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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518 | 글쓴이 : 청산靑山 | | 삭제 |
출처 : '청산靑山' 님의 [머루랑 다래랑] |
1981년 오늘, 전두환씨가 레이건을 만나러 미국으로 떠납니다. 12년만의 정상 회담. 대통령 각하가 너무 급하게 서두르시고, 전용기를 이용한 것도 처음이니, 조선일보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안착. 1981년 1월 29일자 조선 1면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제목입니다. 국가원수인 만큼, 뭐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래도 문민 대통령들과 좀 달랐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2005년 6월 11일자 노대통령 워싱턴 도착. 1998년 6월 6일자 김대통령 오늘 방미. 1993년 11월 22일자 김대통령 오늘 새벽 워싱턴 도착.
도착과 안착...에이, 쫀쫀한 것 같으니 이쯤 하구요. 조선은 한 술 더 뜹니다. 국민의 입을 빌어 조선은 "큰 성과 거두고 오십시오"라고 말하죠. 다음은 1981년 1월 29일자 해당 기사 전문입니다. 참,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미리 마음의 준비를...
"큰 성과 거두고 오십시오"
전두환 대통령이 역사적인 미국 방문길에 오른 28일 오후, 옅은 안개가 낀 서울 거리는 이른 아침부터 태극기와 성조기로 물결 쳤고 연도에 나온 학생-시민들은 영하의 추위도 잊은 채 대통령의 이역만리 장도를 축원하며 환송했다.
더구나 이번 대통령의 방미길은 지난 69년 이후 12년 만에 이루어진 것이고 그간 불편했던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미국의 새 대통령과 허심탄회하게 만나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모든 국민들이 거는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부풀어 있었다.
대통령과 일행이 탄 승용차가 지나간 청와대-광화문-시청앞-서소문-여의도-강변도로-김포국제공항에 이르는 간선도로에는 42만여명의 학생, 직장인, 시민들이 나와 "큰 성과 거두고 오십시오"라면서 손을 흔들었고 광화문, 시청앞등 곳곳에는 '전두환대통령 각하 내외분 미합중국 방문 환송'이라고 쓴 대형 아치가 줄을 이었다.
청와대-김포공항에 이르는 간선도로변에는 낮 12시 30분부터 인파가 몰리기 시작, 손에손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대통령의 장도차행렬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학생들은 방학중인데도 나와 질서정연하게 늘어섰고 기업체직원들은 환송피켓을 들고나와 대통령 일행을 기다렸다.
오후 1시 55분. 대통령과 영부인을 태운 승용차가 중앙청을 배경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학생-시민들은 일제히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었다. 몇 일 전 여행차 한국에 들른 애리조나 거주 미국인 대니 J 러스트씨(22)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꽂힌 카우보이 모자를 흔들며 "두 새 대통령이 좋은 친구가 되기를 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대통령 내외의 승용차가 지나친 후에도 연도의 학생들은 아쉬운 듯 태극기를 계속 흔들며 차량 행렬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소문, 마포로터리 등에는 오전 11시부터 인파가 몰려 보도통행이 불편했다.
전두환 대통령 일행을 태운 승용차가 서울대교의 환송 아치 밑을 지나 여의도에 들어서자 2시간 전부터 여의도대로변에 나와있던 1만여명의 시민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다. 구정 고속버스 예매표를 사러왔던 시민들도 일제히 대통령의 모습을 보기 위해 연도로 달려 나왔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전두환씨가 조선일보를 펴들고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혹시 당시 현장에 계셨던 분 안 계십니까. 정말 큰 성과 거두고 오라고 하셨나요? 방학중인데도 자발적으로 나오셨고...아쉬웠습니까? 그리고 전두환씨의 모습을 보기 위해 연도로 달려나왔나요?
하지만 당시 미국은 우리 국민들이 전두환 정권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습니다. 당시 헤이그 미 국무장관이 레이건 대통령에게 정상 회담에 대비해 올린 1981년 1월 29일자 보고서 일부입니다.
"지난해 5월 광주 폭동의 여파에 짓눌려 있는 한국 국민들은 전두환이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입증해 보일 수 있는 유예 기간을 주고 있는 것처럼 보임"
어떻게든 하루라도 빨리 美 대통령의 '용안'을 뵙고, 전두환씨 "본인이-" 대통령으로 인정받기 위해. 쿠데타로 집권한 부당성을 美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웃는 모습으로 감추기 위해. 그래서 유예 기간(?)을 줄이기 위해.
