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3_미국이야기

프로비던스 홍법원 - 숭산대사와 #살인마 #전두환 그리고 나 - 현각 스님과 대광 스님, 한상열.이강실 목사님

忍齋 黃薔 李相遠 2016. 1. 8.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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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는 홍법원이라고 하고 또 어디에서는 젠센터라고 합니다. 오래전에 숭산대사가 미국 프로비던스에 와서 세탁소에서 세탁기계를 고치는 일을 하며 지내고 있을 때 였습니다. 어느 날 일본 철학을 가르치는 브라운 대학 철학과 리오 프르덴 교수가 세탁물을 맞기러 왔다가 동양중이 세탁소에서 일하는 걸 보고는 학생들에게 불교를 소개할 겸 자신의 강의시간에 와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리고 그 강의시간에 맞추어 장삼 가사를 두르고 가서는 불법을 강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눌한 말투로 You Know~를 연발해 가면서 브라운대 학생들이 신기한 듯 바라보고 또 질문합니다.


숭산스님이 영어를 유창하게 했다면 그저 평범한 불교 철학 강의였을 시간에 World is one flower. Everything is nothing! Mountain is mountain. Water is water. 같은 진리(?)를 You Know~를 연발해 가니 그 신비감에 소문이 돌고 숭산스님은 뉴잉글랜드지역 아이비리그 대학의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습니다. 예일대를 나오고 하버드에서 석사를 하던 현각을 비롯하여 많은 제자까지 두기에 이릅니다. 그 소문은 일본까지 날아가 일본의 재력 있는 보살이 프로비던스 북쪽 한적한 마을 컴벌랜드에 근사한 불탑을 비롯해 절을 지어 시주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절장사는 한국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호기심에 절에 찾아오는 미국인들이 불전함에 시주하고 가는 돈은 1불, 5불, 많아야 어쩌다 20불.


주지를 맡았던 현각은 모셔야 할 조실 대광 스님을 비롯하여 절 살림을 꾸려갈 방도가 도저히 나질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제게 누나와 매형이 운영하는 환경회사에 취직을 시켜줄 터이니 교회식으로 11조를 해달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같은 천주교 신자로서 방도를 알려주었습니다. '너처럼 미남 백인에 예일대학 학부에 하버드 석사에 한국말로 유창하게 하면 불자가 아닌 한국사람도 그냥 완전히 반한다. 이것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니 일단 한국 가서 돈을 벌어 절 살림도 하고 조실 대광 스님도 보살펴라.' 고민을 하던 현각은 어느 날 사라지고 한국의 매스컴에서 화려하게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 처량하게 젠센터를 지키던 대광 스님을 방미한 통일운동가 한상렬 목사 부부를 안내했던 사진입니다.


저때는 한국에서 현각이 부처 주는 돈과 대광 스님이 근처 신부님들 학생들 모아 선을 가르치는 교육비로 대광 스님이 젠센터를 지키고 있을 때입니다.

나는 비록 천주교 신자이기는 하지만 숭산스님을 대사로 칭하길 주저하지 않습니다. 숭산대사는 한국불교 조계종단 땡중들 중에 몇 안 되는 정의로운 분이기 때문입니다. 1982년 8월 25일 숭산대사는 미국에서 살인마 전두환에게 뜬구름 잡는 소리 같지만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를 빌린 장문의 비판 편지를 보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아유(我有) 하니 피유(彼有) 하고 아멸(我滅) 하니 피멸(彼滅) 이라. 나가 있을 때 저것이 있고, 나가 없으면 저것도 없네. 불교 소학교 과정. 대통령이시여, 당신은 나를 아시오? 무엇이오? 말해보세요.](참고: http://samswlee.blog.me/110179637614) 


그 일로 귀국할 때 안기부로 끌려가 3시간 넘게 구타와 고문을 받고 다시 한 번 더 불경죄를 범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앤다는 협박을 받고 풀려났습니다. 숭산대사는 후일 백담사 귀양살이 후 불자로 변신한 살인마 전두환을 1994년에 만나 자신의 1982년 8월 25일 자 편지 중 기억나는 게 있느냐 물으니 살인마 전두환이가 '무슨 편지냐' 묻자, 그 자리에서 지니고 다니던 그 편지의 사본을 주니 살인마 전두환이가 그 편지를 읽고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숭산대사를 피했다 합니다. 그 인연으로 늘 숭산대사의 마음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현각 스님과 나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 바로위 컴벌랜드에 있는 젠센터, 지금 한국에서 날리고 있는 현각스님이 주지로 있을때 노랑장미와 인연을 맺었던 절입니다. 


이절의 조실 대광스님은 네브라스카가 고향으로 자신이 살던집을 가보니 지금은 한인들의 천주교공소가 되어있더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더군요. 대광스님은 현각스님과는 달리 한국말은 못합니다. 학벌도 중시여기지 않고 속세 삶이야기를 무척 절제하더군요.


전민련 공동의장을 지낸 통일운동가 전주고백교회 한상열목사와 여성연합 공동의장을 지낸 부인 이강실 목사가 로드아일랜드교회연합의 초청으로 로드아일랜드를 방문했을 때 불교와의 만남을 주선했지요. 


한상열 목사가 절 내력이 적흰 비를 유심히 살펴봅니다. 


절 이름을 알았었는데 ... 전 1980년 5월 18일 이후로 이름기억을 잘 못합니다.


좌로부터 한상열 목사, 대광스님, 이강실 목사


혹시나 해서 한장더 이번에 가로로..


한국교민 보살이 한분 계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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