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08_黃薔(李相遠)

부천 소명학교에 대한 작은 단상 – 소명원 지키기 서명운동에 대한 지지

忍齋 黃薔 李相遠 2013. 10. 29.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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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연수구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고있는 2 터울의 누나(조기준 고창경찰서장 사모님)가 소명여중 3학년에 다닐때 일이다. 나는 부천중학교 1학년때 였고 어느덧 남여간의 내외를 시작했던 때이기도 했다. 국민학교시절 신상우 마르코 신부님께 이것저것 잡수실 간식거리 심부름이며, 잘가던 소명학교 소명원 주변 뻣찌서리도 끊어버렸으니 무릇 여학생들에 대한 체면때문 이었으리라.

 

어느 비가 몹시도 내리던 , 어머니는 누나에게 우산을 가져다 주고 오라하였고 나는 나의 품위가 손상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산을 전해주어야 겠다는 계산을 하면서 소명학교에 당도하였다. 창문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던 감옥갔던 교실들, 이리 저리 해메이다, 다행이도, 우리 꽃농장에 자주 놀러오시고 나를 귀여워 해주시던 미술 선생님을 만났다.

 

미술 선생님은 요리저리 가면 거기가 누나 교실이라고 자상하게 일러주었고, 누나의 교실에 당도한 나는 망연자실, 도대체 어디가 앞문이고 어디가 뒷문인지 분간을 할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남학생 체면에 무작정 누나수업이 끝날때까지 기달릴 수도 없고, 더군다나 쉬는 시간이면 많은 여학생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어 일대 배팅을 시작했다. “어느 문에다 노크를 할것인가? 뒷문이어야 챙피할터인데 .

 

드디어, 똑똑똑 드르륵 앗불싸 앞문이었다. 털털하게 생기신 한문선생님이 벙쪄서 쳐다보시고, 누나네 여학생들의 시선이 쏠리고, “제 누나 우산 가져왔어요” 싱거운 미소를 흘리며 우산을 전해주고 겸언쩍게 돌아서 나오는 동안 마음이 얼마나 꽁닥꽁닥 뛰었던지 모를 일이다.

 

얼마뒤, 누나로 부터 한문 선생님께서 돌아갔셨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잠시, 나는 혹시 그때 앞문을 힘차게 열고 누나에게 우산을 전해줄때 선생님께서 너무 충격을 받으셔서 후유증으로 돌아가신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에도 시달려야 했다.

 

다행히(?) 같은 학년 여자애들이 보지 않았지만, 깎까머리 중학교 1학년짜리가 소명여학교 복도를 헤메이던 기억은 아직도 스릴과 시작되는 사춘기의 긴장이 어우러졌던 상큼함 일수 있어 아름답다.

 

그런데 인터넷 구석을 보니 소명학교 출신들이 소명원 지키기 서명운동 벌이고 있다. 어린시절 나를 무척이나 귀여워 해주셨던 신상우 마르코 신부님이 소사본당 2 주임신부로 오셔서 1954 본당건물을 이용해 여학생들을 위한 야학을 시작으로 소사에 처음 여학생들을 위한 중고등 교육기관인 소명학교를 만드시고, 중심에 소명원이 소명의 오랜역사와 함께 했는데 정말 아쉽다.

 

나의 부친 방원 이성찬 선생과 원주교구 지학순 주교님은 한국전쟁당시 적진을 누빈 동료전사요. 함께 부상당해 같은 병실에서 투병까지 했던,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였다.   , 나의 부친이 운영했던 방원식물원 농장이 성가소비녀회에서 운영하는 양노원 과수원옆에 있었고, 자연스럽게 나의 부친은 성가수녀회 지도신부로 있으면서 소명학교를 꾸려가던 신상우 마르코 신부님의 든든한 지원자를 자처하셨다.  

 

국민학교시절, 목에 구멍을 뚫고 사시는 신상우 마르코 신부님에게 신부름을 맡아왔었으니 나와 소명원과의 인연은 적다하지 않을 것이다. 부친의 농장도 부천의 도시계획으로 사라지고 중학교 2학년때 내가 소사를 떠나오고 난뒤, 1978년도경에 신상우 마르코 신부님이 암으로 선종하셨다는 이야기를 어른들에게 들었고,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다.

 

지난달 나의 은혼기념 한국여행에서, 예전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나는 나의 어린시절 추억이 담겨있는 부천시 원미동과 원미산 그리고 성모병원을 둘러보았다. 소명원을 가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함께 각시에게 여학교 구경을 가자는게 예의가 아닌듯 하여 지나쳤기에 소명원이 사라진다니 더욱 아쉬운 마음이 든다.

 

소명원이 사라지게 되는 배경에는 역시 천주교 재단의 이전투구일 것으로 사료된다. 신상우 마르코 신부님이 만든 소명학교를 성가소비녀회에서 운영을 했고, 신상우 마르코 신부님이 성가소비녀회의 지도신부를 하시다 선종을 하셨으니 안보아도 비디오다.

 

성가소비녀회는 가난함과 가난한자를 위해 구걸(?) 하며 살아가는 수녀회이니, 가난하여야 수녀회가 양노원과 학교를 소유하다니 하며, 그동안 양노원은 서울교구 성모병원에서 챙기었고 학교는 필경 인천교구에서 챙겼을 것이다. 그리고 성모병원 시설 증축이 필요하네 어쩌네 하며 소명원을 먹어들어오기 시작했을것이 뻔하다.

 

과연, 소명학교 출신들과 나의 어린시절 추억이 서려있는 소명원을 지키겠다는 사람들 이야기에 현재 학교운영을 맏고있는 사랑의 시튼 수녀회 서울교구그리고 인천교구 높은 천주교의 장상들이 귀를 기우려줄지 의문이다. 반년이상 조용한걸 보면, 분명 순진한 수녀님들을 동원하여 동문들 입을 틀어막았을 뻡하다.

 

어린시절 신상우 마르코 신부님과 소명원, 그리고 아름드리 뻣지나무에 얽힌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 3자로서 소명원이 그대로 남아 소명원에대한 추억을 지닌 동문과 가족, 주위분들에게 기쁨을 주기를 천주교 서울 인천 교구의 윗대가리 장상들에게 간구해 본다.


 

<겨울 소명원에서 / 김용화 >          

 

겨울 소명원엔 설레이는 숨결이 있다

땀내 나는 노동의 휴식과 단호한

자연의 질서가 있다

낮게 흐르는 마른 풀잎의 향기,

가을을 벗고 마침내

완성되는 나무의 자태,

천상의 열매를 돌려 주고

가난한 다람쥐 들쥐한테도 돌려 주고

상처투성이 가슴

없는 벌레들 편안한 겨울잠을 위해

억센 옹이로 버텨 서서

자란 키를 재는 나무의

크고 넓은 마음,

새들이 번이고 가지를 옮겨 앉는다

겨울 소명원은 이마에 손을 얹고

깊은 침묵에 잠겨 있다

곳간에서 송곳니를 가는 다람쥐는

쳇바퀴를 돌리며

어떻게 어떻게 겨울을 인내하는가

높다란 가지 끝에

벌레집을 달아 놓고

벌들은 찬바람에 흔들려 보는가

어떻게 겨울나무는

꽃보다 아름다운 눈꽃을 피워내는가

겨울 소명원은

건강한 노동으로 단련된 가슴만이 뜨겁게

겨울속의 봄을 맞이할 있다고

가지를 흔들고

발목을 떠는 새들,

마지막 햇살 땀씩 먹고

숨찬 날개 부딪쳐

겨울 속으로 겨울 속으로 날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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