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을 거닐며 (14) : 공수부대 사나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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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신 준
- 조회수 : 0
- 08.11.1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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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부대 사나이들 보통 사람들은 ‘공수부대’ 라고 하면 과거 3공화국때 시위 진압을 했고 12․12 쿠데타 사건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시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한 사태에 개입한 부대를 떠올리며 좋지 않은 생각들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사건에 투입되었던 대부분의 공수부대원들은 당시 권력을 갖고 있던 사람들의 지시에 의해 자신들이 부여받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려 했던 군인일 뿐이었다. 대다수가 봉급을 받는 직업군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공수부대는 부여받은 임무를 반드시 완수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 상급부대로부터 시위에 가담한 주동자들은 불순분자들이므로 무력으로라도 완전히 제압하라는 임무를 수행하다보니 진압과정에서 과격한 행동이 나왔던 것이다. 이는 당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공수부대를 이용했던 것으로 그때 지시에 의해 현장에 출동한 대부분의 공수부대원들도 정신적인 피해자인 것이다. 공수부대 본래의 임무는 전쟁이 벌어졌을 때는 적 후방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고, 평시에는 무장공비가 나타났을 때 최일선에서 공비 소탕작전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과거와 달리 정치권력에서 벗어나 본연의 임무수행을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 공수부대라 불리는 특전부대에 소년은 3번이나 근무하게 되었다. 특전부대는 주로 전투력이 우수한 부사관들 위주의 소수 정예로 구성되어 있는데 소년이 처음 근무할 당시에는 중대장을 팀장으로 하여 한 개팀에 10여명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서민 가정에서 자라나 운동을 좋아하거나 강한 정신력을 갖고 있는 성격들로 인해 군복무를 하면서도 봉급을 받는 특수부대에서 근무하고자 지원하여 선발된 부사관들이었다. 그들은 입대하여 6개월간의 교육을 받고 하사로 임관후 소속부대에서 4년간 근무하다가 중사로 전역하게 되어 있었다. 4년간 근무중 그들은 매년 천리행군을 포함하여 각종 훈련과 상급부대 전투력측정 및 경호경비작전 등 년간 6개월 이상을 퇴근하지 못하고 근무해야만 했던 것이다.
위관급 장교들은 대부분 팀에서 팀장 및 부팀장으로서 부사관들과 똑같이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장교들은 공수부대에서 근무하기를 꺼려하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장교들은 부사관들과 달리 강제 선발을 하여 근무하도록 했던 것이다. 소년도 대위때 그렇게 공수부대에 차출되어 근무하게 되었다. 처음 그부대에 도착하니 다른 부대들처럼 중대장에 대한 예우가 전혀 없어서 소년은 당황하였다. 그부대에서는 중대장도 지휘관이자 전투원으로서 똑같이 생활해야 했기 때문에 별도의 중대장 사무실이나 행정병도 없었다. 일반부대에서는 처음 부임하는 소대장들도 지휘자로서 공식행사로 취임식을 하고 소대장을 보좌할 전령도 있었지만 그곳에서는 중대장 자신이 모든 일을 홀로 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소년은 인간 세상사의 소중한 교훈을 얻게 되었다. 그부대에서는 리더도 부대원들과 똑같이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을 이겨내면서 자신의 부대를 지휘하여 임무를 완수했을 때 상관과 부하에게 신임을 얻을수 있었던 것이었다. 처음 특전부대에서 중대장으로서 근무를 시작하게 된 소년은 가자마자 동계에 2주간 실시하는 혹한기 야외훈련에 참가하게 되었다. 20kg이 넘는 군장을 메고 50km를 걸어서 훈련지역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소년은 어깨가 저리고 발가락에 물집이 잡혀 발을 내딛을 때 마다 통증을 참고 걸어야만 했다.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겨우 절뚝이며 걷고 있는 소년에게 팀원들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고 몇 명의 인원들이 측은한 마음에서 ‘중대장님, 힘든가 봐요’ 하기에 소년은 지휘자로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것이다. 2주간의 훈련이 끝나고 부대로 복귀할때는 50km 거리를 전투복장인 단독군장으로 하여 구보로 간다는 것이었다. 10km를 50분간 뛰고 10분간 휴식을 하면서 5시간 만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그런 장시간 구보는 부대원들도 처음 하는 것이어서 구보가 시작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몇명이 열중에서 이탈하고 대부분의 대원들도 힘들어 하게 되었다. 소년도 힘들었지만 더 힘들어하는 인원들을 보며 여유를 갖고 완주할수 있었다. 부대에 복귀하고 나니 소년은 자신을 바라보는 대원들의 눈빛이 달라진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들이 믿음직스럽다는 표정으로 ‘중대장님, 구보 잘하시네요’ 하는 말에 소년은 리더로서의 자긍심을 느낄수 있었다. 육체적으로 힘든 훈련을 그들과 똑같이 완료한 후에야 중대장에 대해 신뢰감을 보내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특전부대에서는 거저 얻어지는 권위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에도 소년은 그부대에 근무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야 했다. 