과두정치적 집단주의의 이론과 실제

' 묘사된 저항군의 체계와 책의 뒤에 첨부된 '신어의 원리' 등이 그것입니다. 에릭은 소설의 전개를 위해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를 치밀하게 구축하고 그것을 붕괴시키기 위해 디스토피아를 철저하게 분석한 '책속의 책 썼습니다. 그리고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신어의 원리' 통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다층적인 체계를 만들어 에릭은 어두운 가까이 다가올 미래 SF 소설에 극도의 사실감을 불어넣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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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84(Nineteen Eighty-Four, 1948) 살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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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발간된 우수하고 의미있는 100 열여덜번째 , 사뮈엘 바클레이 베게트(Samuel Barclay Beckett)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 1952)편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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