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전 제가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 지역으로 전근 오기 전에는 미국 동부에만 줄곧 살았습니다. 그때는 실리콘밸리에 산다는 건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입니다. 와서 보니 개집도 백만 달러가 넘어가니 가히 기절초풍 할 만합니다. 박사들이 공장 공돌이로 살고 있으니 미국에서 고학력자가 가장 많이 몰려있는 곳입니다. 직장생활도 2년에서 길어봐야 5년 주기로 잘리니 사람들의 눈에 살기가 등등합니다. 그런 이곳에 수입품 인재들도 많이 있습니다. 한국의 카이스트 서울대 연대 고대 숭실대에서 학위를 받은 자랑스러운 한국 엔지니어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야말로 세계 인재들의 각축장이고 경연장입니다. 물론 대부분 몇 년 지나면 경쟁에 밀려 사라져 버립니다. 그런데 10년 가까이 이곳에서 버티고 있는 한국 공고 출신이 있습니다. 그것도 잘 알려지지 않은 경기도 평택의 평택공고 출신이 말입니다. 평택공고는 원래 평택종합고등학교였습니다. 나중에 인문계 반은 평택고등학교로 공고 반은 평택공고로 갈랐습니다. 인문계반 출신들은 동문회도 평택고등학교로 따로 하고 평택공고는 끼워주지도 않습니다. 공교롭게도 지금 샌프란시스코 한국총영사관 총영사가 바로 그 인문계반 평택고등학교 출신입니다. 아무튼, 그 공고 반 출신이 이곳에서 엔지니어로 잘 버티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좋은 고등학교에 좋은 대학 나온 사람들에겐 이야깃거리도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이 평택공고 출신으로 실리콘밸리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람의 이야기는 삶의 힘이 되고 위안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바로 이 사람 박재양을 여러분 앞에 소개합니다. 박재양 선생이 진솔하게 써가는 박재양의 살아온 이야기입니다. 너무너무 재미있음! 반응이 좋으면 내가 책으로 내주기로 했음!.(편집자주)
박재양(Jae-Yang Park) 선생은 나보다 4살이 어리고 내고향 서울 부천과 지척인 평택에서 한국 삶의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 동네 후배라 할만 합니다. 그리고 이곳 실리콘밸리에서 50줄에 함께 접어들었으니 살다갈 시간과 공간때가 얼추 비슷한 친구이기도 합니다. 박재양 선생은 평택공고를 졸업하고 1983년에 그 유명한 삼성전자 고졸사원모집에 2등으로 입사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고졸사원의 한계를 느끼고 1996년에 과감히 삼성전자를 박차고 나와 1998년 경치가 아름다운 캐나다 동부 헬리팩스(Halifax) 노바스코샤(Nova Scotia)에 있는 세인메리스대학(St. Mary's University)으로 가서 영어를 공부하고 2000년에는 로간(Logan) 유타(Utah)에 있는 유타주립대(Utah State University) 전자과에 입학하여 2004에 학사를 마칩니다.
그리고는 바로 오레곤(Oregon)에 있는 포틀랜드 주립대(Portland State University)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2006년 전기전자공학 석사를 취득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알라바마주립대 헌츠빌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합니다. 미국은 취직을 목적한다면 취업시장은 석사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박재양 선생은 처자식을 봉향하고 교육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밀려드는 취업자리를 마다하지 않고 2009년 과감하게 박사과정을 접고 실리콘밸리에 입성하여 사이버넷과 에이치엠에이의 선임하드웨어 엔지니어로 인포시스의 선임 컨설턴트로 일해 왔고 최근에는 위성관련 밴처회사로 옮겨 일하고 있는 천재적인 우수한 엔지니어 입니다.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한국계 엔지니어로서 10년이상 생존하기는 하늘에 별따기입니다. 작지만 이곳에 집도 샀고 아들 딸도 유시 산타바바라와 유시 멜세이드에 보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취미로 관련한 밴처회사에 인력도 공급해주고 이런저런 자문도 해주어 평소에 많은 도움을 받다보니 박재양 선생의 천재성을 바로 알수가 있었습니다. 또 한번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경읽기를 하는걸 따라해보았다가 '아 이런 성경읽기의 막가파'가 있다는걸 알았습니다.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읽는게 쑈가 아니더군요. 아주 잘 훈련된 개신교 신자라 할만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신앙으로 천국을 선점했다는 식의 우월감을 전혀 표시하지 않으니 인격까지 고매합니다.
박재양 선생이 그만의 독특한 필체로 자신의 미국 직장생활이야기, 방위였지만 생생한 자신의 군복무이야기, 투박한 중국여행이야기, 그리고 지금은 고등학교 졸업후 삼성에 고졸사원 5급으로 취업하여 생활했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연재하고 있습니다. 박재양 선생과는 전생에 자매지간이었던 흔치 않은 인연(?)도 있습니다. 하하하 박재양 선생의 허락을 얻어 내가 단독으로 갈무리하여 차후에 책으로 출간을 해주어야 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너무 독특한 필체이니 출간하여도 본전치기는 충분하게 하겠다는 사업가적 감각이 발동했습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격려와 응원을 부탁합니다. (편집자 주)
1976년 경기도 송탄, 송신국민학교 6학년4반 소풍단체사진
그냥 메모형식으로 끄적이는것임.
실제 인물들의 실명이 들어있음.
이번 얘기는 국민학교부터 중학교입학전까지 임.
1971년 부터 1976년까지..
1. 국민학교 시절
때는 바야흐로 1971년...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단대리.....로 주소가 되었던,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그때 살던 주소가
경기도 성남시 중동 F-86호
당시 성남은 산비탈을 다듬어 집을 층층이, 줄줄이 줄세워 지웠음
아마도 F-86이란 주소는 F지구 86호라는 뜻일듯..
1학년 입학함.
암튼....거기서 집윗쪽에 자리잡은 성남 제일국민학굥 입학함.
입학식날, 엄마말 듣지 않았다가 혼나고 코피흘리며 집으로 돌아옴.
그날 이후 국민학교 1학년 시절은 고난의 연속이었음.
담임선생님 성함은 "김정숙"
당시 연세가 좀 있었던걸로 기억남. 약 40대말 50대초..
수업첫날 선생님은 책값을 내지 않았다고 집으로 쫓아냄.
엄마는 일때문에 쏙고개 (후에 송탄, 지금은 평택시..)에서 일을 하고 있었음.
난 외할머니댁에 맡겨져 생활하고 있었음.
영문도 모른채 쫓겨나고, 울면서 집에 옴.
바둑아 바둑아 철수야 영희야 나하고 놀자...
이걸 배우지 못하고...
나중에 선생님이 자신이 사용하던 헌책을 줌.
훗날 들은바로는 입학식날 책값을 냈다고 함.
그 후에도 육성회비 내지 않았다고 여러번 쫓겨서 집에 옴.
이런 일이 있어서인지, 지금 기억으로도 공부를 한 기억이 없음.
2학년, 3학년때는 성남제일국민학교에 학생이 넘쳐나는데, 교실이 없어서 2부제 수업을 함.
집에서 놀다 오후에 학교가는 재미가 쏠쏠했음.
하지만, 모자라는 교실때문에 공터에 세운 천막교실에서 수업을 해야했음.
그래서 수업중에 몰래 빠져나와 학교 뒷산에서 친구와 놀다가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쳐 집으로 간적도 많음.
그때는 왜 거짓말을 잘했는지....
친구이름이 성호시장에서 생선장수집 아들, "박대규" 기억함.
제일 친했던 친구였는데..
할머니께서 숙제 안하냐??
물으면 항상 오늘은 숙제없어요~~ 라고 했음.
수업시간에는 숙제를 안해서 항상 혼나는게 일이었음.
그렇지만, 2학년때 담임이 쭉 3학년까지 맡아했기 때문에, 그리고 반친구들도 그대로였기때문에 그냥 일상의 일이었음.
선생님 성함이 "김수진" 선생님인데, 예쁘고 착하고 좋으신 분이었음.
(좀헷깔리는데...3학년때 선생님과 송탄 4학년때 선생님 성함이 이제는 서로 헷깔림.)
3학년쯤에 상대원국민학교 주변에 사는 학생들은 강제로 상대원국민학교로 전학가게 했음.
그래서 그때까지 한반에 80-90명 정도였는데, 60-70명까지 줄었음.
4학년이 됐음.
육상부선생님이 오더니 내 허벅지를 만지며, 튼실하니 육상부해야 한다...고 했음.
우리반은 4학년 4반....
매달 몇명씩 사라짐. 육상부, 기계체조부, 전학.....
운동부 학생들은 다른반으로 보냈음.
마침내 1학기가 끝나갈때쯤...나도 엄마가 일하고 있던 쑥고개로 전학가게 됐음.
4학년 4반에 남아 있던 학생들 수는 약 30명 정도......
애들도 반학생수가 자꾸 줄어들어 무서워했음.
쓸쓸해 하던 선생님 모습이 기억남.
전학간후 가끔 방학때 할머니댁에 옴.
집앞에서 예전 친했던 친구, "박대규"를 봄. 기억하지 못함....
쑥고개 (송탄, 지금의 평택시 송탄..)로 왔음.
미군부대가 있어서 거리 곳곳에는 나이트클럽과 미군들, K-55정문, 담벼락, 비행기소음....이 인상깊음.
밤에는 나이트클럽에서 흘러나오는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빤짝이 옷을 입은 여자들,
미군들, 그리고 단속다니는 미군헌병들...
전학온 학교는 송신국민학교 4학년 3반.
내짝은 미군부대 담벼락에 붙어 있는 집에 사는 친구였음.
욕을 엄청 잘함.
성남에 살때는 욕을 한마디도 듣지 못했는데, 송탄에 와서는 별희한한 욕하는것을 들어봄.
애들이 거의 19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자유자재로 구사함.
담임은 여선생님인데, 성함은 기억이 가물거림...좋으신분으로 기억남.
5학년이 됨.
5학년 8반, 남자 담임선생님.
틈틈히 주산을 가르쳐줌.
덕분에 개인이 하는 주산학원(가정집에서 하는)에 다녀서 주산자격증도 따고 열심히 함.
어려운 살림에 엄마가 주산교습비를 줬는데, 친구랑 주산배우러 간다고 하고 놀러 다닌적 있음.
원래 국민학교 수학여행이 있었음.
그런데, 버스사고로 학생이 죽는 뉴스가 나오고 수학여행이 폐지됨.
보통 서울구경이었음.
남산, 창경원, 경북궁, 덕수궁....뭐 그런것이었겠지만...
기억나는 친구가 있음.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음.
함께 주산을 배우러 다녔었는데...
눈이 엄청 나쁜 친구임. 바로 눈앞에 물체를 대야 식별가능함.
동생이 있는데, 이친구에게 샌님 이라고 부름.
이친구랑 친하게 지내면서 영화를 많이 봄.
영화관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자주 들여보내줌.
기억나는 영화는 한편도 없음. 그냥 보는것이라서...
6학년
6학년 4반, 여자 담임, 눈쌍커플수술함, 돈을 밝힘, 이름 까먹음
시험을 보고 나면 항상 매타작. 매일 손바닥 때리고...
등수대로 자리에 앉힘.
공부는 안했어도 시험점수는 좋았기에 앞자리에 앉음.
내짝꿍이었던 "박현우", 여학생, 이 기억남.
6학년 5반 담임선생님 조카.
울담임이 우리 자습시키고 둘이 히히덕 거리는 모습 자주 보임. 유부남임.
내 뒷자리에 앉았던 "김성숙" 이라는 학생이 인천으로 전학감.
공부도 잘했던 얜데, 점심때 도시락 먹을 때, 내 반찬...
매일 까만 콩자반이었음..
그걸 젓가락으로 휘저어 못먹게 하던 애임.
그때는 애들이 이성이 스치면 서로 놀리고 하던 때임.
따라서 여자애가 젓가락으로 반찬을 휘저으면 먹을 수 없던 시절임...ㅎㅎ
중학교 학교배정을 위한 뺑뺑이를 함.
송탄에는 남학생이 갈 수 있는 2개 중학교가 있음.
하나는 송신국민학교 담벼락에 붙어있는 태광중학교.
다른 하나는 서정리에 있어서 버스를 타고 가야하는 효명중학교.
태광중학교는 그 동네에서 똥통학교로 유명해서 모두들 가기 싫어했음.
효명중학교는 카톨릭재단이고, 시설도 좋고, 그래서 애들이 가고 싶어했음.
뺑뺑이 날...
통안에 핑크색과 초록색 은행알이 잔쯕 들어 있는 돌림통이 있음.
돌리다 보면 거기서 은행알이 나옴.
어떤 색이 어떤 학교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음.
내차례가 되어 통을 조심스럽게 돌리는데, 관리하는 선생님이 통을 콱 잡음.
그러더니 핑크색 은행알이 나옴.
다음날 반에서의 화제는 무슨색 은행알이 효명중학교인가...임.
선생님이 나보고 무슨색이냐고 물음.
핑크색이요....했더니......위아래로 흩어보더니 혀를 참.
ㅉㅉㅉ...
내가 공부는 안해도 성적은 좋아서 관심을 끌기는 했지만, 가난해서 이쁨을 받지 못했음.
심지어 학급환경정리때 나보고 교실 커텐을 만들어 오라고 했지만, 할 수 없었음.
나중에 엄마가 없는 살림에 봉투를 마련해 전달한것 같음.
그런데, 대놓고 쯧쯧쯧...하고 불쌍하다는 표정을 보여서 너무 당황하고 머리가 하얗게 됐음.
왜냐하면 태광중학교는 똥통에 깡패학교라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임.
학교가 발표되고, 어떤애는 태광중학교가게 됐다고 하루종일 울었다고 함.
나도 이일로 주변사람들에게 많이 멸시를 받았지만....운명을 받아들임.ㅋ
이게 멸시받을 일이냐 하겠지만, 그때는 그랬음.
졸업사진을 찍는다고 함.
원래 각 개인별 사진과, 주소등이 있는 졸업앨범이어야 했는데,
허례허식을 없애고 근검절약이...어쩌구 하면서 국민학교 졸업앨범 제작이 폐지됨.
대신에 각반 단체사진, 선생님단체사진이 있는 얇은 책자로 대신함.
그래서 친구들 이름 기억 안남...ㅎㅎ
6학년 마지막 실과 시간...
떡국을 만듬. 모두들 맛있게 먹음.
...
반친구들중 어머니가 술집을 하는 친구가 있었음. 여학생임.
공부는 잘하지 못했음. 하지만 공부잘 하는 여학생들하고 친하게 지냄.
그친구네 집은 술집이래도 아주 조그마한 가난한 술집임. 흔히들 선술집...
중학교 진학을 하지 않음.
가끔 학교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지나갈때면,
취객들과 쌍욕을 하며 싸우는 친구 어머니 모습을 볼 수 있었음.
그때는 너무나 무식하고 보기 흉하다고 생각한적도 있음.
훗날 고등학교때 이친구가 야한 화장을 하고, 온갖 장신구로 멋을 내고, 미군병사와 나이트클럽에 들어가는 모습을 본적이 있음.
우리는 까만색 교복을 입고, 가방을 들고.....
그 당시 송탄에 흔히 있는 모습이었음.
지금 생각하면 슬픔.
중학교 가기전까지 시간이 있었음.
시장에서 쌀집을 하는 친구, "손재석"네 집에 놀러감.
뭔 놀이를 하다가 중국집 앞에 서 있었는데,
배달가려던 배달원이 갑자기 발길질을 해서 중요급소를 쳐 맞음.
울면서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이름.
엄마가 쫓아가서 혼내줌.
이렇게 국민학교 시절이 끝남...
..
1976년 경기도 송탄, 송신국민학교 6학년4반 졸업앨범
2. 중학교 시절...
뺑뺑이를 돌려 핑크색 은행알을 뽑은 순간부터 중학교 입학때까지 기죽어 삼.
반면에 초록색 은행알을 뽑은 애들은 부모에게 칭찬도 듣고, 담임선생으로 부터 좋은 얘기도 많이 들으며 생활함.
드디어, 중학교입학식.
중학교래야 전에 다니던 국민학교..내가 공부했던 6학년 교실 담벼락 너머...
아무런 기쁨도 없고....설레지도 않고...
다만, 주변 여러 학교에서 어중이 떠중이들이 몰려와서 신기했음.
산넘고, 물건너 한시간 이상 걸려 온다는 애들부터...
내가 다니게 된 태광중학교는 남녀공학이었고, 고등학교도 함께 있는 학교였는데, 기독교정신에 입각하여...어쩌구..
하는 미션스쿨이었음.
중고등학교 통합 교장은 "최재원" 선생이었고, 이분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부터 자꾸 권력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분이었음.
