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 귀하
김정일 위원장의 비상한 기억력이라면 노무현 전 정부에서 통일외교안보전략 비서관을 역임한 박선원씨를 아실 겁니다. 그는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과 함께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던 친노(親盧) 386세대의 외교·안보 전략가였습니다. 1985년 서울 미(美) 문화원 점거사건 당시 배후인물로 구속된 '반미 운동 1세대' 출신이기도 합니다.
그는 당신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돈세탁 혐의를 받았던 마카오 은행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대한 금융제재를 해제시키기 위해 미국 측과 여러 차례 부딪쳤습니다. 이 때문에 조지 W 부시(Bush) 행정부 인사들로부터는 '기피인물'로 낙인찍히기도 했습니다. 박 전 비서관은 요즘 워싱턴 DC의 브루킹스 연구소 초빙연구원 직함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당신이 '인공위성 발사 성공'으로 치하한 대포동 2호가 일본 열도 상공을 날아간 다음 날인 지난 6일 영문 보고서를 썼습니다. 브루킹스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된 보고서의 제목은 '평양 또 실패하다, 북한의 세 번째 미사일 발사와 김정일의 오판'입니다.
박 전 비서관은 이 보고서에서 이렇게 분석합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부시 행정부와는 달리 미북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의지를 이미 표명했으며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위한 손을 북한에 내밀었다."
하지만 김 위원장 당신이 이런 제의를 차갑게 거절함으로써 큰 값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이번 미사일 발사로 한국과 일본이 대북문제에서 미국과 강한 교감(交感)을 형성하는 것을 도왔다고 지적했습니다.
무엇보다 그가 당신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면서 비판했다는 점에서 큰 실망감을 느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몸담은 386 인사들이 당신에 대한 공개 비판을 금기(禁忌)로 삼아온 관행을 깨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 위원장도 잘 알듯이 박 전 비서관이 적을 두고 있는 브루킹스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가장 '잘나가는' 싱크탱크입니다. 수전 라이스(Rice) 유엔대사, 백악관의 제프리 베이더(Bader) 아시아 담당 보좌관이 모두 이곳 출신입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동향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곳이기에 이곳의 로비는 요즘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외교안보 전문가들로 북적거립니다. 이곳에 상주하며 오바마 정부의 기류를 잘 읽고 있는 박 전 비서관이 당신의 또 다른 착각을 우려해서 '실명(實名) 비판'을 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당신은 유엔 안보리가 별로 구속력이 없는 의장성명을 통해 미사일 발사를 규탄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강경 조치를 취했습니다. "다시는, 절대로 6자회담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합의에도 더 이상 구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다시 주목받는 것에는 성공했습니다.
당신의 이런 행동이 오바마 행정부의 '반짝 관심'을 자극할지는 모르나 과거처럼 많은 양보를 얻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또 그나마 국제사회에서 당신의 보호막이 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당신의 이번 결정을 좋아할지 의문입니다.
박 전 비서관은 그의 보고서에서 북한의 이번 미사일 발사는 전술·전략적인 면에서의 실패로 북한은 불량국가(rogue state)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당신이 핵 프로그램 대신 6자회담을 '폐기'하는 정책을 고수한다면 그의 지적대로 영원한 불량국가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하원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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