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3_생각해볼글

Oppenheimer (오펜하이머)

忍齋 黃薔 李相遠 2023. 9. 18. 13:21
반응형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후 그덕에 일본이 항복했다고 기뻐하는 사람들과 독일이 이미 항복했고 일본의 패망은 시간문제인데 핵폭의 실험대로 무고한 인명을 살생했다는 의견을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 학자는 핵무기 경쟁으로 인한 핵폭발 실험등이 대재앙을 유발하는 지구 이상기온 현상의 주범으로 지목하기도 합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
조금전 근처 에이엠시에서 아이맥스로 3시간짜리 오펜하이머를 보았습니다. 음식도 주문할수 있어서 점심겸 영화를 보았는데 좌석도 안락하고 편하게 누워서 볼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어 지루한 영화였다면 낮잠자기 좋았을 뻔 했습니다.
.
이 영화는 세 개의 시간대에서 진행됩니다. 오펜하이머의 젊은 시절에서 맨해튼 계획으로 이어지는 시간대, 1954년 원자력 협회에서 벌어졌던 오펜하이머 청문회, 그리고 1959년 루이스 스트로스의 인사청문회를 시간 순서대로 다음과 같이 재구성합니다.
.
'Fission(핵분열)', 'Fusion(핵융합)'이라는 부제하에 서로 번갈아가며 영화가 진행됩니다. 핵분열은 원자폭탄의 원리로 오펜하이머가 맨해튼 계획을 통해 원자폭탄의 아버지가 된 이야기이고, 핵융합은 수소폭탄의 원리로 오펜하이머가 수소폭탄의 개발을 적극반대했다가 매카시즘과 스트로스의 희생양이 되어 몰락하는 과정입니다.
.
케임브리지 대학원 유학 시절 실험물리학에 서툴렀던 22살의 청년 오펜하이머가 지도교수 패트릭 블래킷을 독살하려던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지도교수 블래킷과의 불화 및 적성에 맞지 않는 실험물리학 공부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던 와중, 다행히도 닐스 보어의 권유로 괴팅겐 대학교로 학적을 옮긴 후 이론물리학과 양자역학을 접하게 되고,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됩니다. 미국 칼텍, 그리고 UC 버클리로 돌아온 오펜하이머는 실험물리학자인 어니스트 로런스와 협업하고, 진 태틀록과 연인 관계가 되지만 결국 그녀와는 틀어지고 유부녀였던 캐서린과 눈이 맞은 끝에 결혼하게 됩니다. 이 두 여인은 다 공산주의자였고, 오펜하이머 역시 미국 공산당에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공산당과 교류하게 됩니다.
.
한편 독일에서 핵분열 현상이 발견되고, 1년 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해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미 육군 대령 레슬리 그로브스는 오펜하이머를 맨해튼 계획의 책임자로 임명하고,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더 이상 공산당과 교류하지 않으며 따라서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확약합니다.
.
오펜하이머는 평소 자신이 좋아했던 뉴멕시코주의 로스앨러모스에 연구소를 만들고 에드워드 텔러, 한스 베테, 리처드 파인만, 엔리코 페르미 등등 당대 물리학계의 수많은 과학자들을 영입하고 가족들까지 불러오게 해 연구단지를 조성합니다.
.
한편 그로브스는 맨해튼 계획이 철저한 국가기밀 실험인 만큼 독일, 소련 등에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피하고자 서로간의 정보 전달을 최소화하기 위해 과학자들의 구획화를 통해 연구를 진행하도록 지시합니다. 이 기간 동안 오펜하이머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만나며, 닐스 보어 교수는 나치가 점령하고 있던 덴마크에서 탈출해 미국에 입국합니다.
.
그리고 보어는 오펜하이머에게 원자폭탄을 만듦으로써 오펜하이머는 세상이 핵무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음에도, 끝내 핵무기를 만들어 인류가 자멸할 힘을 준 자인, "미국의 프로메테우스"라 불리게 될 것이며 거기서 오펜하이머의 업적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
2년의 시간이 지나고, 원자폭탄이 완성되기도 전에 독일이 항복하고 맙니다. 하지만 일본의 저항이 계속되었기에 맨해튼 계획은 일본의 패색이 짙다는 주장에도 계속 진행되었고, 결국 포츠담 선언 직전 최초의 핵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을 수행하게 됩니다.
.
이 장면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이자 오펜하이머 인생의 정점입니다. 트리니티 실험이 성공하자, 오펜하이머와 연구원들을 비롯한 모두가 기뻐합니다. 그러나 리틀 보이와 팻 맨이 로스앨러모스를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오펜하이머와 텔러는 걱정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
하지만 모든 일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원자탄에 대한 모든 결정은 오펜하이머의 손을 떠나게 되고 그로브스로부터 꼭 다시 연락을 주겠단 약속과는 달리,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사실을 16시간 뒤 라디오 방송을 듣고서야 알게 됩니다.
.
