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5_80년5월18일

[스크랩] 노무현에 대하여 / 고정석

忍齋 黃薔 李相遠 2016. 2. 1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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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내가 투표해 당선한 유일한 대통령이다. 그의 당선이 확정되자 마자, 나는 아내와 함께 무교동에 나가 쐬주와 낙지볶음으로 그의 당선을 축하했다. 그의 대통령 재임기간은 내가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 일하던 시기와 거의 겹친다. 이명박이 집권한 이듬해인가, 나는 한국일보에 사표를 냈으나, 장명수 선생의 고집과 배려로 객원논설위원이라는 직함을 지닌 채 재택근무를 하면서 한국일보의 녹을 먹었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하기 전에 내가 쓴 정치칼럼들은 거의가 그의 당선을 위한 선전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에 재임 중에 내가 그에 대해 쓴 칼럼 중엔 비판적인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나는 국무위원 한 사람 빼고 모두 반대했다는 그의 대북송금특검을 비판했고, 분신노동자들에 대한 그의 예의없는 비판을 비판했고, 그의 민주당 분당을 비판했고, 그의 이라크 파병과 김선일씨 유기를 비판했고, 한미 FTA체결을 비판했다. (한미 FTA에 대한 생각은 그뒤 바뀌었다. 예견된 농촌파탄이 가슴아팠지만 국민경제 전체엔 좋은 일이라 판단했다. 일종의 필요악으로 여겼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가 부당하게 조동에게서 비판받을 땐 악착같이 그를 옹호했다. 청와대에서 내 글을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려도 되겠냐는 문의를 해서 두 차례인가 세 차례 동의한 적 있다.

반면에 노무현 집권 전시기를 통해서 나는 정동영을 디펜드하는 칼럼을 한번도 쓴 적이 없다. 진지한 비판도 아니고, 경박하게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그가 민주당 분당을 주도하고 영패에 굴복하며 노무현정권에서 누릴 만큼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참여정부 말기 노무현과 정동영이 열우당과 민주당의 합당을 놓고 틀어졌을 때도 나는 정동영을 여전히 비판했다. 정동영이 그즈음 처음으로 영남패권주의라는 말을 썼는데,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해 대선에 맞갖지 않은 마음으로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를 찍었다. 이명박에게 표를 주는 건 생각할 수도 없었고, 정동영의 왔다리 갔다리가 영 맘에 안 찾기 때문이다.

그해 대선은 오마이뉴스가 문국현대통령 만들기라는 망상으로 그렇잖아도 어려운 선거를 아예 묵시발을 만들어 놨다. 친노 오마이뉴스의 선동으로 적잖은 노무현 지지자들이 문국현을 지지해, 정동영의 패배가 더욱 처참했음은 물론이다. 나는 그뒤 정동영에 대해 거의 발언하지 않았다. 사실 어차피 민주당을 깬 거, 그냥 노무현의 요구대로 열우당 후보로 니오는 것이 떳떳하다고 생각했다. 승리가능성은 더 낮아졌겠지만, 어차피 다른 변수가 없는 한 이명박을 이기긴 어려였다. 그 변수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현직 대통령 노무현 뿐이었다.

노무현은 이명박의 BBK 스캔들이 엄중한 불법임을 알고 있었고, 현직 대통령으로서 그를 구속기소해 대선후보를 박탈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사실 노무현의 행보에는 납득할 수 없는 점이 너무 많았다. 그는 집권당의 대선후보로 나설 만한 고건이나 손학규를 비수와 같은 비난으로 날려버렸고, 자기에겐 정권재창출의 의무가 없다고 공언했다. 리틀 노무현으로 불리던 유시민은 한나라당 집권해도 나라 안 망힐다며 그에게 노무현이 BBK를 눈감아주는 대신에 이명박은 집권 후 노무현의 로얄패밀리(노건평의 표현)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게 그 내용이었다.

