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개마고원에서 노상방뇨하다 본 명장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전남 구례군의 작은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내게 남북 백두대간을 종주했다고 말한 로저. 신빙성은 높았지만 검증이 필요했다. 북한에서 찍어온 사진을 더 보여달라며 그의 집을 찾았다. 지난 1월 4일의 일이다. 로저가 컴퓨터를 켜고 사진 파일이 담긴 폴더 하나를 열었다. 검증은 순식간에 끝났다.
북한 양강도 운흥군에서 만난 떼몰이꾼 ⓒ로저 셰퍼드
"이거 뭐야!?"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물 흐름이 빨라 보이는 강 위에 사람이 서 있는 사진. 강을 이용해 나무를 나르는 떼몰이꾼이었다! 산업화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떼몰이꾼이 아직 한반도에 존재하다니. 놀라웠다.
나는 마우스를 잡고 사진을 확대했다. 물살은 거칠어 보였다. 북한의 떼몰이꾼은 아무 안전장치도 없이 뗏목 위에 서 있었다. 사진을 더 확대해 그들의 표정을 살폈다. 팔짱까지 낀 북한 떼몰이꾼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이건 어려운 일도 아니구만!"
안전장치도 없이 뗏목에 서 있는 북한의 떼몰이꾼 ⓒ로저 셰퍼드
2012년 6월, 태흘봉을 가기 위해 북한 양강도 운흥군의 시골길을 달릴 때였다. 개마고원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오랫동안 소변을 못 본 로저의 아랫배가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하필이면 이날 따라 '베스트 드라이버' 한명수의 말이 더 많았다.
"이봐, 로저. 창밖의 황소들을 잘 보라고. 뭔가 좀 다르지 않아?"
로저의 눈에는 다 똑같은 한우로 보였다. 소변이 급한 탓에 소가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로저의 사정을 모르는 한명수는 차 세울 생각을 않고 말을 길게 이었다.
"대충 보지 말고, 자세히 보라고! 여기 개마고원 소들은 다른 지역의 소에 비해 다리가 짧아. 개마고원은 겨울이 길고 무척 춥거든. 이런 환경에 적응하며 살다 보니 소의 다리가 짧아졌다니까. 저것도 일종의 진화인 셈이지."
한명수가 무슨 말을 하든 중요하지 않았다. 소변이 너무 급한 로저는 한명수의 말을 끊고 차를 세웠다. 소변을 보며서 소의 다리를 살펴보라는 의도였을까? 한명수는 하필 소가 풀을 뜯고 있는 곳에 차를 세웠다.
로저는 차에서 급히 내려 노상방뇨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기 앞에 있는 소의 다리를 유심히 바라봤다. 사실 그의 눈엔 남한의 한우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소 처지에서는 백인 로저의 모습이 북한 주민과 확실히 달라보였나 보다.
풀을 뜯던 소가
천천히 로저에게 걸어왔다
강 상류 쪽에서 뗏목과 떼몰이꾼이 나타난 것이다. 로저도 태어나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마음이 급했다. 로저는 대충 소변을 수습하고 차로 달려갔다.
"명수! 한명수! 카메라! 내 카메라 달라고!"
차에서 카메라를 찾아 든 로저는 강가로 다시 달려와 급하게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로저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오줌 누면서 뒷걸음치다가 발견한 명장면이야! 조금만 늦었으면 찍지 못했을 거라고. 물살이 엄청 빨라 뗏목이 금방 지나갔거든."
"나중에 저 뗏목 탈 수 있을까? 뗏목에 올라 떼몰이꾼들의 삶을 취재하고 싶어! 뗏목 위에서 사진도 찍고 말이야. 저런 모습은 이제 세상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다고. 당신들 알아?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도 아주 좋아할 풍경이라니까"
태흘봉 안내를 맡은 북한 산림청 직원 리관범 ⓒ로저 셰퍼드
"산에 오를 때 카메라 장비 때문에 내가 땀을 많이 흘렸거든. 잠시 쉴 때 리관범이 자기 수건으로 직접 내 얼굴의 땀을 닦아주더라고. 솔직히 처음엔 놀랐지. 서양에서는 남의 몸을 그렇게 건드리는 문화가 없거든. 그래서 나도 좀 어색했는데, 그의 태도가 너무 친절하더라고. 따뜻하고 끈끈한 정이 느껴지는 행동이었어."
태흘봉 정상에서 왼쪽부터 량강도 공무원 방령, 리관범, 로저 셰퍼드, 황철영 ⓒ로저 셰퍼드
"백두산은 태흘봉에서 약 70km정도 떨어져 있거든. 멀지 않지만, 이 마을에는 대중교통이 없고 '관광'이란 게 발달하지 않아 정작 주민들은 백두산에 못 가는 거지. 남한 사람들은 중국을 통해서만 백두산에 갈 수 있고, 가까이 사는 북한 주민들은 교통편이 없어 못 가고..슬프지 않아?"
개마고원의 한 마을에서 만난 아이 ⓒ로저 셰퍼드
태흘봉에서 본 백두대간 능선의 동쪽 모습 ⓒ로저 셰퍼드
랜턴 불빛 주위로 아주 작은 벌레가 구름처럼 몰려 들었다. 아프리카에서 사파리 가이드로 일했던 로저도 처음 본 벌레였다. 벌레는 피부에 붙어서 피를 빨아댔고, 일부는 옷을 뚫고 들어오기도 했다.
북한의 '베스트 드라이버' 한명수 ⓒ로저 셰퍼드
한명수는 로저 일행에게
무척 중요한 인물이다
이렇게 중요한 한명수는 약 일주일 동안이나 가려움증을 앓았다. 이 기간 동안 로저는 한명수의 눈치를 보며 그가 원하는 곳에서 자고, 그가 원하는 걸 먹으며 지냈다.
태흘봉을 다녀온 이후, 로저는 소만 보면 다리 길이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더불어 한명수도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개마고원에서 만난 소 ⓒ로저 셰퍼드
솔령 운흥군 양강도 ⓒ로저 셰퍼드
양강도 운흥군의 모습 ⓒ로저 셰퍼드
태흘봉에서 본 북한의 산 ⓒ로저 셰퍼드
양강도 운흥군의 한 마을 ⓒ로저 셰퍼
운흥군 대전평리에서 다리 건너기 ⓒ로저 셰퍼
양강도 운흥군 ⓒ로저 셰퍼드
황청영과 방령. 태흘봉에서 ⓒ로저 셰퍼드
태흘봉 정상 ⓒ로저 셰퍼드
[출처: http://m.newsfund.media.daum.net/episode/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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