이학교는 반을 구분하는것이 특이했음.
전부 6반이었는데, 남자 4반, 여자 2반
남자반은 신반, 진반, 충반, 효반.
여자반은 희반, 예반.
소문에는 공부잘하는 순으로 신 --> 진 --> 충 --> 효 로 배치한다는 얘길 들음. 난 1학년 진반, 2학년 신반, 3학년 효반...
이학교는 매주 예배시간이 있었고, 성경이 정식교과목으로 배정되어 있었음.
입학한 첫주에, 3학년 기독부장이 각 교실을 다니면 찬송가를 가르쳐줌.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등 찬송가 몇곡을 배우고, 매주 교회를 가서 주보에 도장받아 오라는 지령을 내림.
그 당시 기독부장은 요즘말로 말하면 일진에 속하는...싸움도 좀하고, 노는애들하고 함께 다니는...
구석진곳에서 애들도 때리고....ㅎㅎ
이렇게 해서 중학교 1학년때부터 다시 교회를 다니게 됨.
이학교는 체육이 일주일에 2시간이었는데, 1시간은 태권도를 배움.
그리고 태권도부가 고등학교 건물 구석탱이에 있었음.
입학한지 얼마후, 고등학교건물 뒷편에 버려진 방공호 근처에서 노는데,
옥상에서 고등학교 행님들이 살벌한 목소리로 옥상으로 오라고 함.
벌벌 떨며 갔다고, 맞는게 무서워 태권도부에 가입하게 됨.
한동안은 태권도부에서 연습하는게 재미있었는데, 점점 분위기가 안좋아짐.
중3 태권도부 행님이 있었는데, 송탄지역 폭력써클 맴버였고, 학교 목공소 아들이었음. 거기에 중학교 태권도부 주장이었고...
여름방학이 됨.
중고등학교 태권도부 수련회를 간다고 함.
안간다고 말할 수 없는 분위기.
장소는 경부선 열차를 타고 가면, 매포라는 간이 역이 나옴. 금강 근처에 경치좋고, 버스는 없고, 기차만 있는곳.
그곳 강가에 텐트치고 첫날은 잘지냄.
아침에 일어나 운동하고 아침먹을 준비를 하는데, 고등학교 행님이 고추만지던 손으로 음식을 만듬..
더럽지만 배고파서 먹게됨.
오후에 갑자기 비가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텐트도 날라가고...
하지만, 철수해서 집으로 갈수도 없었음. 기차가 없기 때문에.
마침 근처 수양관에 평택한광고 기독학생회가 와있었는데, 수양관을 내줌.
거기서 1박을 하고, 다음날 학교로 돌아옴.
양동이에 얼음물을 가져와 쥬스가루 타서 모두 한잔씩 마시고 집으로 돌아감.
개학후, 고등학교 3학년들은 실습이니 취업준비로 태권도부에 안오고, 우리 중딩들만 사용함.
문제는 중3..무서운넘들임.
어느날 정리도 안되있고..뭐 말도 안듣는다면서, 모두 옥상으로 집합시킴.
거기서 처음에는 엑스카바 (두손으로 왼손은 오른뺨, 오른손은 왼뺨에 대는)해서 주먹으로 마구 때림.
2학년에게는 웃통을 벗게하고 배에 힘주게 한뒤, 각목으로 10대씩 때림.
그날 2학년들은 뱃가죽이 시커멓게 멍든 상태로 집에감.
다음날 학교가 난리난것은 당연...
그 폭력써클 맴버이며 학교목공소 아들..이름이 "표항근"..은 무기정학을 맞음.
그날이후로 대부분의 1학년은 태권도부와 멀어지고, 고등학생이 된 태권도부 중3을 피해다니며 2년을 생활함. 태광중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학교로 진학할때까지....
그 태권도부의 공포가 얼마나 심했는지, 엄마한테 다른 학교로 전학시켜 달라고 졸랐을 정도..
물론 집안사정상 불가능했겠지만...
중학교 입학시 고등학교 건물은 4층으로 건축중이었음.
그런데, 그 건물을 중학교시절 내내 짓는것임.
아침조회시간, 하교시간, 체육시간, 자습시간에 빨간벽돌을 4층까지 나르게 함.
졸업때줌 그 건물이 거의 완성되어 일부교실은 사용하기도 함.
최재원 교장이 자신이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출마한다고 각 가정에 편지를 돌림.
나중에 당선됐는지 어땠는지는 관심이 없어서 모름.
학생들 사이에서는 돼지, 욕심쟁이....라고 불림.
성경과목을 가르치는 여선생이 있었음.
성격이 날카롭고,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없었음.
주기도문 외우게 해서 못외우면 귓볼을 꼬집고, 사도신경, 십계명....
그떄 외운 주기도문, 사도신경을 아직도 외움(?? ^^;;)
성경시험봐서 틀리면 1점에 한번씩 꼬집히고...
3학년때 기술선생이 어디선가 전근왔음.
해병대출신이라며 별명이 개병대였음.
시험끝나면 항상 공포의 날이 일주일동안 지속됨.
매일 운동장에서 맞고 기고 했음.
3학년때 담임은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별명이 껍데기였음.
영어과목 담당이었는데.....실력도 없었음.
뭔가 돈을 많이 밝혔던듯..
별로 웃지않고, 항상 애들을 구박하고 때리고 벌을 줬음.
어느날 반 전체가 기합을 받으러 교실 바깥으로 가서 업드려뻣쳐를 하고 있었음.
바로 옆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
어떤 사람이 지나가면서, 선생이 좀 심하네....라고 했음.
껍데기 선생은 열받아서 한참을 그 사람과 말다툼을 하고, 우리들은 그 사람에게 계속하라고 응원을 보냄.
반에는 주먹질 하는 애들이 몇명이 있었음.
1학년때는 친구집 담옆에 사는 애가 부산에서 전학온애였는데, 놀다온애였는지, 전학오고 얼마되지 않아 주먹질하는 애들하고 몰려다니고, 애들 패고, 정학맞고 함.
2학년때는 우리보다 나이많은 애가 같은 반이었고, 그 휘하에 3-4명이 있었음.
주로 뒷자리에 앉아서, 빨간책이나 청계천에서 온 만화를 보기도 함.
3학년때는 같은반 주먹질하던 애도 고입준비한다고 친하게 지냄.
노는애중에서 한명은 머리가 길다고 국사담당 여선생님이 머리한가운데 고속도로를 냄.
이넘 열받아서 머리 쥐어뜯고 선생한테 보복한다고 찾아다님. 완전 미친넘이었음.
고등학교 입시 원서를 쓰는 시절이 왔음.
중학교 1등부터 30등안에 태광고등학교에 자발적으로 진학하려는 학생이 한명도 없었음.
지금이야 그 동네 고등학교가 거기서 거기겠지만, 그 당시는 후기고등학교였음. 들리는 얘기로는 부활의 박완규가 이학교 출신임.
전기모집에 떨어지면, 지원할 수 있는...
물론 다른지역에 갈 형편이 안되서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난 공부는 안했지만 이상하게 등수안에 들었음.
학교에서 집합을 시켜서 태광고등학교에 오면...어쩌구 설득을 함.
난 공고를 갈려고 결심했다고 말함.
원서쓰는날 다른학교는 원서 안써준다고 말함. 가져가도 써주지 않음.
결국 엄마가 양주 한병들고 껍데기 선생 집까지 찾아가서 원서를 써옴.
졸업식날...
일부 놀던애들이 껍데기 선생한테 보복한다고 찾는데, 아침부터 보이지 않음. 졸업장등을 반장한테 넘기고 도망가 숨어버림.
다시는 이학교 담장을 쳐다보지도 않겠다며 학교를 떠남.......
학교다닐때 중학교 건물앞에 게시판이 있었음.
거의 한달에 2-3번 꼴로 유기정학, 무기정학, 퇴학이라는 것이 붙음.
"교칙 제23조에 의거....."
이성교제, 폭력,....
3학년때 서울 휘문중학교 야구부했던애가 전학왔음.
보통 서울에서 시골로 전학오는 경우는, 서울학교에서 퇴학인경우가 대부분임.
얘는 야구연습을 하고 집에 가다 친구들하고 술을 진탕먹고 길가던 여학생을 야구배트로 때려서
퇴학맞은 경우임.
얘때문에 얘누나가 태광중학교에 선생으로 함께 옴.
학교근처에 방을 얻어, 누나랑 함께 학교를 다님.
공부는 지지리 못함.
온지 얼마되지 않아 학교 폭력써클애들과 어울려 다니다 결국 사고치고 퇴학당함.
어느날 누나랑 함께 없어짐.
착학고 순진했던 국민학교때완 다르게 중학교 3년동안 살벌한것을 경험함.
국민학교에서 벌받을때 손바닥 맞거나 손을 들고 서있었다면,
중학교에서 각목으로 엉덩이를 맞음. 엄청나게....
또 그당시는 우리집 형편은 엄청 가난했는데, 그냥 평범한것 처럼 지냄.
애들이 많이 했던 신문배달도 해보지 않음.
그 당시는 각반에 신문배달을 하는 애들이 많았는데, 보통 10명정도.
수업이 늦게 끝나면, 신문보급소에서 학교에 전화를 함.
애들 빨리 보내달라고.
그때는 신아일보, 서울신문, 등을 많이 배달했던것 같고, 신문보급소와 학교와 협조가 있었던듯.
지금 생각에 그 신문들은 거의 정부기관지나 다름없었고, 공무원시험 공고나 정부에서 알리는 내용들이
많이 실렸던것 같음.
3학년말에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다는 뉴스를 들음.
우리집엔 텔레비가 없었으므로, 다른 애들한테 소식을 들음.
그냥 그런가 보다 했음.
3학년때 어느날...
집에 가는길 친구들과 송탄우체국 근처까지 옴.
거기서 버스타고 하북까지 가는 친구가 있는데, 심심해서 장난전화를 하기로 함.
그친구가 공중전화에서 근처 중국집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를 검.
"여기 xx가구점인데요, 짜장곱배기와 탕수육보내주셈.." 하고 중국집에서 약 30미터정도 떨어진 가구점인것 처럼 전화함.
나중에 배달원하고 가구점 주인하고 막 싸우는 모습을 보고 도망감.
그 중국집이 지금은 짬뽕 5대맛집이니 하면서 유명해졌는데...
그당시는 이름도 없는 그냥 동네 중국집이었음. 영빈루라나? 뭐라나??
왜 유명해졌는지는 미스테리...
이렇게 중학교 시절도 지나감..
어제 우연히 화이트스완이란걸 봤는데..... 놀라운세상을 보게 된것 같다. 외모때문에 사회생활이 힘들고 가난하게 살고 있는 중국처자 메이린을 한국에 데려와서, 얼굴, 양악수술, 피부시술, 칫과교정, 시술, 영양보충, 체력단련, 직업교육...을 시키고 결과를 보는데... 완전 다른 사람...즉, 흔한 한국의 강남성형미인과 똑닮은 얼굴로 변신....
무서운일이~~~
예전 세상에 이런일이에 나왔던 선풍기아줌마 같은분도 강남성형미인으로 만들수 있다는 소린데....왜 놔두고 세상에 이럴수가~~~만 외치게 만드는지...
나 방위받을때, 훈련소 나갈때까지 보급품 못받아서, 한겨울에 씻지를 못함. 수도는 얼었고, 비누, 치약, 칫솔이 없어서 훈련소 나갈때쯤에는 ..ㅎㅎ 손발에 때가 거북등처럼 갈라졌었고, 입에서는 희한한 냄새....물론 몸에서도.. 속옷도 못받아서 훈련소갈때 입었던 사제속옷...한번도 빨지못한...땀에 쩔은...그걸 입고 훈련소를 나와 집으로..ㅋㅋ
요즘 친일매국자유당 관련 뉴스를 보며
옛날이 생각났다.
...
1984년 11월 17일, 토요일까지 일을하고 19일, 월요일에 용인 55사단 신병교육대로 편도 버스비만 달랑 들고 머리도 안깍고 갔다.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 전대리..
..
배치된 소대막사에서 현역병장인 소대장의 잔소릴 들으며 바리깡으로 머리를 밀렸더랬다.
전에도 몇번 썼지만, 환경은 아주 열악했다.
한 막사안에 거의 60명 정도가 생활했다.
잠잘때는좁아서 칼잠이라는것을 잤다.
빼치카라고 불리는 분탄난로는 새벽에는 불이 꺼져서 아주 추웠다.
분탄난로에 불피우는것은 소대장이 담당하고 빼당이라 불리는 불지킴이를 뽑았다.
불이 꺼지면 중대장에게 보고되는 아주 큰 일이라 불을 지키기 위해 훈련도 빠질수 있는 편한 자리였다.
불피는것은 아주 많은 장인의 경험이 필요했다.
먼저 분탄을 배급받아오면 빼치카옆 시멘트 구덩이에 쏟아 붓는다.
그리고 밖에서 꽁꽁언 진흙땅을 녹여 진흙을 캐온다.
분탄과 진흙, 물을 전수된 비율로 섞는다.
빼치카안에 장작을 이용하여 불을 붙인다.
불이 활활 타오르면
삽으로 빼치카 안에 반죽된 분탄을 넣어 연탄모양으로 다듬는다.
꼬챙이를 이용하여 구멍을 몇개 만든다.
..
이렇게 해서 밤새도록 불관리를 해야한다.
..
훈련소 기간동안 보급품을 받지 못했다.
치약, 칫솔, 비누...속옷, 훈련복...
한겨울 뜨거운 물도 없고, 수도는 얼어붙어 세면을 할 수 없었다.
양치질도...
훈련끝나고 집에 갈때 노숙자에게서 풍기는 특유의 향취가 풍겨나왔다.
....
매주 일요일은 부대 안에 있는 교회를 갔다.
첫날...헌금 서약서를 냈다.
훈련병들에게 담배가 나오는데 담배안피는 병사에게는 돈으로 주는 모양이었다.
그 돈 전액을 헌금으로 낸다는 서약서이다.
얼만지는 모르겠다. 본적이 없어서...
훈련이 끝났다.
좀편한곳에 배치받아 좋아하는 동기에게 500원을 꿨다.
물론 갚을수는 없지만..
이돈으로 무사히 집에 갈수 있었다.
이런 생활을 거처 자대배치를 받았다.
제 55사단 172연대
경기도 용인군 남사면..산속에 있었다.
여기가면 특공훈련받아야 한다고 악명이 자자하던 곳이다.
집에서 새벽에 나와 여러번 버스를 갈아타고 무사히 제시간에 도착했다.
첫날은 신고식 연습을 하고 공병대 끌려가서 관사 짓는 작업을 했다.
둘쨋날 헌병대에서 동기하나에 대해서 조사했다.
애인이 바람 피고 도망가서 자살했단다.
다른 사람들에겐 비밀이라고 했다.
방위 훈련소 시절 내 옆에서 자던 애 였는데...
...
일주일의 연대본부 생활후 자대배치를 받았다.
제55사단 172연대 3대대 기동중대
방위훈련 받은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월요일 아침 기동중대 내무반으로 가서 대기했다.
팀스피릿 훈련을 막 끝내고 온 기동중대 병사들이
엠육공, 백오미리무반동총, 육십미리박격포를 들고 들이 닥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가 방위들이었다.
이곳은 방위 90프로 전투병, 현역 10프로 행정병이 근무하는 부대였다.
...
이곳에서 기동대 생활을 하다 55사단 신병교육대로 차출되어 조교생활을 하게 되었다.
1985년이 되어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그전까지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뽑는 선거가 있었지만 국회의원 선거는 처음 본것같다.
부대에서는 투표하고 투표용지 번호를 제출하라고 했다.
1번 민주정의당
..
1번 민주정의당 후보에게 기표한 투표용지 번호를 주임원사에게 알려줬다.
나의 처음 투표는 민주정의당에게 갔다..누가 당선됐는지는 관심무!
사실 조금 무서웠다.
야당후보들 벽보에는 나처럼 반공교육을 잘받아 바른생활, 도덕 점수가 좋았던 사람에겐 마치 북한의 벽보처럼 보였다.
...
이랬었는데...
...
친일매국 꼴통들의 끄나플이 될뻔했네..
?
1. 미국 직장생활이야기
August 8, 2015
이번 수감된 재벌사면에 LIG넥스원 회장인지 부회장인지인 구?상이가 들어 있는데, LIG넥스원은 미국에서 첫직장관 관련있는 회사다.
넥스원퓨처 시절이다.
구?상은 LIG손해보험 뉴욕법인에 있다가 LA법인에 갔다가, 그당시 네스원퓨쳐의 부사장으로 갔다.
