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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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칠포세대에게 / 2015년 06월 26일(金)

忍齋 黃薔 李相遠 2015. 6. 27.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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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칠포세대에게 / 2015년 06월 26일(金) 


은미희 / 소설가


삶은, 생은, 늘 채움과 비움의 연속이다. 비워야 더 많은 것을 채울 수 있고, 채움으로써 더 새로워질 수 있다. 그 비움과 채움의 연속에서 사람은 더 깊어지고 커지며, 성숙해 나간다. 제아무리 욕심 사나운 사람일지라도 채우기만 할 수는 없다. 채우고 비우는 일은 삶을 구성하고 완성하는 그 모든 것을 아우른다.


한데 나는 채우지 못했다. 인생의 절반을 채우지 못했으니, 늘 허수하고, 허전하기만 하다. 그것도 인륜지대사라는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그 빈자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진다. 내가 느끼는 결혼생활이란 다른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나 관찰에서 느끼는 추체험들이다. 그러니 어찌 그게 내 삶이며, 기쁨이고, 내 슬픔일 수 있을까. 결혼생활에서 오는 미세한 삶의 파동이나 삶의 격정들을 놓치고 있으니 나는 진정한 삶의 희로애락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부러운 사람도 더러 있는 모양이다. 결혼도 하지 않고, 소설에만 빠져 거의 숫보기처럼 살아가는 내가 소설 지망생들이나, 여자아이들에게나, 결혼을 망설이는 이들에게는 강단진 사람으로 보인다니…. 나로서는 감사하면서도 왠지 뒤가 켕기는 기분이다.


하지만 나는 결혼을 망설이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웬만하면 결혼하라고 말하고 싶다. 결혼을 해야 삶이 채워지고, 자식을 낳고 길러봐야 삶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안 되면 그때 다른 선택을 하더라도 일단 결혼은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결혼생활이 애정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면 결혼하지 않은 사람보다 결혼한 이들의 삶이 훨씬 더 풍요롭고 안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무례하게도 한밤중에 톡이 들어왔다. 곤하게 잘 시간에 연속으로 들어오는 진동소리에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조카였다. 톡을 열어보니 거기에는 얼마 전에 얻은 조카의 아이 사진이 들어 있었다. 조카는 자신의 첫아이를 자랑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조카는 그 사진들 밑에, 예쁘다고, 정말 예쁘다고, 부럽지 않으냐는 말을 놀리듯 캡션처럼 달아 보내왔다.


그만 웃고 말았다. 아직 태열도 빠지지 않은 아이의 이목구비가 어딘지 조카를 닮아 있었다. 그게 신기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 없던 아이가 가족의 일원으로 실재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하기만 했다. 그렇게, 떠나간 사람이 있으면 또 새로운 사람이 세상에 나와 그 빈자리를 채우는구나 싶어 마음 한쪽이 뜨듯해지기까지 했다. 조카들 가운데 유난히 나와 친한 아이가 그 조카였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살아 정이 들기도 했고, 또 나를 보면서 결혼하지 않겠다고 고집 피우던 아이였던지라 그 조카의 결혼은 그 누구의 결혼보다도 반가웠다.


사실 조카가 처음부터 독신을 고집한 건 아니었다. 여러 번 맞선도 봤고, 여자 친구를 사귀는 것도 같았지만, 결혼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배우자의 기준이라는 것이 확실한 것 같으면서도 또 어느 순간에는 모호하기 짝이 없어서 사람을 맥 풀리게 만들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그 욕심을 충족하기가 여간해서는 어려웠다. 조카 역시 준비가 안 되었다는 이유로 결혼을 망설였다. 인생을 거는 일인데 그렇듯 섣불리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마음의 준비는 물론이고, 사람을 맞아들일 준비가 됐을 때, 그때 결혼하겠노라고, 번번이 뒤로 물러났다. 그러다 어느 날, 조카는 결혼을 포기하고 혼자 살기로 작정하고 선언했다.


속으로 애가 탔다. 혼자 사는 삶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데 혼자 두 사람의 역할을 해야 하니, 어찌 그 삶이 가벼울 수 있을까. 그만큼 고달프고 진정한 기쁨을 놓치는 것이 혼자의 삶이다.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은 암수가 다르고, 그 역할과 기능이 다르지 않던가. 그들이 같이 있을 때라야 비로소 하나의 온전한 세상이 완성되는 것이다. 자웅동체의 생물들 역시 더 우수하고 건강한 후세를 얻기 위해 자가생식을 피하지 않던가. 하물며 사람이야. 사람 '인(人)'자 역시 한 획이 아니라 두 획이며, 그 획들이 서로를 받쳐주면서 하늘을 향해 겸허하게 서 있는 모양새인 것이다. 조물주가 굳이 남자와 여자를 따로 만들었을 때는 서로가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고 다독이며 살아가라는 뜻일 터. 그렇게 짝이 있는 것들은 짝지어 있을 때라야 비로소 아름답다. 한데 혼자 살겠다니.


조카의 삶이니, 조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운용해 나가야 하겠지만 나는 결혼하라고 종용했다. 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정말 모두 결혼생활이 행복할까, 의구심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리부터 불행을 염두에 두고 뒤돌아선다면 인생은 언제나 허수하고 허전할 것이다. 그 허전함에 늘 서성거릴 것이다.


한데 알 수 없는 것이, 조카가 막상 결혼을 포기하고 나니 그제야 상대가 보였다고 했다. 그렇게 조카는 등 떠밀리다시피 결혼을 했고, 이제는 한밤에 딸의 사진을 보내며 정말 잘했다고 헤벌쭉 웃는다. 그걸 보면서 생각했다. 가장 평범한 삶에 생의 기쁨이 들어 있다고. 그러니 결혼을 망설이는 젊은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결혼하라고. 인생의 진정한 기쁨은 결혼에 있고, 인생을 완성시켜 주는 것도 결혼이라고. 결혼도, 연애도, 아이도, 집도, 희망도, 꿈도, 인간관계도 포기하지 말라고.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그걸 포기해버리면 너무 큰 것을 잃는 거라고. 한 번뿐인 인생이고, 삶인데. 게다가 아직 젊은데. 그러니 여전히 꿈을 꾸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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