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08_黃薔(李相遠)

[忍齋書巢(인재서소)]

忍齋 黃薔 李相遠 2020. 12. 18.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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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 김철수 선생과 의재 허백련 선생이 내게 내린 휘호 '忍齋(인재)'와 '忍齋書巢(인재서소), 인재의 작은 책방'이다. '忍齋'라는 호는 내 초등학교 시절, 동네 오학진 국회의원 흉내를 내며 연설을 하고 초등학교 어린이회장에 출마하여 4, 5, 6 학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당선되는 모습을 지켜보시곤 3형제 호를 지어 주신다며 내린 호다. 기억에 큰형은 신재, 작은형은 노재, 나는 인재다. 언젠가 작은형 집에 가보니 액자를 만들어 잘 간직한 걸 보았다. 어린 시절 위아래 가리지 않고 시시비비를 가리려 드는 내 모습을 보시고 참을 忍자를 생각하며 살라고 지어 주셨지만 난 지운 선생과 의재 선생의 그 깊은 뜻을 받아 담을 그릇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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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을 忍자를 명심하고 살았다면 고등학교 1학년 때 생물을 가르치는 담임 선생이 독일어 선생에게 영어 과외를 받으라는 종용에 어물어물 넘어갔을 거다. 그런데 난 "영어 선생님에게 영어 과외를 받으라 하면 이해가 되지만, 독일어 선생님에게 영어 과외를 받으라니 말이 됩니까?"라고 물었다. 난 정신없이 귀싸대기를 맞아야 했다. 당시 태권도 3단의 기력이 있어 난 그만 담임 선생의 손목을 잡고 밀치며 독설을 날렸다. "독일어 선생님에게 영어 과외를 소개해 구전을 받으시는 모양인데 아예 복덕방 차려서 제대로 된 구전을 받으세요."라고. 그리곤 가방을 싸 들고 그길로 학교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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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난 담임 선생을 팬 패륜 학생으로 소문이 났다. 어른들이 한결같이 야단치던 그때 내 부친의 지인 백사(白史) 전광용(全光鏞, 1919년 3월 1일 ~ 1988년 6월 21일) 선생이 나를 감싸고 돌았다. 함경남도 북청이 고향이신 백사 선생은 마침 해청 선생이 만든 영동고등학교 이사를 겸하고 있었다. "상원이 너는 크게 될 놈이다. 내가 뒷배를 봐줄 터이니 내 은혜를 잊지 말아라. 하하하" 나는 백사 선생과 해청 선생 덕분에 선생을 팬 패륜 학생에서 정의로운 학생이 되어 영동고등학교로 전학을 갈 수 있었다. 생물 선생 덕에 제법 하던 공부도 취미를 잃어버리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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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업을 잇기 위해 전북대 농대를 갔다. 1980년 그 학원의 봄은 날 살인마 전두환에 반대하는 항쟁 앞으로 이끌었다. 1980년 5월 17일 예비검속에 농대 1년 선배 이세종 열사의 죽음 앞에서 잡혀가 살인마 전두환이 1980년 9월 1일 11대 체육관 대통령으로 집권한 후 대국민 화합 차원으로 대사면을 실시할 때 까지 장장 4개월을 보안대의 고문에 시달리며 사경을 헤매야 했다. 그때 내 몰골을 본 지운 선생은 보안대 놈들이 일정 시절 일경 놈들보다 더한 놈들이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다시 붓을 들어 이 '忍齋書巢(인재서소)'를 쓰셨다. 忍으로 목숨을 지키라는 뜻이겠지만 지운 선생의 휘호는 내 부친 방원 선생의 서화 보따리 속에 묻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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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977년에는 의재 선생이 가시고 1986년에는 지운 선생이 가시고 1988년엔 백사 선생도 가셨다. 