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반응형

고종석 5

[살인마 전두환 처형 민속놀이] - 오징어 게임 처럼 넥플렉스를 통해서 '전두환 게임'을 만들어 봅시다.

. 여러분은 제가 진짜로 여러분이 살인마 전두환이를 짱돌과 몽둥이로 때려죽이는 참담함을 보며 같은 놈의 몰골이 되기를 원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대학 시절 고시를 목표로 공부하면 고시는 못되어도 유학이라도 갔고, 유학을 목표로 공부하면 취직시험에라도 붙었습니다. 그런데 취직시험 준비만 하던 이들은 취직시험에 떨어져 백수 신세를 면치 못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 제가 20년 넘게 [‪#‎살인마‬ ‪#‎전두환‬ 을 처형(處刑)하라! 한 손엔 몽둥이 한 손엔 짱돌을 움켜쥐고 연희동(延禧洞)으로 몰려가 살인마(殺人魔) 전두환(全斗煥)을 주살(誅殺)하라!!] 떠드니 제발 그러지 말라며 스멀스멀 올라오던 살인마 전두환의 숭배(?) 열기에 찬물을 끼얹고 지금은 까막소에 있는 파면된 박근혜도 대통령(?) 시절에 ..

실리콘벨리 서울 문고 - 고종석 선생의 번역서 ‘어린 왕자’

최근 한국에서는 눈길을 잡는 번역서가 출간됐다. 고종석 선생의 번역서 ‘어린 왕자’다. 고종석 선생은 내가 한국을 떠나던 1988년 말 나에게 굵은 각인을 남겨준 분이다. . 미국에서도 한국 온라인 서점을 통해 한국 서적의 구매가 가능하다. ‘프랑스어와 한국어의 속살을 가장 섬세하게 헤아린 ‘어린 왕자’ 한국어 결정판’이라는 책 띠지에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왕성한 저작 활동을 한 고종석 선생이 프랑스어 원전을 번역한 ‘어린 왕자’를 주문하려다 제법 높은 학벌의 한인이 밀집한 이곳 실리콘 밸리 지역 한인들이 쉽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산타 크라라 한인촌에 있는 서울문고(1082 E El Camino Real, Sunnyvale, CA 94087, 1-408-246-2300)가..

고종석의 어린 왕자(Le Petit Prince)

. 오래전 5.18 민주화운동 - 80518 카페 게시판에 '어린 왕자(Le Petit Prince)' 영문판을 한 구절 한 구절을 올려서 80518의 아이들과 함께 영어 공부를 한 적이 있다. '어린 왕자'는 저작권이 소멸한 작품이라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언어로 번역한 책이다. 청소년에게 소개하지만, 오히려 삶의 깊이를 이해한 어른들의 사랑을 더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 프랑스의 비행사이자 작가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1943년 발표한 소설이다. 오래전 생텍쥐페리의 비행기를 격추했던 독일군 비행사의 안타까운 회고록을 읽은 적이 있다. 전쟁 중에 일어난 일이지만 그 독일군 비행사는 임종 직전까지 위대한 작가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 미국 오기 전 한국 잡지 연구소 연구원이던 나는 한겨레..

[살인마 전두환 처형 민속놀이]

. 여러분은 제가 진짜로 여러분이 살인마 전두환이를 짱돌과 몽둥이로 때려죽이는 참담함을 보며 같은 놈의 몰골이 되기를 원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대학 시절 고시를 목표로 공부하면 고시는 못되어도 유학이라도 갔고, 유학을 목표로 공부하면 취직시험에라도 붙었습니다. 그런데 취직시험 준비만 하던 이들은 취직시험에 떨어져 백수 신세를 면치 못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 제가 20년 넘게 [‪#‎살인마‬ ‪#‎전두환‬ 을 처형(處刑)하라! 한 손엔 몽둥이 한 손엔 짱돌을 움켜쥐고 연희동(延禧洞)으로 몰려가 살인마(殺人魔) 전두환(全斗煥)을 주살(誅殺)하라!!] 떠드니 제발 그러지 말라며 스멀스멀 올라오던 살인마 전두환의 숭배(?) 열기에 찬물을 끼얹고 지금은 까막소에 있는 파면된 박근혜도 대통령(?) 시절에 ..

[고종석]

내가 고종석을 처음 본 것은 1988년 청진동에 있던 한국잡지협회 부설 한국잡지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였다. 군사정권 시절 이었음에도 한국잡지계는 하루가 멀다고 많은 행사가 밀려있었다. 일간지 문화면에 잡지계 행사를 알리기 위해 조선 중앙 동아…. 등 일간지 문화부 기자들에게 보도자료와 함께 촌지를 돌렸다. 한겨레는 촌지 지급대상이 아니었다. 어느 날 한겨레 문화부 기자 고종석이 날 찾았다. 그리곤 언론통폐합 당시 소멸한 잡지사들의 목록을 구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잡지사들은 언제나 영세했다. 그러기에 잡지기자 교육도 잡지협회에서 주관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영세하다는 이야기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초라한 신세일 뿐이었다. 나는 잡지계를 언론계의 한 형제로 대해준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