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2. Humanities/26_北韓과中國

5화. 한반도에도 그랜드캐년이 있다니 - 백두에서 지리까지, 나는 걸었다

忍齋 黃薔 李相遠 2015. 6. 1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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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에서 지리까지, 나는 걸었다

5화. 한반도에도 그랜드캐년이 있다니

로저 셰퍼드외 1명|2015.06.09

남북 백두대간을 종주한 유일한 사람 로저 셰퍼드(49. 뉴질랜드). 그가 큰 한반도 지도를 펼치고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북한의 바닷가 마을을 콕 찍었다. 함경북도 명천군이었다. 그의 입에서 영어와 한국어가 뒤섞인 명태 이야기가 시작됐다.

"상규, 너 명태 많이 먹지? 옛날 조선시대 때 함경북도 명천군에 사는 '태'씨 성의 남자가 바다에서 어떤 물고기를 많이 잡았어. 그 생선 맛이 무척 좋았는데, 명천에 사는 '태'라는 사람이 잡았다고 해서 '명태(明太)'가 된 거야. you understand?(이해했어?)"


한국인이 즐겨 먹는 생선 명태의 어원을 이방인에게 듣다니. 그 기분 참 묘했다. 그가 갑자기 명태 이야기를 꺼낸 사정은 이렇다.

북한 함경북도 칠보산에서 해칠보산을 바라본 모습. ⓒ로저 셰퍼드

북한 함경북도 칠보산의 모습. ⓒ로저 셰퍼드


사실 나는 로저 셰퍼드가 한반도 백두대간에 반한 게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가 나고 자란 뉴질랜드의 산과 자연은 세계적으로 유명하지 않은가. 게다가 로저는 상대적으로 야생이 살아있는 아프리카에서 사파리 가이드로 일을 했었다. 각각의 매력이야 있겠지만, 왜 하필 백두대간에 꽂혔을까? 나의 의문에 그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굳이 어디가 최고이며, 그 다음은 어디..이런 식으로 자꾸 서열을 매기지마. 너희들은 왜 등수 매기는 걸 좋아하지? 뉴질랜드도 매력적이고, 한국도 좋아. 어디든 마찬가지야. 다만 나는, 네가 사는 한반도 곳곳이 품고 있는 이야기가 흥미롭고 재밌을 뿐이야."


그의 눈빛과 목소리는 진지했다.

"정치적인 문제로 한반도는 남북으로 갈라졌지만, 그 세월은 고작 70년에 불과하잖아. 북한과 남한은 수천 년 같은 역사를 갖고 있고. 생김새, 언어, 문화, 기질 등이 거의 똑같아. 내가 남북을 오가며 확인한 건 바로 그런 점이야. 남한 마을마다 전설과 이야기가 있듯이, 북한도 똑같다고. 나는 남한 사람이 잘 모르는 북한의 마을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어.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그나마 남한 사람에게 익숙한 명태 이야기는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명태가 나온김에, 로저와 나는 샛길로 빠지기로 했다. 오늘 전할 이야기는 북한의 칠보산이다. 지리로 따지면 칠보산은 백두대간에 속하는 산이 아니다. 그럼에도 로저는 2012년 7월 칠보산으로 향했다. 

북한 함경북도 칠보산의 모습. ⓒ로저 셰퍼드

북한 함경북도 칠보산의 운무. ⓒ로저 셰퍼드


"칠보산은 한반도의 명산 중 하나라고. 백두대간 구간이 아니라도 빼놓을 순 없지. 칠보산에서 다시 한 번 진하게 확인한 게 있어. 북한 사람, 남한 사람하고 정말 비슷해!"


로저는 소리내 웃었다. 이유는 이랬다.

