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地方分權型聯邦制

[이승만이 만든 전라도 하와이]

忍齋 黃薔 李相遠 2017. 3. 29.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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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50년 6·25 한국동란이 발발하자 피난민 1호 이승만이 전라도로 토낀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대구 거처 부산 가는 게 경상도에 빨갱이가 많다고 무장게릴라에 잡힐 수 있을지 모르니 사람들이 순박한 전라도로 피난 여정을 잡아 이리 거처 목포로 가서 배 타고 부산으로 도망갔다. 창경원 식물원장 겸 경무대 조경담당관을 하던 내 부친 방원선생도 귀한 식물들과 이승만이 좋아하는 품종들을 그 피난 기차 뒤편에 싣고서 대구 대전까지 따라 갔다가 각자 알아서 살라는 명령을 받고는 전주에다가 피난 식물원을 꾸렸다. 월급도 끈겨서 전북농림에서 원예를 가르치며 피난 식물원을 지켰다. 그래서 내 부친 방원선생은 전주와 인연을 맺었다. 그러다 중공군의 남하를 막겠다고 참전하여 온몸에 수류탄 파편을 맞아 구사일생 기적처럼 살아나 전쟁 영웅이 되셨다.

 

 

창경원 식물원장 겸 경무대 조경담당관 방원 이성찬 선생

 

이승만과 프란체스카 여사가 피난 도중 단란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 - 1950년 6월 27일 저녁 7시 30분 기차 4량을 달고 아끼는 화분도 가지고 대구까지 갔다가 대구에 빨갱이가 무섭다고 다시 대전으로 돌아와 충남도지사관사에서 대전방송국 설비를 이용하여 "서울시민은 안심하라"며 자신은 서울에 있는 양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을 했다. 7월 1일 새벽 3시 승용차를 타고 이리역으로 가서 8시간을 기다려 3등객차 2칸을 단 기관차를 구해 목포로 도망갔다. 오후 2시에 목포에 도착했으나 또다시 배를 구할 수 없어 2시간 기다리다 겨우 작은 소해정을 타고 부산으로 출발했다. 5백톤급의 작은 소해정 제514함에 올라 19시간의 항해 끝에 부산에 도착했다. 6월 27일 서울 탈출 이후 부산을 거쳐 7월 9일 대구로 이동하기까지 서울-대구-대전-수원-대전, 그리고 다시 대전-이리-목포-부산-대구에 이르는 15일 동안의 이승만의 행적은 한마디로 갈팡질팡이었고 부산에서는 일본에 망명을 타진하기까지 했다.

6.25 '1호 피난민' 이승만, 서울시민엔 "가만히 있으라"하고는 한강다리를 폭파했다.

 

2. 1980년 내부친이 피난시절 전북농림에서 원예를 가르칠 때 동료 선생들이 대부분 전북대 농대 교수들을 하고 있었다. 내 큰형은 서울대 의대 내 작은형은 한양대 내 누나는 한양여전, 어지간히 살아도 대학생 4명은 버거운 법, 난 부친의 뒤를 이어 원예를 전공하겠다고 학비와 기숙사비가 제공되는 전북대 농대 농학계열에 입학했다. 부친 방원선생이 만든 인연을 따라 나도 전라도 전주와 인연을 맺었다. 어른들이 다들 하와이로 유학 가냐고 놀렸다. 이승만이 전라도를 하와이라고 했다고 그리 부른다더라. 그러다 대학 입학한 지 두 달 만에 5.17 예비검속에 이세종 농대 농학과 선배의 잔인한 죽음 앞에서 잡혀가 죽음을 넘나드는 고문과 구타 속에서 5.18민주화유공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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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라도 하와이'란 말은 이승만이 김구 선생 등 민족진영 정치인들의 연설회에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을 보고는 '하와이 놈들 같으니라고'하여서 김창용을 비롯한 부하들이 따라 하면서부터 '전라도 하와이'가 시작되었다. 일본 강점기 이승만은 독립운동을 한답시고 미국 본토에 머물다 돈이 궁해지면 우리 동포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하와이로 옮겨서 독립자금 명목으로 돈을 뜯어갔다. 한때 김구 주석은 독립자금 착복 혐의로 이승만의 사살을 명하기도 했는데 이승만의 영어권 유학을 아깝게 여긴 조선공산당 비서 지운 김철수 선생이 코민테른 자금으로 이승만의 착복금을 대납하여 목숨을 살려준 바 있다. 그로 인해 이승만은 하와이 동포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됐다. 그리고 대구는 빨갱이가 많다고 모스크바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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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목포항에 접안한 세월호 애도가 우선이라고 목포시가 '유달산 축제'를 전격 취소했다는 인터넷 보도가 출근하여 커피 한잔하는 내 눈에 잡혔다. 나의 부친 방원선생의 전북농림과의 인연으로 이어진 나의 전북대 농대의 인연, 나는 어쩔 수 없이 전라도와 인연을 맺었다. 천형이기도 하고 2등 또는 3등 시민이기도 한 전라도. 하지만 난 전라도 정신을 사랑한다. 성웅 이순신이 공연하게 떠든 게 아니다.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전라도가 없으면 한국은 존재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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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누가 이런 인간을 국부라 칭하는가? 이승만 일본 망명?… "도망다니느라 정신 없었다" 

http://blog.daum.net/enature/1585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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