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내가 소장하고 있는 귀한 사진(앞줄중앙이 김철수선생)
오늘 2.8독립선언88주년을 맞이하여
나의 스승이신 遲耘 김철수 선생의 묻혀진 활동상황을 년도별로 발췌해서 열거해 본다.
2.8독립선언은 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 중심으로
1919년 1월 동경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웅변대회를 열어 독립을 위한 구체적인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결의하고,
실행위원으로 최팔용(崔八鏞)·김도영(金度演)·백관수(白寬洙) 등 10명을 선출하였다.
실행위원들은 조선청년독립단을 결성하고 〈민족대회 소집청원서〉와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송계백(宋繼白)을 국내로, 이광수(李光洙)를 상해로 파견하였다.
*이광수는 문장작성을 이유로 뒤 늦게 실행위원으로 되다(김철수 증언)
이 2.8독립선언에 앞서 5년전(1914)지운 김철수선생은 "죽어서 귀신이 되더라도 조선독립을 위해 통곡하자"라는 뜻으로 <곡귀단(哭鬼團)>을 결성하여 활동하였고
그 다음 해인 1915년에는 <다마가와>에서 마치 도원결의와 같이 엄숙하게기꺼이 한 목숨 바치자고 목욕재개호 손가락을 찢어 피를 섞은 잔을 돌려마시고는 열지동맹(裂指同盟)을 결성해서 활동하였으며
그 뒤 1916년 선생의 나이 24살 때에는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라는 취지로 <신아동맹(新亞同盟)>을 조직할 때 김철수외 학생7명이 참석했다.
이 모임에는 한 40명이 모여 결성 했는데 뒤에 중국 공산당 조직의 시초인인 황각, 증결만,나할,사부아등이고
대만의 팩화영등이며
우리나라는 김철수 정노식 김양수 하상연 장덕수 김명식 최익준 윤현진이였다.
이러한 활동은 좌익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그 진실이 묻혀졌고 역사가 사장되었었다.
일본 유학생 중심으로 조선독립선언 활동의 연혁을 열거해 보면
곡귀단(1014년) 위의 사진참고
열지동맹(1915년)
신아동맹(1916년)
2.8독립선언(1919년)...... 국내 3.1독립선언(1919년)
이렇게 볼 때 지운선생이 활동한 곡귀단, 열지동맹, 신아동맹의 활동은 조선독립운동의 최초 뿌리인데도 그 역사는 좌익이라는 멍에로 그동안 묻혀져 왔었다.
역사의 뿌리는 빠르면 빠를 수록 좋은 것인데..........
지운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거짓은 길지못하고 역사는 엄중한 것"
오늘 따라 더욱 가슴에 와 닿는 말씀이다.
'2. Humanities > 22_한국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병장의 죽음] 애통한 마음으로 ... (0) | 2007.03.01 |
---|---|
'애니깽' 후손들의 특별한 설 (0) | 2007.02.20 |
[사진으로 보는 식민지]강제 동원된 - 애절한 낙서 (0) | 2006.12.01 |
다산부대 8진·동의부대 10진 편성식 (0) | 2006.09.12 |
남해지역 시민단체, '4.3 토벌' 박진경 대령 동상 이전운동 (0) | 2005.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