한번은 상급부대 전투력측정을 준비하기 위해 사격훈련을 하는데 시력이 안좋아 표적이 잘안보였던 소년은 부담을 갖고 있었다. 연습사격간 소년의 사격성적이 소속부대 평균인 85%에 훨씬 못미치는 결과가 나오자 부대원들중에서 ‘에이, 우리팀 사격은 이번에 포기해야겠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에 소년은 리더인 자신의 저조한 성적으로 소속부대의 수준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부단히 연습을 한 결과 측정 당일에는 부대 평균수준보다 웃도는 90%의 명중률을 올릴수가 있었다. 그때 소년은 리더로서의 책임감이 자신도 모르게 엄청난 집중력을 갖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측정이 끝나고 한달이 채 안되어 이번에는 한달여간의 야외 종합훈련을 강원도로 가게 되었다. 그훈련간 소년은 일반부대에서 종종 있었던 ‘소대장 길들이기’ 처럼 특전부대에서 ‘중대장 길들이기’ 를 체험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훈련하는 기간동안 모든 식사는 팀별로 야지에서 취사를 하여 먹도록 되있었는데, 한번은 산속 숙영지에서 2km를 내려와 대대장님과 간담회를 마치고 숙영지로 복귀했더니 소년의 팀원들이 저녁식사를 하고 오는 줄 알고 식사를 남겨두지 않았다고 하여 소년은 강원도 산속에서 별수없이 그날 저녁을 굶을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야외훈련이 끝나고 마지막 단계로 특전부대의 상징이라 하는 천리행군을 하게 되었다. 천리행군은 400km를 1주일 만에 걷는 훈련으로 팀단위로 50km씩 3일을 걷고, 다시 몇 개팀이 모여 3일을 걸은후 대대가 모여 1박2일간 100km를 걷는 것이다. 특전부대 천리행군이 특히 힘든 것은 행군을 할 때 전시에 적 후방지역에서 작전하는 부대인 만큼 모든 장비와 식량 등을 휴대해야 했기에 개인별로 메고 가야하는 군장이 엄청 무겁기 때문이다. 행군간 소년은 처음 3일을 잘 버티다가 4일차에 발목이 접질리면서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렇게 악으로 참으며 행군을 하던중 소년은 또 ‘중대장 길들이기’ 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각자의 군장 내용물에 각종 장비와 식량을 넣고 행군을 하는데 모두가 같은 무게의 군장을 메고 가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팀내 부사관 선임자인 상사는 자신의 군장에 침낭등 개인 필요장비만 넣어 팀장의 군장무게 보다 1/3 밖에 되지 않았고, 팀내 고참격인 중사들 군장에도 식량은 들어있지 않아 팀장의 군장보다는 훨씬 가벼웠던 것이다. 팀장과 비슷하게 군장이 무거웠던 인원은 천리행군을 처음하는 서너명 뿐이었던 것이다. 소년은 그사실을 안 순간 화가 났지만 일단 그들이 해오던대로 해보기로 맘먹고 끝가지 참고 행군을 완주하였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부대 정문을 통과하면서는 힘든 만큼 짜릿한 감정을 느꼈고 짐정리를 하면서는 단한명의 낙오자 없이 끝까지 완주한 팀원들이 그저 자랑스럽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렇게 해서 소년도 가장 힘든 훈련을 마치고 나서야 특전부대 리더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그후 올림픽 선수촌 경호경비작전에 투입되어 그해를 넘기고 소년은 이듬해 두 번째 천리행군을 하며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 팀장인 소년의 군장에는 침낭외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첫 번째 행군을 하는 인원들에게는 쫄병은 물론 리더인 팀장에게 까지 똑같이 무거운 군장을 들게 하여 체력을 향상시키려 했던 것이었다. 그런 그들의 행동에 팀장이 아무말 없이 첫행군을 마치고 나니 그때부터 그들은 팀장으로서 예우를 했던 것이었다. 그후 소년은 팀원들에게 전시에 모두가 똑같은 무게의 군장을 휴대해야 각자가 체력을 유지하여 작전을 할수 있으므로 각자의 군장무게가 너무 차이가 나면 안된다고 지시를 하여 휴대장비 및 식량을 고루 나누어 모두가 비슷한 무게의 군장을 메고 훈련을 하였다. 특전부대에서 팀장으로서 1년반을 그들과 함께 보내며 소년은 세상사의 이치를 배우게 되었다. 다른 부대의 경우 장교들은 소속부대에서 부사관들이나 병들에 비해 인간적으로 나은 대우를 받는다. 그리고 그들은 장교들의 지시를 아무 말없이 따르기 때문에 대부분의 장교들은 자신들이 잘난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특전부대에서의 장교들은 부대원들과 똑같이 모든 훈련에 동참하면서도 자신의 부대를 지휘해야 하기 때문에 육체적․정신적으로 강한 의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 또한 부하들이 부당하거나 부적절한 지시에는 곧 바로 반발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지시를 하기 위해 고민해야 하고, 팀원들과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자발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특전부대 장교들은 항상 수행해야할 임무에 대해 정확하게 그 목표와 수행방법을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특전부대원들은 계급이 높다고 무조건 존경하지 않고 상관이 언행이 일치하고 명분있게 처신할 때 마음속으로 오래도록 간직하고 끝까지 의리를 지키는 특수한 사내들 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처음 근무하는 인원은 장교라도 똑같이 임무수행에 필요한 전투력을 갖추도록 요구하지만 일단 수준에 도달했다고 판단되면 전격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지원하여 선발된 자긍심으로 특전부대의 전투력이 강해야 한다는 생각과 지휘관들이 자신들을 무시할 것에 대한 방어심리에서 처음에는 검증을 하고 경계를 하다가, 실력을 갖추었다고 판단되면 ‘길들이기’ 를 멈추고, 자신들을 위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상관의 지시를 철저히 완수하는 사나이들이었던 것이다. 그후에도 소년은 특전부대에 두 번을 더 근무하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그러한 그들의 마음이 같음을 알게 되어 그들과 함께 어우러지며 자신도 어느덧 공수부대 사나이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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