LA에 있을때, 년말회식 한다고 코리아타운인지 차이나타운인지에 있는 무슨 큰 중국식당을 갔다.
구본상이가 쏜다던데..저렴하게 중국음식 코스로 먹었는데, 중간에 독주를 들고 와서 한사람씩 따라주고 마시고 자기도 따라주라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회식끝나고 프리웨이타고 40분걸려 집에 가야 하는 동료들은 거절. 물론 나는 지금까지 한방울도 마셔본 적이 없어서 거절....ㅎㅎ
벙쪄서 당황한 모습이 기억나네...
그때 울회사에 그넘아의 사촌, 구?진,이 창업및 투자자로 그리고 대학원 갓졸업하고 와서 일한답시고 와있었다.
가만히 보니 재벌들은 다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사이가 안좋았다. 그 사촌이란 넘 (동?)은 LIG손해보험 부회장 아들로 미국시민권자였다.
구?상이 구속될때 같은 투자그룹에 명단이 있는걸 본적이 있다.
암튼...사이가 나쁜데, 그 본상이 친구가 SK그룹의 작은 회사..예전에 매값 2000만원짜리 뉴스 나온 회사...그 넘이다.
인터넷 검색해서 회사이름 찾음....초코렛이름같은 엠엔엠...
이회사는 SK이 물류회사인데, 부업으로 RF관련 부품을 개발하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 방산기기용...
그런데, 울회사를 ?상이가 너무 싫어하고, 그 사촌도 싫어해서....나중에 울회사가 문을 닫는 계기가 됐다.
이사건동안 미국에서 엄청난 경험을 해봄. 잘못됐을 경우, 징역 수십년도 가능...
권총차고 와서 조사하는 연방수사관도 보고....사무실에서 쫓겨나기도....ㅎㅎ
암튼...
그넘아의 사촌인 울회사 창업자, 나이는 새파랗게 어리지만 돈이 많았던, 동?이는 이를 가는데, 나중에 자기가 LIG넥스원을 경영할것인데, 그때가 된면 울회사를 문닫게 만든 관련 이사들을 가만두지 않을거라나?
그런데, 아직까지 LIG넥스원 경영한다는 소린 못 들어봤다.
그 당시 넥스원퓨쳐 사장은 울회사 바지사장의 친구였는데, 2-3년전 아파트에서 투신했다는 뉴스를 봤다. 방산비리로...
재벌사면 뉴스를 접하고, 잠시 옛기억이...
지나간 얘기..
1.
살다보니 재벌집안 자손과 일할 기회가 있었다.
미국에서의 첫직장...
사장은 한국에서 통신장교를 하고, 80년대에 이민와서, 미국방산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 은퇴한 분이었다.
기술적으로 자기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한국에 있는 회사의 기술고문을 하면서 자주 왕래하고 있었다.
경영능력은 거의 제로... 엔지니어는 언제든지 어디서든 구할 수 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엔지니어 출신이면서..
그 당시 넥스원퓨쳐 사장이 친구였다. 2-3년전 방산비리로 조사받는중 아파트에서 투신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 언젠가 계속 ....
ㅎㅎ 그때일이 어제일처럼 생생하구만..
지나간 얘기...
2.
내가 일했던 회사는, 넥스원퓨쳐에 개발, 납품하는 회사였다.
원래 방산기기에 들어가는 기기들은 부르는게 값이었고, 중간에 납품중계에이전트들이 끼어 있다고 한다.
넥스원퓨쳐도 원래 미국회사의 물건을 아주 고가에 납품받았었는데, 원가를 계산해보니 눈이 돌아갔었는지, 미국에 회사를 세워 납품하면 땅짚고 헤엄치기라고 생각되었을거다.
그렇게 해서 구씨집안에서 돈을 내고 회사를 설립, 개발을 시작했고, 나도 그때 합류했다.
그회사에는 넥스원퓨쳐에서 기계설계담당부장이 파견되어 회사설립과 개발관련 준비작업을 도왔고, 한국에서 여러명이 파견 근무를 했다고 한다.
합류초기...일은 재미있었고, 여러날 밤늦게까지 일을 했어도 즐겁기만 했다.
3.
내가 합류되기전부터 프로젝트는 거의 90%이상 되어 있었는데, 디지털회로쪽은 사장이 기술고문을 맡고 있는 한국의 중소기업에서 맡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쪽이 제대로 동작을 안하는것이었다.
국$과$연$$에 제출해야하는 날이 다가왔는데 진척이 없어, 사장과 우리 모두 거의 매일 밤을 세우다시피 했다.
사장은 주먹구구식으로 억지로 신호를 만들어냈고, 그것은 타이밍이 맞지않아 동작을 하지 않았다. 결국 한국의 외주회사에서 포기.
사장은 나한테 쉬프트레지스터를 잔뜩 집어넣어 계속 작업하라 했고, 난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스펙을 더 분석하고, 다이어그램을 그리고, 베릴로그로 코딩하면 쉽게 만들수 있습니다.....했더니..
ㅎㅎㅎ 나중에 함께 일하는 고참에게 아 뭐 저런넘이 다있어~~ 하며 열냈다능..
암튼..
사장은 일단 그걸 들고 한국으로 갔다.
사람들이 나보고 그걸 맡으라 했다. 하지만 내가 손대는 순간 제품동작이라든지 납품지연에 대한 책임을 지어야 했다. 그래서 난 거절했고, 따로 스펙과 필요부품을 공부하고, 제대로 동작하도록 구현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사장에게 보내 테스트를 통과시킬수 있었다. 그사이 국..과..연에서 타이밍 스펙을 바꿔 다시 테스트샘풀요청했지만, 내가 구현한것은 타이밍같은것은 쉽게 바꿀수 있도록 되어 있었으므로 합격!
...
미국에서의 첫직장 생활은 이렇게 조금 허술하게 시작했다.
.... 다음에 계속..
..
자나간 얘기..
뭐 10년정도 됐으니 이젠..
4.
LIG손해보험 부회장의 둘째아들이 대학원을 마치고 합류했다.
얘는 재벌가 자손들의 모임이 있다는 얘기, 자신은 삼성가 자손들 근처에는 못간다는 얘기, 그리고, 자신들 친척들도 뭔가 보이는 사람만 사람취급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일찍이 배제를 한다고 한다.
...
삼성가 자손들만 보면 열등감 느낀다며, 자주 욕을 했다...ㅎㅎ
...
얘랑 한공간에서 일하다보니, 자주 사생활 관련 얘기릉 듣게 되었다.
선데이서울에 나올만한 얘기라.... 여기선 생략함..
..
계속....
지나간 얘기....ㅎㅎ 엉뚱한곳에 붙어 있었네..
5.
내가 다녔던 회사는....한국의 비호라는 물건에 들어가는 물건을 만드는 회사였다.
그 당시 네스원퓨쳐가 개발한 물건에는 미국회사의 물건이 들어갔는데, 가격이 어마어마했다. 듣기로는 옛날 알루미늄도시락통 보다 좀 큰 알루미늄다이케스팅 케이스로 된 물건인데, 가격이 무려 한국돈으로 오천만원(?) 정도일거라 추정...자세히는 모름.
우리가 만드는것은 원가가 약 3-5000불 사이였던걸로 기억함.
이걸 개당 약 3천만원정도에 납품하는 계획. 물론 국$과$연$$의 테스트를 통과해야...
암튼...시제품은 테스트를 통과했고, 우린 10대정도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프로젝트를 위한 부품구입에서 문제가 생김...
이들 부품 취급은 까다로와서 외국에 유출될때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는...
우리는 그정도는 아니라고 했지만, 서류상에 한국으로 보낸다는 표시를 행정보시는 분이 해버렸다.
그후부터....이상한 일이 생기는것이다.
그때 F1 OPT로 일을 하고 있었고, H1 승인받고, 또 영주권준비하자해서 기분이 좋았던때였다.
분위기가 안좋았고, 사장이 자발적으로 여러가지 서류를 모아 정부에 제출하자고 하는 한편, 관련법규를 공부하고, 변호사를 선임했다.
사장은 괜찮아...우리는 일반 상업용부품을 사용하고 있으니까......
....
계속..
지나간 얘기...
6.
방산용 전자부품은 참으로 구하기 힘들고, 가격도 부르는게 값이다.
처음 나왔을때, 한국돈으로 3천원 정도 했던 부품은 10년이 지나서는 50불에서 100불정도.....
그 방산비리로 세상을 뜨신 한국의 N사 사장의 비서출신으로, 롱비치에 부품회사를 운영하는 분이 있었다. 모든거래는 N사와만 하는 회사인데, 거래량이 상당했다고 들었다.
지금도 회사가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쓰레기나 미군 고물상에서 수집한 부품들이 거액의 가격이 매겨져 거래가 된다고 들었다.
울회사가 조사를 받을때, 관련사건들을 조사해 봤다.
어떤 사건은 중국계미국인인데, F16 이나 첨단장비의 폐부품들을 모아 중국으로 보냈던 사건이 있었다. 벌금은 수천만불, 지역 4-50년....ㄷ ㄷ ㄷ
이사건때문에 Export Control에 대해서 공부도 했다. 물론 수박겉핥기식으로...
어느날 DOC에서 수사관이 권총을 차고 회사에 찾아왔다.
한국계 미국인.....참으로 한국인에게 더 악랄하게 대했다.
얘는 비자상태로 고용된 사람은 모두 해고하라고 했다.
....ㅎㅎㅎ 그러면 일할 사람이 한명도 없는.....상황...ㅎㅎ
궁여지책으로 실무를 하는 랩실에 자물쇠를 채우고 못들어가게 만들고, 관리업무보는 곳에서 수다떨고, 커피타먹고 공부나 하게 되었다.
...
계속....
지나간 얘기...
7.
좋은 변호사를 구했는지, 사장은 큰문제없이 해결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LIG에서 실사를 한다고 한다.
그 한국계 미국인 수사관넘이 월권을 하면서, LIG를 들쑤셨다고 한다.
물론...난 줏어들은 얘기라 그렇다고만 들었다.
며칠후, 한국에서 온 그룹관계자들과 회의를 했나보다.
사장왈....
회사 문닫기로 했어~~ 끝...ㅎㅎㅎ
그래...앞이 캄캄했지만, 예전 금성산전에서 미사일 개발에 참여했던 엔지니어출신의 부회장 아버지를 둔 아들이 있으니.....
취직시 추천을 부탁했다.
네..물론이죠..제 아버지는 산호세 연구소 소장도 했었고...어쩌구...
소식이 없다.... 다시 부탁해보니..
아버지에게 부탁하면 힘이 너무 막강해서 큰 실례가 어쩌구...
암...다른 사람이면 어떤가..
어머니께 부탁해볼께요...
....
...
결국 사장이 친구가 운영하는 회사에 한번 가보라고 했다.
거기는 불법체류자가 일을 하고 있었고.....H1비자를 유지할만한 연봉은 못준다고..
짧은 시간....비자상태에서 새로운 일을 찾기에 힘이 들었다.
결국 OPT가 끝나는날,,,,,, 전가족이 짐을 싸서 한국으로 와야만 했다.
..
재벌사면 얘기하다가 나의 첫직장 얘기로 새버렸네요...ㅎㅎ
지나간 얘기.
8.
미국에서 첫직장을 돌아보며,
그때 당시 중고부품, 폐미군장비를 수집해서, 팔면 떼돈 벌겠구나.....라고 생각한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방산기기에 들어가는 부품들은 최소 10년동안 부품의 재고를 확보해야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부품값이 장난이 아니다.
어떤것은 정말 처음 나왔을때 한국돈 1000원짜리가 100불이상에도 거래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일에 달라붙은 회사들이 여럿있고, 무턱대고 달려들다간 큰일 나는 모양이다.
울 회사가 그짝 난것도 여럿 중개상들의 밥줄을 위험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1000불짜리를 수만불에 사가는 고객이 있는데....우리가 그걸 아주 저렴하게 납품한다니....그 회사들이 정부에 찔렀을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중에는 LI?그룹 경영층, 오너가족들의 갈등, 그리고 돈주고 몽둥이 찜질해주는 초코렛(?)회사도 관련있다고 들었다, 그것들이 투서를 보냈다나 뭐라나...
오래된 얘기....믿거나 말거나 중에서...ㅎㅎ
또 지나간 얘기...
9.
방산비리 얘기를 쬐금 언급하니...여러가지가 생각난다...
이쪽 계통에 오랫동안 발담근 사람이 아니라 잘모르지만,
1년간 어찌저찌해서 얘기를 들어 보았다.
비리는 끼어들수 밖에 없는 구조란 생각이 듬.
먼저, 프로젝 참여 공고가 국$과$연$$에서 나오는듯..
그러면, 그곳 출신들이 세운 중소기업, 대기업 방산회사들이 제안서를 만들어 보낸다.
웃긴것은 이 제안서에는그 기업의 모든 비밀들이 담겨있고, 또 그 프로젝의 95%이상이 들어 있다. 이 제안서만 가지고도 물건을 만들 수 있을 정도...
거기에 프로젝 참여인원들의 인적사항이 나오는데, ..... 경력 10년차가 제일 말단 개발보조다.
그런데, 더욱 웃기는것은 그 프로젝을 신청한 모든 회사들이 그 정보들을 서로 공유해야 한다는것....
그리고 프로젝에 참여하려면, 이미 그 물건을 개발해서 시제품동작까지 끝내야 했다. 그 물건이 없이 개발참여는 힘들고, 또 돈이 많이 들어가므로 작은회사는 힘듬.
결국, 대기업이 프로젝을 따고, 중소기업들이 하청을 받아 개발하는....그런..
그 중소기업들도 거기 출신들 아니면 참여가 불가능..
개발품이 완성되고, 테스트에 합격하면.....그때 개발비가 지급되는것 같음...
결국....잘은 모르겠지만, 순번으로 프로젝을 맡는게 아닌가 생각됨..ㅎㅎ
지나간 일중에서....(소설)??
10.
A라는 애가 있었음.
돈많고, 대학원 갓 졸업하고 왔음.
결혼을 회사오기 바로 직전에 했다고함.
사장와이프가 부동산회사를 운영했는데, 비벌???힐스에 100만불이 넘는 허름한 아파트를 구입하게함.
그때당시 SF 다운타운에서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었음.
얘는 매일 자기 와이프를 헐뜯음.
걔와이프...지금은 없어진 한?합섬 손녀고, 아빠는 한?대 경영학과 교수라고 함.
걔와이프...고딩시절까지도 힘든일은 일하시는 아줌마가 하는걸로 알고 있었다함.
한가지 일화...제주도에 수학여행갔는데, 김밥먹고 싶다고 , 했다던가? 도시락을 잊었다고 했다던가?? 전화했더니....싸들고 왔다는.....서울에서....
얘기듣고 좀 어이가 없었음.....
이런 얘기도 들려줌.
얘와이프는 또 무슨 결벽증이 있는지, 집에 침대에서 못자게 하고, 샤워도 못하게 한다함,
그래서 잠은 거실 소파에서 잠바덮고 잤다고...
식사는 매끼니 사먹고....
시엄니 와서 남편이 삐쩍 말라있으면 혼난다고, 기름진 음식을 마구 먹였다함.
원래 찐 체구인지 모르지만, 정상보다는 많이 뚱뚱했음.
와이프는 한인타운가서 손톱손질 받고, 뭐 사먹는게 하루 일과라고...
들으면서 매우 웃김. 재벌가 자손이 이런 취급을 받다니...
그러더니 크리스마스 이브때 한국에 가더니, 바로 이혼함.
이혼 소송과 역 소송....
와이프가 얘를 ADHD가 있다고 솟장에 적었다함.
이때 ADHD라는 말 처음들음.. 좋은것 배움^^
얘도 치밀한것이 뒷조사를 해서 와이프가 딴주머니찬것을 발견함.
그리고, 와이프 집안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소송을 하자, 변호사 고용하고 비용은 몇억주고, 또 뭐 위자료든 뭐든 수억 나오면 다 가지라고 했다함....전체 10억이 넘는...ㅎㅎㅎ
지 입으로 얘기해줌..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뭐....10억 돈도 아니지...ㅎㅎ
옛날얘기..
11.
그 회사에 인터뷰보러 갔을때, 행정업무를 보시던 분이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빼어난 미모에 아주 친절하신 분이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EMI record 책임자까지 지냈고, 남편은 큰돈을 주무르는 투자회사 대표라던가?
거기에 코리아타운에 아파트단지 하나도 소유하고 있고..
암튼...
그분후임으로 캘리라는 분이 일을 맡아했다.