올 한해 지구촌은 '코비드-19'로 힘든 시절을 지나고 있다. 1988년 미국 유학을 나와 미국 생활을 하는 나도 모든 업무를 온라인으로 보는 재택근무를 이어오고 있다. 내가 사는 집은 100년 전 이탈리안 이민자가 집을 지어 살았는데 살기에 그리 편한 집은 아니다. 집을 고치고 화장실도 늘리려 했는데 그러면 집값 가치가 늘어 재산세가 족히 2배는 오른다니 고민이 생겼다. 그런데 주 정부가 집이 모자란다고 타운 정부에 조닝을 바꾸라고 종용했고 타운에서는 300평 정도 되는 대지에 3층짜리 집을 8채나 지으라고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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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8채를 지어 한 채에 살던가 아니면 다른 곳으로 다시 이사를 갈 판이지만 잘하면 남은 인생 금전적 고통 없이 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또 내 각시가 슬기롭게 잘 진행을 하여 다소 불편하지만 있는 그대로 살고 있다. 대신 끌고 다니는 짐이 많다 보니 그 짐을 두기 위해 뒷마당에 창고를 만들었다. 양철 쪼가리 조립식 창고 하나와 플라스틱 조립식 창고가 원래 있었지만, 비도 새고 책을 보관하기엔 적당하지 않아 조립식 목재 창고 하나와 직접 목재 창고 2채를 지어 뒷마당에 5채의 창고가 늘어서 있다. 창고를 짓는 동안 길 가던 사람들이 월 천오백 달러에서 삼천불까지 줄 테니 빌려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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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니 샤워나 화장실도 없고 전기도 안 들어오는 창고를 고액에 빌려달라니. 주택문제의 심각성이 느껴졌다. 그런데 뒷집에서 위반건축물을 건축했다고 타운에 신고했다고 검사를 나왔다. 법으로 (1) 기초가 지표면으로 들어가지 않아야 하고 (2) 면적이 120 스퀘어피트를 넘지 말아야 하고 (3) 높이가 15피트를 넘지 말아야 하며 (4) 건물들이 대지 건폐율 50%를 넘지 말아야 하고 (4) 창고가 대지 전면 50% 앞으로 나오면 안 된다고 한다. 내 사무실로 쓰는 창고는 그 법칙을 모를 때 14피트x12피트로 지어서 건축 허가를 받아 세금을 내던가 아니면 120 스퀘어피트 이하로 하든가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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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어차피 7채 건축 허가 과정에 들어간 판이라 14피트x8.5피트로 줄여버렸다. 재택근무 규칙을 맞추다 보니 뒷마당 창고를 하나 비워 사무실로 꾸미고 일을 보고 있다. 틈틈이 지운 선생 서화를 정리하며 '忍齋(인재)'와 '忍齋書巢(인재서소)'를 다시 접하고 보니 이 창고가 '忍齋書巢(인재서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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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은 분들만 볼 후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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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서 언급한 고1 선생님 이야기를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 들었다. 내가 태어난 한남동 식물원은 서울대 생물학과 실습장을 겸했다. 원예를 전공한 내 부친이 전북 농림에서 원예를 가르칠 때 내 조부가 전라도 여자와 연애한다고 서울로 불러올려 청량리 원예시험장에서 일하는 바람에 학교에 남지 않으셨지만 내 부친 친구분들은 문교부에서 주던 구제 박사를 받고 교수들을 하셨는데 서울대 생물 약대 의대 기초에 생물 관련 교수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하필 그 생물 선생님이 서울대 생물 과를 나오셨다. 그리고 하필이면 근무하던 학교가 제약회사 하는 부친 지인이 운영하던 사학이었다. 서울대 생물과 선배 스승들에게 불려가 나와 관련된 일을 설명해야 했다. 그리곤 진짜로 학교를 그만두고 복덕방 하셨다고 한다. 그리곤 지병으로 일찍 돌아가셨다고 한다. 내 어린 치기가 만든 일이다. 