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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추억속을 거닐며 (23) : 그림자 속을 벗어나

忍齋 黃薔 李相遠 2008. 11. 28.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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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속을 벗어나

 

아들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그사람의 삶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들은 아버지의 유전인자를 받고 태어나 아기때부터 처음 접하는 성인남자인 아버지의 행동을 보고 따라하며 그가 만들어 놓은 환경에서 자라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자라면서는 아버지와 다른 자신을 발견하며 고민하다가 부자간의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그때 아버지가 아들을 믿어주지 않거나 책임 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부자간의 대화는 끊어지게 되어 심하게 되면 남보다 더 못한 증오의 관계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뭔가 허전함을 느끼게 되고 자신도 눈을 감게 될 때는 그아버지와 크게 다르지 않게 살아온 자신을 알게 될 것이다. 소년도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이제껏 자신에게 드리워진 커다란 그림자속에서 벗어나고 있는 자신을 깨닫게 된 것이다.

 

어릴적 2남1녀의 막내아들로 자란 소년은 아버지와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어서 인지 아버지를 많이 따랐고, 그런 막내아들을 아버지는 제일 예뻐했었다. 다섯 살때 아버지가 보고 싶어 시내에 있는 아버지 가게를 찾아갔었던 소년은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 아버지가 걱정되어 쫓아간적이 있었고, 그후로도 떨어져 살아온 수십년 동안 홀로 있었던 아버지를 계속 찾아다녔던 것이다. 그러다 소년이 사관학교에 진학하면서 생활수준이 나아진 뒤로는 엄마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홀로 외롭게 살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아버지를 걱정하면서 살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막내아들을 집안의 기둥으로 생각하였던 아버지가 다소 편파적으로 소년을 예뻐한 탓에 소년은 그 그림자속에서 벗어날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처음 소년이 집이 망해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도 사관학교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학교로 달려온 아버지가 ‘네가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학교에 합격했구나, 고맙고 자랑스럽다’ 하며 기뻐했던 모습을 소년은 잊을수가 없었다. 소년은 생도시절 휴가때 마다 아버지가 있는 곳을 찾아가서 같이 보냈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막내아들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며 자랑스러워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소년은 어렵게 살지만 자기를 믿어주며 자랑스러워 하는 아버지를 자신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이다.

 

그러다 소년은 아버지를 재혼시키려고 남들에게 재혼상대를 부탁하게 되면서 아버지의 실체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어렵게 자랐어도 돈안드는 대학에 진학했던 소년은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움을 모르고 있었는데, 아버지 재혼상대를 알아보던 중에 한 친구의 어머니가 아버지에 대해 묻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실상을 얘기하자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던 것이었다. 그때 소년은 자신의 아버지가 통상적인 생각으로는 이해할수 없을 정도로 낮은 수준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막내아들이 그처럼 아버지의 재혼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대견스러워 했던 친구 어머니가 좋게 얘기해주어 선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맞선날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아버지는 앞니가 모두 빠진채 틀이를 못해 넣어 입주위가 함몰된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이었다. 그때 다시한번 소년은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너무 여유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재혼 상대 여자분도 집안 형편은 어렵지만 자식들이 건전하게 잘자란 모습에 결혼하기를 희망했으나 아버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거절했던 것이다. 소년에게는 경제적으로 아직 결혼할 여건이 되지 않아 할수 없다고 하면서.

그후로 한번 더 재혼할 상대가 있었으나 아버지는 또 비슷한 이유로 거절을 하여 그뒤로 소년의 형제들은 각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식들이 모두 결혼하여 각자의 가정을 갖게 되자 까다롭고 경제능력이 없는 홀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 며느리가 흔치 않았기에 아버지는 점차 홀로 쓸쓸하게 지내게 되었고 소년의 고민도 깊어만 갔던 것이었다.

그렇게 20년동안 아버지의 생일이나 명절에 이따금씩 용돈을 전하는 것 외에 달리 할 수가 없었던 소년은 아버지가 떠나기 몇 년전 그곁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때 소년은 서너평 남짓되는 방에서 지내고 있는 아버지를 안타까워하며 자신이 넓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것을 괴로워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다 소년은 홀로 집을 나와 아버지 곁으로 가서 방한칸을 얻어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홀로 지냈던 아버지는 이미 중국에서 온 여인과 혼인신고를 하고서 같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소년이 찾아가자 처음에는 반가워했지만 그녀와 오붓하게 살고있는 모습을 보게 된 소년은 더 이상 그를 찾아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제사 소년은 이제 그가 자신의 곁을 떠난 것을 알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에 대한 배신감을 갖은채.

 

그리고 나서 1년여가 지나고 나서 소년은 갑자기 아버지가 숨을 거두었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평상시 신체적으로 건강했던 아버지가 그리 빨리 숨을 거두리라 예상하지 못했던 자식들은 경황없이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떠나면서 법적 부인으로 남겨 놓은 조선족 여인에 대해서도 자식들이 정리를 해주어야 되었기에 소년의 서운함은 더하여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장례를 치른후 내려오는 길에 소년은 그가 남겨 놓은 수첩을 발견하게 되었다. 수첩에서 3년 동안 일기 형식으로 써놓은 그의 행적을 보고 소년은 남은 미련을 떨구어야 했다. 그기간 동안은 소년과 아버지간의 인생에 가장 사이가 안좋았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을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적어 놓았던 것이었다.

다 읽고 난뒤 소년은 집 뒤 공터에 그 수첩을 태워버리며 서서히 그를 자신의 마음속에서 지워버리기 시작했다.

 

그후 몇 개월뒤 그가 시신을 기증한 대학에서 유가족을 초청하여 합동으로 추모제를 한다고 하여 소년은 참석할지 고민하다가 그가 만들어 놓은 기일이라 생각하여 참석하기로 하였다. 그대학에 도착하니 어린시절 그대학에 갈 돈이 없어 사관학교에 가야만 했던 소년은 감회가 새로웠다. 그대학교 의과대학에서는 시신을 기증한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의과대학 건물앞에 돌탑을 지어 그곳에 시신을 기증한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놓았던 것이다. 그곳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것을 본 소년은 그가 생전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고 했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것도 소년이 가고 싶어 했으나 자신의 경제능력이 안되어 보내지 못했던 그대학교 교정에 자신의 이름을 남겨놓고 간 그를 생각하니 무언가 가슴이 저며 옴을 느꼈던 것이다.

자신의 삶이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못마땅한 면이 있었지만 그것을 감추려 했었던 아버지, 그러면서도 막내아들에게는 좋은 면만 보이려 했던 아버지, 그러다 일부분 들키게 되었을 때 부정하는 자신에게 면박주고 떠나는 막내아들을 붙잡았던 아버지, 그리고 죽기전 마지막 통화에서 손자에게 한때 할아버지에 대해 원망하는 말을 했던 것에 대해 아들이 죄송하다고 말했을 때 ‘고맙다, 그건 내가 먼저 잘못했기 때문이야’ 라고 했던 아버지는 마지막 모습을 그렇게 멋있게 떠나주었던 것이었다.

 

그러면서 소년은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떠나버린 아버지를 바라보며 그의 그림자 속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무지개를 바라보게 되었다.

 

출처 : 장훈고일사회
글쓴이 : 신 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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