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45664 2009.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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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세계적인 대기업들의 감원 수는 7만이었고, 그 다음날 다시 1만명에 대한 감원이 있었다는 뉴스가 들립니다. 지금, 우리는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로 한국 기준으로 볼 때는 지난 IMF 이후, 그리고 미국에서의 입장에서 볼 때는 80년대 불황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를 사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곳에서 사는 한인동포들도 그 어려움을 당연히 피부로 실감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지금의 경제불황을 느끼기 시작한 사람들은 부동산이나 융자 업종에서 일하시는 분들이었을겁니다. 그리고 은행에서 일하시는 분들... 특히 시애틀 지역에서는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와 보잉의 대대적 감원 보도 이후 직장을 잃게 된 분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같은 불황이 지속되면서, 경제구조의 하부 토대를 이루고 있는 한인들의 주력 업종들도 큰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인들은 식료품점, 세탁소, 소규모 식당 등의 업종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보통 '그로서리'로 불리우는 소규모 영세 식료품점들은 오래 전부터 협회를 만들어 미 주류사회를 상대로 도네이션을 받아 행사를 치르기도 하는 등, 단일 업종으로서는 무시못할 시장으로 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주류사회의 도매업소들도 한인 그로서리들이 단합해 불매운동을 펼치거나 할 경우 쩔쩔 매는 것도 많이 봤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아이스 큐브의 반 한인 발언이 나자, 그가 광고하는 맥주를 구매하지 않기로 하고 단결해 결국 아이스 큐브가 나오는 광고가 취소된 일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한인들은 몇몇 업종들에서만큼은 타민족들이 결코 따라올 수 없는 괄목상대한 성장들을 이뤄냈습니다.
그로서리 Grocery ... 식료품, 또는 작은 식품점을 뜻하는 이 영어 단어를 한인들은 우스갯소리로 '고로서리(苦勞栖利)' 라고 자조적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고된 노동의 댓가로 이윤을 얻는다는 것이지요.
위스키 같은 하드리커가 전매가 아닌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리커스토어'라고도 불리우는, 이런 종류의 가게를 하시는 분들은, 가게 규모가 커서 종업원 쓰고 일하지 않는 이상은 새벽별 보고 집에서 나가 자정 되어야 집에 들어올 정도로 그 노동의 강도가 혹심합니다.
다른 우스갯소리로 미국에 도착할 때 누가 마중을 나왔는가에 따라 신참 이민자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말도 있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미국에 먼저 와 오래산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신참 이민자에게 미국 생활을 설명해줄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신참 이민자들은 자신을 마중온 사람의 시각으로 미국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에 결국 직업도 마중 나온 사람이 추천한 것을 갖게 된다는 말이겠지요.
저도 90년 미국에 왔을 때, 당시 그로서리를 갖고 계시던 삼촌의 소개로, 처음엔 공항에서 비행기 청소하는 일을 하다가 어떤 그로서리에서 일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해서, 결국 우리 가족이 그로서리를 하나 매입해 운영하게 됐고, 그 가게에 우리 가족 모두가 달라붙어 13년간을 일했습니다. 물론 저는 중간에 직장을 얻어 독립했고, 그 바람에 부모님의 고생이 커지실 수 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직장 쉬는 날이나 일요일엔 그 가게에 나가 일해야 했고, 그래야만 부모님께서 하루라도 쉬실 수 있었기 때문에 그 가게는 우리에겐 지금의 경제적 기반을 이루어 준 은혜로운 공간임과 동시에 또 우리가 그 가게를 팔지 않는 이상은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는(일년 365일을 늘 열었습니다) 시지프스의 바위 같은 것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워싱턴주의 경우, 위스키나 소주 같은 독주는 주정부의 전매품이고, 맥주와 와인 등은 만 스물 한 살 이상의 손님에게만 판매할 수 있는데, 1990년 처음 그 가게에서 일할 당시 코묻은 돈을 들고 들어와 사탕을 사던 아이들은 지금 맥주를 살 나이들이 됐으니, 세월의 흐름이 그저 무상함을 느낄 뿐입니다.
