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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별 헤는 추석 하늘 |
언제부턴가 작정하고 밖에 나가 밤하늘을 보는 일이 없어졌다. 별똥별이 비처럼 떨어져 내린다 해도, 혜성이 긴 꼬리를 끌고 유유히 밤하늘을 가로질러간다 해도 나는 더 이상 별맞이를 하지 않았다. 어쩌다 내 삶에서 별이 사라지게 되었을까. 한때는 그랬다. 밤이면 으레 계절별 별자리가 들어 있는 책을 끼고 옥상으로 올라가거나 마당으로 나갔다. 그것도 사람들이 모두 잠든 야심한 시각을 기다렸다가 홀로 나갔다. 사위는 고요했으나 별들이 수런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외롭다거나 쓸쓸하지 않았다. 거기, 청람빛 하늘에 별들은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 카시오페이아, 오리온, 백조, 북두칠성….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따로 떨어져 있는 견우와 직녀성은 왜 그리도 안쓰럽던지. 별 하나하나 선을 그리며 모양을 완성시켜 나가다보면 어느새 시간은 훌쩍 지나가 있었고, 하늘에는 그만큼 많은 영웅들이 생겨나 있었다. 지상의 사람살이와 같았다. 그곳에도 역시 눈물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으며, 미움과 증오와 원망과 애증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들이 간직한 사연들로 밤하늘은 잠들지 못하고 내내 뒤척였다. 그렇게 별들은 이름을 얻고 영웅으로 다시 태어나거나 신화 속에서 비장하게 부활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내 상상력과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나머지 이름을 얻지 못한 뭇 별들은 뭇 별들대로 한 점 빛으로 빛났고, 간간이 떨어지는 살별에 나는 소원을 빌기도 했다. 소원을 빌면 다 들어준다는 별똥별은 내 요정이었고, 요술램프였다. 내 소원은 참으로 많았다.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고, 아픈 가족이 빨리 낫게 해달라고 주문을 걸었으며, 부디 짝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염원했다. 어떤 것은 채 다 말하기도 전에 사라져버렸고, 어떤 것은 소원을 다 빌고 났는데도 한동안 사선으로 떨어져 내렸다. 소원을 다 말하면 말한 대로, 못하면 못한 대로 좋았다. 나 또한 저 별들처럼 한 점 빛으로 살다 어느 순간 저 청람빛 어둠으로 사라지리라 생각했다. 이름 없는 별들 가운데는 내 별도 있었다. 내 기억 속의 가장 찬란했던 별들은 남도 땅 끝자락에 있는 월출산에서 바라본 별 무리였다. 소설을 쓰기위해 나는 어느 용하다는 무당을 따라 신내림 굿을 하는 곳에 갔다. 밤 열두 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신목을 잡은 이는 오십대 후반의 자그마한 몸피의 여자였다. 무병에 결국 내림굿을 받기로 하고, 제물을 장만해 그날 밤, 영검한 기운이 서려 있다는 월출산을 택해 신을 받는다고 했다. 한데 그 밤 하늘에, 내가 여태까지 보아온 별과는 다른 별들이 있었다. 손만 뻗으면 금방이라도 잡힐 듯 가까이 내려와 앉아 있던 별 무리들은 다른 때와는 달리 유난히 맑은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너무 조밀해 숨이 다 막힐 것 같았다. 별들끼리 서로 부딪쳐 쟁강쟁강 소리가 나는 듯도 했다. 어쨌거나 그 수많은 뭇 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목을 잡은 여인은 갑자기 몸을 격렬하게 떨기 시작하더니 이내 다른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노여움에 겨운 노인의 신음 같은 소리였다. 그 초자연적인 현상에 나는 식겁하였고 그 와중에도 별들은 초롱초롱 빛났다. 한데 어쩌다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면 예전의 그 별들은 찾아볼 수 없다. 별자리를 완성하기도 버겁다. 게다가 옥토끼가 절구방아를 찧고 있다는 달에 대한 전설이나 별 이야기는 더 이상 신비롭거나 흥미롭지 않다. 저 혼자 우주를 유영하는 위성들은 시시각각 베일에 싸여 있는 행성들의 사진을 보내오고, 우수한 두뇌의 천문학자들은 속속들이 우주의 진실을 밝혀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그게 반갑지가 않고 더 슬플까. 별을 볼라치면 별자리가 간직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보다 저쪽 어디쯤에 블랙홀이 존재할 테고, 저 별은 몇 등성이며, 저 별은 몇 만 광년쯤 떨어져 있을 거라는 과학적 사실부터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 얄팍한 지식들이 별보기를 방해한다. 이 삭막함이라니. 추석을 사흘 앞둔 이 가을, 나를 달뜨게 만들던 예전의 내 안의 동화와 순수가 그립다. 떨어지는 살별에 다시 내 소원을 빌고 싶다. [[은미희 /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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