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2_한국역사

1904년 2월 9일 러일 제물포 해전(仁川沖海戦, Бой в заливе Чемульпо)

忍齋 黃薔 李相遠 2018. 7. 18. 06:29
반응형
퇴근길에 버스를 타지 않고 걸을때 마다 샌프란시스코 사우스팍 서쪽길인 잭런던 거리를 지나며 잭 런던이 조선에 품었던 연민의 정을 생각해 보곤 합니다. 러일 전쟁 초인 1904년 2월 9일에 벌어진 제물포 해전(仁川沖海戦, Бой в заливе Чемульпо)을 잭 런던(Jack London)이 찍은 사진들입니다.

잭 런던은 그의 40인생중 1/4을 샌프란시스코 일간지 이그제미너의 종군취재 사진기자의 신분으로 3차례나 조선을 오가며 그의 사진 앵글에 담는데 소비했습니다.

그의 사진 취재 내용은 일본의 승리라는 주제와 어긋나게 약소국 조선의 참담한 모습이 많아 일본군에 2차례나 투옥되고 루즈벨트 대통령이 외교력을 동원해 석방시키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어졌습니다.

이 사진들은 여순항 해전과 함께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첫 전투로 모두 기습적인 공격으로 일본이 승리한 제물포 전투로 자침한 바략(Varriag)호와 코리에츠(Korietz)호의 침몰을 담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여순항과 제물포항에 러시아 제1태평양 함대를 주둔시켜 조선에 대한 패권을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의 명령을 받은 우류 소토키치가 6척의 순양함과 2500명의 병력으로 제물포에서 러시아 함대를 격파했습니다.

1904년 2월 7일 일본 연합함대의 대규모 무력 군단을 본 포함 코리에츠는 여순항에 지원 요청을 보냈고, 2월 8일 이른 아침 코리에츠함이 일본의 순양함 지요다구를 발견하고 포를 쐈으나 지요다구는 어뢰로 대응해 양측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결국 코리에츠는 항구에서 퇴각했고 지요다구는 우류 소토키치의 소대와 접선했고 영국의 HMS 탈봇, 프랑스의 파스칼, 이탈리아의 엘바, 미국의 군함 빅스버그 등 정박한 중립 국가 항구에서는 일본군에게 항의했으나 오히려 위협을 받아 피신했습니다.

우류 소토키치는 경순양함 지요다, 다카치호, 아사마, 나니와, 니이타카, 아카시와 어뢰정 4척을 이끌고 3000명의 군사들을 제물포에 상륙시켰으며 일본 군대는 제물포로부터 이동하여 서울을, 그리고 대한제국의 나머지 부분을 점령하였습니다.

2월 9일 오후까지 14:2로 일본군과 러시아군은 전투를 벌여 일본군은 바략함에 올라타 장교 알렉세이 니로드를 포함한 승조원들을 죽였으며 남은 함대는 대포와 어뢰정으로 두 전함에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그러자 바략함과 코리에츠함의 승조원들은 나포당할 것을 우려해 두 전함을 자침시켰고 그 과정을 잭 런던이 사진으로 담게 되었습니다.

같은 날 2월 9일 일본 함대는 제물포 항구에 5만명의 병력을 상륙시켰고 선제 공격을 하여 군사적으로 승리한 일본군은 조선을 손쉽게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2월 12일, 러시아 공사가 조선에서 철수함에 따라, 대한제국과 러시아는 국교가 단절되었고 침몰한 러시아의 함정은 뒤에 일본군에게 인양되어 일본군 함정으로 개조되었습니다.

조선의 땅과 바다에서 일본과 러시아가 자국의 패권을 위해 전쟁을 일으킨 슬프고 창피한 역사를 잭 런던은 안쓰러운 마음으로 그의 앵글에 담아 전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외세의 패권에 놀아나는 그런 한심한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러시아 바략(Varriag)함과 코레이츠(Korietz)함이 일본함대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일본함대에 맥도 못추고 스스로 자침한 라시아의 바략(Varriag)함
  

일본함대에 패한 라시아의 바략(Varriag)함이 스스로 폭발시킨 연기를 잭런던이 제물포항에서 찍었다.

