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2_Biography

논두렁 정기

忍齋 黃薔 李相遠 2015. 2. 27.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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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프라 시설이 있는 곳으로 출장을 많이 다니는 직업이라 1년중 많은 날을 미국 남서부 지역의 소박한 동네에서 묵을때가 많습니다. 상대하는 사람들이 그 동네 공무원들인데 보통 그 동네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동네 자랑에는 자기 동네 출신 유명인을 언급합니다. 그러다 궁하면 자기 동네에서 주립대를 가서 졸업하고 대기업이나 중앙 관공서에 취직한 사람들까지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 꼭 물어보는게 있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초중고 다닐때 잘될 아이들이 눈에 띄드냐고 말이지요. 당연히 그렇다고 합니다.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주위사람들에 의해 미래가 뻔히 보이게 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모양입니다. 간혹 가믐에 콩나듯이 정말 어쩌다가 말성장이가 출세를 하여 그 말성장이를 알던 사람들을 당황시키기도 하고 잘될아이가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고 살아가서 또 많은 사람을 실망시키기도 합니다. 


SNS가 고도로 발달되어 있어서 비록 수십년간 지구의 반대편에 살고 있지만 보고 싶은 어릴적 친구들과 많이들 소식을 주고 받게 됩니다. 연락이 되는 친구들은 대부분 어릴때 기대했던 그 기대감을 체워주는 모습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 점은 남녀가 다르지 않터군요. 반면에 내가 만나보고 싶은 떡잎 푸르던 친구중에 연락이 될 만한데 연락이 되질 않으면 십중팔구 보여지는 기대감에 스스로가 실망스러워 외면하는 경우가 정말 가끔있습니다.


어렸을때 농담삼아 어른들이 하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농두렁 정기'라도 타고 나와야 줄반장이라도 한다고 말이지요. 어린시절 똘똘한 장남 하나를 위해 일곱 여덜의 형제 자매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새로 생기던 소사읍내 라이터돌 공장이며 이런 저런 제조업체에 공순이 공돌이로 취업하던 모습들이 기억납니다. 그 공순이 공돌이도 또 경쟁이 치열하여 막노동판으로 밀려야 하는 인생들도 있었습니다.  


1960년 70년 8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 중에 그나마 이 글이라도 인터넷과 컴퓨터 또는 스마트폰으로 보는 사람들은 그나마 '논두렁 정기'라도 받고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내 생각엔 이글을 보지 못하는 그 분들은 자신들의 자식들에겐 분명히 '논두렁 정기'를 듬북 듬북 심어주고 있을것 같습니다. 의외로 많은 미국 친구들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자식을 그게 키우려면 자식과 원수질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이지요. 물론 한국에 비하면 미국엔 '논두렁 정기'라도 받고 자라는 아이들은 몇 % 되지 않습니다. 2015년도의 한국은 아마 100%의 아이들이 '논두렁 정기'를 받고 자라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SNS 상에서 보고싶던 그리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몇몇 어릴적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 '논두렁 정기'를 지키며 살아준 그 친구들이 갑자기 고마워졌습니다. 그래 우리 남은 인생도 우리가 짊어진 '논두렁 정기'를 지키면서 멎지게 살아보자꾸나, 친구야!  


이 사진은 '논두렁 등교'라는 검색어 상에 나오는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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