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01_韓山 李氏

조선의 마지막 국불천위(國不遷位) - 한산이씨 신부(莘夫) 이경직(李耕稙) 대감님

忍齋 黃薔 李相遠 2016. 8. 30.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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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에서는 보통 4대봉사라 하여 제사를 고조부까지 모시는걸 법도로 정하여 많은 집안이 4대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문마다 4대를 넘어 윗대 조상님의 제사를 특별히 모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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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이씨 중시조인 목은 이색선생의 경우 조선건국의 사상적 기초를 세웠다는 이유로 태조 이성계는 목은 이색선생을 한산백에 봉하고 초상 영정을 모신 영당을 4대문에 안에 두고 매년 봄과 가을에 성균관 대사성이 제주가 되어 제사를 1년에 두차례씩 지내고 있는 대표적 국불천위(國不遷位)인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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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 불천위란 말이 무엇인지 궁금하실겁니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불천위(不遷位)란 국가공신 혹은 덕망이 높은 자를 나라에서 정하여 제사를 지낼수 있도록 허락한 것으로서, 조선초기 개국공신부터 후기까지의 덕망높은 자들이 선정되었습니다. 불천위는 총 3가지의 종류가 있으며 그중 국불천위(國不遷位)는 나라에서 특별히 정한 것으로, 3가지 불천위중 가장 권위가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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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불천위(國不遷位) : 국가에 지대한 공을 세우거나 학문이 높아 백성으로 부터 추앙을 받는 인물로서 임금이 교지로서 정함. 즉 시호를 받은 2품 이상의 관리로서 국가적 인물 (왕과,왕자,부마는 국불천위다)
(2) 향불천위(유림불천위) : 유학발전에 큰 업적을 남기고 충절이 높은 분을 엄격 한 규정에 의하여, 일정한 수 이상의 유림이 흔쾌히 찬성하여 결정한 인물. 즉 시호를 받은 2품 이상의 관리로서 지역적 인물
(3) 사불천위(문중불천위) : 인물의 판단 기준은 개인에 따라서 다를 수 있으므로 조금 다른 각도로 불천위로 모셔진 분들도 있습니다. 조선후기로 내려오면 시호도 받지 못하고 학자로서도 크게 명성을 떨치지 못했지만, 문중 차원에서 자기 조상 가운데 한 분(입향조, 현조 등)을 지역 유림의 추인을 받는 형식으로 불천위로 옹립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정통성과 정체성 확립이 절실했기 때문일 겁니다. 이렇게 옹립된 분을 ‘사불천위’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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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조선이 망하기전에 정한 마지막 국불천위(國不遷位)는 어느분일까요? 바로 신부(莘夫) 이경직(李耕稙) 대감님입니다. 신부(莘夫) 이경직(李耕稙) 대감님은 장충단과 사육신과 함께 배행되는 조선이 정한 마지막 국불천위(國不遷位)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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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莘夫) 이경직(李耕稙) 대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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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莘夫) 이경직(李耕稙) 대감님은 1841년 당시 청주땅이고 지금의 천안시 수신면 발산리에서 한산(韓山)이씨 참판 이선보(李善溥)의 아들로 태어나 1876년(고종 13) 동몽교관(童蒙敎官)이 된 뒤 1885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홍문관부수찬·참의내무부사(參議內務府事) 등을 거쳐 1892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었으나, 이듬해 과거응시를 가장하여 전라도 동학교도들이 대거 상경, 교조의 신원(伸寃)을 요구한 사건이 일어나 그 책임을 지고 파면되었다가, 1895년 궁내부대신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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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궁내부 대신(宮內府大臣)으로 일본 공사 미우라(三浦梧樓)의 지휘로 궁궐에 뛰어들어온 일본 낭인(浪人)패에 항거하다 민비(閔妃)와 함께 살해되었습니다. 위키백과의 '명성황후 암살 과정' 중 '대궐 진입'과정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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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 안의 상황과 병력들의 궁 안에서의 행동은 자료와 증언마다 차이가 있다. 러시아인 건축기사 사바틴이 고종을 호위하고 있었는데, 궁전 뜰에서 일본인의 행패를 목격했다. 시위대 교관이던 미국인 다이(Dye)도 시위대를 지휘하면서 궁 안에서 이 참상을 목격했다. 사바틴과 다이는 둘 다 일본 군인들에게 폭행을 당했는데, 뒷날 일본인들의 만행을 세계에 폭로하는 증언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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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도들은 궁녀들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명성황후의 처소를 대라고 윽박지르는 등 난폭하게 행동했다. 그러나 궁녀들은 두들겨 맞고 내던져짐에도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건청궁 동쪽 곤녕합에서 황후를 찾아냈는데, 궁내부 대신 이경직이 두 팔을 벌려 황후 앞(또는 황후가 있는 방문 앞)을 가로막고 나서다가 권총을 맞고 쓰러졌으며, 이어 신문기자 히라야마 이와히코(平山岩彦)가 다시 칼로 두 팔을 베었다. 