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친 중에 가끔 가슴에 냉수 한사발 찌끄려 정신을 번득나게 글을 쓰는 이가 있습니다. 강진의 윤정현 선생입니다. 어제 그분이 올렸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올린 글과 농군 아비의 발뒤꿈치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다음과 같은 댓글을 올렸습니다:
["말씀을 하시니 학위받고 무슨 직업을 잡을까 고민하던때가 떠오릅니다. 유학오기전에는 하도 교수타령들을해서 교수만 되면 부와 명예가 따르는 인생의 금자탑인줄 알았어요.
헌데 미국에서는 처참한 직업중에 하나더군요. 연봉도 자식 학교보내기 힘든 수준이고 그것도 자기 연구용역 자기가 따와서 학교와 나누어야 하고 일시키는 대학원생들 학비에 생활비를 줘야하고 정년이 보장되는 교수가 되기위해선 이건 아예 생으로 박사학위 다시 하는것 보다 힘든 조교수과정이 있더군요.
남들처럼 조교수하다 운좋아 정년보장받는 교수되면 좋고 미국대학 조교수했네 하여 한국에 교수자리 하나 꿰차면 아주 좋고 하기에도 자식과 제각시가 한국가서 살기는 죽기보다 싫다하고 ... 그래서 자식키우고 각시 직장으로 내몰지 않고 먹고 살만큼 받는 직업을 잡았지요.
미국에서 연구하는 직업들을 보면 청빈서약을 하는 수도자들과 다를바가 없더군요. 돈을 만들지 못하니 입에 풀칠하는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겠지만 한국에서 잘못인식했던 학문 연구 학자의 환상이 쉽게 깨지지 않으니 ... 그래서 공부 많이 한 한국사람들이 아주아주 실망을 많이 합니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허비만 했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학자연함의 장점도 무시는 못하겠지요. 달콤한 잠 청해보셔요^^ "]
윤 선생이 내 눈과 마음을 머물게 한 글과 사진입니다. 현실감각을 엿보게 하는 따님의 이야기와 윤 선생 아버지의 발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강진읍시장 곁에 '아마추어 or 인디뮤지션'을 끌어들여 [오감누리타운]을 만들 설명회 발표들을 들었다. 서울에서 상상공장을 하는 이, 뮤지션들을 이끄는 이, 대인시장 일을 하는 이, 시장활성화 일을 하는 경제학자...
공법을 연구하고 싶다던 딸아이가 극적인 현실주의자가 되어 '행시'를 보겠다고 했다. 벽과 현실. '내 팔을 잘라서라도 너희들을 꼭 공부시키겠다'던 아버지의 발이 생각났다.
나희덕의 '삶과 시' 이야기, 그리고 까페에서 늘어놨던 집안에 대한 나의 악담, 돌아와 밤늦은 라면, 컹컹 개짓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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