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4_외국이야기

마하트마 간디의 실체와 바바사헤브 암베드카르 박사!

忍齋 黃薔 李相遠 2016. 12. 2.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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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I0F804m8jno

이승만 박사와 마하트마 간디의 모습이 오버랩되었습니다.


인도 쪽 히말라야를 등반하기 위해 뉴델리공항에 내려 시차를 극복할 겸 인도 남부출신 친구의 안내를 받아 간디의 추모공원인 라지가트(Raj Ghat) 참배에 나섰습니다. 랄킬라 남동쪽 야무나강가 언덕에 있는 라지가트는 인도말로 라지는 왕이고 가트는 강으로 이르는 계단이라는 말로 화장터를 이야기하는 거랍니다. 바로 이곳이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i,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지어준 이름),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본명, 1869~1948)의 유해를 화장한 곳입니다. 그곳에 검은 대리석으로 추모 단을 만들고 정면에는 간디가 마지막 남긴 말이라며 Hai Ram(오 라마신이여)이 쓰여 있고 1년 내내 꺼지지 않는 가스 장면등이 놓여있습니다. 라지가트를 들어서면 추모 단에 이르는 길가로 가지각색의 부겐베리아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를 모든 인도인이 존경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이곳을 방문하겠다"며 덕담을 하니 안내하는 인도 친구가 의외의 말을 하는 게 아니겠어요. "인도인의 25%는 그럴지 모르지만, 인도인의 75%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오히려 75%의 인도인 아버지처럼 존경하며 사진을 품고 사는 인물이 따로 있다는 겁니다. 바로 "나는 내가 원치 않게도 힌두교도로 태어났지만, 죽을 때는 힌두교도로 죽지 않겠다"며 1956년 10월 14일 2일 만에 50만을 불교로 개종시켰던 인도 하층민의 바바사헤브(아버지 같은 스승) 불가촉천민 파리아 출신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Bhimrao Ramji Ambedkar, 1891~1956) 박사입니다. 

 

인도 불가촉천민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컬럼비아대학 경제학 학사 석사 박사와 미국 변호사자격 그리고 영국 런던정경대학 경제학박사 영국 그레이법학원 수료와 영국 변호사자격을 획득하고 영국의 인도총독부 노동부 장관과 독립 인도의 첫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분입니다. 이분의 인생은 카스트 신분제 폐지와 여성 하층민의 인권 운동으로 아롱져있습니다. 카스트제도가 명시되고 불가촉천민의 힌두사원 노역 의무가 들어있는 힌두 마누법전 폐기를 주장했답니다. 

반면에 마하트마 간디는 힌두교 카스트의 3번째 계급인 바이샤에 속하면서도 카스트제도를 수호한 있는 자들의 하수인이었다고 비판을 하는 겁니다. 인도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인도가 파키스탄·방글라데시와 분리 독립될 수 밖에 없었던 데에는 이 무시무시한 카스트제도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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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정부는 인도는 하위계층에 대해 사회보장을 한다는 명목으로, 1931년에 이어 2010년에 카스트 별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바로 암베드카르 박사가 1936년에 사별한 부인을 죽은 뒤에나마 지워 달라고 애원했던 바로 그 불가촉천민명부를 보완하여 재작성한 것이지요. 

아리아 인종인 브라만(4%), 크샤트리아(7%), 바이샤(14%) 등 상위 3 카스트는 인도 인구의 25%를 차지하고 비 아리아 인종인 수드라(59%)와 불가촉천민 파리아(16%)는 75%입니다. 결국, 힌두교 영향권의 상위 3계급 25%와 힌두교를 믿는 하위계층 일부를 제외하고는 75%에 가까운 인도인이 힌두교를 버리고 회교도와 불교 등 다른 종교로 개종을 오랜 역사에 걸쳐 해오고 있는 거지요. 

문득, 한국에서의 이승만 박사의 모습과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의 모습이 오버랩되었습니다. 간디의 화장한 추모 단에 참배하겠다는 생각을 버렸습니다. 상인계급 바이샤로 태어나 귀족 브라만과 무사 크샤트리아를 위해 살다간 간디에게 더는 존경을 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신 틈틈이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 박사를 공부하여 다시 인도를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그분의 추모 단에 진심 어린 존경을 표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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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트마 간디를 모든 인도인이 존경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이곳을 방문하겠다"며 덕담을 하니 안내하는 인도 친구가 의외의 말을 하는 게 아니겠어요. "인도인의 25%는 그럴지 모르지만, 인도인의 75%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오히려 75%의 인도인 아버지처럼 존경하며 사진을 품고 사는 인물이 따로 있다는 겁니다. 바로 "나는 내가 원치 않게도 힌두교도로 태어났지만, 죽을 때는 힌두교도로 죽지 않겠다"며 1956년 10월 14일 2일 만에 50만을 불교로 개종시켰던 인도 하층민의 바바사헤브(아버지 같은 스승) 불가촉천민 파리아 출신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Bhimrao Ramji Ambedkar, 1891~1956) 박사입니다. 

 

 

 

 

인도 불가촉천민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컬럼비아대학 경제학 학사 석사 박사와 미국 변호사자격 그리고 영국 런던정경대학 경제학박사 영국 그레이법학원 수료와 영국 변호사자격을 획득하고 영국의 인도총독부 노동부 장관과 독립 인도의 첫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분입니다. 이분의 인생은 카스트 신분제 폐지와 여성 하층민의 인권 운동으로 아롱져있습니다. 카스트제도가 명시되고 불가촉천민의 힌두사원 노역 의무가 들어있는 힌두 마누법전 폐기를 주장했답니다. 

반면에 마하트마 간디는 힌두교 카스트의 3번째 계급인 바이샤에 속하면서도 카스트제도를 수호한 있는 자들의 하수인이었다고 비판을 하는 겁니다. 인도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인도가 파키스탄·방글라데시와 분리 독립될 수 밖에 없었던 데에는 이 무시무시한 카스트제도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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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정부는 인도는 하위계층에 대해 사회보장을 한다는 명목으로, 1931년에 이어 2010년에 카스트 별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바로 암베드카르 박사가 1936년에 사별한 부인을 죽은 뒤에나마 지워 달라고 애원했던 바로 그 불가촉천민명부를 보완하여 재작성한 것이지요. 

아리아 인종인 브라만(4%), 크샤트리아(7%), 바이샤(14%) 등 상위 3 카스트는 인도 인구의 25%를 차지하고 비 아리아 인종인 수드라(59%)와 불가촉천민 파리아(16%)는 75%입니다. 결국, 힌두교 영향권의 상위 3계급 25%와 힌두교를 믿는 하위계층 일부를 제외하고는 75%에 가까운 인도인이 힌두교를 버리고 회교도와 불교 등 다른 종교로 개종을 오랜 역사에 걸쳐 해오고 있는 거지요. 

문득, 한국에서의 이승만 박사의 모습과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의 모습이 오버랩되었습니다. 간디의 화장한 추모 단에 참배하겠다는 생각을 버렸습니다. 상인계급 바이샤로 태어나 귀족 브라만과 무사 크샤트리아를 위해 살다간 간디에게 더는 존경을 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신 틈틈이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 박사를 공부하여 다시 인도를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그분의 추모 단에 진심 어린 존경을 표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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