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7_20세기100선

[Ⅰ] 문학 18. 사뮈엘 베게트/ 고도를 기다리며/ 1952

忍齋 黃薔 李相遠 2016. 5. 21.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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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14HO2NzXOkc

018 사뮈엘 베게트(Samuel Beckett)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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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발간된 우수하고 의미있는 100 열여덟번째 , ‘사뮈엘 바클레이 베게트(Samuel Barclay Beckett)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 시작합니다. 간략한 대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화의 내용이나 주제가 모호하고 추상적인 만큼 독자와 관객들에게 해석의 자유가 아주 폭넓게 주어진 작품으로, 자신의고도 설정하고 읽으면 아주 재미있고 자유롭게 읽을 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면, ‘사뮈엘 베게트(Samuel Beckett)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 속으로 빠져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와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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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생 시절 연극을 하던 작은형이 사무엘 버켙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한다면서 '고도' 무엇인가 횡설수설하는걸 듣고는 일부러 책을 찾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 어쩜 이런 한심한 작품을 쓰고 이런 재미없는 내용을 연극으로 공연한다고 난리들을 치는지 이해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전북대학 1학년때, 1980 5월부터 9월까지 살인마 전두환에게 잡혀서 고문받고 죽었다가 간신히 풀려나고 보니 '고도' 무엇인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고도' 나에게 다리 짝을 내주어도 살아만 있고 싶은 삶에 대한 욕망이기도 했고, 살인마 전두환이 사라진 세상이기도 했고, 부모·형제 얼굴 보는 소망이기도 했고, 너무도 많고 아쉬운 것들이 '고도'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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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대 인후 공사 정문에서 어머니에게 인도되고 내가 제일 먼저 일이 전북대 가톨릭 학생회 1학년들을 모아서 1980 10 25 내가 연출 각색 소품까지 맡아서 사무엘 버켙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단막극으로 만들어 전북대 가톨릭 학생회관에서 공연했던 일입니다. 고문받고 풀려났던 몸이라 피골이 상접했지만 어렴풋하게 '고도' 이해하며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인생의 깊이를 느껴가기 시작했던 때이기도 합니다. 고문 후의 흉측한 몰골을 가리려고 김요한 (Yo Han Kim) 선배의 빵떡 모자와 넥타이를 빌려 쓰고 작품 설명을 하는 사진입니다.

     

 

[Ⅰ] 문학 18. 사뮈엘 베게트/ 고도를 기다리며/ 1952 

 

 