그 가게에서 제가 처음 인연을 맺었던 것은 역시 한인인 우리 가게의 전주인이 우연히 1990년 저를 고용했던 까닭이었습니다. 따라서 부모님이 가게를 시작하시게 된 건, 여러가지 복합적인 상황이 있겠지만 우선적으로 제 탓이 컸던 걸로 생각됩니다. 우리 가족이 시애틀 국제 공항이 있는 소도시 시택의 Tom's 라는 가게를 우리 가족의 힘만으로 시작한 건 지난 1993년.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는 휴일도 없이 그 가게에 매달려야만 했습니다.
뭐, 덕분에 상당히 풍족하게 살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물질적인 풍족함이었을 뿐, 시간이 갈 수록 우리 식구들은 메말라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이 창출되는 기본 공식은 시간과 노동의 결합일 터, 다른 이들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우리 가족만 매달려 하는 가게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일을 덜 할까 하는 일종의 '잔머리'를 굴렸고, 일요일과 다른 이들이 쉬는 공휴일들에도 일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한숨을 쉬곤 했습니다. 기어이 저는 직장을 타주에서 잡아 4년간을 가게랑 상관없는 오리건주에서 살기도 했지만, 결국은 부모님 걱정이 되어 다시 워싱턴주로 올라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우체부가 되어, 일 끝나는 대로 가게 가서 일을 도왔고, 쉬는 날엔 거의 가게를 혼자 맡아보다시피 했습니다.
아무튼, 이런 저런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가게를 운영하는 데 지친 우리 가족은 결국 가게를 팔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몇 달을 부동산 에이전트와 거의 싸우다시피 하면서 손해 보지 않고 가게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근 14년만에, 그리고 저는 17년만에 가게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생산수단은 갖고 있으되, 우리가 그것이 '남을 착취하는 데 기반하지 않은' 이상은 결국 소유주 자체의 생산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쉴 새 없는 노동과, 거기에 따른 이윤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아직도 가게 건물을 소유하고 있기에 한 달에 한 번씩은 가게에 들러야 하는데, 지금 가게 맡아서 하고 계신 분께서 드디어 '매상이 줄었다'는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주택가 한 가운데 박혀 있고 경쟁도 없는 가게여서 큰 걱정 없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먼저 닥쳐온 것은 소비성향이 큰 멕시칸 손님들이 뚝 떨어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보통 일용노동자들이 많은 이들은 힘든 육체노동을 마치고 월급받자마자 맥주며 주전부리며를 사서는 왁자지껄 파티를 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돈을 무섭게 모아서는 멕시코로 송금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 가게에서도 매우 큰 손님들이라 할 수 있었는데, 이들이 일거리가 없어지는 바람에 소비를 확 줄였다는 것입니다. 또 번듯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백인들조차, 그들의 앞날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면서 소비를 줄이고, 그러다 보니 소비 패턴 자체가 달라졌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비싼 맥주를 사 마시던 사람이 싼 맥주를 사 마신다거나, 아예 맥주를 안 마시게 되었다던가 하는 식이지요.
드디어, 이 경제한파의 여파가 경제구조의 가장 밑바닥까지도 미치고 있다는 것으로 들립니다. 물론 이것을 도식화시켜 단순한 구조로 생각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대략 돌아가는 그림들이 보입니다. 시애틀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스타벅스, 보잉, 마이크로소프트 등 기업들의 감원 여파가 차츰차츰 주변으로 확산되고, 그 바람에 경제 전반이 얼어붙은 느낌입니다. 그래도 살아남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 땅에 뿌리내리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로서리 가게를 운영하는, 원래 우리 가게 주인이었던 형님의 말씀이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그래도, 우리가 사람들한테 장사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잘 해야지. 물건 값도 좀 낮춰주고, 더 친절하게 대하고, 우리가 힘들면, 남들도 다 힘든거지. 그러니까 그걸 이해하면서, 내가 나만 잘살겠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거 다 알어. 하지만, 또 내가 남들이랑 좀 나누면서 힘든 거 참고 여기 계속 붙어 장사하겠다 하면, 그런 것도 그 사람들이 알거든. 결국은 사람이야, 사람."
재미한인들의 주력업종인 그로서리 경영인 여러분들, 힘내시길 기원합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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