이분은 그 당시 20대말 아니면 30대초 미혼이었는데, 해마다 LA 마라톤에 참가하는 씩씩하고 열정적인 분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컵라면에 김치를 먹고 일을 시작해서 아침부터 사무실에 김치냄새 진동했었다.
심각한 사건이 진행되는 중에..
이 사건은 이분이 미국부품회사에 보내는 서약서에 잘못기재해서 촉발됐다고 의심받고 있었다.
구모씨가 함께 일하는 동료의 전화케이스와 키패드를 금도금된걸로 바꿔줄려고 중국에서 주문했는데, 캘리씨가 도착한 봉투를 가운데부터 가위로 잘랐다.
이일로 구모씨의 미움을 사게됐다.
그룹에서 회사를 폐쇄하라고 하기전, 구모씨는 캘리씨에게 그만 회사를 나가라고 말했다.
그때 얼굴을 붉히며, 황당해 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가면서 DOL에 클레임하겠다고 하며..문을 박차고 나갔는데, 비록 몇개월되지 않았지만 뭐라고 말을 할수도, 잘가라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우린 그저 비자에 묶여있던 소인배였다..ㅠㅠ
또 옛얘기...
12.
울사장은 전형적인 땜쟁이 노가다 출신이었다.
스스로 땜질하고, 뭔가를 만들면서 뿌듯해했다.
한국에 있는 중소기업 기술고문에 넥뭐라는 회사 사장과 친구고, 가끔 그회사에도 기술자문을 해 줬다.
그래서 한국에서 전화오면 #$%박사님을 찾았다. 박사는 아니지만... 박사들도 아래로 보곤했다.
왜냐하면, 미국의 유명한 방산회사에서 아주 민감한 프로젝트를 여럿해본 경험이 있었고, 또 한국에선 그걸 필요로 하던 때였다.
그분의 자부심은 한국이 F16인지 F15인지 도입할때, 자이로스콥에 에러가 있었는데, 미국애들도 못고친걸 자신이 뚝딱 해결했다고...가끔 자랑하는것에서 볼수 있었다. 수백억들것을 아주 저렴하게 해결했다능...
가끔 특허자랑도 했다. 특허비로 돈이 많이 나온다고....그래서 검색해 보면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대부분 비공개가 많아서..
공개가 되서 검색되는것에는 second 저자이거나 third인 경우였다.
회사가 돌아갈때는 돈걱정없이 좋은 장비를 구입했고, 새로운 프로젝트, 새로운 기술을 익힐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멀쩡한 회사가 하루아침에 그냥 문을 닫다니....대책도 없이...ㅎㅎ
직원들을 관련회사에 취직시켜줬어야지...
ㅠㅠㅠ
13.
회사를 폐쇄하려 준비를 했다.
장비와 부품들을 모두 포장하라는 지시였다.
출장자들이 사용했던 아파트도 철수했다.
회사근처에서 트럭을 빌리고, 홈디포에서 맥시칸 일꾼 2명을 고용했다.
운전은....트럭경험 한번밖에 없던 내가 덜덜 떨면서 프리웨이를, 짐싣고, 내리고....
나중에 프리웨이 달리면서 보니, 사이드미러가 다 틀어져 있었다. 난 뭘보고 운전한것인지..ㅎㅎ
2주에 걸쳐 각부품과 장비를 분류하고, 포장을 했다.
이들은 사장이 고문으로 일하는 한국회사로 보낸다고 했다.
물건을 다보내고, 더 이상 회사에 남을 필요없어 집에 와서,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남아있던 동료는 사무용 가구들을 처분하려고 트럭운전하고, 배달하고....그랬다고..
그렇게 대책없이 뿔뿔이 흩었졌었지...
14.
그회사같은 업종이 사용하는 기술들은 대개 수십년전에 만들어져 방산쪽에 사용되어 온것들이다.
RF, Microwave라는게 주변환경, 재질에 쉽게 변하다보니, 뭐하나 만드는것이 거의 노가다 수준이었다.
최첨단 시물레이션 소프트웨어로 디자인과 예상출력을 보고는 실제 구현할때...붙였다 땠다를 반복하고, 이값 저값 바꿔가며 측정기로 보면서....
원래 이래야하는지는 잘 모르겠음. 하지만 수십년 경력자가 이렇게 하니...
그당시 초보의 눈으로는 뭐이런 골때리는무식한일이 있나...시물레이터에 주변환경값 제대로 넣고 돌리면 노가다 시간이 줄어들지 않겠나...
저런식으로 하면 시물레이터는 뭣에 필요한거냐..등..
하지만 수십년 경력자들은 노가다가 편하다니까..ㅎㅎ
이분들의 필수품...세라믹조정봉, 핀셋, 동테이프..ㅎㅎ
이계통에 살짝 발담그고 보니, 관련 회사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이런 회사들은광고도 필요없이 조용히 안정되고 고수입을 유지하고 있는것 같다.
통신과 군사용장비는 거의 영원하니까..
친일매국노들이 득세하면서 처음 들어본 단어... 건국절 !!!
왜...8월15일은 그대들 조국의 천황폐하님께서 울면서 라디오방송한 날로 조기계양하자고 주장하시던가...
그대들에게 광복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
그저 그대들의 조국 니뽄이 전쟁이 진 날로 아주 슬픈 날이겠지...
그대들..조국에 충성하는길은 지금이라도 니뽄황군에 지원하여 텐노반자이!! 하며 그대조국 황군의 전쟁연습, 사격장 타겟으로 지원하는일뿐..
아니...731 생체실험 마루타가 되어 그대들 사랑하는 조국 황군의 기술발전에 기여하여라~~
내성격을 전혀 닮지 않은 지금 아들로 있는 넘은 아마....태어난 병원에서 바뀌지 않았으면, 어디선가 줏어온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루빨리 친부모를 찾아줘야 할텐데...
아니면 그동안 길러준 수고를 생각해서 조금만 더 기다려야하나...
August 10, 2015
영화 암살을 보고...
울나라 사람들...착하거나, 멍청하거나, 아니면.. 모두들 성인군자.
아직도 친일매국노들을 칭송하고 아부떠는것 보면..바보가 아닌가 의심이 된다.
반민특위...이제라도 다시 활동을 해야 하고, 친일매국 반민족행위자들을 다시 법정에 세워 처벌을 해야 한다.
아니면 친일매국노가 계속 판을 친다면, 다시 한국독립군을 만들어야 하는것은 아닌지..
August 12, 2015
엊그제 영화 "암살"을 보고나서, 너무나 열받았다.
영화에서나마 친일매국노들에게 콩알을 먹일 수 있다는것에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해방된지 언젠데...아직도 친일매국노들이 판을 치고....
반민특위재판정에서 염석진 (이정재...비열한 역 참 잘함...이넘땜에 열받음)이가 재판참석자들에게....자신은 독립운동밖에 모르고 살았다고 주장하는데...참으로 뻔뻔함.
이 염석진 같은 이들이 현재 너무나 넘쳐남..특히 새모리라는 정당에 많음..
이들이 대한민국을 뿌리째 흔들고 있으니, 독립이 독립이 아닌것이 됐다.
기억이 사라지고, 왜곡되기전에 친일매국노들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기록을 해야할것이고, 죄를 물어야 할것이다.
영화 "암살"을 보고, 현실의 친일매판매국노들의 뉴스를 접하고, 감정이 많이 격해졌었다.
거기에 새로운 인류인 "자식"이라는 것이 내 감정에 불을 붙였다.
일단 자식류에게는 집행을 유예하고, 남은기간 복종하며 살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지배자 "부모"로 부터 독립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조금 흘려줬다.
부모는 이 자식류들에게 문명과 지혜를 나눠주고, 스스로 사는 법을 터득하도록 재촉했다.
귀가 있고, 머리가 있다면 거기서 스스로의 삶을 꾸려갈 방법을 찾을 것이다.
주말에 금문교 근처 베이커 비치 라는 곳에서 진기한 경험을 함. 금문교를 좋은 각도에서 담으려 가는데 벌거벗은 사람이 보이기 시작함.
날씨가 좋고, 햇살도 좋은 날이라서 그런지 모래위에 누워 코끼리 말리는 사람도 보임.
부끄러워 피해서 가는데, 이번에는 코끼리를 노출한채 즐겁게 뛰어노는 남자 사람이 보임.
자세히 볼 수 없어 다른곳을 보니, 발가벗은 사람과 옷입은 사람, 비키니입은 사람이 한데 어울려 놀고 있음.
예상못한 일이지만, 이런 장소에서 사진을 찍으면 안될것 같아 주머니에 넣고 뒤로 가서, 마눌과 딸에게 즐겁게(?) 경고함.
집에 돌아와 위키검색해보니 그 일대가 다 누드비치였다는것...
신기함. 옷입은 사람들 사이에 벌거벗은 사람들..
ㅋㅋㅋ 혹시 내 마음이 더러워져 그사람들이 입은 옷이 안보이는것은 아님??
베테랑 봤는데, 유아인이라는애..뽕먹은 재벌집 자손 연기 잘함. 이넘때문에 속으로 욕많이함..
재벌에게 돈받아먹고 하인노릇하는 경찰회사 (영화에서 회사라고 하는구먼..) 간부들 보면서 혈압 오름...
부끄럽지 않게 살자고 다짐해봄.
요즘 한국뉴스를 보다보면....
돈좀 만지며 살고, 권력이 있는 것들이, 어떻게 하면 못사는 국민들 쥐꼬리만한 돈까지 뺏어 볼까 하고 안달난것 같아 보인다.
마치.....이번기회를 놓치면 안될것 같아....라고 하는것 같다.
2. 방위였지만 생생한 자신의 군복무이야기
요즘 대한민국 좀엄께서 군에 하사하신 성은을 보며..어릴적 방위시절이 생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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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84년 11월....방위소집통지서 받음.
회사에 15일자 휴직서 내고...월급날은 21일...
19일에 용인 55사단 172연대 교육대에 입소...
집에서 갈때 가는 차비 5백원들고 머리도 깍지 않고 감.
입소절차....여러가지 추잡(?)한 검사후, 훈련복입고 동기들은 식사집합하고, 나는 머리가 길어서 얼차려받고 내무반에서 머리깍임.
동기들이 가져온 밥은 돼기고추장찌게인데...냄새가 엮겨웠음.
첫날이라 다들 밥을 억지로 겨우 먹음.
보급품이 안나온다는 소식을 들음.
치약, 칫솔, 비누, 수건, 속옷....
이것은 훈련끝나고 집에 갈때까지 구경 못해봄.
훈련화와 훈련복, 야상, 전투모 지급받음.
훈련화는 바닥이 떨어져서 구멍도 있고, 너덜널덜...
훈련복도 더럽고, 구멍도 있고, 색도 엄청 바랬음.
야상은......마찬가지....전투모.....더러움.
운이 좋으면 몇년전에 깨끗하게 사용했던것 줏을 수 있으나...대부분 수십년된것으로 보임.
훈련장이동시에는 철모를 쓰고 가는데, 안에 화이바가 없는 구식철모...거의 625때 쓰던 영화에 나오는 그런 철모임.
그 철모를 쓰고 구보를 하면, 철모가 위아래로 덜컥덜컥 하면서 머리를 때림....나중에 혹이 생길 정도....철모는 강철로 만들어진것이라 엄청 무거움.
식사와 사격을 위해서 숟가락 하나씩 줌.
대부분 손잡이는 유리겔러가 초능력으로 잘라논것 처럼 생겼음.
숟가락은 야상주머니에 항상 휴대함. 사격때 가늠자 조정하기 위해서..
식판은.....보급품에 식기세척제가 없었으므로, 한겨울에 찬물로 씯어야 했음. 돼지고추장찌게를 제일 싫어함. 기름때문에.
대부분 식판은 플라스틱인데, 구석구석 까만 기름때가 끼어 있었고, 냄새가 심함....
배가 고프니 여기에라도 맛있게 먹음...
한겨울이라 수도가 얼어서 세수를 할 수 없었음. 훈련기간동안 뜨거운물에 약 10분정도 목욕탕에서 단체로 물만 끼얹고 나옴. 단 한번..ㅎㅎ
힘든 훈련에 매일 삽질 시킴.
언땅이 녹으면서 구멍뚫린 훈련화로 물이 들어옴.
삽질하면서 틈틈히 담장너머 버스다니는 길을 동기들 대부분 처다봄.
매우 처량함.
수원에서 용인자연농원까지 가는 66번 버스가 지나감...
아침에 몇명 차출되어 취사대에 끌려감.
창고에서 빵 봉지 뜯는 일임.
일이 끝나고, 현역이 빵한개씩 줌...방위훈련병은 감히 맛 볼수 없는 음식임.
수송대에 사역을 위해 차출됨.
할일은 트럭바퀴에 묻은 진흙을 깨끗이 닦고, 깨끗한 걸레에 구두약발라 빛나게 만드는 일....
..
훈련이 끝나고...
보안대, 3군사령부, 이천육군교도소등 좀 편하다는 보직에 애들이 끌려감.
나와 몇명은 아무데서도 데려가지 않음...
동기들이 우린 남사(?)에 끌려간다고 함...
남사는 용인군 남사면에 있는 172연대....방위들 사이에 악명이 높았음.
..
다음에 계속..
성은에 보답하는 글....이어서..
====
방위훈련소에서는 하루하루가 공포의 나날임.
특히 궹생도 사투리는 무서움.
어느날 군종병이 들어와서 교회소개를 함.
그주에 흡연자들에게는 담배가 지급되고, 비흡연자는 돈으로 준다는 공지가 있었음.
매일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회를 감.
55사단내에 교회가 있었던것으로 기억.
참으로 평화롭고 편했던 시간....초코파이도 먹어봄.
헌금시간에 돈없는 훈련병은 담배대신 나오는 돈을 헌금한다는 란에 표시하라고 함.
어차피 집에서 올때 훈련소 오는 차비만 들고 빈몸으로 왔으니, 표시함.
훈련소 내무반에서 애들이 집에서 들고온 돈을 갹출, 회식을 한다고 함.
난 돈이 없으므로 애들이 사온 과자 몇개 집어 먹음.ㅎㅎ
내무반에서 나랑 붙어서 자는 애는 매일 매일 일기를 씀.
방위오기전 동거하던 여자에게 쓰는 글...
용인 수지에서 온 애가 있었음.
이넘은 거의 싸이코패쓰같음.
매일 동네 여자들 강간한 얘기만 함.
한식당에서 어릴때부터 일했던 애가 있었는데, 어느날 사단본부에서 데려감.
...
훈련소를 마칠때쯤....팔리지 않은 찌끄러기 몇명, 나를 포함 남음.
월요일 아침 8시까지 용인군 남사면에 있는 172연대로 집합하라고 하고, 해산.....
집에가는 차비가 없어서 동기에게 500원 빌려 부대앞에서 66번 버스를 탐.
용인군 구성면에 사는 동기와 신갈에 내려 다방에 들어감.
훈련기간내내 세수와 양치질을 못해, 입을 벌리면 희한한 냄새가 나고, 손은 때가 두껍게 끼여 갈라졌음.
동기가 커피를 사줌. 다방아가씨가 옆에 앉는데....당황스러움.
동기들 도움으로 집에 무사히 도착.
남사면이 어딘지 부대는 어딘지 어찌 가는지 동기들에게 물어봄.
월요일 새벽 구성에서 신갈로, 신갈에서 용인시외버스터미널에 감.
하루에 몇번 다니지 않는 남사면 거쳐 안성가는 버스를 탐.
방위고참들과 방위신병, 일반인으로 꽉 참.
남사에서 부터 공포분위기임.
복장점검하고 6명이서 이열종대로 팔을 흔들며 부대를 향하여 감.
부대입구부터 부대행정실까지는 산꼭대기 5-600미터정도.
연병장에 낙하산이 펼쳐져있고, 곳곳에 유격훈련장이 있고, 방위들은 특공무술한다고 날라다니고 있음.
현역병들은 행정병 몇명...
여기에 온 인원은 내옆에서 자던 일기쓰던 애, 싸이코패쓰, 그 싸이코패쓰랑 같은 동네 덜 싸이코패쓰, 울동네 근처 사는 애...몇명..
연대장한테 신고식한다고 아침부터 점심까지 연습.
일기쓰던 애는 악수할테 손을 꽉 잡았다고, 인사계한테 열라 맞음.
공포의 신고식후, 우린 여기서 일주일간 대기병 생활 한다고 들음.
우리가 여기서 할일은 집짓기.
...
계속??
성은이 망극하여.....이어서...
====
화요일부터 172연대 공병대에 끌려감.
공병대는 관사 6채를 짓는중.
갑자기 헌병대에서 우르르 몰려와 우리들을 집합시킴.
내옆에서 자던 애에 대해 물음.
그넘이 월요일 집에가서 자살을 했다함.