이어 그러나 버둥대며 일행을 방해하던 이경직은 낭인들에 의해 허리가 베여 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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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녕합에 진입한 낭인과 조선인 협력자들은 궁녀와 상궁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누가 왕후인지 색출하던 중 변복한 왕후를 찾아내자 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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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은 이경직 대감님의 충성을 높이 평가하고 장충단을 세워 그의 위패를 제사하게 하였으며 시호를 충숙(獎忠)공으로 내리고 의정부의정으로 증직하여 영감에서 대감의 반열로 추증하였습니다. 고종이 이경직 대감님에 대한 애도의 뜻을 융숭하게 표현했으니 이는 명성왕후에 대한 추모의 정이 두터워 이경직 대감님을 더 우대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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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墓) - 이경직(李耕稙) 한산인 - 장충단비 獎忠壇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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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호
▒ 지정연월일 : 1969년 9월 18일
▒ 시 대 : 대한제국 고종 광무 4년(1900)
▒ 규모․양식 : 1기(基), 비신 높이 183㎝, 너비 68㎝, 두께 35㎝
▒ 재 료 : 화강암
▒ 소 유 자 : 국유
▒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 2가 197 장충단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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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단(獎忠壇)은 고종(高宗) 32년(1895) 경복궁(景福宮)에서 일어난 명성왕후(明成王后, 1851~1895) 시해사건(弑害事件)인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일본인을 물리치다 장렬(壯烈)하게 순사(殉死)한 시위대(侍衛隊) 연대장 홍계훈(洪啓薰, ?~1895)과 궁내부(宮內府) 대신 이경직(李耕稙, 1841~1895)을 비롯한 여러 장졸의 영혼(靈魂)을 달래기 위해 광무(光武) 4년(1900) 9월 고종(高宗) 황제(皇帝)가 남소영(南小營) 자리에 세운 사당(祠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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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祠堂)건립 후 매년 이곳에서 봄가을로 제사(祭祀)를 지냈으나 1910년 일제강점 이후 폐사되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 일제는 이곳 일대를 '장충단공원'이라 이름하여 벚꽃을 심고 공원시설을 설치(設置)했으며, 상해사변(上海事變) 때 일본군 결사대로 전사한 육탄삼용사(肉彈三勇士)의 동상과 안중근(安重根) 의사(義士)에 의해 살해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혼을 달래기 위한 박문사(博文寺)를 세웠다. 광복(光復) 후 육탄삼용사 동상과 박문사는 철거되었으나, 6․25전쟁으로 장충단의 사당(祠堂)과 부속건물이 파괴되면서 장충단비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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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단비는 장충단(獎忠壇)을 세우게 된 내력을 새긴 비로 1900년 11월에 세워졌다.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석을 얹은 간략한 형식이다. 앞면에 새긴 "獎忠壇"이란 전서(篆書) 제목(題目)은 뒤에 순종(純宗)(재위 1907~1910)이 된 황태자의 예필(睿筆)이며, 뒷면에 새긴 비문(碑文)은 당시 육군부장(陸軍副將)이던 민영환(閔泳煥, 1861~1905)이 짓고 썼다. 1910년 이후 일제가 뽑아버렸던 비신을 광복(光復) 이후 찾아서 영빈관(현 신라호텔 자리) 안에 세웠고, 1969년 지금의 자리인 수표교(水標橋,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8호) 서쪽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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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碑文)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삼가 생각하건대 우리 대황제 폐하(陛下)께서는 자질이 상성(上聖)처럼 빼어나고 운수는 중흥(中興)을 만나시어 태산(泰山)의 반석과 같은 왕업(王業)을 세우고 위험(危險)의 조짐을 경계(境界)하셨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가끔 주춤하기도 하셨는데 마침내 갑오(甲午)․을미사변(乙未事變)이 일어나 무신(武臣)으로서 난국에 뛰어들어 죽음으로 몸바친 사람이 많았다. 아! 그 의열(毅烈)은 서리와 눈발보다 늠름하고 명절(名節)은 해와 별처럼 빛나니, 길이 제향(祭享)을 누리고 기록(記錄)으로 남겨야 마땅하다. 그래서 황제(皇帝)께서 특별히 충성(忠誠)을 기리는 뜻을 표하고 이에 슬퍼하는 조서(詔書)를 내려 제단을 쌓고 비를 세워 표창(表彰)하며, 또 계속 봄가을로 제사(祭祀)드릴 것을 정하여 높이 보답하는 뜻을 보이고 풍속(風俗)으로 삼으시니, 이는 참으로 백세(百世)에 보기 드문 가르침이다. 사기(士氣)를 북돋우고 군심(軍心)을 분발시킴이 진실(眞實)로 여기에 있으니 아! 성대하다. 아! 성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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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한산이씨 청백리 안소공 사불천위제(문중불천위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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