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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추억속을 거닐며 (12) : 동상 사고

忍齋 黃薔 李相遠 2008. 11. 1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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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사고

 

소년은 소대장 근무중 소대장직을 그만 두어야 하는 아쉬움과 함께 사랑하는 소대원들중 일부가 불구자가 되는 아픔을 겪게 된다.

소년의 대대는 한겨울에 동계 혹한기훈련의 일환으로 200km 산악행군을 실시하게 되었다. 기간은 사흘간으로 1일차 아침 7시에 출발하여 3일차 오후 5시에 도착하도록 계획되었는데 극한상황 극복훈련 목적으로 행군기간중 취침없이 주야로 지속해서 행군을 해야 했고, 식사는 매끼 추진하여 급식하되 그중 한끼는 주먹밥으로 먹고, 한끼는 굶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전에 그러한 훈련을 한번도 안해봤던 대대원들은 훈련전에 많은 걱정을 하면서도 앞선 대대들이 모두 무사히 마쳤다는 소식에 일말의 안심을 하였다. 그러다 소년의 대대가 행군할 날이 돌아왔다.

첫날 주간에는 맑고 영상기온의 포근한 날씨였다. 대대원들은 군장을 메고 행군계획에 따라 부대를 출발하여 산으로 올라갔다. 행군간 넘어야할 수개의 산중 첫 번째 산으로 들어서니 산속에는 전에 내린 눈이 무릎까지 그대로 쌓여 있었다. 소년의 소대는 맨 선두에서 눈위에 길을 만들며 가느라 모두 흠뻑 젖었다. 밤이 되면서 날은 점점 추워져 그겨울의 최저 온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소년의 대대는 밤에도 계속해서 산과 야지를 반복하며 걷고 있었다. 그러다 서서히 체력의 한계에 도달하여 쓰러지는 병사들이 발생했다. 소년의 소대에도 한 병사가 실신해서 응급처치를 하여 정신을 차리게 한후 그병사의 군장을 다른 인원들에게 나누어 들게 하여 계속 행군을 하였다. 그날 밤에는 피곤함과 졸음과 추위속에 소년도 정신없이 보냈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식사장소에 도착한 소년은 자신의 손이 이상함을 느꼈다. 식사를 하려고 장갑을 벗으려 하는데 벗겨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소대원들에게 장갑을 잡아당기게 하여 벗었더니 양손이 모두 노랗고 딱딱해져서 두손을 마주 부딛쳐보니 막대기처럼 소리가 난 것이다. 그래서 중대장님께 보고하러 지휘소로 갔더니 그곳에 있던 상관들이 소년의 손을 보고 놀라며 빨리 군의관에게 가보라는 것이었다. 군의관은 소년의 손을 보고는 겨느랑이에 손을 넣고 있으라고 하였다. 그말을 듣고 그리하면서 소년은 “‘행군 하는데는 지장 없죠?” 라고 물어봤더니 군의관은 “네 손가락 잘라지길 바라거든 행군해라.” 하기에 소년은 그제사 자신의 손이 심하게 동상에 걸린 것을 알게 되었다. 소년은 소대원들과 같이 행군할수 없어 안타까워 하며 앰브란스에 실려 이동하고 있던 중에 이상한 상황을 목격하였다. 도로 곳곳에 환자들이 앉아 있어 군의관에게 물어봤더니 엄청나게 많은 인원이 동상에 걸려 큰일 났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밤새 행군을 해온 대대원들은 주간에 눈길을 걸어 군화가 젖은 상태에서 야간에 기온이 당시 최저온도인 영하 30도 가까이 내려간 추위에 발이 얼어버렸던 것이다. 소년은 행군시 과거 행군경험과 자료를 통해 발동상을 우려하여 소대원들에게 군화속에서 계속 발가락을 움직여야 한다고 얘기했었다. 소년 자신도 발가락을 움직여 발은 괜찮았으나 첫날 낮에 산을 오를 때 선두에 서서 손발로 눈을 헤치며 오던중 자신의 손이 얼어버린 것을 몰랐던 것이다. 밤이 되어 손가락이 잘 안 움직여졌던 소년은 단지 추위에 손이 곱아서 그런줄만 알았던 것이다. 손이 동상에 걸릴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까닭에.