내가 내 인생을 다시 산다면 절대 그런 치기를 부리지 않을 거다. 혹시라도 청소년이 내 글을 본다면 절대로 이런 건 따라 하면 안 된다. 살아보니 어른들도 유치하기는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이런 경우에는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야 한다. 안 그러면 진짜 여러 사람 인생이 꼬여버린다. 내가 반성하고 반성하는 일 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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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금섭 교수님 해설: 인재(忍齋) *인제 X 齋 : 재실, 연구실 齊 : 가지런하다, 정리하다 ; 제 제가(齊家) 가정을 잘 꾸려나가다 齊(제)+示(시)=齋(재)인데, '천도제'로도 쓰는 모양이지만, 천도재가 더 적실할 듯. 문자학적 분석은 아래와 같다. *齊자의 원형을 입력할 수 없어서 유감. 1.祭 : 月(肉)+又(手)+示(=神) 2.齋 : 齊(고대엔 마름모 세 개가 가로로 나란하고 아래로 각각 꼬리가 붙은 모양의 글자로 보리나 밀 모가지를 상형하였으며, 뜻은 가지런하다. )+示 1은 고기를 손으로 신에게 바치는 모양. 일반적인 제사 의식. 제사 ;제 2는 곡식을 신에게 바치는 의식. 불가의 의식에서는 살생의 결과인 고기 대신 곡식을 사용했다. 재계할;재 따라서 속가의 제사와 불가의 재례는 모음을 반드시 구별해서 써야 한다. 齊字의 고대 형태는 마름모 연(가오리연) 가로로 세 개를 나란히 늘어놓은 모양. 곡식 모가지가 나란히 놓여서 '가지런하다'는 뜻을 지니게 됨. -- 밑에 꼬리가 붙은 모양. 전각문에서는 전서로 새겼을 터. +++
양금섭 교수님 해설: 인재(忍齋) *인제 X 齋 : 재실, 연구실 齊 : 가지런하다, 정리하다 ; 제 제가(齊家) 가정을 잘 꾸려나가다 齊(제)+示(시)=齋(재)인데, '천도제'로도 쓰는 모양이지만, 천도재가 더 적실할 듯. 문자학적 분석은 아래와 같다. *齊자의 원형을 입력할 수 없어서 유감. 1.祭 : 月(肉)+又(手)+示(=神) 2.齋 : 齊(고대엔 마름모 세 개가 가로로 나란하고 아래로 각각 꼬리가 붙은 모양의 글자로 보리나 밀 모가지를 상형하였으며, 뜻은 가지런하다. )+示 1은 고기를 손으로 신에게 바치는 모양. 일반적인 제사 의식. 제사 ;제 2는 곡식을 신에게 바치는 의식. 불가의 의식에서는 살생의 결과인 고기 대신 곡식을 사용했다. 재계할;재 따라서 속가의 제사와 불가의 재례는 모음을 반드시 구별해서 써야 한다. 齊字의 고대 형태는 마름모 연(가오리연) 가로로 세 개를 나란히 늘어놓은 모양. 곡식 모가지가 나란히 놓여서 '가지런하다'는 뜻을 지니게 됨. -- 밑에 꼬리가 붙은 모양. 전각문에서는 전서로 새겼을 터. +++

창고는 (1) 기초가 지표면으로 들어가지 않아야 하고 (2) 면적이 120 스퀘어피트를 넘지 말아야 하고 (3) 높이가 15피트를 넘지 말아야 하며 (4) 건물들이 대지 건폐율 50%를 넘지 말아야 하고 (4) 창고가 대지 전면 50% 앞으로 나오면 안 된다고 한다. 내 사무실로 쓰는 맨 왼쪽 구석 창고는 그 법칙을 모를 때 14피트x12피트로 지어서 건축 허가를 받아 세금을 내던가 아니면 120 스퀘어피트 이하로 하든가 해야 했다.
내 사무실로 쓰는 맨 왼쪽 구석 창고는 그 법칙을 모를 때 14피트x12피트로 지어서 건축 허가를 받아 세금을 내던가 아니면 120 스퀘어피트 이하로 하든가 해야 했다.
내 사무실로 쓰는 맨 왼쪽 구석 창고는 그 법칙을 모를 때 14피트x12피트로 지어서 건축 허가를 받아 세금을 내던가 아니면 120 스퀘어피트 이하로 하든가 해야 했다.
어차피 7채 건축 허가 과정에 들어간 판이라 14피트x8.5피트로 줄여버렸다. 재택근무 규칙을 맞추다 보니 그 창고를 비워 사무실로 꾸미고 일을 보고 있다.
어차피 7채 건축 허가 과정에 들어간 판이라 14피트x8.5피트로 꼴보기 안좋게 줄여버렸다. 재택근무 규칙을 맞추다 보니 그 창고를 비워 사무실로 꾸미고 일을 보고 있다.
틈틈이 지운 선생 서화를 정리하며 '忍齋(인재)'와 '忍齋書巢(인재서소)'를 다시 접하고 보니 이 창고가 '忍齋書巢(인재서소)'인 셈이다.
틈틈이 지운 선생 서화를 정리하며 '忍齋(인재)'와 '忍齋書巢(인재서소)'를 다시 접하고 보니 이 창고가 '忍齋書巢(인재서소)'인 셈이다.
틈틈이 지운 선생 서화를 정리하며 '忍齋(인재)'와 '忍齋書巢(인재서소)'를 다시 접하고 보니 이 창고가 '忍齋書巢(인재서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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