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2_한국역사

나라를 구하기위해 재산은 물론이고 목숨까지 바치는 사람들은 우리 천민(?)들 뿐

忍齋 黃薔 李相遠 2020. 3. 7.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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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때 조선민중이 일본군편에서 싸웠다느니, 일제병탄을 하층민은 환영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친구가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1590년대 당시, 가렴주구 노릇하는 3%도 않되는 양반의 착취와 적패를 생각하면 그럴듯한 이야기고 또 내가 #살인마 #전두환이의 고문과 폭압을 피해 유학을 핑계삼아 도미하여 한국과 한국인에 이를 갈며 살고 있으니 더더욱 그럴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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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제시절만 보아도 그 많은 친일작위자 중에 천민출신은 딱 한명이고 상해 임시정부의 수반으로 독립운동을 진두지휘한 김구선생은 천민이나 진배없는 몰락한 양반가 출신이었다. 조선은 양반지도층이 무고한 백성을 착취하는것도 부족하여 나라도 섬슴없이 팔아먹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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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구하기위해 재산은 물론이고 목숨까지 바치는 사람들은 우리 천민(?)들 뿐이다. 착취자 친일 양반가의 맥을 이어가는 자유당 놈들을 몽둥이로 때려잡아야 대한민국이 아름다운 나라가 된다. 자 몽둥이 하나씩 들고 자유당 놈들을 때려 잡으러가자. 아참, 짱돌도 하나씩 꼭 한손에 움켜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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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1760년들어 양반은 인구의 8%로 2배이상이 증가한다. 그 이유는 정조당시 홍국영의 세도정치에서 시작한다. 이씨왕조의 권위를 떠받드는 3%의 양반 기득권세력과는 별도로 그 권위에 도전하는 외척 세도가들의 등장은 자신을 지켜줄 친위 기득권 세력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자신의 가신을 약조하거나 재산을 받치는 하층민에게 양반의 족보를 만들어 주고 벼슬을 주는 부정부패가 공공연하게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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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때 양반이 65.48%까지 증가한 건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극에 달했을때이다. 강화도에서 농사짖고 나무하던 철종을 왕으로 만든 세도가들은 이씨조선을 안동김씨의 나라처럼 요절을 내기 시작했다. 경제활동을 할 하층민이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4대에 걸쳐 취재(과거급제, 진사입격, 생원합격)에 나가지 못한 양반을 그 대접을 안한다는 양반대접법까지 만들었다. 그로 인해 양반들은 오로지 과거, 진사시, 생원시에 매달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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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원시 같은 경우, 환갑넘은 응시자들이 많을때는 노인장 우대를 이유로 환갑넘은 응시자는 무조건 합격시키는 일도 이조실록에는 전하고 있다. 유교 성리학 사상으로 건국하여 600년을 그 하나의 사상으로 성리학자들이 집단으로 국가를 운영했던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했던 이상국가였다. 그런 이씨조선을 결국 신안동김씨, 여흥민씨, 풍양조씨, 반남박씨와 같은 왕의 외척세력들이 요절을 내고 멸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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