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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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타인에 대한 배려/문화일보 [2008-10-09]

忍齋 黃薔 李相遠 2008. 11. 26.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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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타인에 대한 배려
어쩌다 이런 일이? 잘 자고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여는 순간 굵기가 다른 한 줄의 헤드라인 기사가 가시처럼 내 눈길을 아프게 찔러댔다. 순간, 내가 잘못 읽었으려니 했다. 왜 그런 일이 종종 있지 않던가. 어떤 글자를 전혀 다르게 읽고서도 그게 틀린 줄 모른 채 당연시하던 때 말이다. 심리학 용어로는 신념 지속현상 쯤이 될 텐데, 어떻든 그 짧은 순간 나는 제발 내가 틀리기만 바랐다. 한데 다시 봐도 똑같았다. 그 굵은 고딕체의 짤막한 타이틀은 어김없는 사실이었다. 정상급 여자 연예인의 죽음을 알리는 그 내용은 그 아침, 불온하게 인터넷 윗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한 연예인의 엽기적인 죽음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더 큰 중량으로 사람들을 강타하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그 연예인이 누구던가. 질기고도 투박한 우리네 이웃을 닮은 사람이 아니던가. 어떤 시련에도 절대 끄떡없을 것만 같은 사람이었는데 그렇듯 허망하게 목숨을 버리다니.

이제 막 어미의 정과 사랑을 알아가는 두 아이들은 어쩔 것이며, 자식을 잃은 채 참척의 고통을 겪어야 할 어미는 어쩌며, 남은 사람들은 또 어찌할 것인가. 고통은 고스란히 살아남은 사람들의 몫일 텐데, 한편으로는 그 무책임하고도 이기적인 행동에 화가 나기도 했다. 좀 더 질기게 살아주었더라면, 좀 더 건강하게 살아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 가진 게 훨씬 더 많은 사람이었는데…. 그 경솔한 판단이 마뜩찮았다. 이 사람의 죽음을 본 다른 사람들은 또 죽음을 얼마나 가볍게 여길까, 한편으로 걱정되기도 했다.

하긴 우울증이라는 게 어디 가벼운 감기 앓듯 쉽게 다스려지는 것이던가. 제 임의대로 조절할 수 있다면야 세상 살아가는 게 조금은 더 쉬울지도 모른다. 한번 발이 빠지면 수렁처럼 더 깊숙이 빠져드는 게 우울증이고, 나 역시 간혹 그 우울증의 주변에서 아슬아슬함을 느끼지 않았던가. 공인으로서 낱낱이 노출되는 사생활로 인해 그녀도 몹시 힘들었을 터. 살아오면서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과 오해에 적잖이 시달렸을 것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온 몸으로 반응하는 유약한 존재들일 뿐이다. 사회적 유기체로서 이렇게 저렇게 복잡다단한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싫든 좋든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간혹 사람들로부터 우호적인 제스처를 받기도 하지만 반대로 지독한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남들이야 그냥 흘러가는 듯 가볍게 이야기하고 뒤돌아서는 순간, 잊어버리겠지만 정작 당사자는 숨이 막힐 것 같은 고통을 안고 구석으로 숨어든다. 그 안에서 상처가 아물기만 기다릴 뿐이다. 하지만 어쩌랴. 어떤 상처는 다행히 치유되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자꾸만 덧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것을. 그녀도 그랬을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거짓 소문의 확대 재생산에 속수무책이었을 것이고 또 두려웠을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목욕탕을 갔다. 온통 그녀의 이야기들뿐이었다. 언론은 경쟁적으로 그녀의 죽음을 보도하고, 스타들은 레드카펫을 밟듯 장사진을 친 기자들의 카메라 앞을 지나쳤다. 그 화면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또 나름의 소설들을 써댔다. 그들의 입심이 끔찍했다. 한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며 쏟아내는 그들의 킬링타임용 목욕탕 담화는 최소한의 예의나 애잔함도 없었다. 사채설과 관련해 무언가 관련 증거가 나와 행여 목숨을 끊었을지도 모른다는 그들의 예단과 추측은 듣기에 몹시 불편했다. 어쩌다 이렇게 인심이 사박스럽게 변했는지. 죽음에 관대하던 인정은 온데간데없이 그걸 이벤트로 생각하는 태도에 나는 적이 분노가 일었다. 하긴 비판 없는 온정주의로 죽음을 미화하는 것도 곤란할 터.

그렇다고 고인을 두 번 죽이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무책임한 소문들이, 악의적인 추측들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마당에 더 이상의 무례한 행동은 삼가야 하지 않을까. 타인에 대한 배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그게 아닐까. 우리 모두 뼈아프게 자성해볼 사건이다.

[[은미희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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