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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풀, 5.18 광주를 얘기하는 만화 < 26년 > 출간
2007년 05월 15일(화) 23:50 | 서은하 기자 sarah@newsmission.com |
26년전 한 소년은 지하차도에 사진을 붙이고 도망가다 경찰에 잡히는 대학생 형들을 멀뚱히 바라봤다. 처음 보는 충격적인 사진과 도망가던 형들의 뒷모습이 그 소년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그 소년은 자라서 대한민국의 내로라 하는 만화가가 됐다. 그리고 그 기억으로부터 <26년>(문학세계사)을 내놓았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만화 <26년>을 그린 만화가 강풀이 15일 단행본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내용이다.
만화로라도 5.18광주를 해결하고파
<26년>은 강풀이 지난해 미디어다음에 연재했던 만화다. 이 작품은 안타깝게도 점점 우리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5.18 광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5일부터 합천군이 끝내 ‘일해공원’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시점에 나온 책이라 더욱 관심을 끈다.
이처럼 5.18은 우리 근대사의 가장 아픈 부분이지만, 여전히 말끔하게 봉합되지 않은 채로 피 흘리며 남아있는 상처다. 이러한 부조리한 현실을 반영하듯 강풀은 <26년>에서 더 이상 공적인 역사 청산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 날의 광주’에서 26년이 흐른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 작품은 당시 계엄군이었던 사람의 자녀들과 도청에 남아있던 시민군의 자녀들이 모여 법이 응징하지 못한 ‘전범’을 단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소유 재산이 29만원뿐’이라고 말했을 때, 이 작품을 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화끈하네, 깡 있네’라고 할지 모르죠. 하지만 아직도 유가족과 희생자들이 고통 가운데 살아있는데 이런 말을 하는 건, 너무 뻔뻔하고 잘못을 전혀 뉘우치지 않는다는 거죠. 그렇지만 법적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제가 만화가이다 보니 만화로 풀어보게 됐습니다.”
허구와 사실, 재미와 진지함 사이에서
이 작품이 그동안 해왔던 작업과는 다르게 사실과 허구가 혼합된 ‘팩션’이라는 사실과, 아직 이해당사자들이 생존해 있는 상황은 그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했다. 작품을 연재하는 동안 ‘전사모’라는 카페에 들어갔다가, 너무 충격을 받아 작업을 못할 뻔한 적도 있다고.
또한 그는 ‘작품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들어야 했다. 동시에 주인공들이 학살의 책임자를 사적으로 ‘처단’하는 것이 너무 극단적인 설정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이에 대해 그는 대체로 수긍하면서도, 어디까지나 이 만화는 재미를 위한 ‘창작’과 ‘공상’의 산물임을 강조했다. “내용이 세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만화니까 암살 쪽으로 몰고가는 것이 ‘재미’를 위한 최고이자 최선의 스토리였습니다.”
무거운 주제를 다룬 만화에 대한 변에서 ‘재미’라는 말을 강조하는 강풀. 바로 이 부분이 이번 작품을 그리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재미있게 만들어서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5.18 광주를 알리고 싶어서다.
“만화는 재미없으면 외면당하는 매체잖아요. 그래서 최고 목표는 ‘재미’로 삼았어요. 이렇다보니 인터넷을 이용하는 젊은이들이 5.18에 대해 알게 되더군요.”
실제로 이 만화가 연재되면서 나타난 반응의 대다수가 ‘전에는 몰랐었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일선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교육자료로 사용할 수 있느냐는 문의도 많았다고 한다. 강풀은 5.18을 알리고자 하는 의도대로 자신의 만화를 열어 뒀다. 심지어 원본까지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한다.
“짐을 하나 덜은 것 같다”
이럴 정도로 강풀이 그동안 어떤 작품보다 <26년>에 더 많은 애정과 열의를 쏟은 것은 5.18 광주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 심지어 만화가로서 평생 꼭 그리리라 생각한 두 가지 중 하나로 꼽을 정도다. 그래서 그는 “큰 짐을 내려놓은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두 번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은 작업이지만, 조사차 광주에 내려가서 만났던 사람들의 감정들을 충분히 다 담아내지 못한 것만 같아서다. “주인공들의 극단적 결정을 놓고 ‘내가 너무 오버하는 게 아닐까, 이렇게 그리는 게 맞나’라는 고민이 들었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때 5.18관련 다큐를 보면서, 제 설정이 지나친 게 아니라고 느꼈어요.”
그러면서 그는 독자들이 ‘복수’를 통해 잠깐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보다, 26년 동안 아픔을 안고 살아 온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를 바랐다.
