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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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해밀턴의 뮤지컬]

忍齋 黃薔 李相遠 2017. 2. 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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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해밀턴은 캐리비안의 리워드 제도 네비스 섬의 수도인 찰스타운에서 스코틀랜드계의 뜨내기 아버지 제임스 해밀턴과 불란서계 위그너 창녀 레이첼 포셋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였습니다. 아버지는 진작 해밀턴을 버리고 떠난데다가 어머니마저 11세에 잃은 그는 일찍부터 모진 고생을 했지만 가난과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결심과 노력이 대단해서 주변 어른들을 감복시킨 결과 17세에 뉴저지 주 엘리자베스타운에 있는 그래머 스쿨인 엘리자베스타운 아카데미에 유학을 옵니다. 비상한 머리, 목표설정과 달성을 위한 부지런함, 입과 글을 통한 논리적인 이론 전개 등의 천재성은 프린스톤 대학에 입학하게 하였고, 대학생 때부터 뛰어나 미국 독립전쟁 때 조지 워싱턴 장군의 부관중 하나가 됩니다. 조지 워싱턴이 천신만고 끝에 영국군의 항복을 받고는 정치에 나서지 않기로 작심했을 때 그를 설득시켜 초대 대통령이 되게 한 주역 중 하나가 해밀턴입니다. 그리고 초대 재무장관이 되어 오늘의 미국의 초석을 놓습니다. 건국의 아버지들 중 최연소였던 그는 토마스 제퍼슨 등이 거의 독립적인 주정부의 주권을 고집하여 연방정부의 경제권을 배척하던 것과는 달리 연방정부의 힘이 13개주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경제활동 및 조세권 등으로 강화되어야만 미국이 발전한다는 논리를 “연방주의자들의 논문들”에서 전개합니다. 해밀턴은 아론버라는 부통령 출신이 뉴욕지사로 나오는 것을 ‘위험한 인물’이라고 선출되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신문에 글 쓴 것 때문에 결투 도전을 받아 40대에 목숨을 잃습니다. 알렉산더 해밀턴의 뮤지컬은 만든 미란다는 신문인터뷰에서 해밀턴이 이민자로서 미국에 큰 공헌을 한 첫 예라고 지적했습니다. 정말 혁명적인 삶, 미란다의 표현대로 세 사람의 인생을 산 것과도 같은 해밀턴의 파란만장한 삶이 혁명적인 뮤지컬로 전개됩니다. 이번 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공연되는 알렉산더 해밀턴의 뮤지컬 표를 어렵게 비싼돈을 들여 구했습니다. 감상후 기분 내키면 후기를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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