"한국인들은 산에 가면 왜 그렇게 술을 마시지?(웃음) 산 정상에 오르면 한 잔, 산에서 내려오면 파전에 또 한 잔! 처음엔 적응하기 어려웠는데, 이젠 아주 마음에 들어. 산에서 즐기는 술, 정말 맛있더라고. 나는 오랫동안 그 맛을 모르고 살았어! 칠보산에서도 북한 사람들과 술을 많이 마셨는데, 정말 즐거웠다고.(웃음)"


물론 차이는 있다. 로저에 따르면 남한 사람은 주로 산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북한 사람은 좀 더 독한 소주를 마신다. 칠보산에 함께 오른 북한 사람의 배낭에는 도토리로 만든 소주가 들어 있었다. 

"칠보산 풍경을 보고 깜짝 놀랐어. 그동안 내가 봤던 한반도의 산과 많이 달랐거든. 미국 그랜드캐년을 작게 축소한 듯했어. 비와 바람에 깎인 토양, 붉은빛을 띠는 희귀한 모양의 바위, 울창한 숲과 운무..정말 신비로운 산이야. 북한에서 세계적인 관광지로 개발하고 싶어하는데, 많은 사람이 좋아할 만한 산이야. 다만, 개발하더라도 환경을 잘 보존하면 좋겠어."


북한 함경북도 칠보산의 모습. ⓒ로저 셰퍼드


로저가 보여준 칠보산 사진을 보니, 과장이 아니었다. 명태의 고장을 품은 산은 그동안 봐온 익숙한 한반도의 산과 많이 달랐다. 칠보산은 설악산처럼, 내칠보산-외칠보산, 그리고 바다 쪽의 해칠보산으로 나뉜다. 동국대학교 북한학 박사를 졸업한 박소영씨가 칠보산에 대해 지난 4월 21일 <통일뉴스>에 기고한 글의 한 대목은 이렇다. 

"남한사람은 갈 수 없는 북한 땅 칠보산은 현재 중국인 관광객이 먼저 발을 내딛었다. 사실 칠보산은 그 명성에 비해 뒤늦게 관광단지로 개발되었다. 1980년대 후반 해외 이산가족들에게 처음으로 공개되었지만, 본격적인 관광지 개발은 1996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후 1997~1999년까지 도로 등 기반시설을 건설한 후, 칠보산은 2000년부터 정식으로 관광객을 받기 시작했고,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관광코스도 개발되었다.

북한 함경북도 칠보산의 모습. ⓒ로저 셰퍼드

북한 함경북도 칠보산의 모습. ⓒ로저 셰퍼드


함경북도 관광관리국에서는 중국 연변과 가까운 위치를 이용하여 여름이면 회령, 청진, 칠보산 등을 돌아보는 관광코스를 마련하고 2014년에는 관광객 10만 명을 유치할 계획을 세웠으며, 최대 100만 명까지 확대할 계획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관광도로와 비행장, 오락시설, 숙박시설 등을 건설했다." 

로저가 다녀온 2012년 이후 칠보산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여러 언론 보도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칠보산으로 떠나는 관광기차가 있다고 한다. 또 유럽 등 세계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칠보산을 관광한다. 생김새가 같고, 같은 언어를 쓰며, 가장 가까이 사는 남한 사람들만 그곳에 갈 수 없다.

북한 함경북도 칠보산에 있는 폭포. ⓒ로저 셰퍼드


로저는 칠보산 인근 호텔에 사흘 머물렀다. 중국 관광객 몇 명도 같은 호텔에 머물렀다. 그는 매일 산에 올랐고, 정상 부근에서 북한 사람들과 도토리소주를 마셨다. 하루는 산에 다녀오니 중국인 관광객은 모두 떠났고, 호텔에 남은 손님은 로저뿐이었다. 

로저는 자신과 백두대간 탐험을 함께 하는 운전기사 한명수, 조선-뉴질랜드친선협회 관계자인 황승철에게 바다에 가자고 제안했다.

"우리 심심한데, 해수욕이나 할까?"


"괜찮겠어? 추울 텐데..(웃음)"

"뉴질랜드 바다도 추워. 설마 여기 바다가 거기만큼 하겠어?"


한명수와 황승철은 조금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로저의 말을 받았다. 오기가 발동한 로저는 더욱 호기롭게 말했다. 한명수와 황승철은 웃기만 했다. 내친김에 로저는 호텔에서 일하는 여자 직원들에게도 함께 가자고 했다.

