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시작
어느 여름날 아침, 소년의 엄마가 잠든채 집으로 실려왔다. 그때 소년은 초딩
5학년이었다. 노환인 할아버지의 임종을 보러 아버지와 같이 갔었던 엄니가 왜 잠든채로 집에 와야 했는지 소년은 알지 못했다.
단지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던 아버지의 모습과 계속 잠들어 있는 엄니의 모습, 그리고 찾아오는 이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며 다시는 엄니가 깨어나지 못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어린애들은 나가 놀아라’ 는 어른들의 말에 밖으로 나가 동네 친구들과 놀았다.
‘우리 엄마 돌아가셨다’ 라고 태연히 말하며.
이틀밤이 지나니 사람들이 통곡을 하며 엄니를 나무상자에 넣고는 차에 싣고
어느 동산으로 가서 묻어 버렸다. 그리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버지가 도시락 뚜껑에 깡소주를 연거푸 마시더니 쓰러졌다. 소년은 순간 고아가 될줄도 모르리란 생각에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에 쫒아 갔더니 사망하지는 않을거라는 말에 안심을 하고 버스로 돌아왔다.
그렇게 예기치 못한 엄니와의 이별이 소년에게는 ‘그리움의 시작’ 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4남매의 막내딸로 자란 소년의 엄니는 2남1녀의 막내아들과 혼인하여
2남1녀를 두었고 소년은 그중 막내아들이었다. 소년은 자라면서 떠난
엄니에 대해 주위 모든 사람들이 훌륭한 분이었다고 칭송하는것을 보며
훌륭한 엄니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결혼전에 서울서 고등학교를 다니다 1.4 후퇴때 고향인 충청도로
피난와서 선을 본후 결혼을 하게 되었다. 피난중에는 어린 조카들을 안고 한강다리를 건너왔고, 결혼후에는 임신중 친정에 머무르다가 나무에서 놀다 떨어진 어린 조카를 업고 십리길을 달려 병원에 가는 바람에 결국 자신의 뱃속 아기는 사산이 되었던 것이다.
성격이 괄괄한 편인 그녀였지만 남편앞에서는 큰소리 한번 치지 않았고,
임신중에 삶이 힘들어 지우려 했던 막내아들에게는 항상 사랑으로 대해 주었었다.
세상을 떠나기 10년전부터는 남편의 사업자금을 얻기 위해 친척집 부엌일도 마다 않고 일했고, 그러다 남편의 사업이 잘되지 않자 직접 가게를 운영하여 생활비를 벌어 자식들을 공부시켰던 억척스런 엄니였다.
또한 서울서 학교를 다녀 집안내에서는 조금 유식했던 탓에 지방고교를 나온
똑똑한 조카에게 명문대 입시 원서를 사다줘서 합격할수 있도록 해주어 그 조카가 평생 고마워하고 있었던 작은엄마였던 것이다.
그랬던 엄니가 시아버지 임종소식을 듣고 가서는 할아버지가 숨을 거두자 곡을 하다가 30분 뒤에 숨이 멎었다고 한다. 왜 멎은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그녀가 심장질환이 있었다는것 밖에.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38년여를 살다가 꽃다운 나이에 아무 말없이 떠나 버렸다.
어린 소년의 가슴에 그리움만 가득 남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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