오펜하이머는 당황스러워 하지만 그로브스와의 통화에서 여기도 다소 분위기가 좋다며 티를 내지 않았고, 연구원들 앞에서 이를 자화자찬하는 연설을 합니다. 이후 죄책감에 시달리는 오펜하이머는 해리 S. 트루먼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자신의 손에는 피가 묻은 것 같다며 불안해하나, 트루먼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사람들이 당신에게 신경이나 쓸 것 같냐고 반문한 뒤 폭탄 투하를 결정한 장본인인 자신에게나 관심이 있을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보이고 오펜하이머의 실권을 빼앗아 버립니다.
.
1954년 오펜하이머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는 핵 확산 방지를 위해서 수소폭탄 개발을 하지 말 것을 주장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맨해튼 계획에서 같이 일했던 에드워드 텔러와 갈라서게 됩니다. 오펜하이머의 이런 변화는 미국 공산당과 교류했던 그의 과거와 맞물려서 미 정부의 의심을 사게 됩니다.
.
이 와중에 원자력 위원회의 루이스 스트로스는 과거에 망신을 당한 일로 오펜하이머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는데, 스트로스는 앞서 말한 정부의 의심을 이용해서 오펜하이머에게 공산주의자이자 스파이라는 누명을 씌워서 원자력 분야에서 매장시키려 합니다.
.
키티는 스트로스의 전략을 알고 오펜하이머에게 맞서라고 요구하지만,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불리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이 과정에서 텔러는 오펜하이머에 대해 불리한 증언을 하고 그를 배신합니다. 이 외에도 키티, 그로브스를 포함해 그간 함께 했던 사람들도 두 편으로 갈라지게 되는데, 끝까지 오펜하이머의 무고함을 알고 진실대로 진술하는 이들도 몇몇 있지만 대부분은 매카시즘 시대에 겁먹고 오펜하이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스트로스의 전략대로, 청문회의 결과 오펜하이머는 일부 위험 인사와 친선한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보안 인가 갱신을 허락받지 못합니다.
.
영화에는 스트로스가 오펜하이머에 대해서 앙심을 품게 된 이유가 두 가지 나오는데, 이 중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관련한 오해와 동위원소 논쟁입니다. 이 동위원소 논쟁에서 오펜하이머가 스트로스와 대립했지만, 나중에 소련의 핵실험이 시작되자 놀랍게도 과학자도 아닌 스트로스의 주장대로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스트로스는 오펜하이머를 미워했고 복수의 방법으로 빨갱이 간첩으로 누명을 씌우는 치졸한 방식을 사용한 것입니다.
.
5년 후인 1959년 루이스 스트로스 본인도 상무부 장관 임명 청문회에 임하게 됩니다. 보좌관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그에게 이 청문회는 단순 통과 의례일 뿐이라며 위로하고, 청문회도 순탄하게 흘러갑니다. 그러던 중 증인 명단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익명의 과학자가 증인으로 나선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스트로스는 다시 한번 불안해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과거 오펜하이머를 개인적인 원한으로 누명 씌운 것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이유에서였는데, 그의 보좌관도 오펜하이머 사건의 진실을 처음 접하자 상당한 실망감을 내비칩니다. 이후 그 과학자는 데이비드 힐이었음이 드러나며, 힐은 과학자들이 스트로스에게 품은 반감을 대표해 당시 오펜하이머를 향한 공격이 스트로스의 개인적인 원한에 의한 것이었음을 고발합니다.
.
이 일로 청문회에서 공개적으로 모멸을 당한 스트로스는 대기실로 돌아와 오펜하이머는 선택적으로 후회를 하는 이기적인 인물이었다며 분노를 터뜨립니다. 결국 그는 상원 인준 표결에서 불과 3표 차로 입각에 실패합니다. 스트로스는 과거 자신이 목격했던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의 만남을 언급하는데, 그 날 이후 아인슈타인이 자신을 무시했다며 오펜하이머가 과학자 모두를 하나둘씩 자신에게서 이간질시켰다며 분노합니다. 보좌관은 그런 스트로스에게 "어쩌면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는 당신 얘기보다는 더 중요한 일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하고 모든 것을 잃고 자멸한 스트로스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방 밖에 몰려든 기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나갑니다.
.
영화 후반부인 1963년 12월, 오펜하이머는 린든 B. 존슨 대통령에 의해 엔리코 페르미 상을 받게 됩니다. 비록 오펜하이머는 현실 정치에서 영향력을 잃은 후였지만, 그의 명예는 일정 부분 회복되었고, 행사에 찾아온 에드워드 텔러와도 화해합니다.
.
작중 오펜하이머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만나는 장면은 3번 나오는데, 아인슈타인은 끝까지 공개적으로는 오펜하이머에 대한 마녀사냥에 분개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그 내용이 밝혀지는 아인슈타인과의 대화에서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오펜하이머가 느꼈던 참담한 심정과 자괴감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는 거대한 연쇄반응을 가져왔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그의 말을 듣고 창백해진 아인슈타인은 마침 다가오던 스트로스를 무시하고 지나치며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들을 끌어들일 또 하나의 연쇄반응도 시작됩니다. 그곳에서 오펜하이머가 수없이 많은 핵무기가 온 세상을 뒤덮는 환영을 보고 두 눈을 질끈 감는 것으로 영화가 끝납니다.
.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