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3_생각해볼글

[기고] 386이 본 386의 과오

忍齋 黃薔 李相遠 2008. 2. 16.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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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품에 안주해버린 386의 10년 변화 읽지 못하면 정치건달로 전락"

 

386세대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인가? 노무현의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의 외면, 그리고 이번 대선 결과에서 드러난 민심은 386 세대 정치인들이 처한 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속칭 민주화 세력을 대표하는 것으로 일컬어졌던 386과 ‘386 전성시대’가 급격히 몰락하고 있다. 참여정부를 탄생시켰던 2002년 대선, 그리고 지난 16대 총선에서 ‘젊은 피 386’이라는 이름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대거 달았던 40대 정치인들이 이번 4월 총선에서는 ‘바람 앞에 촛불’ 신세가 되어버렸다.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의 역사는 그 어떤 나라도 이뤄내기 힘들었던 우리 현대사의 장엄한 행진곡이었다.권위주의 체제에 맞서 민주주의와 자유, 그리고 인권의 소중함을 부각시키며 역사의 주체로 부상했던 386세대. 그들이 30대, 40대가 되어 사회의 중추세력으로 성장하면서 한국 정치에서도 새로운 장을 만들어냈다. 현재 대통합 민주신당의 다수의 젊은 국회의원, 그리고 참여정부 탄생과 함께 청와대에 입성했던 사람들, 그들이 386세대를 대표하는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신선함과 깨끗함, 그리고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몸을 바쳤던 헌신성을 인정받아 정치적 권력을 국민으로부터 부여 받았다. 민주화운동 경력 자체가 훈장은 아니었다. 국민은 이들이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가 아닌, 국가와 민족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정치활동을 벌일 것으로 믿었다. 특히 계보와 금권으로 얼룩졌던 기존 정치인과는 확실한 차별성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다.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 당시 국민은 깨끗하고 도덕적인 386 정치인이 권력을 잡게 되면 전근대적인 정치가 사라질 것이고, 정치가 깨끗해지면 성실히 일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미래가 보장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확실히 밀어주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판은 완전히 바뀌었다. 더욱이 다가온 총선에서 이들 중 누가 다시 금배지를 달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나타난 결과를 종합해 보면,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찍었던 사람 중 30% 이상이 이번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으며, 예상외로 이회창 후보 지지자도 상당수 나왔다.이제 386 정치인은 무능과 비(非)전문성, 그리고 ‘권력에 도취된 독선’이라는 비아냥까지 듣게 되었다.


▲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 1989년 임수경씨(오른쪽에서 두번째)의 평양 축전 방문 당시. / 1987년 시위 도중 사망한 연세대생 이한열씨의 장례식장.
변명인지 자기회피인지, “정부 혹은 청와대에 참여했던 386과 노무현 정부에 비판적이던 386은 구분돼야 한다”는 어느 정치인의 항변도 나왔다. 포스트 386, 뉴라이트 운동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흐름이 나타나고, 이런 움직임이 세간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지도 꽤 되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가장 먼저 짚어야 할 대목은 전통적인 386이 새로운 흐름과 변화에 맞추어 자기 변신을 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즉 지난 10년 동안 기득권에 안주해 왔다는 것이다. 이념적 차별성과 민주화운동 경력이라는 틀만 고집해도 국민이 계속 지지와 성원을 보내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에 빠졌는지도 모른다. 아니 더 꼬집어 말하면 국민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줄 만한 자기 능력이 부재했는지도 모른다.
이번 대선에서 50%에 가까운 득표를 한 이명박 당선자는 경제 일선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의 흐름과 소비자의 정서변화를 읽지 못하거나 경쟁사에 대한 최신 정보를 모르면 자회사의 상품은 판매 부진의 늪에 빠지고 결국은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는 냉혹한 진리를 몸으로 터득해온 인물이다.

한나라당 역시 두 번의 대선 실패 속에서 자신들의 처신이 얼마나 시대역행적이었는지 체험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과 대통합민주신당에, 그리고 청와대라는 권력의 울타리에 몸을 의탁했던 386 정치인들은 이번 대선에서 진정한 경쟁력이 무엇인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국민에게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고개를 돌려보자.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4강의 이해관계는 북한문제, 즉 우리의 민족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다. 싫든 좋든 현실이 그렇다. 남북간의 화해 정책도 어떻게 보면 상황에 따라 종속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4강 외교는 우리 국민의 생활과 생존에 결정적 요소이다. 그럼에도 386정치인들은 이런 중차대한 문제에 관한 이렇다 할 설득력 있는 정책을 보여주지 못했고, 실질적 성과도 없었다는 게 일반적 평이다.

