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5_80년5월18일

5.18의 기억1 - 늙은 병사의 구원을 받다.

忍齋 黃薔 李相遠 2006. 5. 18.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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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의 기억1 - 늙은 병사의 구원을 받다. 2006년 5월 17일  pm 10:02
빈공책

▲ 망월동 무명열사의 묘

가로등에 태극기가 꽂혀있다.

가로등 꼭대기에 긴 만장이 바람과 함께 춤을 춘다. 각기 자기들의 소리를 담고서...

듬성듬성 사람들이 한가한 걸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웃음 가득한 청년들의 사진찍기가 조용한 묘역에 활기를 더한다.

하늘 높이 치솟은 기념탑은 두손모아 부활의 알을 품고 말이 없다.

조용히 그러나 장엄하게 흐르는 투쟁노래는 26년전 금남로의 함성을 대신한다.

나무 사이를 가로지르는 줄에는 참배객들의 민주주의와 통일의 염원을 담은 리본으로 가득하다.

 

5월, 그날 이후 5월은 참담함이었고 무력함의 상징이었다.

대학 2학년, 백운동 작은 자취방에서 30원짜리 새마을 담배를 사기 위해 함께 자취하는 친구과 주머니를 털던 더벅머리 청년이 5월 17일 비상계엄 확대 조치라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광주에 올라왔었다. 가방엔 김치를 가득 담고 어깨엔  쌀자루를 메고 친구 고모에게 꾸어쓴 돈을 갚기 위해 부모님께 받은 천금같은 만원짜리 지폐를 몇장 주머니에 넣고 송정리에서 6번 시내버스를 타고 전남대 후문앞에서 내려섰다.

 

전남대 후문은 엇그제까지 드나들던 그 교문이 아니었다. 얼룩무늬 군복에 철모를 눌러쓰고 탄띠를 꼭 조여맨 군인들의 학교였다. 어깨 넓이로 안정된 자세를 취하고 오른 손에는 M16소총을 당당히 세워든 군인들이 교문앞에 두줄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총 끝에는 번쩍번쩍 광나는 대검을 꽂고서... 교문핲 가게주인들은 슬금슬금 눈치보며 그들을 주시하고 차들은 무심코 왕래하고 있었다. 군인들 등뒤로 굳게 닫힌 교문에는 작은 공고문이 붙어있었다.

"비상 계엄 확대조치로 인하여 본교는 임시 휴교하며..."

공고문 글씨가 작아 군인들 앞까지 다가갔다. 김치가방과 쌀보퉁이를 들고...

"야! 뭐야!"

"전대 학생인데요. 학교에 왔는데요?"

"야, 이새끼야. 빨리 못꺼져!"

"저거 읽어보려구요."

"뭐야?!"

 

나는 총검술 연습하는 허수아비가 되고 말았다. 머리가 터져 피가 흐르고 수없이 쏱아지는 개머리판 세례, 군화발길질, 다행히 대검이 꽃힌 총끝은 나를 피해갔다. 아수라장이 되고 상사 계급장을 단 나이든 군인이 교문안에서 나왔다.

"뭐야? 이새끼!"

 목덜미를 잡고 교문안으로 끌고 갔다. 엎드리라는 소리에 속절없이 엎드리고 곤봉이 엉덩이를 강타했다. 아까보다는 차라리 신사적이라는 생각을 하며 수없이 맞았다.

"야, 지금이 어느 땐데, 여기서 이러고 있어 임마. 빨리 이쪽으로 해서 집에 들어가!"

나이든 군인은 교문앞 어린 군인들로부터 나를 구해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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