‘이런 만화를 그리라고 하나님께서 달란트를 주셨다’는 강풀. 그의 작품을 통해 더 많은 젊은 세대가 잊혀져가는 이들의 아픔을 헤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소년은 자라서 대한민국의 내로라 하는 만화가가 됐다. 그리고 그 기억으로부터 <26년>(문학세계사)을 내놓았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만화 <26년>을 그린 만화가 강풀이 15일 단행본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내용이다.
만화로라도 5.18광주를 해결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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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를 소재로 한 만화 <26년>을 출간하는 만화가 강풀 ⓒ뉴스미션 |
<26년>은 강풀이 지난해 미디어다음에 연재했던 만화다. 이 작품은 안타깝게도 점점 우리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5.18 광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5일부터 합천군이 끝내 ‘일해공원’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시점에 나온 책이라 더욱 관심을 끈다.
이처럼 5.18은 우리 근대사의 가장 아픈 부분이지만, 여전히 말끔하게 봉합되지 않은 채로 피 흘리며 남아있는 상처다. 이러한 부조리한 현실을 반영하듯 강풀은 <26년>에서 더 이상 공적인 역사 청산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 날의 광주’에서 26년이 흐른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 작품은 당시 계엄군이었던 사람의 자녀들과 도청에 남아있던 시민군의 자녀들이 모여 법이 응징하지 못한 ‘전범’을 단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소유 재산이 29만원뿐’이라고 말했을 때, 이 작품을 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화끈하네, 깡 있네’라고 할지 모르죠. 하지만 아직도 유가족과 희생자들이 고통 가운데 살아있는데 이런 말을 하는 건, 너무 뻔뻔하고 잘못을 전혀 뉘우치지 않는다는 거죠. 그렇지만 법적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제가 만화가이다 보니 만화로 풀어보게 됐습니다.”
허구와 사실, 재미와 진지함 사이에서
이 작품이 그동안 해왔던 작업과는 다르게 사실과 허구가 혼합된 ‘팩션’이라는 사실과, 아직 이해당사자들이 생존해 있는 상황은 그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했다. 작품을 연재하는 동안 ‘전사모’라는 카페에 들어갔다가, 너무 충격을 받아 작업을 못할 뻔한 적도 있다고.
또한 그는 ‘작품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들어야 했다. 동시에 주인공들이 학살의 책임자를 사적으로 ‘처단’하는 것이 너무 극단적인 설정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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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만화로 더 많은 사람이 5.18을 기억하길 바란다. ⓒ뉴스미션 |
무거운 주제를 다룬 만화에 대한 변에서 ‘재미’라는 말을 강조하는 강풀. 바로 이 부분이 이번 작품을 그리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재미있게 만들어서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5.18 광주를 알리고 싶어서다.
“만화는 재미없으면 외면당하는 매체잖아요. 그래서 최고 목표는 ‘재미’로 삼았어요. 이렇다보니 인터넷을 이용하는 젊은이들이 5.18에 대해 알게 되더군요.”
실제로 이 만화가 연재되면서 나타난 반응의 대다수가 ‘전에는 몰랐었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일선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교육자료로 사용할 수 있느냐는 문의도 많았다고 한다. 강풀은 5.18을 알리고자 하는 의도대로 자신의 만화를 열어 뒀다. 심지어 원본까지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한다.
“짐을 하나 덜은 것 같다”
이럴 정도로 강풀이 그동안 어떤 작품보다 <26년>에 더 많은 애정과 열의를 쏟은 것은 5.18 광주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 심지어 만화가로서 평생 꼭 그리리라 생각한 두 가지 중 하나로 꼽을 정도다. 그래서 그는 “큰 짐을 내려놓은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두 번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은 작업이지만, 조사차 광주에 내려가서 만났던 사람들의 감정들을 충분히 다 담아내지 못한 것만 같아서다. “주인공들의 극단적 결정을 놓고 ‘내가 너무 오버하는 게 아닐까, 이렇게 그리는 게 맞나’라는 고민이 들었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때 5.18관련 다큐를 보면서, 제 설정이 지나친 게 아니라고 느꼈어요.”
그러면서 그는 독자들이 ‘복수’를 통해 잠깐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보다, 26년 동안 아픔을 안고 살아 온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를 바랐다.
‘이런 만화를 그리라고 하나님께서 달란트를 주셨다’는 강풀. 그의 작품을 통해 더 많은 젊은 세대가 잊혀져가는 이들의 아픔을 헤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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