그러나 노건평의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런데 최근 노건평과 이상득의 만남을 주선한 이명박의 홍보비서관 추부길이 그게 사실이라고 매우 구체적 정황을 들어 증언했다. 노건평은 노무현 작고 뒤의 시련이 끔찍했는지 거기에 대해선 말하지 않겠다고 언론을 피하고 있고, 이상득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부인한다. 이상득이 인정하지 않는 한 이 사건은 미궁에 빠질 것이고, 이상득이 노무현에 대한 이명박의 배신을 인정할 리도 없다.

그러나 노무현 이명박 딜에는 개연성이 있다. 노건평과 이상득의 핫라인이 설치된 게 10월 말이라고 추부길은 주장하는데, 이건 대선 2개월 전에 이미 노무현은 정동영을 버리고 자신의 안위가 걱정돼 야당 후보 이명박과 거래를 했다는 뜻이다.

추부길에 따르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이후, 이명박이 노무현을 배신하고 그를 박연차와 관련해 구속기소할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혼란을 가라앉히려면 아무튼 속죄양은 필요하니까. 추부길은 노무현과의 밀약을 지키라고 이명박에게 건의했다가 직싸게 욕먹고 결국 쫓겨났다고 한다. 이명박으로선 그렇잖아도 속죄양이 필요하던 차에 노무현이

청와대 기록물을 가져나와 이명박에게 개기고 있던 판이었으니, 배신의 결심도 쉬웠을 게다. 사태가 불리함을 깨달은 노무현은 이명박에게 문서로 항복선언을 했으나, 사악한 천재 이명박은 결국 노무현을 기소하고 망신줌으로써 전직을 자살로 몰았다. 이명박에게 한 움큼의 가책이 없었으리라는 것은 명확하고. 그러나 우리는 노무현의 석연치 않은 행동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여권의 대선후보가 될 만한 사람들의 싹수를 잘라냈다. 자기에게 정권재창출의 의무가 없다고 공언했다. 청계천 복원 기념식에서도 이명박과 화기애애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명박은 서울시장으로서 참여정부의 국무회의에도 몇 차례 참가했다. 이 모든 정황을 볼 때, 이명박에 대한 노무현의 신뢰는 굳건했으며, 노무현은 자신의 후임으로 이명박을 선호했으리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개연성이 상당히 높은 추론이다.

나는 여기서 노무현의 비윤리성을 지적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의 미욱함을 지적하고 싶다. 이명박이라는 사악한 천재를 자신의 보호자로 믿었다는 것은 그가 사람 보는 눈이 전혀 없던 말 그대로의 바보였음을 증명한다. 사실 윤리적 차원에서도, 만일 DJ가 2002년 대선 때 이회창과 밀약을 맺고 노무현을 버리는 상황이 상상되는가?

노무현은 비극적 선택을 감행하기 직전에 지지자들에게 "나늘 버려달라. 나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했다. 이건 그간 자신이 친인척 관리를 못해서(이건 비서실장 문재인의 책임이다!) 지지자들에게 미안하다는 뜻으로 해석돼왔다.

그런데 나는 최근 노무현 발언의 참뜻이 "지지자들의 뜻에 반해 퇴임 이후를 보장받기 위해 BBK까지 덮어버렸는데, 이명박한테 배신 당한 나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직 확정된 진실은 없다.

그러나 나는 자신의 정치적 동료들을 죄다 내치고 사악한 천재 이명박에게 몸을 의탁했다가 배신당해 결국 비극적 죽음을 선택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은 전직 대통령에게 분노보다는 깊은 연민을 느낀다. 그의 비극적 죽음이 노무현교의 시발점이었음은 유감이다. 그는 극단적 방식의 죽음을 택함으로써 한국 정치에서 일찍이 보지 못한 광신도 훌리건 집단을 만들어 놓았다. 그 훌리건들에 의탁해, 문재인은 가망없는 차기대권을 노린다.

