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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진인사 대천명 (盡人事 待天命)/문화일보 [2009-06-04]

忍齋 黃薔 李相遠 2009. 6. 25.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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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진인사 대천명 (盡人事 待天命) 

 
사람들 삶이 팍팍해질수록 미래를 알려준다는 점집이 는다. 정말, 길을 걷다 보면 길흉화복이나 운명을 봐준다는 철학관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디 철학관뿐일까. 무슨무슨 사주카페에다 대나무에 오색풍선을 매단 무속인의 집까지 그야말로 사람들 불안을 밑천으로 삼아 영업하는 운명감정소가 성업중이다.

 

그래, 그럴 것이다. 당장에 삶이 불안한데, 어찌 내일이 궁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알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허방을 피해 탄탄대로로만 가고 싶을 것이다.

 

내 어렸을 적 어머니도 그랬다. 그때는 지금과 달라서 쌀이나 돈으로 복채를 받았는데, 어머니는 한 되 남짓한 쌀을 자루에 담아 용하다는 점집을 무시로 드나드셨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에다 자식이 다섯이나 되니 바람 잘 날이 하루도 없었다. 결혼을 앞둔 자식들의 궁합은 물론이요, 앞날 운세에다 남편 일까지, 어머니가 미리 알고 대처해야 할 일은 많았다.

 

어쨌거나 어머니는 한 집에서 나쁜 이야기를 들으면 그 걱정으로 잠도 제대로 못 주무셨다. 한 며칠 그렇게 한숨을 내쉬다가 어머니는 기어이 또 다른 집을 찾았다. 한데 이상한 것이 똑같은 사주를 넣었는데도 집집마다 그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 집에서는 나쁘다고 했는데, 저 집에서는 좋다고 한 것이다. 어머니는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안심을 하셨다. 숨소리도 편안한 것이 잠도 잘 주무셨다. 가만 생각해 보면 당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으셨는데 어머니는 그걸 눈치 채지 못하셨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신기하게도 미래를 알아맞히는 집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용하다는 점집을 순례하듯 도는 어머니를 타박했다. 그런 것은 전부 미신이라고. 다 자신이 할 요량이라고. 세상은 거울과 같아서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주어진다고. 그럴 시간과 정성이 있으면 열심히 기도를 하시라고 주문했다.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맵게 눈을 흘기셨다. 당신은 서운하신 모양이었다. 모성의 애틋함을 그런 식으로 타박하니, 마뜩찮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 역시 어느 날부터인가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한번쯤 그곳에 가고 싶었다. 가서 당장의 답답한 현실에 대한 해결책을 얻고 싶었다. 내 미래가 어떤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맞는지, 도대체 내 인생에 빛은 언제쯤이나 드는지, 모든 것이 궁금했다. 그곳에만 가면 짜잔, 천국으로 가는 비밀의 문과 그 열쇠를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며칠 궁리를 하다가 어느 날 기어이 쭈뼛거리며 점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고는 내 사주를 불러주고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한데 그게 이상했다.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자꾸만 궁금했다. 한 번 가니 두 번째는 쉬웠다. 두 번이 세 번으로 늘었고, 세 번이 네 번으로 늘면서 나는 어느 틈에 그곳의 좀비가 돼 있었다.

 

하지만 나의 그 어리석음을 눈치 챈 선배가 내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저간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야기하면서도 참으로 부끄러웠다. 선배는 한심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더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선배 역시 어렸을 적에 스무 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고 하더란다. 하지만 지금까지 용용하게 아들을 둘이나 낳고 잘 살아오고 있다며 그런 것은 믿을 것이 못된다고 나무랐다. 하긴 옛 말에 남의 운명을 봐 주는 사람도 자신이 죽을 날 모른다는데 남의 인생을 어찌 알겠는가. 설령 안다 하더라도 삶의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는 일.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이라 했으니 비책이라면 그뿐일 것이다.

 

나 역시 그 진리를 모르지는 않았지만 의지가 약해 내 생을 내가 주관하지 못했다. 모든 근심과 불안은 내 안으로부터 나오는 법. 게다가 미래를 미리 안다면 그 얼마나 맥 빠진 삶이겠는가. 내일에 대한 기대마저 사라져 버린 삶은 스토리를 환히 꿰고 있는 영화와 무엇이 다를까. 그저 하루하루를 담대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살고 볼 일이다. 아무도 내일을 알 수 없다. 미래는 내가, 스스로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은미희 / 소설가]] 


기사 게재 일자 200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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