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과자' 먹일 사람들
아이티 대지진(大地震)을 계기로 현지의 진흙과자가 화제가 됐다. 진흙과자는 아이티의 기아(飢餓) 현실을 상징하는 '음식'이 됐다. 영문으로 'mud cookie'로 번역되는 이 과자는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냥 흙을 먹는 것과는 다른 것 같다. 진흙과자 만드는 법은 퍽 간단하다. 주로 고원(高原)지대의 고운 진흙을 물웅덩이 같은 데서 퍼내 가는 체로 친 다음 물과 소금, 쇼트닝을 넣고 휘저어 반죽을 만든다. 골고루 반죽이 되면 호떡 모양으로 둥글게 편 다음 땡볕에 네댓 시간 말리기만 하면 된다.
외국 관광객들이 구경 가서 진흙과자를 맛보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한두 번 맛을 본 사람들의 경험을 옮기면 혀를 대자마자 입안의 모든 수분이 빨려나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이어 몇 시간 동안 진흙 맛이 입속을 맴돈다고 한다.
이 음식이 건강에 좋은 점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아퍼지(geophagy)라는 흙 먹는 습관을 연구하는 학문이 있는데 이 분야 전문가라는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의 제럴드 N 캘러헌(Callaghan) 교수도 그런 사람이다. 캘러헌 교수는 진흙 먹는 것이 특정 질병에 대한 태아의 면역(免疫)을 강화시켜 준다고 주장한다. 아이티 현지에서는 칼슘을 보충하고 제산제(制酸劑) 기능을 하는 것으로도 소문나 있다. 임산부와 병자에게 좋다는 소문도 아마 여기서 유래됐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특이한 학자의 주장이거나 곤궁한 나라의 이상한 얘기 정도로 들어줄 수 있다. 문제는 공직자나 정치인의 자세다. 가브리엘 티모시(Thimothee)라는 아이티 보건국장은 진흙과자에 대한 외국 기자의 질문을 받고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진흙과자가 건강에 직접적인 해를 끼친 사례는 없다"고 했다. 그는 다만 "누가 그걸 먹는 걸 본다면 먹지 말라고 말리겠다"고 했다. "국민이 허기져 진흙을 먹는다는데 주무(主務) 공직자가 한다는 소리가…"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런 공직자들이기에 지진 후에 대통령이 한동안 행방불명되는 일도 벌어졌을 것이다.
아이티 지진사태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제대로 된 정부와 행정력 부재(不在)가 살릴 수도 있었던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는 사실이다. 규모 7의 지진을 수십만(추정) 사망으로 이어지게 한 것은 진흙과자를 예사롭게 여기고 자기 합리화(合理化)나 하면서 국민 안위를 고민하지 않았던 국가 지도자들의 책임이다. 이번 지진은 지도자들과 정부가 잘못하면 국민에게 어떤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충격적으로 보여주었다. 아이티의 비극은 진흙과자에서 이미 그 싹이 보였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에게도 진흙과자와 비슷한 시절이 있었다. 소나무 속껍질을 곡식가루와 섞어 떡이나 죽을 만들어 먹었던 것이 40여년 전 일이다. 다행히 우리에겐 소나무 속껍질 죽을 두고 "먹어도 안 죽는다"는 식으로 합리화했던 공직자나 정치인은 적었다. 그래서 소나무죽 수준은 오래전에 졸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세종시와 같은 중대한 국가 현안(懸案)을 두고 아이티 공직자들이 진흙과자 얘기하듯이 하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그런다고 나라가 망하겠느냐" "몇 십조원 정도 쓰면 좀 어떠냐"는 얘기들을 예사로 한다. 국민의 미래와 국가의 장래가 걸린 문제다. 그걸 다루는 정치인들을 보고 있으면 이들이 국민에게 '진흙과자'를 먹일 사람들인 것만 같다.
- 여시동 국제부 차장대우 sdye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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