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어른 넷 살린 북한의 두 아이, 놀라웠다
"이모, 막걸리 한 병! 나 술 마실래요!"
"구례 students(학생들)에게 English(영어) 가르치면 good(좋겠네요)."
"No."
연하봉에서 촬영한 겨울 지리산 ⓒ로저 셰퍼드
"이 지도 또 있어요? 나 이거 갖고 싶어요! 어디서 사요?"
백두대간!
"Keep going! (계속 가자!)"
휴전선에서 멈출 수 없었다. 북한 정부에 백두대간을 탐험하고 싶다는 견해를 밝히고 도움을 청했다. 북한에서 응답이 왔다. 2011년, 로저는 북한을 처음 방문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우리는 식당에서 일어났다. 남북 백두대간을 종주한 사람과 식당에서 인터뷰하는 건 얼마나 어색한 일인가. 좋은 이야기는 현장에서 나오는 법.
"로저, 지리산이나 한 번 갑시다. 우리 산에서 이야기해요."
"Ok, 가자 지리산! 지금 날짜 잡아요. 같이 갑시다!"
지난 1월 7일 지리산 천왕봉에 선 로저 셰퍼드와 박상규 ⓒ박상규
"당신네 나라에서 '반지의 제왕'을 촬영했잖아요. 밀포드 트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트래킹 코스고. 뉴질랜드 숲이 백두대간보다 더 울창하고 좋지 않아요?"
"내가 백두대간에 반한 건 풍경 때문만이 아니에요. 산과 지역에 얽힌 한국의 역사와 이야기가 흥미로워요. 풍수지리, 토템신앙, 많은 사찰과 문화재.."
"자, 어느 산부터 이야기할까?"
여러 사진을 보다가 나는 손가락으로 하나를 짚었다. 북한의 두 아이가 옅은 운무가 깔린 능선을 배경으로 웃고 있었다.
두류산에서 우연히 만난 북한의 두 아이 ⓒ로저 셰퍼드
"두류산! 이 아이들이 어른 네 명을 살렸어요!"
로저는 차를 빌려 북한 사람 세 명과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 운전기사 한명수, 조선-뉴질랜드 친선협회에서 일하는 황철영, 황성철이 그들이다. 평양에서 백암군까지 가는 데에만 무려 이틀이 걸렸다. 북한 지리를 잘 아는 '베스트 드라이버' 한명수가 운전을 했는데도 말이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평양-원산-함흥-북청을 거쳐 가야만 했다.
힘들게 찾은 양강도 백암군을 찾았으나 가이드를 맡기로 한 북한 측 공무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탓에 두류산 근처에 도착해서도 종일 산 출입구를 찾아 헤매야했다. 북한의 많은 산은 남한처럼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았다. 원형 그대로 환경이 잘 보존돼 있다.
"식당, 기념품 가게, 대피소 등은 하나도 없어요.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인데, 뉴질랜드 산처럼 원시림같은 느낌이 들어요. 무척 크고 울창한 산이어서 그 안으로 들어가면 요정이 나올 것 같았어요. 습한 곳에는 이끼가 무성한데,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온 그 숲과 비슷합니다."
북한 양강도 두류산을 찾은 첫날, 산으로 드는 입구를 찾지 못해 길가에서 야영을 했다 ⓒ로저 셰퍼드
다음날 오전 상황도 비슷했다. 피곤과 짜증이 밀려올 무렵, 박금철을 우연히 만났다. 박금철은 남한으로 치면 산림청 직원으로, 두류산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박금철이 로저 일행에게 먼저 물었다.
"당신들 길에서 뭐합니까?"
"두류산 입구를 찾지 못해서 헤매고 있어요."
"두류산은 내 안방이나 다름 없는 곳인데.."
