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마(法魔) 김기춘(金淇春)은 1939년 11월 25일 일제강점기에 경상남도 통영군 거제도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김기춘의 부모나 일가친지에 대하여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1952년 외포국민학교를 졸업하고 1955년에 마산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958년에는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3년 서울법대를 졸업했습니다. 대학 3학년 때인 1960년 10월 제12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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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광주지방검찰청 검사를 시작으로 1973년까지 9년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 부산지방검찰청 검사를 역임하였습니다. 1972년도에는 유신헌법을 만드는 데 핵심적으로 관여하여 실제 유신헌법은 김기춘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고 박정희로부터 똘똘이라는 애칭으로 귀여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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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8월 15일에 일어난 육영수 저격 사건 담당 검사로 묵비권을 행사하는 문세광을 하루 만에 설득하여 범행 과정 일체를 자백받아 기소하는 등 수사능력을 인정받아 1974년 9월부터 1980년 전두환 집권 전까지 6년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부장으로 각종 간첩조작 사건을 진두지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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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간첩조작사건으로는 1975년 11월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부산대학교 등에 재학 중이던 재일교포 2, 3세 유학생 16명을 고문조작으로 일제강제노역 등으로 끌려갔던 재일교포의 자제들을 간첩으로 만들어 인생을 요절낸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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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집권 후인 1980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안부 부장으로 복귀하여 대검찰청 특수부 1과 과장, 1981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안부 부장, 1982년 법무연수원 검찰 연구부 부장, 1985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장, 1986년 5월부터 1987년 6월까지 제18대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1987년 6월부터 1988년 12월까지 제12대 법무연수원 원장, 1988년 12월부터 1990년 12월까지 제22대 대검찰청 검찰총장, 1991년 5월부터 1992년 10월까지 제40대 법무부 장관을 마칠 때까지 3명의 군사정권 독재자의 충견 노릇을 철저히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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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도 1984년에는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와 1989년에는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를 맞췄습니다. 1992년 12월 11일에 부산 지역 기관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지역감정을 조장해 김영삼 여당 후보를 지원하는 내용을 의논했던 초원복국 사건으로 기소되었으나 이를 폭로한 상대진영을 도청사건으로 여론 조성하여 사건 당사자에서 교묘하게 피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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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9월 변호사 김기춘 법률사무소를 운영하였고 1995년 2월부터 1996년 5월까지 제8대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1995년 9월부터 1995년 12월까지 한양대학교 법과대학원 겸임교수, 1996년 4월부터 2000년 4월까지 제15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1997년 11월 한나라당 경남 거제지구당 지구당위원장, 2000년 5월부터 2004년 5월까지 제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2000년 6월부터 2001년 5월까지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2003년 4월부터 2004년 5월까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2004년 3월 1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탄핵소추 의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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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부터 2008년 5월까지 제17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2004년 7월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위원, 2007년 9월 한나라당 경남도당 위원장, 2009년 8월부터 2013년 8월까지 제2, 3대 한국에너지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2013년 8월부터 2015년 2월까지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을 지내다 감이 좋지 안 차 숨어지내다 드디어 2017년 1월 22일 구속기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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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31일 부인 박화자(박찬일 변호사의 딸)와 김기춘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중앙대 의대를 나오고 연세대에서 재활의학 전문의 과정을 거치고 용인에서 개업의로 지내던 김성원이 술 마시고 난잡한 행위를 하다 뇌출혈로 의식불명에 빠졌다는 소문 또는 공식적으로 교통사고로 의식불명에 빠졌다가 2014년 1월 22일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이제 법마(法魔) 김기춘(金淇春)의 53년간의 악행이 얼마나 드러날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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