 

당시 행군은 최초 출발인원의 1/3 정도 만이 완주하여 부대로 복귀하였다. 그렇지만 그들도 대부분 동상 귀왕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인원들이 동상으로 군병원으로 후송되어 갔는데 그들중 30여명은 끝내 신경이 썩어 들어가 발가락이 잘라야 했던 것이었다.

소년도 동상으로 사단 의무대로 후송되어 증상에 따라 손가락 절단 여부를 판단해야할 상황에 놓여 있었다. 소년의 손가락은 얼었던 부위가 녹으며 마치 권투 글러브처럼 물집이 잡혀 있었다. 한달간 소년은 의무대 침실에서 손이 붕대로 감긴 채 세면도 못하고 식사시와 용변시 다른이의 도움을 받으며 경과를 지켜보아야만 했다. 더 악화되면 손가락을 자를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운명을 기다리는 입장이 되었던 것이다.

한달이 지나자 소년의 손에 잡혔던 물집이 빠지며 손톱과 표피가 전부 벗겨져 버렸다. 그리곤 시간이 지나면서 갓난아이의 몸에 표피가 생기듯이 소년의 손가락도 그렇게 표피가 생겨났던 것이다.

그러나 손가락 끝에서 두 번째 마디까지의 신경은 파손되어 감각이 무뎌지고 손톱이 새카맣게 되는 등, 손가락이 다소 흉칙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손가락은 움직여져서 정상적인 삶이 가능해져 소년은 운명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당시 동상이 악화되어 군병원으로 가서 발가락이 잘려진 인원은 30여명이나 되었다. 그들은 남은 군생활을 거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전역을 하였고, 일부 고참 병들은 전역일 이후까지 치료를 받아야 했다. 발가락이 잘린 병사들 중에는 소년의 소대원도 두명이 있었다. 그중 한명은 한쪽 엄지 발가락만 절단되어 걸을수는 있었기에 곧 전역을 하였는데, 다른 한명은 양발에 있는 발가락을 모두 절단하고도 절단한 부위에 살을 덮어 씌워야 했기에 자신의 엉덩이 살을 절단하여 두차례나 이식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도 그는 제대로 걸을수가 없었다. 신체를 지탱해주는 발가락 뒷부위까지 절단해야 했기 때문에.

 

사고가 나고 두달 가량 지나 소년이 속한 사단은 한미 연합 야외 기동훈련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완치가 안된 소년은 참가할 수가 없었다. 답답해 하던 소년은 국군 수도통합병원에 아직 남은 한명의 소대원을 위문하러 가게 되었다. 거기서 소년은 또 다시 커다란 교훈을 깨닫게 되었다.

소년이 수도통합병원에 가서 처음 만난 사람은 중대본부 행정병으로 근무했었던 병사와 그의 어머니 였다. 그병사가 오셨느냐고 반가히 인사를 하며 자신의 어머니에게 소년을 자신의 부대 소대장이라고 소개했더니 그의 어머니는 소년을 마치 원수를 바라보듯 쏘아보았다.

소년이 당황하여 아무말도 못하고 있을때 그가 ‘어머니, 소대장님도 다쳤어요’ 하는 말을 듣고 그녀는 원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동지에게 대하는 눈빛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녀는 양발의 발가락이 모두 절단된 자신의 외아들을 보고 부대의 모든 간부를 자신의 아들을 그리되게 만든 가해자로 생각하여 소대장이라고 소개하는 순간 원수처럼 바라보았다가 같이 다친 소대장이라는 말에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다정하게 대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병사 모자와의 인사를 마치고 소년은 수술중이었던 소대원을 찾아갔다. 그는 당시 발가락 절단부위에 엉덩이살로 1차 이식수술을 마친 후 였다. 소년이 찾아가니 그는 반가히 인사하며 이식수술을 했는데 절단부위가 너무 커서 한번 더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모습을 보고 소년이 딱한 마음에 ‘어떻게 하냐’ 고 했더니 이젠 괜찮다며 걱정말라는 그에게 소년은 아무것도 해줄수가 없어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수중에 있던 5천원짜리 지폐 한장을 주면서 먹고 싶은 것 사먹으라고만 말하고서 돌아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다시는 그들처럼 불구자가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출처 : 장훈고일사회
글쓴이 : 신 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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