동거하던 여자가 도망갔다고.
흠...이제는 말해도 되나???/
그때는 발설하면 영창간다고 했는데....
우리는 아무생각도 없었음.
그냥 어휴 불쌍한넘. 왜죽냐??? 끝..
금요일, 연대에서 3대대로 팔림.
3대대는 55사단에 있고, 기동대와 교육대를 운영.
갑자기 172연대 3대대 기동중대에 끌려감.
현역 2명에 60명정도가 방위인데.....흔히 말하는 전투방위임.
마침 3대대 간날이 팀스피릿훈련 끝나는 날이어서...
방위들이 박격포, 35미리 무반동총..등 각종 화기를 내무반에서 풀어놓고 있었음......쫄음.
이날부터 매일 훈련받음.
어느날 취사병 지원을 받음. 가려고 했으나 실패함.
동기 2명이 지원해서 취사병으로 감. 매일 부대에서 먹고 자고함.
나머지는 전투방위로 매일 전투훈련함.
어느날 연대에서 인사계가 오더니 몇명을 일어서게 하더니..
사단본부로 가라고 함.
이날부터 55사단 교육대 조교로 차출됨.
새로운 방위훈련병 오기전 각종 교보재 준비함.
특히, 625때 쓰던 철모에 색칠함.
좀 쓸만한 훈련화, 훈련복, 야상 분류함.
준비시간 이외에는 싸이코 고참때문에 공포임.
그 고참은 3대대소속인데, 원래 교육대가 3대대 소속이었다가 사단소속으로 바뀜.
바로 위에 고참이 이 싸이코 고참한테 항명을 하고, 그 싸이코는 우리에게서 손을 뗌.
..
교육대 조교는 전투훈련은 안하는 대신, 여러가지 동작에 대해 준비하고 연습함.
그리고, 개구리복은 항상 칼같이 다리게 하고, 구두는 항상 번쩍번쩍 빛나게 닦아야 함. 힘듦.
...
이렇게 2개 깃수를 훈련시켜 내보냄.
다음??
마마에게...이어서..
====
172연대 3대대에서 전투방위로 있었을때...겨울임.
그때 눈이 엄청나게 왔고, 사단장 이취임식이 2개월후에 있다고 함.
이날부터 2개월후 그날까지 군화뒷굽 검사를 매일함.
5미리정도 닳으면 갈으라 하고, 매일 광을 내야했음.
사단 위병소부터 사단본부 건물, 그리고 연병장에 눈을 치우라고 함.
하얀색이 보이지 않게...
매일매일.......밤 늦게까지...집에가는 버스 막차되기전 까지...
...
사단장 이취임식날..
예행연습을 함.
지휘자는 대령. 단상에 별들이 잔뜩 앉아있음.
어떤 별이 대령에게 막 욕을 하고 그럼.
연습때 잠시 휴식때, 3군사령관이 탄 헬기가 내려오려고 함.
지휘하는 대령이 마이크로 막사사이에 숨어서 나오지 말라고 함.
3군사령관 사단본부로 갔을때, 나와서 대열을 정리함.
이취임식 시작...끝.......ㅎㅎㅎ
1시간도 안걸림. 우린 2개월전부터 개고생하며 준비했는데..
별들이 사단본부부터 차를 타고 천천히 지나감.
우리들은 길 양옆에 도열해서 박수를 쳐야했음.
.....
사단교육대로 바뀌고, 교육준비를 했음.
어느날 얌전하게 생긴 상병이 우릴 데리고 감.
이사람은 늦게 입대해서 나이도 많고....
그래서 교육대장 집사로 일을 하는것 같았음.
교육대장 관사로...
저녁 5시부터 연탄을 아파트 5층 집까지 날라야 했음.
엘레베이트 없는 아파트임.
한겨울 꽁꽁 언 5-6백장 연탄...
3명이서 수시간에 걸쳐 연탄을 지고 날름....
....
계속..
뒤죽박죽 스토리....성은이 망측하오~~
==
1985년에 국회의원선거가 벌어짐.
그때까지 국회의원선거 없었음.
온갖 정당 사람이 출마했는데...
신민당 사람들은 죄다 전과자였음.
반면에 민주정의당 사람들은 사진도 잘나왔고, 학력도 좋고, 부자고..
교육대 인사계가 우리 방위들을 집합시킴.
투표하고 출근하그라.
투표용지에 일련번호있는데, 와서 그 번호를 적어서 제출하도록...
ㅎㅎ 그래서 1번 찍음.
...
아이고 힘들어라...
이제 그만...
성은이 망측하여 이상한 얘기까지 늘어 놓게 되었네요 smile emoticon
높은자리에 올라가면, 왜 언어능력이 떨어지는지...불가사의하다.
무슨 말을 하고서 소란이 일면, 의도와는 상관없이 잘못 전해졌다라고 한다...
처음부터 의도를 잘 전해지게 말을 해야지...
사기칠려는 의도가 있으니 그런일이 생기지..
이젠 노벨상 노래 그만 불렀으면 좋겠씀.
지금 노벨상이 관심갖는 주제로 연구하면 늦는다는건 앎?
좋아하는 주제로 열심히 연구하다보면, 그것이 기초가 되어 새로운 발견이 된다면 자연스럽게 노벨상이든 뭐든 탈수 있는것 아닐까? 못타도 괜찮고..
노벨상타령.....안쓰러움.
노벨상 받은 사람들과 그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존경을 표함.
그들은 노벨상이 목표로 연구한 사람들이 아님.
노벨상 수상 시즌만 되면 한국인 타령과 중국과 일본과학저들과의 비교...그리고 폄하, 한탄...열등감 폭주...그리고 정부의 노벨상목표 연구지원 허풍이 식상함...
매년 되풀이 되는 신문기사 고정아이템.
지금부터라도 산수, 수학을 손가락덧셈부터 아주 아주 기초부터 쉽게 재미있게 즐기며 공부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면....
10년후에는 기초과학이 지금보다 더 탄탄해지고, 그후 30년후에는 저절로 노벨상이든 무슨 상이든 받게 되지 않을까 생각함.
그리고....국어 독해력과 작문을 재미있게 즐기며 할 수 있게 해야함.
그래야, 연구결과든, 일의 성과든 기록을 제대로 남기고 평가받을 수 있지.
수학과 국어(독해, 작문), 그리고 철학 교육을 강화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겠지...
어린시절 이런교육 제대로 못받은 것 같아...문교부를 원망함..
지금의 사태는 자질없는 정치인이 쏟아져 나와 활동을 하기 때문인것 같다. 각 개개인으로 보면 좋은 학교를 다닌 사람이 많은데, 정치인이 되고 부터는 사고방식이 유치원생보다 못한 경우가 많아 보인다.
- 일단 정치인이 되려는 사람은 시험을 보게 해서 걸렀으면 좋겠다.
- 공무원, 정치인에 대한 윤리규정을 지금보다 몇배 강화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파렴치한 범죄 전과자들이 국민을 상대로 사기치는 일을 조금이라도 걸를수 있겠다.
- 국회의원, 대통령에 대한 면책규정을 없앴으면 좋겠다.
그래야 국민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저질르지 않겠지..
- 자격요건에 사회봉사활동 200시간 증명을 요구하자.
- 고위공직자에 대한 백그라운드 체크를 오랜시간 들여 꼼꼼히 철저하게 하자.
지역, 정당에 관계없이 좋은 정책, 양심적인 인물을 선택할 수 있는 선거가 되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이 빽투더과거 하여 사람들이 힘들어 하니...지난날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찾은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날들이 지금 이렇게 허망되이 무너지는 걸 보니 허탈함.
지금 한국을 걱정하며 움직이시는 많은 분들..응원합니다.!!!
October 27, 2015
일때문에 집을 떠나, 자취방에 누워서 세웠던 2015년 목표가 세가지 있었는데,
책 10권 읽기와 성경일독은 끝냈고, 마지막 하나 집근처에서 출퇴근 하기가 남아 있었음.
하나님께서 나의 간절한 소망대신 백수 생활을 주셨고, 이제 고르고 골라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아주 작은 회사를 선택해 주신것 같음.
새해에 세운 목표를 끝낼 수 있고, 이뤄지기는 머리털나고, 신앙을 갖고 산 이래로 처음임.
백수탈출도 예상보다 빠름.......ㅎㅎ
3, 투박한 중국여행이야기
1. 중국거지여행
중국어만 사용하는 회사에 있다보니, 예전 백수시절 생각이 남.
미국유학 간다고 회사에 사표를 냈는데, 미국학생비자가 거절됨.
졸지에 백수생활을 시작하게 된때, 중국거지여행을 생각함.
말이 거지여행이지, 그냥 백팩하나메고 배타고 다녀오는것..
때는 바야흐로 1992년 (앗!!! 1992년이 아니라 1996년)…
서점에서 중국여행가이드북 한개 구입함.
계획은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타고 천진에 감.
천진에는 그당시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인터넷까페가 있다고 함.
암튼…가이드북 한개랑 돈 몇푼들고 인천에서 천진가는 배에 탐.
배에는 여행객보다는 보따리상들이 더 많음.
한참을 가는데, 바닷물색이 둘로 나뉨. 흙탕물과 맑은청색….
당연히 흙탕물쪽은 중국..
오랜시간..거의 20시간동안 배에 있었는데, 중국관원들이 비자발급과 입국수속을 위해 배에 탐.
돈을 주고 중국비자를 받음.
천진항 (탕구항…얼마전 엄청난 폭발사고 난곳)에 도착, 하선.
여객터미널 밖에는 낡은차들과 쬐깐한 버스들이 모여있고, 북경, 천진..등 손님을 기다림.
여행가이드북에 있는 지도를 가리키며, 겨우 천진행 쬐깐한 버스에 탑승.
그 당시만 해도 거리에 보이는 차들은 모두 낡고 작고…간혹 고급 승용차들이 보였는데..
암튼…대충 버스에 타고, 그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인터넷까페 근처에 내림.
지도를 보고 걷고, 걸어서 그 인터넷까페를 찾았는데…한국인은 없고, 조선족 종업원만 있음.
사실 그곳에 간것은 하이텔도 쓰고, 숙소정보도 얻고…등등…
날씨는 춥고, 어두워지고….뜨거운 코코아 한잔 먹고, 조선족 종업원의 도움으로 주인과 전화통화를 시도.
….이거야 원….도동놈도 이런 상도동놈이….
가난한 한국인 여행객의 등껍질을 벗겨 먹으려는…..
이런 연유로 중국에 정착해 있는 한국인을 피하기로 결심하고, 그날 묶을 숙소를 찾아다님..
조선족 종원원에 의하면, 무슨 초대소니…그런데 가면 된다던데……무작정 길을 걷다가 초대소가 잠을 잘 수 있는곳인지, 공작원들 숙소인지 알 길이 없어서 포기함.
택시를 잡아서 무조건 가이드북에 있은 온천빈관이라는 곳으로 가자고 함..
온천빈관은 천진시내 근처에 있고, 도착해보니…..고층빌딩으로 된 고급 호텔임.
다시 인천가는 배는 5일후, 토요일…그때까지 이곳에 머물계획을 세움.
그런데….외국인은 예치금이란걸 내야하는데…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내야하는 상황.
다행히 크레딧카드를 받는다 해서 예치금을 현금으로 내고, 나가는 날 호텔비를 크레딧카드로 계산하기로 함.
다행히 이곳에도 조선족 종업원이 있어서 호텔에 투숙할 수 있었음.
…. 다음에 계속…
중국거지 여행 (2)
온천빈관이라는 호텔에서 다시 인천으로 돌아갈 때까지 머물기로함.
천진의 인터넷 까페에서 이곳까지는 작고 허름한…그 당시 티코 크기 정도…택시를 타고, 여행가이드북에 나온 지도에 의지해서 감.
천진시내 대로를 거침없이 달리는데, 정면에서 오토바이, 자전거, 다른 차들이 달려듬.
길위에 그려진 차선이 아무 의미없음.
택시도 중앙선을 넘어 저쪽까지 갔다가 이쪽차선으로 오기도 함.
엄청나게 밀려오는 자전거, 오토바이 가운데를 뚫고 지나가기도 함.
의자와 손잡이를 꼭잡고, 등에는 땀이 솟아남.
가는중간에 갑자기 스틱과 앞쪽 페달…….브레이크인지 가속페달인지 변속기 페달인지..이 분리됨.
엄청 공포에 떨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음.
운전사가 길가에 대충 세운후, 다시 끼운후 달림. ㅎㄷㄷㄷ
이렇게 중국에서의 첫 택시승차를 경험함.
온천빈관에 와서 첫 저녁식사를 해야함.
인천에서 오는 배안에서 중국에서 아무 음식이나 물을 먹으면 큰일난다는 보따리장사들의 충고를 들었던터라 끼니걱정이 앞섬.
그래서 호텔안에 있는 식당에서 해결하기로함.
한국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인지, 메뉴도 한글로 되어 있고, 익숙한 음식이 눈에 보임.
꼬리곰탕을 시킴…
오래기다려 나온 음식은……말꼬리 처럼 긴 내용물이 고무처럼 질김.
뜨거운 맑은(?) 고깃국물에 만족함.
방으로 돌아와서 중국에서 어떻게 보낼까 고민함.
하지만, 중국어도 안되는 상황에서 너무나 막막함.
마침 호텔에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여행사가 입주해 있는것을 발견.
찾아가서 기차로 북경으로 이동하는걸 상의함.
여기저기 전화하더니 기차표를 구할 수 없다는 소릴 들음.
다시 방으로 돌아와서 다음날부터 일단 천진시내 지도를 구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로 함.
천진사범대, 천진방송국타워, 천진동물원…
그리고 북경으로 이동, 관광, 기차로 다시 천진으로 돌아오는 계획을 세움.
호텔에서 보는 천진의 전체 모습은….마치 석탄가루를 뒤집어 쓴것처럼 검게 보임.
여유로운 상태에서 바라본 천진의 첫 모습임.
….다음에 계속….
중국거지여행 (3)
천진 온천빈관에서 다음날 아침..
계획한대로, 천진시내를 돌아다님.
천진사범대 근처 어슬렁 거리기..
천진동물원 가로질러 가기..
그리고 천진방송국 타워에 가서 천진시내를 내려다봄.
서울의 남산타워보다 높은것 같음.
이곳에서 화장실 볼일도 해결함.
화장실은 책이나 여행객들이 말하는 칸막이 없는 그런것이 아닌 평범함.
돌아다니면서 본 천진 시내는....
길거리에 쓰레기통이 많이 설치되어 있음.
사람들은 쓰레기통이 아닌곳에 쓰레기를 버림.
길을 가다보면...캬아~~~칵~~퉤하는 가래침 뱉는 소리 자주 들림.
천진시내인지 변두리인지를 가로질러 흐르는 물이
걸죽한 까만색.....마치 유전에서 석유가 흘러가는듯한색...
냄새는 시궁창 냄새...
점심과 저녁을 위해 중국슈퍼마케에 들어감.
빵과 바나나 한뭉텡이를 들고 계산대에 있는 점원(? 공무원)에게 모택동이 그려져있는 지페를 줌.
은행에서 바꾼 아주 빳빳한 종이돈이 었는데,
이사람이 마구 구기고, 비비고 하더니 걸레를 만들고, 불빛에 비춰봄.
동전여러개와 작은 지폐를 거스름돈으로 받음.
호텔에 와서 배터지게 먹고도 많이 남음.
다음날은 북경을 가보기로 함.
가이드북에 천진에서 북경까지 한국의 코오롱고속이 노선을 운행한다고 함.
다음날 아침. 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감.
아침에 많은 젊은 미인 처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님.
고속버스는 아주 쉽게, 중국어를 안하고도 표를 구입함...
천진에서 북경까지 연결된 고속도로는 마치 이 고속버스만을 위한듯...
차가 한대도 다니지 않음.
마침내 약 2시간을 달려 북경에 도착함.
첫 목적지는 천안문광장을 선택함.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서, 자전거를 개조한 삼륜자전거를 타고 천안문 광장앞까지 이동함.
운전하는 사람이 엄청 고생함.
얼만지는 모르지만, 지폐하고 동전 굴러다니는것 마구 줌.
그 유명한 천안문 광장에 감.
막상 가보니...별로 넓지 않음.
책에서 보던 도랑식 화장실을 보기위해 찾아감.
광장앞에 지하도를 이용해서 다녀봄.
그 유명하다는 자금성은 그냥 멀리서 보는걸로 만족함.
이미 영화에서 많이 봤으므로...
광장에는 인민군병사들이 여럿있는데...엄청 어려보임.
점심이 되어 배고파 다시 끼니 걱정을 함.