노무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끝)                

출처 : 글쓰기의 어려움
글쓴이 : 극기복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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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내가 투표해 당선한 유일한 대통령이다. 그의 당선이 확정되자 마자, 나는 아내와 함께 무교동에 나가 쐬주와 낙지볶음으로 그의 당선을 축하했다. 그의 대통령 재임기간은 내가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 일하던 시기와 거의 겹친다. 이명박이 집권한 이듬해인가, 나는 한국일보에 사표를 냈으나, 장명수 선생의 고집과 배려로 객원논설위원이라는 직함을 지닌 채 재택근무를 하면서 한국일보의 녹을 먹었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하기 전에 내가 쓴 정치칼럼들은 거의가 그의 당선을 위한 선전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에 재임 중에 내가 그에 대해 쓴 칼럼 중엔 비판적인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나는 국무위원 한 사람 빼고 모두 반대했다는 그의 대북송금특검을 비판했고, 분신노동자들에 대한 그의 예의없는 비판을 비판했고, 그의 민주당 분당을 비판했고, 그의 이라크 파병과 김선일씨 유기를 비판했고, 한미 FTA체결을 비판했다. (한미 FTA에 대한 생각은 그뒤 바뀌었다. 예견된 농촌파탄이 가슴아팠지만 국민경제 전체엔 좋은 일이라 판단했다. 일종의 필요악으로 여겼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가 부당하게 조동에게서 비판받을 땐 악착같이 그를 옹호했다. 청와대에서 내 글을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려도 되겠냐는 문의를 해서 두 차례인가 세 차례 동의한 적 있다. 

반면에 노무현 집권 전시기를 통해서 나는 정동영을 디펜드하는 칼럼을 한번도 쓴 적이 없다. 진지한 비판도 아니고, 경박하게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그가 민주당 분당을 주도하고 영패에 굴복하며 노무현정권에서 누릴 만큼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참여정부 말기 노무현과 정동영이 열우당과 민주당의 합당을 놓고 틀어졌을 때도 나는 정동영을 여전히 비판했다. 정동영이 그즈음 처음으로 영남패권주의라는 말을 썼는데,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해 대선에 맞갖지 않은 마음으로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를 찍었다. 이명박에게 표를 주는 건 생각할 수도 없었고, 정동영의 왔다리 갔다리가 영 맘에 안 찾기 때문이다. 

그해 대선은 오마이뉴스가 문국현대통령 만들기라는 망상으로 그렇잖아도 어려운 선거를 아예 묵시발을 만들어 놨다. 친노 오마이뉴스의 선동으로 적잖은 노무현 지지자들이 문국현을 지지해, 정동영의 패배가 더욱 처참했음은 물론이다. 나는 그뒤 정동영에 대해 거의 발언하지 않았다. 사실 어차피 민주당을 깬 거, 그냥 노무현의 요구대로 열우당 후보로 니오는 것이 떳떳하다고 생각했다. 승리가능성은 더 낮아졌겠지만, 어차피 다른 변수가 없는 한 이명박을 이기긴 어려였다. 그 변수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현직 대통령 노무현 뿐이었다. 

노무현은 이명박의 BBK 스캔들이 엄중한 불법임을 알고 있었고, 현직 대통령으로서 그를 구속기소해 대선후보를 박탈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사실 노무현의 행보에는 납득할 수 없는 점이 너무 많았다. 그는 집권당의 대선후보로 나설 만한 고건이나 손학규를 비수와 같은 비난으로 날려버렸고, 자기에겐 정권재창출의 의무가 없다고 공언했다. 리틀 노무현으로 불리던 유시민은 한나라당 집권해도 나라 안 망힐다며 그에게 노무현이 BBK를 눈감아주는 대신에 이명박은 집권 후 노무현의 로얄패밀리(노건평의 표현)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게 그 내용이었다. 