사뮈엘 베게트(Samuel Beck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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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바클리 베케트(Samuel Barclay Beckett, 1906 4 13~1989 12 22)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1906 4 13일에 아일랜드의 부유한 프로테스탄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프랑스인 교장이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고, 시기부터 불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13살때 앵글로-아이리시맨의 전통적인 기숙학교 포트라 로얄 스쿨(Portora Royal School) 입학했습니다. 1604년에 왕명으로 개교한 학교를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0.15~1900.11.30) 졸업했습니다. 학창시절 베케트는 크리켓 선수로 아일랜드 대표 주장 좌완 중심투수로 활약하면서 잉글랜드 노샘프턴셔 (Northamptonshire) 국가 대항 결승전에서 두차례나 이겨 이름을 날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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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불어와 이탈이아어를 공부하고 불어학 학사로 수석 졸업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명문 파리고등사범학교인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를 졸업하고 학교의 영어 강사가 되었습니다. 프랑스로 망명해 파리에서 지내던 아일랜드 출신 문학가 제임스 조이스와 안면을 트며 그가 교류하던 문인들 모임에도 합류하게 되고, 시기인 1930, 그의 시집호로스코프(Horoscope)’ 발표했습니다. 아일랜드로 돌아와 모교인 트리니티 칼리지에서프루스트 ()’ 발표, 1931 불어과 조교수가 되지만 그리 만족하지 못하고 만에 사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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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상속받은 유산을 자금으로 1933 더블린을 떠나 런던을 시작으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을 돌아 다니며 방랑의 시기를 보냈습니다. 1934년에는 10편의 이야기를 엮은 단편집차는 것보다 찌르는 낫다(More Pricks than Kicks)’, 1935년에는 시집에코의 뼈들(Echo’s Bones)’ 발표했고, 1992년에야 출판되었던 소설예쁘거나 중간 정도의 여자들에 대한 (Dream of Fair to Middling women)’ 역시 1930년대에 작품입니다. 1937년에야 방랑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와 1938년에 다시 소설 집필을 시작한 , 제임스 조이스와 마르셀 프루스트의 영향을 받아 전위적인 소설과 희곡을 발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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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 2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군 점령하에서도 중립국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신분 덕에 계속 안전하게 파리에 남아있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십분 활용하여 프랑스 레지스탕스 지하 조직에 합류하여 활동하였습니다. 1941, 베케트의 팀원들이 게슈타포에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독일군이 점령하지 않은 지역인 남부 프랑스의 보클루즈 지역으로 피신하였습니다. 독일이 패전하여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곳에서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창작활동에 전념했습니다. 1953년에 출판된 그의 번째 소설와트(WATT)’ 시기에 작품입니다. 1945 아일랜드로 귀국하여 적십자사에 자원하여 프랑스로 돌아와 노르망디의 군인병원에서 통역사로 근무한 이후에 다시 파리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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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부터 1949 사이에 파리에서 지내는 동안 베케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다수의 작품을 집필했습니다. 기존의 소설 작법을 파괴하여누보로망 선구자로 자리매김할 있었던 베케트의 프랑스어 삼부작 소설몰로이(Molloy, 1951)’, ‘말론 죽다(Malone Dies, 1951)’, ‘명명하기 힘든 (The unnamable, 1953)’ 비롯,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희곡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 1953)’까지 다들 출판이 늦게 되었을 모두 시기에 작품들입니다. 베케트의 30~40 중반 정도까지가 창작의 전성기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작품들 대부분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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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탕스 시절에 만난 여자친구이자 훗날 그의 부인이 되는 수잔의 도움으로, 여느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수차례 거절 끝에 1951, 베케트의 나이 마흔다섯에 드디어 그의 삼부작으로 알려진 소설 작품몰로이 발표할 있는 출판사를 찾게 되었습니다. '몰로이' 그럭저럭 판매가 되긴 했으나 상업적인 성공보다는 오히려 프랑스 평단의 열렬한 반응을 얻음으로써 같은 출판사에서 다른 작품 그리고 그의 역작고도의 기다리며까지 함께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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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집필 시간이 지난 1952년에 발표한 희곡고도를 기다리며 1953 파리의 소극장인바빌론 극장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오르고 당시 유례없는 성공으로 대박을 터트리며 공연계와 문화계, 일반 관객 그리고 세계에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이때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가지만 이전만큼의 빠른 속도는 아니었습니다. 독자적인 방식으로 이미 충분히 새로웠던 베케트의 스타일에 그대로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탐구하며 실험적인 작품들을 시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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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베케트가 20 후반 처음으로 발표했던 작품인 시집호로스코프 데카르트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베케트의 다른 모든 작품 대부분 단테, 르네 데카르트 여러 철학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데카르트의 인간 실존에 대한 근본적이고 깊이 있는 고찰을 희극 소설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간결하고 축소된 서술을 사용하는 방향으로 점차 작품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극도의 간결성을 추구한 후기 작품들은 너무 난해하지만 시기를 불문하고 베케트의 모든 작품들은 기술적인 면에서는 흠잡을 없이 정교하게 짜인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언제나 위트가 빠지지 않는 베케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개성 하나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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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이후 베케트는 명실공히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하게 되었으나 미디어 노출을 꺼렸습니다. 