다행히 맥도날드가 보여 거기서 세트메뉴 하나 주문해서 배를 채움.
가이드북에 천안문광장 근처에 동인당 제약이 있다고 써있음.
우황청심환이나 구심을 한번 구입해 볼까??/ 하고 가보기로 함.
동인당 제약은 광장 앞쪽 큰 건물이 있는곳에 시장이 있는데, 그 근처에 있음.
한국사람들이 여럿 지나갔지만, 모른체함.
동인당제약은 한약방인데....건물이 3층인지 4층인지 아주 큼.
사람도 바글거리고...
ㅎㅎㅎ 구심을 사고 싶었는데, 말이 통하지도 않고, 여기저기 다니다 포기함.
동인당 제약앞 시장을 헤매는데, 얼굴에 검댕이 묻힌 어린 여자 거지애가 뭔가를 달라고 함.
주머니에 지폐가 몇개 굴러다녀서 마오쩌둥있는 지폐 한두장 줌.
계속 길을 가는데, 거지 여럿이 몰려오더니, 어른 여자거지가 자기도 달라고 함.
그래서 작은 종이 지폐랑 동전 몇개 쥐어줌.
그랬더니 막 화를 내면서 쫓아옴.
무서워 막 도망침....ㅎㅎㅎ
기차타고 천진을 가보자 라는 생각을 하고, 북경역을 향해 걸어감.
많은 시골 중국사람들이 나한테 길을 물어보는듯함.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으므로 그냥 감.
북경역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매표소를 가봐도 알 수 없는내용만...
ㅎㅎㅎ 기차도 포기...
기차역 근처에 작은 봉고차 같은 것이 늘어서 있음.
어떤 사람이 나를 잡더니 중국말로 뭐라함.
못알아들으니 한꿔? 함...한국사람이냐?? 한거겠지..
보니까 만리장성 관광모집하는 중..
일단 차에 탔는데, 갈 생각을 안함.
차에서 나와 다시 고속터미널로 감.
천진가는 코오롱고속을 타고 천진도착...
호텔에서 편히 지냄.
...다음에 계속...
중국거지여행 (4)
드디어 천진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남.
그런데...이상하게 얼굴이 따갑고 쓰라리고....
피부가 엄청 거칠어짐.
사람들 말에 의하면, 중국물이 쎈물이라 그렇다함.
아침...체크아웃을 하고, 디파짓했던 돈을 돌려받고 안심이됨.
일단 천진시내를 마저 구경하고, 탕구항으로 이동하기로 함.
탕구항 입구에 보따리상들이 애용하는 호텔이 있다함.
탕구항 근처까지 이동한후, 오토바이를 개조한 택시를 탐.
지도와 주소를 보여주여 호텔까지 부탁함.
주머니에 있던 지폐와 동전 모두를 택시비로 지불함.
운전사가 너무 감격해서 호텔 문앞까지 태워줌.
호텔에 식당이 딸려있는데, 조선족 아줌마가 있음.
조선족아줌마에게 영양크림을 얻어 얼굴에 바름.
따갑고 쓰라리던 얼굴이 조금 괜찮아짐.
호텔은...말이 호텔이지...
무슨 군대시설처럼 생김.
뜨거운물도 안나오고....침대는 군병원침대처럼 생김.
다음날 아침, 배타는곳으로 걸어가서 배표를 사고 인천행 배에 오름.
역시나 배에는 인천으로 돌아가는 보따리상들이 엄청많음.
인천이 가까워지니 보따리상들 움직임이 바뻐짐.
큰 이민가방에는 참깨, 들깨, 콩이 압축되어 가득 들어 있음.
이런가방을 한사람이 여러개 가지고 있는데, 인천세관에 새로운 사람이 왔다고함.
그래서 한사람 앞에 가방 하나만 허용된다고 서로 걱정을 함.
근처에 있는 짐이 적은 사람에게 가방하나씩 맡김.
나도 하나 맡았는데...무게가 거의 100킬로 이상되는듯...
인천세관을 통과하는데, 가방을 압수당함.
졸지에 밀수입한것이 되어 버림.
가방주인에게 가방압수 당했다고 얘기하고, 집으로 향함.
그 가방때문에 세관에서 2시간정도 잡혀있었음.
어쩌면 한국세관에 곡물밀수업자로 등록되어 있을지도 모름....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중국이든 남의 나라가려면 자세히 준비하고 가야겠음.
외모가 중국사람같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중국인들이 아주 친절하게 대해줌.
길가다보면 중국말로 막 길을 물어봄.....ㅎㅎ
여기 미국에서도 중국사람들이 막 중국말로 말을 검.
그래서 그런지...일하는 회사에서도 중국말밖에 안들림....
....이상 횡설수설....중국거지여행 끝...
방금 정태춘,박은옥님의 딸 정새난슬님의 페친으로 등록!!
사실 정새난슬이란 이름은 예전 정태춘박은옥의 음반과 누렁송아지라는 책에서 봐서 알고 있었는데, 어느덧 세월이 이렇게 흘러 페이스북이란곳에서 보는군요.
정태춘박은옥의 노래는 1981년이던가?? 고2때 친구 동생이 무진년새노래??음반을 보여줬는데, 그때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때 난 복음성가에 빠져있었기에.
고교졸업후, 회사를 다니면서 518 10주년 공연이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있었는데 그때 정태춘님의 힘찬 노래, 맑은 사상에 감동.
결혼후 수원예술극장에서 한 정태춘박은옥 공연에 마눌님과 함께 보고, 박은옥님의 쟁반위에 옥구슬 구르는듯한 노래에 깊은 감명받음....
...ㅋㅋ뭔소리가 중구난방인지...
그냥 페친등록 기념으로..ㅎㅎ
옛날 1989년에 구입한 누렁송아지...
이 책에 정태춘 고교 졸업사진이 나오네요.
옛날 평택종합고등학교 정문인데, 이학교가 나중에 평택고등학교와 평택공고로 나뉘고, 평택종고 자리는 평택공고에서 사용.
그래서 이교문을 3년간 드나드는 동안 그대로 있었는데, 지금은 변했겠죠?
처음 입학할 때에는 아름다운 석조건물의 화공관이 있었고, 거기에 도서관, 벽에는 담쟁이 넝클, 나뭇잎으로 여름이면 건물이 푸른색이 었는데...
그리고, 엄청 큰 나무로 된 목조건물인 본관건물이 있었는데....
모두 허물고, 볼품없는 콘크리트 건물만 덩그라니...
...
December 12, 2015
철수씨를 왜 자꾸 잡으려는지 이해가 안감.
그냥 잡으려는 흉내만 내는것이면 이해가 감.
원래 철수씨는 정치인이 아니었고, 별로 정치에 영향력도 없는 인물임.
그런 인물을 마치 정치계의 혜성같은 존재로, 어두움에 빛을 주는 존재로 여기는 정치인들의 뇌구조가 궁금함.
일반인이 모르는 무슨 슬픈 사연이 있는것임??
외교적으로 잘했단 말을 들으려면,
점잖게 몇마디해서,
- 죽을죄를 지었쓰무니다.
- 잘못을 기록해서 자손만대 용서를 구하겠쓰무니다..
- 피해보상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지만, 3대까지 불편없이 살 수 있게 지원하고, 한국정부가 하라는대로 하게쓰무니다.
- 독도를 주제넘게 넘봐서 미안하무니다.
- 태평양전쟁 전범들 찾아내서 다 처단하겠쓰무니다.
- 한국에 있는 친일매국노들에게 정신차려라고 말하겠쓰무니다...
...
등등이런말을 일본왕, 총리, 대신들로부터 얻어내야 조금 잘했구나 하는 소릴들는거지..
굴욕적으로 일본요구를 그대로 들어준게 외교적으로 잘한것???
어이가 없구만~~
어느집 자손인지...ㅉㅉㅉ
5, 고등학교 졸업후 삼성에 고졸사원 5급으로 취업하여 생활했던 이야기
지금 시대에는 고졸자가 대기업 임원이 된다는 것은 꿈도 못꿀일인것 같다. 예전에는 고졸공채도 있었고, 고졸을 채용하는 회사도 많았는데, 요즘은 그런것이 다 없어진듯....
내가 지금시대 20대초라면, 그리고 만약에 고교졸업하는데, 어디 취직자리 못구한 상태라면....흙흙...앞날이 깜깜하다...이런 생각을 하면 자면서도 눈물이 쏟아질 듯하다.
여상을 졸업하고, 삼성전자에서 반도체설계로 임원까지 올랐다면...
미국에서 박사받고, 미국에 있는 애플, 인텔같은 회사에서 일하다가 삼성전자에 상무로 입사한 사람들보다 몇배 노력한 사람이고, 뛰어난 사람인것 같다.
잘됐으면 좋겠다.
1980년대 고졸로 삼성전자입사해서 일한다는것이 얼마나 힘든지 조만간 써 볼 예정. 육체적으로 힘들기 보다 정신적으로....
1980년대 삼성전자 입사 고졸이 월매나 힘든지 쓸까 했는데....
그냥 나의 삼성전자 입사 후기처럼 됐음.
어쩌면 내용중에는 그당시 느꼈던 차별같은것이 나올 수도 있음.
가능하면 폐북에 있는 아는 사람의 이름은 쓰지 않을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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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입사시험
내가 다니던 학교는 기계공고임.
전기과에서 전기공사와 전기기계 (모터제작) 등을 배움.
그 당시에는 대학입시에 동일계 진학 혜택이라는 것이 있었음.
그래서 3학년되면 진학반과 취업반으로 나뉨.
그 당시 전국 대학진학율은 20%정도 임.
대학입학해서 졸업하면, 대부분 취업되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었음.
고등학교 졸업하고도, 취업을 했다가 대학도 갔다가 하기도 함.
암튼...
3학년때 진학반을 택했음.
어느날 애들이 교무실로 몰려감. 뭔일일가 따라갔다가, 진학반 포기하고, 삼성그룹 공채 원서를 쓰게 됨.
울 학교는 전자과가 없는데, 전자과와 기계과 원서만 옴.
할 수 없이 전자과 원서쓰고, 다른 학교를 졸업한 교회 사찰 집사님 아들에게 전자공학, 전자기기, 전재재료 교과서를 빌림.
시험이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아서, 책한권을 읽는다는 기분으로 두번 흩어봄.
시험장소는 수원에 있는 수원공고...
여기저기에서 공고 공돌이들이 잔뜩 몰려와서 껄렁하게 몰려다님.
그당시 시험은 보통 10분안에 끝내고 자는것이 공고생의 기본자세임.
왜냐하면 모르는것 오래 들여다 본다고 아는것이 아니기 때문임.
시험은 2시간인지 4시간인지 걸쳐 본것 같음.
전공과목과 국어, 교양??
진짜로 거짓말 안보태고 시험은 길어야 한과목에 10분 걸림. ㅋㅋㅋ
남들은 어려웠다는데...난 왜 빨리 끝낸건지....
우짜됐든....합격을 했는데, 울학교에서 4명이 합격...기계과 3명, 전기과 1명.후에 기계과 3명은 삼성전과 2명 삼성코닝 1명..에서 일하게 됨. 일단 합격은 했지만, 뭘 어찌하는지 모르고 잊혀졌음.
면접을 보러, 수원삼성전자에 집합함.
지금은 없어진, 콘센트막사에 있던 흑백사업부의 회의실에서 면접을 봄. 이런 일이 처음이라 떨리지도 않았음.
그당시 인력관리팀 이사였던 이해규이사와 몇명이 면접관으로 있었음.
질문은 "입사후 대학진학을 하려는가???" 였는데,
일하다가 더 배움이 필요하면 대학을 가서 깊이 있게 배워야하지 않겠나....라고 대답했던것 같음.
면접이 끝나고, 제1식당에 모여서 적성검사 시험을 봄.
적성검사는 그당시 IBM 무슨 적성검사라고 불렀던것 같음.
수많은 숫자가 빽빽하게 있는데, 두 숫자를 계속 더하는 것임.
아주 힘들게 눈이 빠지게 덧셈을 하고 마침.
어느날 교무실에서 불러 가보니, 신체검사를 하라고 함.
장소는 수원에 있는 경기도립병원...
집에 수원갈 차비도 없을 정도로 가난했기에, 양복점을 하시는 큰외삼촌께 말씀드리고 차비를 받음.
수원엔 지나가기만 해봤지 가본적이 없음.
겨우 찾아가서 신체검사를 받음.
그런데....이상한 일이.....처음보는 간호사가 날 안다고 함.
그러면서 수줍게 웃음.......왜??? 왜때문에??
유명인도 아닌데...암튼...그 당시 쑥맥중에 쑥맥이었던 관계로 금방 잊혀짐.
그런데...누구였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오랫동안 났었씀.
.....계속...
응답하라 1983이 되고 있는듯....
2. 연수원, 그리고 첫 출근..
고3 겨울방학이 됨.
회사에서 집으로 연수원입소 통지가 옴.
수원삼성전자 정문에 모여 버스를 타고 용인에 있는 동방연수원으로 가는것임.
때는 바야흐로...1983년 1월 3일...수원 삼성전자 정문..
시험장에서 봤던 애들이 많이 보임.
회사버스를 타고 용인 자연농원을 지나 지금의 호암미술관 옆으로 난길로 쭉 올라가면, 산꼭대기에 동방연수원이라고 있었음.
당시에는 동방생명이었는데, 나중에 삼성생명으로 이름이 바뀜.
그 연수원은 그 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었음.
연수 내용은,조 구성, 조노래, 무슨 분임토의, 발표....가 밤 10시정도까지..계속되고.....피곤함..
아침 6시전에 일어나서 한겨울에 체조하고 산아래까지 구보....
를 며칠동안하고, 마지막날 MAT라는걸 하는데, 무슨 마지널 액티비티 트레이닝?? 한계극복훈련?? 이라나?? 기억안남~
이게 뭐냐하면, 자연농원을 둘러싼 산이 있음.
산꼭대기에서 산꼭대기로 돌아, 다시 동방연수원으로 돌아오는것임.
물론 각 꼭대기에는 연수팀 교관들이 뭘 외우게 하고, 노래부르게 하고, 땅에 구르게 하고...
그렇게 해서 빨리 들어 오는 순서대로 점수를 메김.
일정은 아침 일찍 시작해서....보통 저녁 8시에 동방생명 연수원 운동장에 도착함.
도착하면 98%는 알이베겨서 걷지를 못함.
암튼...이런 연수교육을 받고, 희망회사, 부서를 적어서 제출함.
연수성적 1,2,3등은 보통 1지망회사, 1지망 부서로 감.
(연수성적 2등을 했다고 밝히지 못함....)
연수를 마치고, 삼성전자 종합연구소로 발령남.
(예전에 페복에 이때 받은 사령장 사진을 올렸음.)
연구소 연구관리팀에 갔더니, 어느 조그마한 회의실에 대기시킴.
동기들이 몇명있음.
잠시후, 각부서에서 사람이 와서 한명씩 데려감.
나는 제8연구팀으로 감.
아직 작업복도 없고, 겨울이라 두툼한 잠바를 입고, 어리버리하게 사무실안 작업대에 앉아 있었음.
그때 과장님 (지금은 광주기술원 교수님)이 문서수발신을 담당하라고 함.
다른 부서는 서무역할을 하는 여사원이 있었는데, 우리부서는 서울에서 내려온 팀이고, 서울에도 팀이 있었음.
암튼 내 첫일은 업무연락전에 수발신 도장을 찍고 보내는 일이었음.
집이 송탄이라서 수원버스터미널이나 수원역에 시간맞춰 가야 통근열차를 타거나 비둘기호를 탈수 있었음.
그당시 송탄역은 간이역이라 하루 3번만 기차가 정지함.
요즘은 전철이 다니드만...세상 좋아짐.
그렇게 어리버리하게 사회 첫직장 첫일을 시작함...
....계속...
3. 어리버리 신입사원 시절
그때의 삼성전자는 작았음.
전체인원 12,000명 정도.
반도체사업부가 삼성반도체통신이라는 회사로 간지 얼마안된 싯점 같음.
수원에는 관리본부, 종합연구소, 그리고 각 사업부가 있었는데, 각 사업부에는 개발부와 생산관련 부서가 있었음.
동기들은 연구소, 개발부 몇을 빼고, 대부분 생산관련..품질관리, 생산기술, 생산부에 배치 된듯함.
반도체는 다른회사이지만, 들리는 소문에 엄청 오랜시간 일을 한다고 들음.
그리고 대부분 병역특례 혜택을 받음.
암튼 삼성전자 종합연구소 제8연구팀에서 연구원보 라는 직급으로 일을 시작함.
그당시 직급 구성은..
