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2_Biography

[한국인과 베블런 효과]

忍齋 黃薔 李相遠 2014. 10. 3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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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Bunde Veblen, 1857 - 1929)이 1899년에 저술한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해야만 하는 계급의 반대말로서 놀아도 의식주에 지장을 받지 않는 계급을 유한계급이라고 정의를 합니다. 한국인들이 흔히 말하는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사람'들이 유한계급에 속하겠지요.


베블런은 노르웨이 출신의 이민자로 19세기 미국의 자본주의 경제와 사회적 모순을 철저히 비판하여 '미국의 마르크스'라고도 불립니다. 괴팍한 성격과 자유 분망한 행동으로 한 직업에 안주하지 못했습니다. 24개 국어를 구사하고 인류학에서 생물학에 이르기까지 박학다식한 경제학자였습니다. 미국 제도학파를 창시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그가 정의한 유한계급은 미국에서만큼은 완벽하게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사는 팔로알토만 하여도 유한계급을 흉내 내는 볼썽사나운 저 같은 사람도 제법 살고 있지만, 이 근방 에덜턴이라는 곳은 그야말로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고는 살 수 없는 곳이니 말입니다. 그곳에는 200억 이하의 집은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러니 베블런이 간파한 유한계급의 분류는 반론을 제기하기가 미국에서만큼은 궁색해집니다.


이 베블런 효과를 한국에 비추어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목격하게 됩니다. 유한계급과의 접촉이 철저히 봉쇄되는 미국과는 달리 한국인들은 삶 속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서 쉽게 접촉하는 일면이 있습니다. 일제치하와 한국전쟁 그리고 2차례의 쿠데타를 통해 주위의 평범했던 이웃이 신흥 유한계급에 편입하는 것을 종종 보기도 했고요. 자녀가 많던 기성세대에게는 똘똘한 자식 하나에 몰빵하여 더러는 유한계급 언저리를 맴돌게 하기도 합니다. '개천에서 용 났다.'라고 기뻐하면서 말이지요.


만나는 모든 한국인에게는 유한계급과의 강력한 연대의식이 있는 사실에 닭살이 돕기도 합니다. 집안에서 몰빵한 형제가 의사가 되고, 법조인이 되고, 관료가 되면 마치 자신이 의사이고 법조인이고 관료인듯한 태도를 보인다는 점입니다. 하다못해 그들의 대리인인듯한 동조를 보입니다. 집안에 없다면 하다못해 친구 중에 또는 같은 동네로까지 그 연대감은 확대됩니다. 그걸 정치인들은 잘 활용하지요. '우리가 남이가?'처럼 말입니다.


한국에서 명품 소비가 미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확산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베블린이 관찰한 유한계급과의 경계로 설정한 '과시 소비'가 한국에서는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베블린 효과를 통해서 베블린이 비판한 '과시적 효과를 통해 타인의 시샘 어린 비교'를 하게 하고 그것을 즐기는 유한계급의 못된 행태를 한국인들이 벌이고 있는 겁니다.


베블린은 이 효과를 통해 '갈수록 넓어지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와 '제작본능이라는 인간의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행동에 대한 멸시와 비생산적인 낭비를 통해 과시하려는 소비적인 풍조'의 위험성을 지적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유한계급이라는 환상에 빠져 '직업의 귀천'을 따지고 자신의 소득을 고려하지 않는 명품 소비를 함으로써 국력을 소지시키고 근로의욕을 말살합니다.


2년 전 한국을 방문할 때 한국과 온라인상에서 이런저런 신세를 진 분들에게 선물도 할 겸 케네디콜 등 부담 없는 가격의 가방이며 지갑을 사가지고 가서 하나씩 선물로 나누어 드린 적이 있습니다. 선물 받은 분 중에 많은 분께 민망한 꼴을 당했습니다. 주려면 명품을 주지 날 몰로 본 거야? 띵~


이러한 환상을 교묘하게 이용한 유한계급은 그 환상에 빠진 소비를 자신들의 수입으로 환원하여 빈부의 격차는 심화합니다. 한국인들이 유한계급은 될 수 없지만, 명품소비를 통해 유한계급의 환상에 빠질 수 있는 명품이라는 아주 비싼 마약에 취해 살고 있는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인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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