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로또' 가르친 국제중(中) 추첨
6일 오후 2시 서울 광진구 대원국제중학교 강당. 1단계 전형 합격 통지를 받은 초등학교 6학년 학생 267명이 손에 각각 파랑·빨강·초록색 탁구공을 들고 모여 앉았다. 학생 옆에는 학부모가 한 명씩 앉아 있었다.
이윽고 무대 위에서 김일형 교장이 가운데 놓인 하얀색 나무상자를 향해 다가갔다. 하얀 장갑을 낀 김 교장의 손이 상자에 들어갔다가, 천장을 향해 치솟았다. 꺼낸 공은 파란색이었다. 김 교장과 같은 파란 탁구공을 들고 강당 왼쪽편에 앉아 있던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일제히 손을 번쩍 들며 "와" 하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 순간 강당 가운데와 오른쪽에서 빨강·초록공을 들고 있던 아이들은 일제히 고개를 떨어뜨렸다. 추첨 전 빨간 공을 보여주며 "어제 좋은 꿈을 꿨어요"라고 씩씩하게 말하던 이모(12)군의 눈엔 눈물이 고였고, 손을 모아 기도하던 최모(12)양은 손에 쥔 초록색 공을 힘없이 떨어뜨렸다.
같은 시각, 서울 강북구의 영훈국제중은 탁구공 대신 구슬 추첨으로 합격생을 뽑았다. 글로벌 리더가 될 아이들에게 수월성(엘리트) 교육을 시키려 만든 국제중이, 정작 학생 선발을 운(運)에 맡긴 것이다.
두 국제중의 '3배수 선발 후 추첨' 방식은 입시 경쟁을 과열시킨다는 비판을 피하려 서울시교육청이 만들어 낸 '꼼수'였다. 서울시교육청은 오는 12월 신입생을 선발하는 자율고 13곳도 컴퓨터 추첨으로 선발하기로 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외국어고도 추첨 선발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대원국제중의 추첨식이 끝나자 파란 공을 쥔 아이들과 부모는 저마다 강당 무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반면 다른 3분의 2의 학생과 학부모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강당을 빠져나왔다. 탈락한 여학생 2명이 강당 밖에서 서로 끌어안은 채 흐느끼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 추첨 직전, 김 교장은 학생들에게 "결과에 승복하는 것도 '월드 리더'의 중요한 자질"이라고 역설했다. 하지만 학부모 강모(39)씨는 "아이들에게 '인생은 로또'라고 가르친 셈"이라고 했다.
- 오현석·사회정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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