또 하나, 분배와 생산성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얘기하기 이전에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의 환경 조성은 젊은 세대 특히 가정을 가진 30·40대의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 사안이다.

그리고 늘어나는 사교육비 부담, 전망 없는 한국의 교육 현실은 바로 자기 자식의 문제이다.평등성에 입각한 교육기회 보장 이상으로 중요한 과제는 경쟁력 있는 국가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국제사회에서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1987년 6월 서울 명동성당 농성시위 / 2000년 7월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가안보법 폐지를 위한 공청회 / 2003년 8월 민주당의 원내·외 위원장들이 남북경제협력발전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지난 세월, 386 세대를 대표한다는 정치인들은 한국사회를 이끌어 나갈 대안세력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들은 21세기 대안 세력으로 성장하기를 거절했다. 기자실 통폐합, 부동산 정책의 완고성 등 모든 중요한 문제들이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됐다.

매일 신문을 읽고 방송을 듣는 것이 사실 너무나 피곤했다.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각고의 노력과 자기 혁신이 없으면 바로 다음날 자신의 책상이 치워지는 냉엄한 현실,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30·40대 생활인들을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혹자는 “386, 이제라도 초심으로 돌아가면 된다”라고 말한다. 물론 초심은 중요하다. 그러나 국가권력의 중심부에 있었다면 변화하는 국제사회라는 외부 환경에 대응하는 우리의 생존 문제에 대해 현실적이고 진지한 고민의 결과물 정도는 국민 앞에 내놓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BBK 연루 의혹만 제기할 것이 아니라, 집단주의 혹은 당장의 정치논리에만 끌려다녔던 자신들의 모습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은 보였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번 미국 대선 예비경선에서 배럭 오바마의 선전이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최초의 흑인 미국 대통령을 꿈꾸고 있는 47세의 오바마 상원의원. 그가 내건 기치는 간단하다.

통합과 화합의 미국, 그리고 인간에 대한 존중이다. 권력과 힘의 논리, 21세기 첨단 자본주의 대표국가로 실용과 시장경제 논리에 흠뻑 빠져있던 미국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며 오바마 신드롬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통칭 386세대가 한국 현대사에서 만들어낸 가치는 결코 간단치 않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그리고 민주주의와 인권으로 대표되는 인간 존중이다. 또한 이것의 궁극적 효과는 경제적·사회적 생산성의 향상이다. 살기 좋은 나라 만들기인 것이다.


▲ 2004년 3월 대통령 탄핵안 처리를 막기위해 의장석을 점거한 열린우리당 의원들. / 2004년 12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이철우 의원의 북한 노동당 가입 관련한 한나라당 주장을 비난하고 있다. / 2006년 12월 노 대통령 당선 4주년 기념행사에서 연설하는 안희정씨.
이번 총선에서 386정치인들이 약진할 것이라고는 어느 누구도 예상치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역사적으로 부여받은 소중한 자산을 결코 쉽게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문제는 그 주요한 가치를 어떻게 변화무쌍한 21세기에 접목시켜 관철해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386은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정말 진지하게 연구해야 한다. 정치의 전문성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40대 중반 이후 언제 회사에서 쫓겨나갈지 모른다는 불안감, 노후에 여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불안한 고민에 동참해야 한다.

‘미국에 가보지 않았다’고 큰소리 칠 것이 아니라, 필요하면 미국이건 중국이건 찾아가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그러면 분명히 기회는 다시 올 것이다. 추진과 효율만을 강조하는 현대 산업사회의 그늘에서 국민이 진정 무엇을 원하고 어디에 희망을 두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세상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그들은 ‘정치 건달’로 전락할 것이다. 386을 대표했다는 정치인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물론 역사는 다른 세력이 새롭게 쓸 것이다. 다만 국민은 1980년대에 이들이 피 흘리며 쌓아온 흔적을 아쉬워하고 가슴 아파할 것이다.


/ 유 용 화 | 고려대 졸업(80학번). 국회 정책연구위원,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초빙연구원, 미 조지타운대 객원연구원. BBS 방송 논평위원, 매일경제ㆍMBN 정치평론위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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