그러나 노건평의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런데 최근 노건평과 이상득의 만남을 주선한 이명박의 홍보비서관 추부길이 그게 사실이라고 매우 구체적 정황을 들어 증언했다. 노건평은 노무현 작고 뒤의 시련이 끔찍했는지 거기에 대해선 말하지 않겠다고 언론을 피하고 있고, 이상득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부인한다. 이상득이 인정하지 않는 한 이 사건은 미궁에 빠질 것이고, 이상득이 노무현에 대한 이명박의 배신을 인정할 리도 없다. 

그러나 노무현 이명박 딜에는 개연성이 있다. 노건평과 이상득의 핫라인이 설치된 게 10월 말이라고 추부길은 주장하는데, 이건 대선 2개월 전에 이미 노무현은 정동영을 버리고 자신의 안위가 걱정돼 야당 후보 이명박과 거래를 했다는 뜻이다. 

추부길에 따르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이후, 이명박이 노무현을 배신하고 그를 박연차와 관련해 구속기소할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혼란을 가라앉히려면 아무튼 속죄양은 필요하니까. 추부길은 노무현과의 밀약을 지키라고 이명박에게 건의했다가 직싸게 욕먹고 결국 쫓겨났다고 한다. 이명박으로선 그렇잖아도 속죄양이 필요하던 차에 노무현이 

청와대 기록물을 가져나와 이명박에게 개기고 있던 판이었으니, 배신의 결심도 쉬웠을 게다. 사태가 불리함을 깨달은 노무현은 이명박에게 문서로 항복선언을 했으나, 사악한 천재 이명박은 결국 노무현을 기소하고 망신줌으로써 전직을 자살로 몰았다. 이명박에게 한 움큼의 가책이 없었으리라는 것은 명확하고. 그러나 우리는 노무현의 석연치 않은 행동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여권의 대선후보가 될 만한 사람들의 싹수를 잘라냈다. 자기에게 정권재창출의 의무가 없다고 공언했다. 청계천 복원 기념식에서도 이명박과 화기애애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명박은 서울시장으로서 참여정부의 국무회의에도 몇 차례 참가했다. 이 모든 정황을 볼 때, 이명박에 대한 노무현의 신뢰는 굳건했으며, 노무현은 자신의 후임으로 이명박을 선호했으리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개연성이 상당히 높은 추론이다. 

나는 여기서 노무현의 비윤리성을 지적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의 미욱함을 지적하고 싶다. 이명박이라는 사악한 천재를 자신의 보호자로 믿었다는 것은 그가 사람 보는 눈이 전혀 없던 말 그대로의 바보였음을 증명한다. 사실 윤리적 차원에서도, 만일 DJ가 2002년 대선 때 이회창과 밀약을 맺고 노무현을 버리는 상황이 상상되는가? 

노무현은 비극적 선택을 감행하기 직전에 지지자들에게 "나늘 버려달라. 나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했다. 이건 그간 자신이 친인척 관리를 못해서(이건 비서실장 문재인의 책임이다!) 지지자들에게 미안하다는 뜻으로 해석돼왔다. 

그런데 나는 최근 노무현 발언의 참뜻이 "지지자들의 뜻에 반해 퇴임 이후를 보장받기 위해 BBK까지 덮어버렸는데, 이명박한테 배신 당한 나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직 확정된 진실은 없다. 

그러나 나는 자신의 정치적 동료들을 죄다 내치고 사악한 천재 이명박에게 몸을 의탁했다가 배신당해 결국 비극적 죽음을 선택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은 전직 대통령에게 분노보다는 깊은 연민을 느낀다. 그의 비극적 죽음이 노무현교의 시발점이었음은 유감이다. 그는 극단적 방식의 죽음을 택함으로써 한국 정치에서 일찍이 보지 못한 광신도 훌리건 집단을 만들어 놓았다. 그 훌리건들에 의탁해, 문재인은 가망없는 차기대권을 노린다. 

노무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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