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묘역 (신묘역)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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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수없어 복받치는 서러움은...
구묘역 입구에는 5·18 희생자 유족들의
통한의 마음이 담긴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 흔적은 광주를 핏빛으로 물들였던 전두환씨와 관련된 것이기에....
예전에 전남 담양 지방에는 전두환 대통령 부부가
민박한 마을을 기념하기 위한 비석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때인가 그 비석은
해체되어 망월동 구묘역 입구 땅 바닥에 묻혔습니다.
5.18묘역의 영령들께 참배하기 위해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전두환 비석을 밟고 지날때마다 사람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이렇게라도 알려주고 싶어서 땅바닥에 뭍어 놓았을것입니다.
(이기원님의 5.18 자료중에서 일부 발쵀)
5.18 묘역 (구묘역)안내도
오월지기 슈퍼맨님의 설명을 들으며 우린 5.18구묘역의 열사님들을 찾아 민주동산을 지났습니다.
4월의 할미꽃도 하얀머리를 풀어 헤친채 기다림에 지쳐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
고갯길에서도 반가운 듯 금잔화인가요(?) 꽃잎 봉지안에는 하얀 기다림을 가득 담은채 또 기다리고.....
5.18의 맏언니 박경순님 1980년 전남도청에서 오빠의 죽음을 목격하고 고등학생이었던 박경순님 그때 헌혈에 나서면서 5.18과 인연을 맺었고 그후 진상규명 과 5.18의 전국화를 위해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뛰여다니시던 박경순님이 지병인 간암으로 2007년 11월 29일 새벽 그들 곁으로 영원히 떠나갔습니다.
그렇게 "오월의 누이"가 떠났습니다. 누이가 하고자 했던일 다 못해서 그냥 발길 돌릴 수 없어 애통해하더니 살아있는 이들에게 못다한 숙제로 남겨놓은채 그들곁으로 떠나가고 차마 당신을 놓아줄 수 없어 오월의 누이 그 이름으로 이제 우리들 가슴에 담겠습니다.
5.18구묘역 분향대 분향 석상위에는 순례객들이 다녀간듯 국화꽃 열 한송이가 누워있고 타다남은 향조각을 남겨둔채 재가 되어버린 향가루는 4월의 봄바람에 날려 잿빛 하늘로 향해버리고... |
강경대 민주열사
1991년 4월 26일 노태우 군사정권 타도 시위중
백골단 쇠파이프에 맞아... 그뒤 5월 20일 망월동 5.18 구묘역에
안장되신지 벌서 18년이 지났으나 유리상자속의 그 때 젊은 모습과
열사가 쓰던 노트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때 그 일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아직도 이루지 못한 소망에 안타까워
열사의 후학들이 종이학을 접어 내일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열사의 영전에 바치고 사랑할 것이 많이 남았는데 하며 애도 시를
검은 대리석에 새겨 놓았더이다.
함께가자 우리 이 길을
박정권의 제3공화국 시절 삼선개헌과 유신헌법 반대를 위한 투쟁으로
수차례 구속되고 전남대학에서 제적당했으며 1978년 재야활동 동지사건으로
다시 15년의 형을 언도 받아 복역중에 1984년 첫 시집 진혼가를 출판했던분...
우리는 김남주 시인을 이렇게 부릅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할 줄 알고 온 몸을 던져 실천했던 진정한 민족시인이라고...
민족시인 김남주
온몸을 불태워 나라와 민족의 미래와 민주주의를 지키려
투쟁하시었던 진정한 대한민국 민족시인 김남주님이 여기서 님들을 기다립니다.
눈물이 마를때까지...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누가 뭐라해도 그 눈물은 영원히 마르지 않을 눈물임을....
이한열 열사의 묘역 앞에 바쳐진 깨어진 화강암 시석은 전남대학교
시 창작연구회 동아리 이름으로 1994년 12월 25일 기록되여 있었습니다.
언젠가 우리들의 눈물이 마를때를 기다리며....
.....