전두환씨가 준비한 선물 보따리는 참 많았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핵무기 개발 계획을 싹싹 지워버리고, F-16 등 미국산 무기 구입을 늘리겠다고 했습니다. 미국 쌀도 더 많이많이 사겠다고 했구요. 뭐, 내키지는 않지만, 사형선고를 내렸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감형 발표도 했습니다. 그리고 레이건이 "콜-" 하니까 부리나케 그야말로 날아갔다는 1981년 오늘의 이야기였습니다.<오마이 블로그에서>
<청산 이야기> 1981년 1월 28일. 저는 로스엔젤레스의 코리아타운에 있었습니다. 1980년 12월 20일 삼엄한 정치처럼 꽁꽁 얼어붙은 날씨속의 서울을 떠나 어싱턴주 시애틀을 거쳐 LA로 이주를 했지요. 도차한 날 고등학교 동창집에서 일박을 한 후 이튿날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교회의 로스앤젤레스 한인지부 지부장인 최인빈형제님의 알선으로 형제님이 살고 있는 아파트 길 건너편에 이층 방한칸 삭월세방(265불)을 얻어 중국사람 주인집의 별채에 들고 있었습니다. 저의 아파트 바로앞에 올림픽가와 하바드 길이 만나는 십자로는 그 당시 한인타운의 중심이었지요. 올림픽식품점이 있고 그 건너편으로 한국식당, 건너편으로 한인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호바트 초등학교, 김방앗간, 떡집, 한국식품점, 사진관, 중화반점, 한국 외환은행, 신세계 백화점 등... 여기에 다 거론할 수 없는 한인 동포들 상대 한국상점들이 많았습니다. 1월 28일 점심 때. 저는 그 당시 한인타운 남쪽 마을에 있는 명문사립대학인 USC(남가주대학)의 석유공학과에 입학하여 공부를하면서 일을 할 때라서 신문사에서 일을 끝내고 수업시간에 대기위해 바삐 학교쪽으로 차를 몰고 있었지요. 얼마후에 올림픽가와 호바트거리의 교차로에 구름같이 나이 든 한인들이 모여들고 인도를 따라 시위를 하고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들은 바로 해외 재향군인들의 전두환 대통령 미국방문 반대시위였습니다. 시위대의 맨 앞줄에는 미구인데 불구하고 에비역 해병대원들이 군복을 차려입고, 풀먹여 각이 바짝선 해병대모와 목에 두른 빨간 마후라가 누에 선명하게 들어왔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이 로스앤젤레스에 '안착'하여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다운타운에 있는 숙소로 가기 위해서는 꼭 지나야하는 한인타운의 관통로 올림픽가를 거쳐야했기에 이 시위대와 피할 수없는 운명으로 만나게 되었지요. 시위군중 속에서는 전대통령이 탄 새까만 전용차를 중심으로 갖가지 경호차량이 대낮인데도 헤드라잇을 환하게 켜고 다가오고...인도의 시위대 물결은 "전두환 물러가라 하야하라! 5.18 광주 학살의 우두머리 전두환 x새끼를 죽이자!..."시위대는 점점 욕설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에 놀란 전두환 대통령 일행은 미국 FBI와 LA경호경찰의 협조로 간신히 시위대의 함성을 뚫고 동편 다운타운으로 도망치듯 속도를 올리며 사라져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신속한 미국경호대의 행동으로 대통령 일행을 놓친 한인동포 시위대는 좀 더 본때를 못 보여줘 아쉬운 표정으로 길가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제나 이제나 무슨 개인적 이유가 있어서든지 고국을 떠난 한인 동포들은 항상 고국의 정치 변화에 예민해 촉각을 곤두시키고 있다. 나이들쑤록 고국을 그리워하고 쉽게 돌아갈수 없는 처지인줄 알면서도 동포들의 마음은 서편 샌타모니카 해변에 넘실대는 태평양의 끝이 맞닿은 곳 고국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전두환 대통령이 동포들의 시위에 혼쭐은 났었지만 그 후에 얼머나 군부정치 하는데 반성을 하며 지냈는지는 아직 그 누구에게도 알려진 바가 없다. 한줄의 자사전이라도 그날 당한 수치에 반성하는 뜻이 라도 담겼으면 하는 것이 현장 목격자의 한 사람으로 느끼는 격세지감의 변이다. 사실 로스앤젤레스에 '안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신문기자들이 상황을 보기는 봤으데 군부의 검열에 제대로 알려질 수 없었겠지요. |
http://blog.ohmynews.com/enature/Home.asp?Artid=58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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