자침한 러시아의 코레이츠(Korietz)함 옆에 달린 비상탈출용 보트도 사용 못하고 뒤집혀있다.
 

일본함대에 패하여 러시아 스스로 침몰시킨 코레이츠(Korietz)함 잔해

일본함대에 패하여 러시아 스스로 침몰시킨 코레이츠(Korietz)함이 가라앉고 잇다.

일본함대에 패하여 러시아 스스로 침몰시킨 코레이츠(Korietz)함 잔해

일본함대에 패하여 러시아 스스로 코레이츠(Korietz)함을 폭파 침몰시키고 있다.

러시아 함대를 격파하고 의기 양양하게 제물포에 상륙하는 일본군

일본군 간부와 외신기자들이 묵는 서울 그랜드 호텔 앞 모습

서울 그랜드 호텔 앞 길거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일본군

제물포에서 러시아 함대를 대파하고 서울을 점령하고 파죽지세로 북진하는 일본군이 군수물자를 조선의 농군들의 지게를 소집하여 사용하고 있다. 북진중 휴식중인 일본군과 조선 지게꾼들.

제물포에서 러시아 함대를 대파하고 서울을 점령하고 파죽지세로 북진하는 일본군이 북진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미국 종군 사진기자 잭런던이 일본군을 따라 북진하다 개성 남대문을 지날때 찍은 사진이다.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일본군이 반일적인 사진을 찍는지 잭런던을 감시하도록 붙힌 통역겸 감시역 야마다.

.

+++ 

참고:


잭 런던은 샌프란시스코 이그제미너의 러일전쟁 취재요청에 응해서 증기선을 타고 (1) 일본 잠입 취재 (2) 부산 일본 전진기지 잠입취재 (3) 조선 제물포 잠입취재등 무려 7년여에 걸처 3차례를 일본과 조선을 방문하여 취재를 합니다. 취재기간 동안 일본군의 명령을 어겨가면서도 나름데로 구석구석 취재를 했습니다. 그 덕에 일본군에게 2번씩이나 체포되고 구금되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외교적으로 손을 써서 풀려나기 까지 했지요. 더군다나 잭런던은 샌프란시스코 만 건너편 유시 버클리 옆동네 오클랜드에 본부를 둔 미국 사회주의 단체의 창설자중에 한명이기도 합니다. 그 단체는 미국 공산당의 모체가 된 단체입니다. 잭런던의 취재는 객관성을 가지고 단순 취재를 했다고 봐야 합니다.
.
잭 런던(Jack London)은 1876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친부의 낙태권유를 뚫고 태어납니다. 엄마는 플로라 웰맨(Flora Wellman)으로 팬실바니아 커넬을 만든 마샬 웰맨의 막내딸로 골드러쉬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와서 성공을 거둔 여장부입니다. 잭 런던의 친부는 윌리럼 체니(William Chaney)인데 1906년 대지진때 기록이 소실되어 법적으로도 부부였는지는 알수가 없습니다. 엄마가 존 런던과 재혼하여 양부의 성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잭 런던이 유시 버클리 대학생 시절에는 친부 윌리럼 체니가 생부임을 부정하는 편지로 상처를 입고 대학을 때려치우고 금광탐험을 하여 성공합니다.
.
잭 런던이 쓴 유명한 소설로는 'The Call of the Wild', 'White Fang', 'The Sea-Wolf', 'The Iron Heel', 'Martin Eden' 등이 있습니다. 소노마 카운티에 아름다운 농장을 소유했지만 수많은 여행에서 얻은 각종 질병과 술병으로 1916년 12월 22일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많은 논평가들이 잭 런던이 자살했네 어쩌네 하는데 그건 다 뻥입니다. 또 가난했다고 뻥도 치는데 그것도 거짓말입니다. 금광으로 거부가 되엇고 자신의 재산을 동물구호 운동과 사회주의 활동에 기부하여 오클랜드를 미국 공산주의의 메카로 만든 사람입니다.
.
+++

반응형

'2. Humanities > 22_한국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관참시  (0) 2018.08.28
김지선과 노회찬  (0) 2018.07.29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연좌 천막농성  (0) 2018.01.23
盧武鉉 정권 최대 의혹 ‘바다이야기’  (0) 2018.01.14
악마 김기춘의 일생  (0) 2017.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