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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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농부의 마음으로 / 2015년 05월 29일(金)

忍齋 黃薔 李相遠 2015. 5. 3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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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오피니언 살며 생각하며] 농부의 마음으로 / 2015년 05월 29일(金)


은미희 / 소설가


일주일에 한 번 수업 때문에 지방을 오르내린다. 피곤한 일이지만 그래도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새벽에 부산을 떨며 집을 나선 길이니 차 안에서라도 잠을 보충하면 좋겠는데 이상하게 길 위에서는 잠이 오지 않는다. 늘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잠을 쫓아내고 시선을 잡아끌기 때문이다. 매번 같은 산천이고 같은 길이고 같은 마을이지만, 하루도 같은 풍경이 없다. 그게 신기하고 이상하다.


가만 보면 우리 산하는 사시사철 아름답지 않을 때가 없다. 봄이면 연록으로 설레고, 여름이면 웅숭깊은 그늘을 드리운 초록이 장하고, 가을이면 황금빛 들판으로 넉넉하다. 또 겨울은 어떤가. 이파리를 떨군 채 을씨년스러운 모습으로 서 있는 나무들이나 수확이 끝난 들판 역시 그 나름의 황량한 멋이 느껴지고, 눈이라도 내리면 순백으로 빛나는 풍경이 마음마저 정결하게 만들지 않던가. 그야말로 우리 산하는 사시사철이 아름답고 정겹기만 하다. 인지상정, 꼭 우리나라여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타국의 밋밋한 벌판과는 모양새도 다르고, 평평한 분지에 터를 잡고 들어선 이국의 도시 풍경과도 다르다. 이어지는 낮고 완만한 산등성이에 좀 싫증이 날 때쯤이면 어김없이 그 산부리를 끼고 도는 하천이나 강이 나타나고, 옹기종기 그 산아래 그림처럼 들어선 마을이 보인다. 또 그 앞을 지나는 기차나 자동차들이나 새들은 정물 같은 풍경을 살아 있는 풍경으로 뒤바꾼다.


나는 사계절 가운데서도 이맘때를 가장 좋아한다. 신록이 조금 더 녹색으로 짙어지고 일 년 농사를 위해 논에 물을 가둔 지금 이때. 꼭 요맘때. 추수를 앞둔 황금 들판 또한 아름답지만 지금 이때와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가을 들판이 풍요롭다면 한 해 농사를 위해 물을 가둔 요즘 들판의 풍경은 사뭇 경건하다고 할까.


무논은 마치 거울 같다. 물을 가둔 논은 반짝이며 주변의 풍경을 담아낸다. 미래는 알 수 없는 것. 이 거울 같은 무논에 어떤 시련과 재해가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어느 날엔가는 천둥이 칠 거고, 또 어느 날엔가는 태풍이 몰아칠 것이다. 또 가뭄이 들 수도 있을 테고, 홍수가 져 수확을 앞둔 벼들이 고스란히 잠길 수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농부는 그것이 두려워 농사를 포기하진 않는다. 그저 천기를 알고 때를 알고, 그 천기에 맞춰 농사를 짓고 인생을 경영하는 이들이 농부다. 1년을 보고 농사를 짓고, 10년을 보고 나무를 심으며, 100년을 보고는 사람을 키운다지 않던가. 천기를 놓치고 게으름을 부리면 1년 동안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산물이 넘쳐나는 요즘이야 얼마든지 남들이 수고스럽게 지어놓은 곡식들을 사다 먹을 수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기를 놓치면 죽음을 생각해야 했다. 그러니 지금처럼 달력이 흔치 않던 시절에는 그만큼 책력이 소중하고, 자식들에게 천기를 알려주는 것이 매우 중요한 교육 중 하나였다.


지금, 논에 물을 가둔 농부들의 심정은 바쁘면서도 조심스러울 것이다. 첨단 과학 문명이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래도 묵묵하게 땅을 가는 그들의 노고가 참 순박하면서도 아름답다. 땅을 가는 일은 일확천금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농부들은 그 노역을 묵묵히 감당한다. 삶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와 덕목을 그들에게서 배운다. 땀 흘려 땅을 갈고 거둬들이는 것은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일이다. 거기에는 어떤 타협이나 편법이 있을 수 없다. 제아무리 속성 재배의 기술이 판을 쳐도 무논에 뿌리를 내린 벼들과 식물들은 농부의 정성을 먹고 햇빛과 바람과 통정하고, 시간이 가야 알곡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러니 더 애틋할 수밖에.


가장 낮은 자세로 가장 고귀한 삶을 사는 사람이 농부다. 누가 얼마나 하늘을 알고 땅을 알까. 그런 터수에 논두렁조차도 비워두지 않고 콩이나 다른 작물을 심어 수확하는 이들이 농부다.


언젠가 지인이 운영하는 과수원에 들른 적이 있다. 산비탈을 개간해 만든 널따란 과수원에는 배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한데 그 배나무밭 군데군데에 감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감나무가 어쩌다 거기 있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그 감나무는 지인이 일부러 심어놓은 것이었다. 배나무밭에 감나무라니. 그 지인은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이 꽃 저 꽃 벌들이 화분을 묻혀 다니면서 수정이 되는데 서로 이종의 화분이 섞이면 더 달고 좋은 열매가 맺힌다는 것이다. 농부의 지혜였다. 나 역시 그런 지혜를 갖고 싶다. 세상일에 조바심내지 않고 현재의 성과에 안달하지 않으며 하늘과 땅을 두려워하며 살고 싶다. 그렇게 농부의 심정으로 내 인생을 경작하고 싶다.


햇볕에 마른 대추처럼 주글주글해진 얼굴로 만년을 살아가는 그 지인의 집 뒤란 작은 텃밭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마늘이며, 고추, 가지, 오이, 호박, 상추, 깻잎과 수수, 옥수수까지. 웬만한 것은 손수 지어 마련하다 보니 그 삶이 분주한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단출했다. 품앗이가 사라지고 시간당 금액으로 환산해 지급되는 계산 방식이 조금은 아쉽기도 하지만, 그래도 농부의 삶이 행복하다고 지인은 웃었다. 농사는 온전히 하늘이 짓는다는 그의 말은 삶에 최선을 다하고 때를 기다린다는 말로 들렸다. 기본에 충실하며 순리대로 사는 거. 그게 바로 농부의 마음이자 삶이며 지혜일 것이다.


새벽에 귀잠을 떨치고 일어나 버스에 몸을 싣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일을 반복하는 내 삶도 부디 그러해야 할 것이다. 저 무논처럼 앞으로의 내 삶에 어떤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도 뚜벅뚜벅 가야 하는 것이다. 멈추지 않고,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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