북한 양강도 두류산 아래에서 우연히 만난 박금철 ⓒ로저 셰퍼드
황철영과 방령은 뒤처졌다. 로저 가방에는 카메라 장비만 들었다. 음식과 물은 황철영 가방에 있었다. 정상에 이르렀을 땐 박금철과 로저 모두 지쳤다. 무엇보다 물이 필요했다. 1시간 뒤에야 황철영, 방령이 올라왔다.
"물 좀 줘!"
이런..소주였다! 순간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북한 양강도 두류산 ⓒ로저 셰퍼드
"분명히 물을 많이 챙기라고 말했는데, 6병 모두 소주였어요! 그 높은 산에 오르는데 물 대신 소주만 챙기다니! 화가 나 따지고 싶었지만 황철영도 무척 지쳐 보여 애써 웃고 말았어요."
북한 양강도 두류산 정상. 왼쪽부터 로저 셰퍼드, 박금철, 황철영, 방령 ⓒ로저 셰퍼드
"우린 한 배를 탔어요. 죽어도 같이 죽어야지 뭐 별 수 있어? 근데, 죽기 전에 좀 알고나 죽읍시다. 어떻게 술만 챙길 생각을 했어요?"
산에서 백인을 만난 아이들은 놀랐다. 아이들은 산 건너편 할머니-할아버지 댁에 가는 길이었다. 로저 일행은 큰 기대없이 물었다.
"너희들 물 좀 있니?"
"물이요? 저 쪽에 샘터가 있는데요."
아이들이 손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로저 일행은 그곳으로 급히 이동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맑은 물이 나오는 샘터가 있었다!
오랜 산행으로 지친 왼쪽부터 박금철, 황철영, 방령 ⓒ로저 셰퍼드
"박금철도 모르는 샘터를 아이들이 알고 있더군요. 아이들 눈에는 술만 챙겨 산에 오른 우리가 참 바보로 보였을 겁니다. 걔네들이 우리를 살린 생명의 은인이었어요."
"많은 남한 사람은 거의 모든 북한의 산은 황폐화된 걸로 알아요. 물론 벌목 등으로 민둥산이 된 곳도 많지만 백두대간 산줄기는 잘 보존돼 있어요. 상업화가 되지 않아 오히려 순수한 자연의 모습을 볼 수 있답니다.
두류산은 정말 놀라운 산입니다. 인간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곳이에요. 두류산에서 만난 사람은 두 아이가 전부였어요. 깨끗하고, 평화로운 곳입니다. 오직 등산을 위해 온 사람은 우리뿐이었어요."
왼쪽부터 박금철, 로저 셰퍼드, 방령 ⓒ로저 셰퍼드
고마움의 표시로 로저는 박금철에게 캠핑용 등을 줬다. 북한의 전력 상황은 좋지 않고,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양강도 상황은 더욱 나쁘다. 박금철은 등을 받고 환하게 웃었다.
북한 양강도 백암군의 한 시골마을 모습 ⓒ로저 셰퍼드
방령의 도움으로 로저는 그 공사장 사무실에서 밤을 보냈다. 양강도의 밤은 지독히 캄캄했다. 대신 별은 눈부시게 잘 보였다.
방령은 아내가 직접 만든 된장을 로저에게 줬다. 기가 막히게 맛있는 된장이었다. 백두대간의 남쪽 끝, 지리산 아래 구례에 사는 로저는 요즘도 그 된장 이야기를 한다.
북한 양강도 백암군에 있는 두류산 ⓒ로저 셰퍼드
북한 양강도 백암군에 있는 두류산 ⓒ로저 셰퍼드
북한 양강도 백암군에 있는 두류산 ⓒ로저 셰퍼드
북한 양강도 백암군에 있는 두류산 ⓒ로저 셰퍼드
북한 양강도 백암군에 있는 두류산 ⓒ로저 셰퍼드
북한 양강도 백암군에 있는 두류산 ⓒ로저 셰퍼드
[출처: http://m.newsfund.media.daum.net/episode/7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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