대졸: 3급
전문대졸: 4급
고졸: 5급 (26호부터 시작해서 다음해에 25, 24, 23....호봉이 됨)
직책은
연구원보(5급), 연구원(4,3급), 선임연구원(2급, 과장), 책임연구원(1급, 부장) 이었던것 같음..
내가 일하는 부서는 퍼스널컴퓨터를 개발하는 팀인데, 이미 개발이 되어, 시생산및 전시회출품, 사용설명서 제작등을 하고 있었음.
사실 나는 타자기도, 컴퓨터도 책에서 사진으로만 봤었고, 컴퓨터가 그렇게 작게 나올 수 있다고는 생각도 못했음.
왜냐하면....아무런 생각이 없었기에...
또 학교에서 배우는것이 전기공사라든지, 전기기계 같은걸 공부했는데, 디지탈로직이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일을 시작함.
그렇지만, 눈치밥 먹고 자라고 쉽게 따라감.
컴퓨터에는 BASIC이 내장되어 있었는데,.....ㅋㅋㅋ 프로그래밍이라는 걸 그때 처음 배움.
베이직인터프리터는 문장입력하고 끝에 엔터키를 눌러야 하는데, 책에 있는 프로그램을 따라 입력한다고 커서키를 이용해서 똑같이 입력함.
RUN을 하면...돌아갈리있나...아무것도 입력된것이 없는데...
그때 라인끝에서 엔터키를 치면 문번호에 딸린 문장이 입력된다는걸 느낌(?...알지는 못했고..ㅎㅎ)
함께 일했던 분들은 대단한 경력, 학력을 가진분들이었음.
서울대, 연고대, 카이스트에 일본어를 일본사람처럼..그리고 회로를 그냥 쓱쓱쓱....
처음 만져보는 오실로스코프 파형은 참으로 신기했음....
첫월급타고 서울 종로서적에 가서 책 2권을 구입함.
디지털논리회로설계(정익사.), Z80마이크로프로세서..
Z80마이크로프로세서는 번역판인데, 아주 자세한 설명이 나오지만, 그당시는 까막눈이라 읽어도 무슨 소린지 알길 이 없었음.
특히, 중요한 타이밍차트는 이게 무슨 소린지..머쉰싸이클이 어쩌구, 리드싸이클, 롸이트싸이클....
그래도 계속 들고 다니며 보니 눈에 익숙해짐.
그리고 마이크로프로세서, 컴퓨터가 어찌 돌아가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함.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한심했던 시절이었음.
하지만 이해가 가는것이 그런 교육은 고등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이 었음.
...
그렇게 이동네 경력을 쌓게 됨...ㅎㅎ
...계속...
4. 첫월급, 첫 상여금
회사생활 얘기하면서 월급얘기를 빼먹을 수 없음.
고졸과 대졸의 차별이 여기서 크게 느껴짐.
고졸은 입사후 3개월까지 수습사원임.
이기간 동안 정규월급의 75%를 받은것 같음.
약 12만원을 받았고, 3개월후 15만원을 받음.
하지만 대졸은 수습기간이 없었던듯.
(대졸도 수습기간 있었다는 증언이 접수됨)
첫 추석상여급..
원래는 100%임. 들뜬 마음에 받은 것은 4만원??!!
대졸은 본봉의 100%...!!!!
어렵게 찾아본 규정집에 고졸은 1년미만 30%던가??
대졸은 1년미만이거라고 100% 지급 이라고 나옴..ㅎㅎ
동기들하고 첫 추석상여금 받은날 모여 성토하던 기억이남. 다른 동기들은 열받아서 술로 날려 버렸다고 하고...
암튼...첫 추석상여금으로 고졸차별을 느껴봄.
... 계속...
5. 주제달기 귀찮음..
직급이 대졸은 3급이지만, 그 당시 이 3급, 대졸이라는 말은 여자에겐 해당되지 않는 단어였다.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1983-1985,6년경에는 여자는 4급이었다.
사무실이 서울 강남 뉴욕제과 옆 기남빌딩이라는곳에 있을 때임.
대졸 신입 여사원이 몇 있었던걸로 기억함. 우리팀 말고 다른부서..영업, 마켓팅, SE...
하는 일은 고졸 여사원보다는 더 일같은 일을 했겠지만 차별은 아주 심했던듯...
우리쪽엔 그런 대졸여사원이 없어서 잘모름..
대부분 결혼과 함께 보이지 않음.
당시는 결혼은 퇴사였음. 여자들만.
남자는 결혼하면 버스대절해주고 돈 주고 각부서에서 축하해주러가고...
그때 기남빌딩 10층부터 15층까지 삼성전자 컴퓨터 사업부가 썼는데, 어떤 대졸 여사원이...우리가 커피탈려고 입사했냐 하고 불평하는 소리를 엘레베이터에서 함.
..
암튼 그런일이 있었음.
사실 그때는 그런일에 관심도 또 보이지 않던 시절임.
한국에서 고졸로 또는 여자로 사는것은 그때도 좀 힘들었음.
...
...계속...
6. 대졸자와 고졸자 임금격차 해소
해마다 뉴스에는 대졸자와 고졸자의 임금격차가 줄어들고 있다고 떠듬.
물론 지금 막 고딩졸하고 대딩졸하고 급여가 같다면 그건 좀 이상함.
하지만 고등학교졸업하고 한곳에서 경력을 6-7년 쌓은 사람과 아무런 경력없이 대학졸업한 사람의 경력을 비교해 보면 나옴.
당시 고등학교 졸업하고도 경력이 상당히 많은 고졸자들이 진급시험을 안보고 계속 호봉만 올라가는 경우가 있었음.
그 사람들 실력은 상당해서 대졸신입사원들에게 기술교육을 시킬 정도임.
암튼...
그 사람들과 대졸신입사원의 월급은 처음에 별 차이가 없음.
그런데, 다음해 호봉이 올라가면, 월급이 인상이 되는데.....그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함.
예를들면, 이번해 고졸자 월급이 10,000원이고, 대졸자 월급이 10,100원이라 하면, 다음해 인상율 3프로라 치면, 고졸자는 월급이 13,000원, 대졸자는 13,030원이 되어야 하는데........
대졸자의 월급은 15,000원이 되어 있음.
그 다음해 고졸자는 14,000원이 되면, 대졸자는 20,000원....
그러다 대졸자가 대리, 과장달고, 고졸자는 4급이거나 진급해서 3급이 되더라도 월급은 상당한 차이로 이미 벌어져 있는 상황이 됨.
거기다가 상여금 나오는 때가 되면...기분이 좋다가도 기분이 씁쓸해짐.
회사에서는 상박하후(上迫下厚...맞는지 몰겠음)라고 열심히 광고함.
받아보면.....그게 상박하후면....ㅎㅎㅎ 일단 기준금액이 다름.
거기에 퍼센트가 약간씩 다름.
고졸자가 10,000원을 보너스로 받았다면, 대졸자의 보너스는 20,000원 정도...
어떻게 이런걸 알수 있냐 물으신다면..
그당시에는 월급, 보너스가 현금으로 나오고, 각부서 서무과 경리부에 가서 전체 월급을 수령해옴.
그런다음 봉투에 넣고 명세서를 넣고 주는데, 받은 사람은 받았다고 리스트에 도장을 찍어야 했음.
그때 부서 전체 인원의 급여액, 보너스가 얼마인지 알 수 있었고, 나 자신도 직접 경리부에 가서 전체 인원 급여를 받아 온 경험이 있음.
후에 회사랑 계약된 외환은행 계좌로 월급이 자동이체 되어 현금을 만져 볼 수없는 시대가 도래함.
그때 만든 외환은행 계좌를 아직 사용중이고, 자다가도 탁 치면 계좌번호가 자동으로 나옴.
암튼...해마나 나오는 고졸자 대졸자 임금격차 해소라는 뉴스를 보면서 쓴 웃음 지은적 있음. ....거짓말쟁이들....
...계속 ....
어느덧 나으 삼성전자 생활기가 되어 부렀네...
7. 제품 강매
한국에서 회사원 특히 제조업을 하는 회사 직원은 좀 힘듬.
회사에 입사한 첫해..여름쯤 우리부서는 종합연구소를 떠나 컴퓨터사업부에 소속되었음.
그래서 사무실을 강남 뉴욕제과 옆 외환은행이 1층에 있는 기남빌딩이라는 곳으로 이사함.
바로앞에 강남역 지하상가 입구임.
비록 송탄에서 출퇴근하는 촌넘이었지만, 서울에 근무하는 사람은 일종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시절임.
그 당시 삼성 이코노칼라텔레비전 (14인치)이 양산되던 시기임.
회사에서 느닷없이 텔레비젼을 팔으라고 함.
5급 1대, 4급 3대, 3급 5대, 과장 10대, 부장..20대????
내 월급 15만원, 텔레비전 1대가격 25만원 하던 시절임.
집은 가난해서 텔레비전도 없는데.....
암튼 싸들고 집까지 왔음. 그 큰박스를 보자기에 싸서 버스타고 기차타고...송탄까지....엄청 힘들었음..
그걸 엄마가 어찌해서 팔았던것 같음.
그 당시 송탄에는 미군들이 많고 산에서 보면 텔레비전 안테나가 엄청나게 많이 보였음. 그리고 AFKN이 잘 잡히는 지역이었음.
다른 사람들은 팔다가 포기한 사람도 있었던것 같음.
이런 제품판매는 그때 한번만 있었던것이 아님.
수시로 텔레비전, 냉장고, 전자렌지, 에어콘, 중앙일보 등을 팔라고 함.
각 부서장들은 팔지 못하면 여기저기서 안좋은 소리를 듣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팔라고 얘기를 함.
이런일이 잦은 상황에 동아일보에 삼성전자의 제품강매에 대한 기사가 나온적이 있음.
회사는 좋았는데, 제품강매때문에 점수 많이 깍임...ㅎㅎ
...계속...
8. 창고정리
내가 있던곳은 개발팀이었기에, 창고에는 참고로 했던 외국제품, 시제품, 각종 부품들로 창고가 가득 차는 경우가 많음.
그래서 1-2년에 한번 창고 정리를 함.
그 당시 외국에서 사온 제품은 연구개발 참조용으로 과학기술부 장관의 추천서와 함께 수입이 된것이라 함부포 폐기할 수 없는것이지만, 유효기간이 지난것들이 창고에 많이 쳐박혀 있었음.
그걸 사원들에게 주면 좋으련만.....
모두 폐기처분해야 하는것들임.
창고에서 모두 들어내옴.
애플IIe, IIc, 리사...
시제품 한글터미널, SPC-1000, SPC-2000,
각종 일본제 PC, PCB...등등.....
5급사원들 모여.....ㅋㅋㅋ
입사후 진급안하고 거의 7년쯤 지났던 시기 같음....
대졸신입사원들은 대졸이라고 힘든일 시키지 않음.
고졸은 나이있고, 경력있어도 고졸이라 험한일 함.
그날 새신발 신고 출근했었는데, 서러워서 모니터를 발로 으깸.
미친듯이 애플이고 뭐고 완전 걸레로 만들어 버림.
우리의 손때가 묻었던 시제품들도 함께......
그 물건들중에는 한국최초라고 불렸던것들도 있었는데...ㅠㅠ
.....계속....
삼성에서 고졸이 얼마나 힘든지 쓰려고 했는데...힘들었던 얘기는 별로 없네요^^
9. 교육
당시 삼성전자는 교육시스템이 좋았던것 같음.
내가 받았던 교육을 함 리스트해봄.
1. 품질관리 분임조장 교육 (3박4일)
2. 마이크로프로세서 하드웨어와 프로그램
3. 유닉스와 C (3주합숙)
4. 소프트웨어 중급 (4주합숙)
5. 디지털 통신 중급(1주 합숙)
6. TQC 교육
7. 마켓팅교육
8. ERP
9. 그외 사내통신교육 (무역실무, 회계, 일본어, 영어)
10. 그룹인력관리원 교육 --> 2달간 신입사원 교육을 위해 연수원 파견...
요즘은 이렇게 교육받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됨..
...
이제 급마무리 할까함.
쓸얘기 많지만, 푸는 재주가 미천해서 힘듬.
옛날 고려짝 1980년대에는 가난해서 대학못간 우수한 고졸인재들이 많았음.
이번에 "더민"에 가신 그 양모라는 분...
그런 분들이 삼성에 무척 많았음. 나도 그중에 한사람이야~~~ 라고 할려해도 그 사람들을 따라가려면 지금의 10배이상을 해야함.
스스로 돕고, 하늘이 돕는 사람은 눈에 띄게 마련임.
아무쪼록 구태정치인처럼 마음이 더럽혀지지 않았으면 좋겠음.
잘됐으면 정말 좋겠음....행운을 빔★★★
....... 갑자기 끝 ....ㅎㅎ
옛날 얘기를 하던김에.....
삼성그룹신입사원 교육선배 경험에 대해서 쓰겠음.
삼성전자에서의 생활이 어느덧 10년이 넘은 싯점임.
어느날 인사부에서 연락이 옴.
삼성인력개발원에 1주일 합숙교육 가라고...
집에 돌아와 짐을 챙겨 용인자연농원 옆에 위치한 삼성그룹 연수원 창조관에 도착함.
용인자연농원지역에는 3개의 삼성연수원이 있었음.
첫번째가 호암미술관 뒷편에 창조관이라고 새로지은 연수원이 있었는데, 시설이 좋고, 교통이 편리한 장점이 있음.
그 뒤로 산윗쪽으로 조금 가면, 예전 삼성그룹 종합연수원이었던 호암관이 있는데, 오래된 건물이라 좀 낡았고, 호암미술관까지 경사도로를 따라 한참 내려가야함.
예전에는 이 종합연수원에서 외국어연수도 하고 그랬던것 같음.
그 다음이 산꼭대기에 예전 동방연수원이었던 삼성생명연수원.
여기는 산꼭대기로 차타고 한참가야하고 호암미술관까지 한참 내려감.
왜 호암미술관까지를 자꾸 말하냐 하면........
매일 새벽 연수원 운동장에서 호암미술관까지 구보를 하는것이 아침의 시작임. 한번 아랫까지 뛰고 나면 숨이 멎을것 처럼 힘듦. 다리에 알도 베고...
삼성그룹 전 회사에서 수십명의 사원들이 모였음.
모두 고졸사원으로 입사한지 10년이 넘은 사람들이었음.
교육은 정신교육, 토의, 그리고 사원교육시 해야 될일, 강사섭외,...등..
교육이 끝나고, 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시 연수원으로 모이라고 함.
다시 모인 날부터 3-4일간 교재를 테이블에 세팅, 강사리스트 점검, 연락처 점검, 관계사 견학 일정 점검, 연락등의 일을 함.
교재는 각 테이블에 지정해준 순서대로 지정된 위치에 놓는데, 오차는 약 5미리 정도....
드디어, 첫 깃수 수백명이 전국에서 몰려옴.
우리를 교육선배라고 불렀는데, 한깃수에 12명 정도였던것 같음.
교육선배 인원수에 맞게 교육생들을 나눔.
교육선배는 일종의 담임으로 생활을 함께 함.
교육생은 거의 20명이 한팀이었던 것 같음.
첫날 저녁, 교육생 한명씩 불러서 마주 앉아 배경조사를 함. 성격,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그날 부터 각인원을 매일 매일 관찰함.
관찰된 사항은 나중에 교육수료에 반영됨.
우리 교육선배들은 어디서 배웠는지는 모르지만, 연수기간중 생일 맞은 친구를 깜짝 눈물 확 쏟게하는 이벤트를 함.
뭐...연수원 전통이라나???
즉, 정신교육이나 무슨 시간에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든후, 그 팀전원에게 벌칙을 아주 심하게 줌.
그런다음 생일케익을 주고...뭐...재미도 없고 놀랍지도 않는데...함.
각 팀마다 평가 점수가 있고, 또 교육선배의 체면에 관련있다고 하여, 경쟁이 아주 심함.
심지어 체육대회를 하면 서로 애들에게 먹을것을 사주면서 1등을 하라고 함. 모두들 거의 미친듯이 뛰고 응원가 부르고, 웃통벗고....
대부분의 일정은 평범함.
정신교육, 호암의 경영철학, 삼성정신, 외부강사 강연...
분임토의, 발표...
그리고 관계사 견학, 마지막으로 극기훈련...
관계사견학은 교육생이 아니더라도 좋은 경험이었던것 같음.
주로 창원에 있는 삼성중공업, 삼성항공, 구미 제일모직, 제일합섬을 보고....부곡온천에서 1박을 하고 연수원으로 돌아오는 일정임.
에피소드 하나...
우리 교육선배들은 신사복처럼 생긴 교관복이 있었음.