이한열 열사의 묘 1966년 8월 29일생 살아계셨다면 올해 42살....
1987년 6월 9일 6.10 대회 출정을 앞두고 연세인 결의대회 후 시위도중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7월 5일 산화 했습니다.
1987년 7월 9일 민주열사 장으로 치루어진 장례식에 이한영 열사를 추모하는 100만의 서울의 추모인파와 50만이 넘는 광주의 애도인파는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앞 당기게 하였으며 전두환 군사정권을 끌어 내리게 하는 크나큰 역활을 하였습니다.
반미자주 이철규 열사 1980년 고등학교 2학년인 그가 부상자들을 호송하며 5.18을 겪게되고 80년이후 조선대학에 입학한 이철규열사는 반미자주를 외치며 끝없는 활동을 계속하였고 수 차례의 구속과 제적을 반복하며 활동해 오던 중 1989년 5월3일 제4수원지에서 경찰의 검문을 피해 행방불명 되였다가 일주일 후인 5월 10일 제4수원지에서 의문사 한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아직도 이렇게 만 기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풀어내야 할 우리들의 숙제이고 여기 너무 억울한 채 잠들어 있는 그 분들을 찾아가야 하는 이유일 것 같습니다.
늘 한 빛 표정두 열사의 묘
한상은 열사의묘
남평 문승필 열사의 묘 |
민중해방 최덕수 열사의 묘
김준배 열사의 묘
그대 다시 살아오는 목소리
도청앞 분수대 연단에 오를때마다 열변을 토하고
모여든 이들에게 함성과 박수를 받았던
그리고 연행을 피해 은신했다가 밀항했던 박관현 열사...
1982년 10월 은신처에서 체포당해
군부독재의 모진 고문을 견디다 감옥에서 목슴을 잃었습니다.
87년 5주기를 기해 유해 마져 군부독재에
빼았겼던 그를 그래도 망월동 5월 묘역에 안장 할 수 있었습니다.
인생이란 부채를 갚는 시간이다.
신이 있다면 우리 인생은 신에게 약속한 부채를 갚는 시간이다.
또 인간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서로에게 진 빚을 갚는 것이 인생이다.
관현 장학재단을 만들고 박관현 열사의 뜻을 이어가는
전남대 총학생회 동지회 그 5월 항쟁의 중심에 섰던 민파 회원들의 말입니다.
어두운 시대에 태여나
우리를 위해 몸바친 열사님들이 계시기에
이렇게 나마 행복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것 아니겠는지요.
이제 우리들도 올해 5월이 되면
열사님들을 찾아 나태해진 우리 자신을 뒤 돌아보고
앞으로 펼쳐내서 다음 세대들을 위한 무언가 준비를 해야하지 않겠는지요 .
민주동산을 돌아서..
다시 5.18민주묘역(신묘역)으로 내려오는 길
얼마있으면 다시 찾아올 5월의 광주와 망월동 묘역을 생각합니다.
전국에 모든 민주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오월의 광주... 그 성지의 순례행사를....
무엇을 뜻하는 형상인지는 모르지만
하늘을 향한 세개의 조형물은 검은색에서 흰색으로 변해 하얀색 꿈처럼 보이고...
무엇을 뜻하는 형상인지는 모르지만
검은 벽돌로 쌓아올려 하늘을 향한 둥근 마듬은
불꽃꺼진 봉화대의 그 모습 처럼 외롭게 서 있어 슬퍼지고 ....
굽은 길 따라 내려가는 길이
성루를 넘어 돌아갈
고향의 먼 길처럼 느껴져서 외로워지고...
다시 내년에나 찾아뵐 그리운 님들을 뒤로하고
오늘 작은 바램을 이렇게라도 모두에게 알리면서 닫아야 합니다.
님들에게 전합니다.
오월에는 오세요.
오뤌에는 광주를 찾으세요.
오월에는 민주열사들의 꿈을 만나보고
오월에는 그 뜻을이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이 나라의 희망을
가슴에서 꺼내들고 함성으로 이어지는 자신을 일으켜 세우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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