"손님도 없는데, 바다로 같이 놀러 갑시다!"


시원해지라고 바다에 담가놓은 맥주. ⓒ로저 셰퍼드


호텔 고위 관계자는 직원들의 '외유'를 허락했다. 로저 일행과 호텔 직원 두 명은 바닷가로 떠났다. 물론 술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바다에 도착하자마자 대동강맥주를 바다에 담갔다. 이번엔 로저가 물에 들어갈 차례. 그는 자신의 공언대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오 마이 갓! 동태 될 뻔했어! 7월인데도 어떻게 물이 그렇게 차가울 수 있지? 심장이 그대로 멎는 줄 알았다니까."


함경북도 바닷물은 한여름에도 차가웠다. 로저는 다시는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백사장에서 사람들과 대동강맥주만 마셨다. 그의 사진을 보니, 솔직히 조금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로저가 그걸 알아차렸다. 


해칠보산 바닷가에서 북한 주민들과 어울린 로저 셰퍼드. 두 여성은 로저가 머문 호텔의 직원이다. 왼쪽 남자는 조선-뉴질랜드친선협회의 황승철, 오른쪽은 운전기사 한명수. ⓒ로저 셰퍼드

북한 함경북도에서 칠보산에서 바라본 해칠보산의 모습. ⓒ로저 셰퍼드


"남한 사람들은 보통 북한 여자하면 한복이나 군복 입은 모습이 쉽게 떠오르지? 내가 이야기했잖아. 여기 사람들도 너희들과 똑같다고. 북한 여자들도 수영복 입고, 남자들과 당당하게 잘 어울려 놀아. 적어도 내가 북한에서 봤을 땐 그랬다고."


정보와 교류의 단절은 오해와 왜곡을 낳기도 한다. 세상의 많은 여자들이 수영복을 입는데, 왜 나는 수영복 입은 북한 여성을 보고 어색함을 느꼈을까. 그들도 수영복을 입는다는 걸 나는 왜 몰랐을까. 

바다에서 한참을 놀고 돌아갔을 때에도 호텔에 손님은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로저는 계속 함께 놀자고 제안했다. 그날, 늦은 밤까지 호텔에서는 음주가무가 이어졌다. 로저 일행과 직원들은 식당에 노래방 기계까지 들여놓고 오래도록 놀았다. 로저도 어설프게나마 북한 가요를 불렀다. 어떤 가사였는지 다 기억나지 않지만 독수리에 관한 노래였다고 한다.

북한 함경북도 칠보산의 모습. ⓒ로저 셰퍼드


"역시 한반도 사람들은 음주가무에 강해! 북한 사람들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들 여흥을 잘 즐기더라고. 남한 사람들처럼 술 마시는 걸 좋아해. 술 마시면 목소리 커지고, 재밌는 농담 잘 하고, 남편이나 아내 혹은 아이들 자랑하고..그것뿐인 줄 알아? 다음날 숙취로 고생하면서 해장국부터 찾는 것도 똑같더라고. (웃음)"


지리산 아래 구례에 사는 로저는 막걸리를 좋아한다. 누구에게 들었는지 막걸리를 '민중의 술'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남한의 참이슬, 처음처럼을 보면 종종 독한 북한의 소주가 생각난다고 한다.

우리는 언제쯤 
그곳에 갈 수 있을까?


그나저나 중국 사람도 가고 유럽 사람들도 찾아가는 칠보산, 우리는 언제쯤 그곳에 갈 수 있을까? 왜 우리에게는, 한여름에도 심장이 멎을 듯이 차갑다는 그 바다에 발 담그고 맥주 마실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걸까?

북한 함경북도 해칠보산을 배경을 사진을 찍은 로저 일행. 왼쪽부터 황승철, 북한 산림청 직원, 로저 셰퍼드, 황철영. ⓒ로저 셰퍼드


[출처: http://m.newsfund.media.daum.net/episode/8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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