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5_80년5월18일

[온라인참배]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다.

忍齋 黃薔 李相遠 2006. 5. 16.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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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http://blog.ohmynews.com/cornerstone/home.asp?artid=5097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신묘역>

 

그가 흘린 피 한 방울 한 방울은

어머니인 대지에 스며들어 언젠가

어느 날엔가

자유의 나무는 결실을 맺게 될 것이며

해방된 미래의 자식들은 그 열매를 따먹으면서

그가 흘린 피에 대해서 눈물에 대해서 이야기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부끄럽게 쑥스럽게 이야기 할 것이다.

                  

                                          <김남주님의 '전사2'중에서>

 

국립5.18민주묘지는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산34번지(구묘역 1km정도 아래쪽에) 일원에 있으며 1980년대 광주민중항쟁 당시 희생되어 망월동(5.18구묘역) 및 전국 각지에 묻혀 계신 분들의 묘소를 1997년 이장하여 새로 조성한 묘역이다. 2002년 국립묘지로 승격하여 국가보훈처에서 관리, 운영하고 있다.

 

민주의 문과 추모 글과 리본 달기행사장

 

 민주의 문

 5.18 민주묘지의 입구 대문이며 오월 민주영령을 만나기 위해 들어서는 문이다.

 


묘역 입구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온 참배객들이 민주 영령들을 추모하는 글을 적어놓은 리본들이 걸려있었다.

 

묘지안내도--5만평이 넘는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역사의 문, 추모관(공사중) 등 주요 건축물은 7동 716평이다.

 

참배 광장

우측에 유영봉안소와 중앙에 참배단을 설치하여 추모행사광장으로 조성했다.

 

추념문

5월 영령을 받드는 형상의 문

 

5.18민중항쟁 추모탑

높이 40m의 두 개의 대칭되는 사각기둥의 탑으로 당간지주를 형상화한 것이다.

 

참배단--분향하고 참배하는 제단이다. 

탑 중앙의 관통하는 문은 불이의 문으로 과거와 현재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는 통로라는 뜻으로 오월영령과 살아있는 우리들이 만나는 일치의 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큰절로 오월 영령을 추모하는 참배객--인터넷 카페 '후광 김대중마을'의 운영자와 회원들.

 

무장항쟁군상--추모탑의 오른쪽에 있는 불법과 불의에 저항해 총을 들고 항쟁에 나섰던 시민군을 그린 청동조각상

 

추모탑 오른쪽 뒷면의 10일간의 항쟁을 재현한  부조전체의 모습

 

부조에 그려진 당시 민중항쟁의 한 장면을 담고 있다.

 

 

묘역안내도

 

열사들의 묘역

 

들풀 윤상원열사묘소

1980년 5월 27일 광주시민학생수습위원회 대변인으로 활약하시다 전남도청에서 목숨을 걸고 마지막까지  계엄군에 저항하다 돌아 가셨다.

 

아아 광주여!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추모 시비

 

대동세상군상--추모탑 왼쪽에 있는 조각상 으로 슬픔을 딛고 승리를 노래하며 질서와 치안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대동세상을 그리고 있다.

 

역사의 문--들풀 열사들의 추모집회를 열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5.18민중항쟁 당시의 생생한 사진기록전이 열리고 있다.

 

유영봉안소--5.18민중항쟁에 참여했다가 희생된 분들의 영정을 모신곳으로 고인돌의 형태를 형상화했다.

 

 5.18 광주민주항쟁이  있은지 벌써 26년, 오월열사들이 바라던 진정한 민주 자주 통일의 세상을 아직 만들지 못한 탓인지 5.18민주묘지에서 쉬이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그날의 뜨거웠던 함성과 울부짖음..... 아직도 끝나지 않은 발포 명령자와 그 당시 미국의 역활 등을 비롯한 진실 규명, 반민주 세력의 청산 등 남겨진 자의 짐이 너무 무거운 탓일까. 아니면 먼저간 열사들의 빈자리가 아쉬운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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