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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스스로를 돌아보며/문화일보 [2009-07-30]

忍齋 黃薔 李相遠 2009. 8. 4.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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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돌아보며

 

‘~답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존재에 대한 증명으로 이것처럼 적절한 표현은 또 없는 것 같다. 간혹 상대를 나무랄 때나 스스로 반성할 때 우리는 이런 표현을 쓰기도 한다. 너답지 않게, 혹은 나답지 않게라고. 하지만 과연 뭐가 나다운 것인지 반성은 하지 않는다.

나 역시 간혹 욕심에 사로잡혀 나 자신을 잃고 무슨 일인가를 했다가 후회한 적이 많다. 기왕에 시작했으면 마무리라도 잘 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면서도 무언가 찜찜하고 미심쩍어 엽렵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꽤나 오랫동안 그 후유증을 겪는다.

하여간 ‘~답다’라는 말은 제나라 임금이 공자에게 정치가 뭐냐고 묻자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자식은 자식다운 것”이라고 공자가 답한 데서 유래된 말이다. 이게 이른바 공자의 정명사상인데, 정치를 묻는 질문에 ‘~다운 것이 가장 정치를 잘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정치가 뭐냐는 말에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자식은 자식다운 것이라니. 자기 위치와 신분에 맞게 처신을 잘하고 일을 잘하라는 말일 것이다.

한데 요즘처럼 이 말이 간절하게 들린 적도 또 없는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면 스스럼없이 자신의 소임에 맞지 않게 실망스러운 일을 하거나 의외의 일을 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다운 것’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이다. 하긴 이 정명론이 꼭 정치인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동요 대신 간드러지게 불러대는 트로트에 사람들은 대견해하며 박수를 보내고, 키우는 애완동물에게 애정을 쏟다 못해 자식과 동급으로 대우한다. 어찌 개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무언가 미심쩍은 기분이 들며 씁쓸하다. 이해는 하면서도 무언가 꼭 지켜져야 할 부분이 무너져 버렸거나 있어야 할 것이 뭉텅 잘려 나가버린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세상이 참 뒤죽박죽이 된 기분이다. 세상살이에 정답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래도 예전에는 상식이 통하고 예의가 있었으며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었다. 근데 요즘에는 상식은 식상한 것이 되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사생활 침해로 오해받기 쉬우며, 예의는 무관심으로 바뀌었다. 나 또한 사람들을 대할 때 그저 조심스러울 따름이다.

행여 내 눈빛 하나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나 않는지, 행여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가 상처를 주지는 않는지, 남의 형편을 헤아리는 일이 불쾌하게 하는 일은 아닌지, 걱정부터 앞선다. 하긴 어떤 게 나다운 것인지도 모르는데, 하물며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며 세상의 공명정대함을 이야기할까. 그저 저마다의 위치와 처지에 맞게 행동하는 ‘다움’을 아쉬워할 뿐.

하지만 대저 요즘 세상에는 그 ‘답다’를 지키기도 힘들어 보인다. 두 다리 뻗고 편하게 잠 한번 자지 못한 채 그렇게 피 말리게 공부해서 학교를 가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직장이라도 잡아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해도 얼마 못가 금방 명퇴를 걱정해야 하니,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을 속이고, 세상과 타협을 해서라도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으로 당연한 일인 것이다. 이해하고도 남는다.

나 또한 간혹 가까운 사람이 갈 길을 정하지 못하고 힘들어할 때 은근히 세상과 화합하라고 하지 않던가. 에둘러 그럴듯한 말로 위장했지만 기실은 눈 딱 감고 이익을 따져 행동하라는 말이었다. 한데 그렇게 말해 놓고 나서도 내심으로는 나 스스로가 몹시 부끄러웠다. 그런 내가 어찌 세상의 공명정대함을 꿈꾸고 만들어나갈 수 있단 말인가. 작은 사람은 세상살이에서 먼저 이익과 손해를 따지고 큰사람은 옳고 그름을 따진다고 했는데, 나 스스로가 작은 사람임을 자백한 셈이다.

그래서 생각해보건대 이렇게 시끄러운 세상일수록, 다시 한번 우리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과연 사람 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어야 하는지. 어떤 게 아름다운 세상인지. 그 세상을 위해 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프게 반성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자신다움’을 회복하는 일. 그것이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는 첫 번째 일이 아닌가 싶다.

[[은미희 / 소설가]]



기사 게재 일자 200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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