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창비를 통해 등단한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Young-mi Choi) 시인을 나는 유학을 핑계로 1988년에 한국을 떠난 후로 한국 쪽을 향해서는 오줌도 누지 않았기에 몰랐다. 연전에 페이스북상에 인기 시인이 생활보호대상자, 즉 도시 빈민이라는 자기 고백에 게시물을 링크하다가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읽어보게 되었다. 팔자가 억세다는 신축년 동갑에 80학번, 고문에 구금에 살아온 배경에 공감대가 많다 보니 시인의 시들이 심금을 울렸다. 오늘 자전적 소설 '청동정원'에 등장하는 ‘수눌음 다방(동인다방)’ 여사장을 찾는 담벼락 글을 링크하면서 시인의 삶이 궁금해졌다. 구글링에서 찾은 옛 기사 한쪽이 눈을 사로잡는다. 살인마 전두환의 아들 전재국이 하던 시공사에서 8개월간 일한 사연이 흥미롭다.
.
[데스크에서] 시인 최영미의 어떤 고백
어수웅 문화부 차장/2013.06.13
.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인 시공사 전재국(54) 대표가 싱가포르에 개설했다는 페이퍼 컴퍼니의 이름은 '블루 아도니스'다. 시인 최영미(52)씨의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는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라는 시가 있다.
.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이 소재로 소설을 준비 중인 시인은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1992년, 그녀는 막 문을 연 시공사에 취직했다. 아직 등단 전이었고, 한 푼이 아쉽던 시절이었다. 대학교 4학년에 감행했던 결혼은 파탄 났고, 운동권 선배가 운영하던 출판사에서도 막 '짤린' 참이었으며, 집안까지 기울었을 때였다. 등록금 때문에 홍익대 미술사학과 대학원도 휴학했는데, 한 홍익대 선배가 출판사 취직을 제안했다.
.
'타도 대상'으로 불렀던 사람의 아들이 사장이라는 사실은,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야 알았다고 했다. 대학 입학하자마자 5월 광주를 겪었던 서울대 서양사학과 80학번. 그 시절 운동을 했던 이유가 누구 때문인데. 시인은 당시 일기에 이렇게 썼다고 했다.
.
"다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시인은 기자에게 덧붙였다. "나는 서른 살 실업자. 오라는 곳이 없었다. 집안도 어렵고, 남자와는 헤어졌고, 월급은 절실하게 필요했다. 착잡했다." 자신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학생운동을 했던 선배 언니에게 물었다. 시인의 형편을 알았던 선배는 "못 다닐 이유가 뭐니?"라고 되물었다.
.
그녀의 업무는 미술 출판 관련 기획이었다. 외서를 준비하면서 여러 명에게 번역을 부탁했다. 홍익대 대학원과 운동권 친구들이 많았고, 그중에는 동갑내기였던 유시민 전 장관의 동생 유시주 희망제작소장도 있었다고 했다.
.
시공사에는 그렇게 8개월을 다녔다. 출퇴근하던 지하철에서, 출판사 점심시간을 이용해 쓴 시편들로 그녀는 등단한다. 1992년 창비 겨울호였다. 386 학생운동 세대의 내면 풍경이라는 평가를 받은 초대형 베스트셀러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그렇게 탄생했다. 60~70%가 시공사 시절 쓴 시편이었다. '아도니스'는 당시 출판사를 자주 찾던 전 대표의 친구에게 시인이 붙인 별명. 시집 발표 후 '아도니스'에게 그 사실을 알렸을 때, 그는 영광이라며 자신의 친구와 함께 시인의 탄생을 축하했다.
.
어떨까. 이 삶의 아이러니가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를 옹호하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타도 대상이었던 사람의 아들에게 월급을 받게 된 시인의 처지를 동정하는가. 물론 그것도 아닐 것이다. 단지 대의명분이나 거대담론만으로는 해결되거나 굴러가지 않는, 우리 삶 어느 순간을 도려낸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
시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누가 어떻게 독재자 아들의 돈을 받을 수 있느냐고 비난한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
"생각 안 해봤어요. 하지만 그렇게 묻는다면,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어요. 당신이 내게 생활비를 줄 수 있느냐고." 시인은 "내가 존경하는 운동권 선배의 표현을 빌리면, 80년대는 내게 그 의미를 해독하지 못해 아직도 낯선 과거입니다."라고 했다.
.
출처 : 조선일보 데스크에서
'1. Dr. Sam Lee > 15_80년5월18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인마 전두환 너 딱 걸렸어 5.18 학살의 책임자! (0) | 2017.04.05 |
---|---|
[김상패 감독의 오류 2017년 01월 23일] (0) | 2017.03.01 |
[법마(法魔) 김기춘(金淇春)의 약력보고] (0) | 2017.01.23 |
5·18 발포 명령은 누가?…軍 자료서 '공중사격 요청' 명시 (0) | 2017.01.16 |
더 철저하고 교묘한 '매판자본독재' (0) | 2017.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