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2_한국역사

023. 6 25와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않된다!

忍齋 黃薔 李相遠 2023. 11. 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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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3y7EV_PXMHE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경 북한군이 암호명 '폭풍 224'라는 사전 계획에 따라 북위 38도선 전역에 걸쳐 대한민국을 선전포고 없이 기습 남침하여 발발한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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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이 이어진 건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이 체결되기까지 사실상 3년 1개월(1,129일)간이며, 현재까지 명목상으로는 73년간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이오시프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을 역이용해, 극동아시아의 미소 냉전 사이에서 승기를 잡으려 한 의도가 있어 대리전 양상을 띠기도 하는데 때문에 6·25 전쟁은 전후 냉전의 시작을 대표하는 사건들 중 하나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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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에서 각각 통일에 실패한 대한민국과 북한은 이후 한반도의 정통 국가로서의 정통성을 걸고 대립하게 되었고, 이는 국가 운영과 국민 여론 및 의식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일제강점기에 이어 연속된 한국의 암흑기를 연 사건인 이 전쟁은 오늘날까지 한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전쟁으로 굳어진 각 체제(體制)와 상호간 대치 상태는 정전 70년이 지난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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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의 평화협정(종전 및 강화 조약)은 아직 체결되지 않았으며, 남북통일이 아직도 안됐기 때문에 따라서 명목상으로는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이지만, 현재 남북 양측의 국민들에게는 전쟁 중이라는 인식은 드물다. 법적으로 볼 때 대법원의 판례는 지금이 '전시'인지 '평시'인지 명확하게 입장을 내린 적이 없으며 사안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국회 또한 그러한데, 전쟁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과 남북 관계의 협력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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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부친 방원 이성찬 선생은 외동아들인데도 자원입대하여 장도영 장군이 이끌던 6사단 에 배치되어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나 6사단 소속연대는 전멸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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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부친은 수류탄 파편으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체 구사일생으로 덴마크 병원선 유틀란디아호 에 입원하여 질긴 목숨을 이어온 역전의 6.25전상상이용사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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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류탄 파편으로 난 옴몸의 상처가 창피하여 평생 대중목욕탕을 가본적도 없고 국가의 상의군인 지원도 거부한체 살아온 대쪽 같은 양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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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친의 그 험악한 상처는 6.25와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의 처참함을 웅변하기에 충분하고 한국말도 모르는 내아들이 빨갱이를 세상 최고의 악으로 각인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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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사진 - 미국국립문서보관소 소장본 을 중심으로 --- 이곳에 잇는 대부분의 6.25 관련 사진들은 미국국립문서보관소에 잇는것으로 전 오산고 국어교사 이신 박도 선생이 문서먼지를 뒤집어 쓰고 발굴한 것이고 또 일부는 인도참전군인 이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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