부곡고온천에 있는 호텔에 애들을 각 방에 배정하고 점검을 다니던 시간이 었음.
애들이 떠들고 그래서 각방을 다니며 주의를 주고 다니는데, 방하나가 문이 활짝 열려있고 엉망이었음.
모두들 주의주러 들어갔는데...그리고 교육선배중 하나가 뭐라고 하려는데....분위기가 이상한것임.
여자가 있고, 남자도 있고.....보니까 교육생방인줄 알았는데....일반 객실이었던 것임.
원래 그 한층을 다 우리가 사용하기로 되어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암튼 엄청 창피하고 그래서 도망쳐 나왔던 기억이....
관계사 견학이 끝나고 돌아오면, 또 애들 극기훈련이 있는데,
자연농원을 둘러싼 산꼭대기를 돌아서 오는것임.
예전 신입사원때는 힘들게 다녔지만, 이번에는 교관이 되어, 산꼭대기 한지점에서 교육생들을 기다리는것이었음.
교육생들이 도착하면, 문제를 주고 풀게 하고, 출발전에 체조시키고, 굴리고...
밤이 되어 연수원에 도착한 애들 보면 옛날 생각이나서.....
.
.
.
.
.
불쌍했음.
교육생들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고, 우리들은 뒷정리를 하기 위해 2-3일 더 연수원에 남음.
결과와 과정들 자아비판하고 다음 교육생 받을 준비를 함.
그 사이 자연농원에 놀러감.
예전에 88디스코라는 놀이기구가 있었는데, 우리 모두 연수원복장으로 갔었음.
그 놀이기구를 조작하는 애가 연수받을 때 안좋은 기억이 있었는지....
우리에게 보너스로 마구 시간을 연장해서까지 돌림.
이일로 며칠동안 속이 메쓱거렸던 적이 있음.
그때 충격으로 지금처럼 머리가 나빠진것 같음.
함께 교육을 진행했던 사람중에 거제 삼성조선에서 온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는 진지한 표정으로 아주 엽기적인 얘기를 많이 해서 배꼽빠지게 해줌.
주로 참새구이 먹는 얘기와 보신탕 얘기였는데, 참새구이는 머리를 구워서 먹는게 맛있고,
개는 머리를 먹을때 코부터 먹어야 맛있다는등....
그떄는 낙엽이 구르기만해도 웃기기만 하던 때이긴 하지만....
고졸그룹공채교육과 대졸그룹공채교육은 차이가 있었음.
고졸은 2주동안이었고, 대졸은 3주던가 4주였던걸로 기억함.
옛날 "맨땅에 헤딩하기"라는 미코출신 신입사원이 쓴 책에도 나오지만, 고졸들에게는 그룹사 제품을 팔아 연수원으로 돌아 오는 교육이 없음.
또 각사에 배치되어 일하는 동안, 첫해 여름에 덕유산에서 진행하는 삼성그룹 신입사원 하계수련대회 같은것도 하지 않음.
지금은 어찌 변했는지는 모르겠네.....
.. 끗 ...
(연재되는데로 업데잇트 할겁니다. 책으로 출판할 생각도 있는 저작권이 있는 저작물이니 허락없이 배포하거나 내용물을 가공하거나 표절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지금까지 지나온 나의 일생을 조금씩 나열해봤음.
글을 쓰면서 음습체로 쓰는 이유를 생각해봄.
음습체로 쓰면
- 아무생각없이 쓸수 있음
- 미사여구나 장식글을 넣을 필요없음
- 글에 내 감정을 넣지 않게됨
- 그냥 쭉 생각나는대로 나열할 수 있음.
반면, 궁서체로 진지하게 쓰면
- 생각을 많이 해야함
- 이감정 저감정 자꾸 다듬게 됨
- 자기검열을 하게 됨
- 쓸데없는 미사여구, 애매함, 뱅뱅돌아가서 뭔소린지 모르는 글이 추가됨....
- 쓰다가 지우게 됨..
뭐 정식으로 쓰는글도 아니니 음습체로 하니 개발 새발이나마 써보게 됨..
..
.
.
뭔훗날 100년후, 자서전 쓸때 참고가 될것 같음.
+++
일하면서 행복한 일터를 꿈꿨는데...
동료들과 일에 대해 토론하고
풀리지않은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함께 커피를 마시고 농담하고
무엇을 배울까 무엇을 할까를
함께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일터..
하지만 내가 있던 일터는
출근부터 퇴근까지
대화 한마디가 필요없던 곳.
동료는 굉장한 소음을 내며 출근
자리에 앉자마자 이상한 소리를 내며
음식을 먹기시작...퇴근때까지..
사장은
대만사무실 직원보다 인건비를 많이 들이는데
주말, 휴일에 일도 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고
엔지니어는 머리가 있어야 한다고
직원들을 비하하기도 하고
남들이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개발한것을
한사람이 일이주안에 끝내야 한다고
강요를하고...
필요한 장비에 투자도 않고
개인이 취미로 사용하는 장비로
좋은 성과를 내길 바라고
다른회사 10분이면 테스트 레포트 자동으로 나오는 일을
사람손으로 일일이 해서 하루 10시간씩 일주일 걸리고
중요한 프로젝도 한사람에게만 의존해서
엉망으로 만들어진 개발품에
한숨이 절로 쉬어진것이
어언 2년하고도 약 7개월...
진실을 얘기해도
어디 일본꼰대의 거짓말을 사실로 믿는
오직 돈과 배신, 그리고 거짓을 따르는 자들...
..
고맙다.
지금은 오히려 정신과 몸이 좋아지고 있네.
입사한 첫날부터 꼰대짓하던 일본넘..ㅎㅎ
출근하면 프로젝관련 대화가 있을줄 기대했었는데
출근하자마자 음식이나 처묵처묵하지..
그러면서 퇴근때까지 그자리에서 키보드가 부서져라
뭘하는지 모르지만 소리를 지르며 쳐댔었지.
혼자서 데스크탑 컴퓨터 5대에 모니터 7개를 쓰고
있었지.
한대는 문서작성용, 한대는 테스트용, 한대는 프로그램용,
한대는 회로도작성용, 한대는..몰라..
팀웍이 뭔지도 모르는..
프로젝을 개인취미활동처럼 이용하고..
물론 사장도 멍청했지.
혼자서 모든걸 다아는듯 무시하고.
애플을 그렇게 숭배했는데...
뭐? 애플이 왜 성공했냐고?
연구개발에 돈을 얼마나 투자했는데
직원에게 돈을 얼마나 쓰는데..
..
애플이 성공한것을 배우라고??
뭐어~?
중국 고속철도건설과
하룻밤에 쌓아 올린 고층빌딩 건설 회사의 사례를 보고
느낀게 없냐고?
있찌...왜없겠어.
돈과 대규모 인원이면 가능하다~
경영의 ABC도 모르면서
우리보고 뇌가 없다는 소릴해대고..
이런식으로 하니까
중국우주센터랑하던 프로젝이 뒤지어 진거여~
알랑가몰라..
그 음흉한 일본넘하나만 의지해서 하니까
디자인이 80년대말 기술수준이여
그리고 내가 잘못된것 몇개 더 알고 있어.
이미 프로젝 매니져에게 문서로 보냈는데
작년에 나 수술때문에 휴가냈을때
짤랐더구먼.
...
열악한 환경에서 회사를 위해 일한것
많은 성과를
하나도 기억못하는 돈의 노예.
설립 된지 20년이 됐는데
아직 이런 규모면
알아봤어야 했어.
난 뭐 숨겨진 업계의 보석인줄 알았어.
뭐 장비가 열악해도
과학기술계의 선지자들이 한것처럼
무식하게 수작업으로 해도 된다고
생각했어.
기계가 공부하고
미국대통령과 북한의 지도자가
만나는 시대에.
ㅎㅎㅎ
그 짧은 2년여가 거의 5년 10년으로
느껴질 정도 였지.
꿈만 같았던 시간이었어
?
?
?
?
..
쪼그마한 대만계 회사다녔던 후기...
내가 월요병에 시달린것도 벌써 2년이 넘었음.
처음 입사후
열악한 개발환경, 장비, 무식한 꼰대짓을 하는 일본할배넘...
너무나 실망했지만, 그래...회사들이 다 그렇지 뭐...
하며 애써 긍적적으로 생각을 했음.
세상에는 부자회사도 있고 가난한 회사도 있지..
첫날부터 일본할배넘은 꼰대짓을 했지.
꼰: 회사이메일은 3자를 넘으면 기억하기 힘들고 나도 3자니 3자로 지어라.
나: ??? 나니??
둘쨋날 굉음을 내며 사무실에 들어와서는 업무관련 서적을 검색하는 나에게
꼰: 왜 인터넷검색을 하냐? 너때문에 회사인터넷 느려지고...??
나: @_@ 일관련 책 검색한다. 네가 뭔 상관이냐?
(그당시 회사는 인터넷속도가 거의 다이얼업 모뎀 속도라 누가 자료를 다운받거나 하면 전 인터넷이 거의 멈춤...10메가짜리 파일 다운받는데 5시간 넘게 걸려 포기..At&T DSL이었는데..ㅎㅎ
지금은 컴캐스트 조금 빠른것으로 교체...)
세쨋날...현재하고 있는 일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뭔일을 해야할지 아무런 말이 없어서..
나: 현재하고 있는 프로젝트 설명좀 해다오~
꼰: 내가 만든 자료를 보면 도움이 될거야. 그런데 캔버스라는 소프르웨어를 깔아야해.
나: 그게 뭐냐?
꼰: 문서만드는 소프트웨어. 들어본적 없나?
나:처음 듣는다. 다른회사는 그런것 쓴걸 본적 없다.
꼰: 전에 있던 회사에서 썼던거다.
(이 일본할배넘은 회사들이 공통으로 쓰는 워드, 파워포인트 대신 캔버스라는 이상한 그림툴을 문서작성에 이용함. 문서에 있는 글자들이 모두 그림....)
네쨋날:
나: 네가 만든 자료가 수백장이나 되는데...그래도 한번쯤 설명해주는것이 낫지 않냐?
꼰: 10분정도 설명해줄께...
(별로 도움 안되는 설명듣고, 자료를 찬찬히 검토해보니 별 쓰잘데없는것까지 자료라고 만들어 놓은것...
처음에는 방대한 자료에 대단하다 생각함.
블럭다이어그램, 타이밍차트 모두를 그려놨음.
블럭다이어그램은 TTL회로처럼 회로도를 그려놓고..
주업무가 Verilog로 FPGA 디자인하는데..)
다섯째날:
꼰: FPGA소스를 줄테니 메모리쪽 동작하는지 확인해줘.
버전은 고칠때마다 A, B, C..이런식으로 바꾸고, 하루에 메인버전 한번씩 바꿔서 저장
나: 버전콘트롤 소프트웨어는 안쓰냐?
꼰: 그런것은 믿을수 없다.
나: .....
(개발용 파일서버가 있는것이 아니라, 각 업무용 PC를 공유하게 해서 퇴근때도 컴퓨터를 못끄게 함.
심지어 다른사람의 PC로 들어가서 소스를 고치고 다음날 말도 안해줌. 일하다가 깜짝놀람. 내가하지 않은것이 들어 있어서...)
....
쬐깐한 대만계 회사 다녔던 후기(2)
이회사는 사장이 대만사람.
대만에도 사무실이 있고
사장이 박사받고 20년전 창업한 회사.
씨모쓰 이미지센서 전문.
첫인상..
다 중국사람이고, 하드웨어쪽에
일본꼰대, 홍콩애..
그리고
칩디자인 박사후 경력 20년차 2명..
사무실 행정 여직원 3명,
마켓팅 말레이지아 출신 1명
...
나랑 같은날 입사한 미국사람 마켓팅 담당...
한달만에 그만둠
대부분이 기독교인이라 좋은 인상받음.
많은부분 실망을 했지만 희망을 갖게됨.
프로젝트는 1개
중국우주센터와 함께 개발하는
이미지센서와 카메라시스템.
일본할배넘..
팀리더역할, 매니지먼트역할 거부
그냥 동등한 개발자.
카메라개발 경력 30년...
자신의 말로는 전회사에서
큐빅클에 혼자 쭈그리처럼 일했다고 함.
개발 속도가 엄청 느림
카메라개발프로젝트도 혼자 책임지고 개발하는 상황
다른사람 한달이면 될일 6-7개월 걸림.
새로운 기술, 지식을 배우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공공연히 말함. 자신은 이미 충분한 경력이 있다고...??
이 카메라 프로젝트도 나 입사싯점에 2년된 프로젝트.
결국 작년말 (2017) 프로젝트 캔슬선언.
...
이 사건을 계기로 늦게 입사한 프로젝매니저 방출..
물론 사장과 기술적 의견이 맞지 않아서...
이후 돈타령...
...
...
...
쬐깐한 대만계 회사 후기(3)
일본할배넘이 책임지고 하던 프로젝트가 중국우주센터의 의뢰로 개발하던 카메라임.
입사후 며칠지난 본 바로는 근본부터 잘못된 프로젝트였슴.
- 이미지센서에서 발생하는 고온의 열을 고려안함
- 싸구려 FPGA를 사용해서 성능이 안나옴
- 80년대식으로 디자인함. 속도 느림
- 일본할배넘의 고집과 무식으로 잘못된 디자인
보드와 보드사이에 생기는 노이즈를 전혀 생각 않고 디자인함
생전처음보는 방식의 FPGA 코드...창피할 정도
나중에 동작비숫하게 되면 됐지하고 무마시킴
입사후 2번째주부터 보드와 보드사이의 데이타 불일치에 대해 조언함.
무시...ㅎㅎㅎ
클럭신호 스큐에 대해 조언함....무시
데이타동기화에 대해 조언함....무시
이미지센서 쿨링방법에 대해 조언, 전문업체 불러다 세미나시킴
...무시...
그런데 작년 말부터 내가 제안했던 방법말고 다른방법으로 해결하려고 시도...실패
현재 상업용 이미지센서 기술 트렌드 자료 공유시킴...무관심..ㅎㅎ
개발장비가 취미용수준이고 약간 더 좋은것 구입해야한다고 주장
...일본할배넘...너무비싸고 지금 있는것은 내가 전회사에서 사용했던 그대로야..(10년전)
...
쬐깐한 대만계회사 후기 (4)
사실 엔지니어는 회사가 꾸져도 프로젝트가 괜찮으면 됨.
회사가 꾸져도 사용하는 장비가 좋으면 자부심이 좀 생김.
프로젝트가 꾸져도 현재 기술경향에 뒤지지 않는것이면 괜찮음.
내가 다녔던 회사는
일반 상업용 칩을 개발하지 않고
산업용, 특수, 우주위성용...
그렇기 때문에 현재 기술경향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
하지만 어디 세미나나 인터뷰를 다니다보면
너무나 창피해서 말을 못함.
그런데 어느날부터 사장이 애플, 삼성같은 회사에
칩을 납품하고 싶다는 말을 함.
일년에 천만개만 납품해도 $2*천만개면 이천만불...ㅋㅋㅋ
하지만 그 정도 수준의 품질관리라든지 생산능력관리가
불가능한 수준.
이곳에서 이미지센서의 모든 성능 측정이 이뤄져야하는데
기본장비도, 광학전공 엔지니어도, 회사수준의 지원도
불가능.
...
어렵게 한국의 삼성 1차벤더와 연결된 한국사람을 영업담당으로 계약함.
하지만...
기술지원도, 정보도, 한국출장비등 영업활동 지원도 전혀없이
일을하라고 강요함.
한국사람은 한국사람이 책임지고 연락담당하라고 사장이 시킴.
그 영업담당...
회사로부터 지원이 전혀없어서 영업활동 포기..
...
다음에 계속...
쬐깐한 대만계회사 후기(6)
작년부터 사장할배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일본할배넘이 회의시간에 발표만하면 호흡을 거칠게 쉬고 물을 마시고 성질을 냈다.
그러면서 엔지니어와 테크니션이 다른것은 엔지니어는
생각할줄 안다고 헛소리를 했다.
듣다듣다 한마디했다.
테크니션도 생각할줄 안다....고....
울그락 불그락...거친 호흡...ㅋㅋㅋ
그리고 툭하면 대만오피스 애들은 적은 월급받고도
열심히 일하는데
여기는 돈도 많이 받으면서...어쩌구...함..
속으로...
회사를 대만으로 옮기던가...했음...ㅎㅎ
열심히 일하고 스마트하게 일해야 한다는등..
마치 사회초년생에게 하듯 함.
돈돈돈 노래를 부르더니
얼마전에는 인공지능도 하겠다고....
사장나이도 있으니....
곧 문닫겠구나...하고 생각함.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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