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구 동독지역 바이마르(Weimar)에 있는 바우하우스 대학에 학회를 참석하고 온적이 있다. 바이마르는 독일이 1차대전에서 패한후 독자적으로 바이마르 공화국을 선포하고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허용하고 주민의 복지권을 보장하는 등 전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헌법을 만들엇지만 이원 집정제의 한계로 혼란을 겪다가 히틀러의 집권으로 17년만에 파멸하고 말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침 바이마르 시내에 일본식 스시바가 있어서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아난교수와 함께 찾았다가 스시바주인인 김신씨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주점부리로 가지고 다니던 "오징어땅콩과자" 한봉지와 한가할때 보려고 들고 다니던 내책 "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을 주었다. 부업으로 한국의 조기유학생을 돌보고 있다하니 '전세계로 향한 한국의 유학혁명'은 상당하게 진행된 모양이다.
일식 요리책을 보고 일식요리를 익혀 바이마르에서 일식 스시바를 운영하고 있다. 바우하우스 공대를 나오고 자신의 전공분야를 살릴 기회는 잡지 못한 모양이다. 김신씨의 성공을 기원해 본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당시 김신씨가 운영하던 바이마르 조기유학홍보 웹사이트 게시판에 올려져 있던 김신씨의 '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와 오징어 땅콩'이라는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와 오징어 땅콩
김신, (작성: 2007년 3월 12일 2시 27분 독일시간)
스시바에서 사십대 중반의 남자를 만났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한인인데 바이마르에는 콘퍼렌스에 참여하러 들렸다 한다. 명함 대신 '민주화유공자'라는 신분증같은 것을 보여주었는데, 그때의 역사를 기억하는 의미에서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그리고 나에게 불쑥 '오징어 땅콩' 과자 한 봉지와 본인이 직접 쓴 한권의 책을 선물해 주었다. '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이라는....
'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나는 독일에 80년 2월 초, 국민학교 5학년중에 이민을 왔는데 당시 유일한 낙이 우리 가족이 살았던 간호원 기숙사에서 '에레베이터 타고 왔다갔다 하기'와 '테레비 보기' 였다.
이민와서 삼개월 후 테레비를 통해 처음 한국을 접한 소식은 '오월의 광주'였던걸루 기억한다. 수많은 사진들을 이래저래 보아왔지만 유독 아래 사진이 기억에 남는다. 독일 잡지에 실린 사진인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글도 읽을 수 있다.
조그만 양손사이로 소년은 그의 아버지의 사진을 들고 있다.
그는 아버지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는 독재와 투쟁하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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