작품에 대한 해석도 베케트가 뭐하나 제대로 설명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작가로, 최근까지 베케트에 대한 학술 연구가 활발하여 작가가 살아온 환경이 많은 작품에 드러난다는 논문이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1961년에 구두점이 전혀 없는 산문인어떤 식으로 그것이’, 1963년에는! 아름다운 나날등을 발표하였습니다. 베케트는 작품들을 통하여 세계의 부조리와 속에서 의미도 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절망적인 인간의 조건을 극히 인상적인 언어로써 허무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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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승부의 ’, ‘마지막 테이프’, ‘행복한 나날 종래의 연극 개념을 뒤엎는 독창적인 희곡을 발표하여 전후의 새로운 연극의 대표적인 작가가 되었습니다. 주제는고도이후 변치 않는 인간의 일의 무의미함과, 서구적인 합리주의에 의한 세계의 붕괴인데, 신선한 문체와 뛰어난 연극적 감각으로 정평이 있습니다. 후기작으로 어두운 무대에 입술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독백하는 특징이 있는 희곡인내가 아니다 있습니다. 베케트가 살던 지역, 주변 경관, , 심지어는 쓰레기통에까지 이르는 모든 생활용품과 도구들이 그의 무대와 소품에 자주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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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 노벨 문학 수상자로 선정되었을 때는 시상식에 불참하였고, 이후로도 미디어 노출 인터뷰는 거절한 작품 창작에 몰두하는 생을 보냈습니다. 베케트는 아일랜드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프랑스에 살다가83 되던1989 7 부인 수잔이 사망하고 5개월 남짓 지난 12 22일에 프랑스 파리 에드가 퀴넷 3번지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파리의 몽파르나스 묘지에 장폴 사를트르, 시몬 보부아르, 샤를 보들레르, 외젠 이오네스코, 기드 모파상, 카미유 생상스 같은 거장들과 함께 영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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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 1952)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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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베케트가 2막의 부조리극이며, 부제로 "2막의 비희극"이라 붙였습니다. 작품은 1940년대 후기에 작성되어, 1952년에 처음 발간되었습니다. 베케트는 처음 자신에게는 외국어인 프랑스어로 작품을 썼으며, 1954년에 영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이작품은 소수의 지식인에게만 알려져 있던 베케트가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출세작이자 대표작입니다. 작품은 1953 1 3 파리 시의 바빌론 극장에서 프랑스어로 초연되었습니다. 희비극의 성격을 띠고 있는 희곡으로, 기존의 익숙한 주제나 희곡 양식에서 벗어난 전개 방식이 특징이며 부조리극의 정수라고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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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처음에 비평가들로부터 각기각색의 다양한 반응을 얻었고, 베케트가 " 작품은 그것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뜻한다"라며 해석을 거부하면서, 고의적으로 불분명하게 비치게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곡 자체는 무엇이 희곡이 연극적 중요성을 가지게 하는지에 대한 개념을 정제시키며, 많은 유명한 극작가들 - 스토퍼드, 해롤드 핀터, 에드워드 앨비, 세퍼드-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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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제목 그대로 무대에서 남자가고도라는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전개됩니다. 언제 올지, 아니 진짜 올지, 올지도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는 둘은 농담도 하고, 생각도 하고, 놀이를 해보기도 하고 서로 투정을 부리기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던 가던 나그네 포조와 그의 하인 럭키가 조금은 거부감 느껴지는 모습으로 나타나며 분위기가 반전되고 무대는 풍부해지지만 결국 소득 없는 대화가 계속 제자리를 맴도는 듯하고 그렇게 1막이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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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되는 2막은, 다음날로, 또다시 남자는 고도를 기다리고 포조와 럭키가 등장합니다. 오지 않는 고도와 고도를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남자, 같은 다르게 흘러가는 기다리는 시간, 이전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게 기다림을 통해 인간 존재의 부조리함을 생각하게 합니다. 등장인물들 간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때때로 생각할 거리를 가득 품게 되는 선문답 같은 대화를 통해 독자와 관객은 고도가 무엇을 의미 하는지 그리고 삶에 대한 각자의 질문을 떠올리게 되며 마지막에는 간단히 설명하기 힘든 슬픔과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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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작품은 베케트가 1940년대 프랑스의 지하 레지스탕스 조직의 활동을 돕다가 독일 비점령 지역인 보클루즈에 피신해 지내던 시기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작품입니다. 1948년에 쓰기 시작했지만, 예전 집필했던 소설들을 비로소 발표할 있게 되면서 겨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때인 1952년에야 책으로 출간할 있었습니다. 이듬해인 1953 파리의 작은 소극장인 바빌론 극장에서 초연을 했는데, 기존 희곡과 완전히 다른 단순한 배경, 모호하고도 추상적인 내용으로 이어지는 전개가 문화계에 신선한 충격이 되어 단숨에 화제가 되어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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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 극장은 재정상태가 좋지 않았고 당시 성공을 거두곤 하던 통속극과 전혀 다른 작품인고도를 기다리며 마지막 희망을 거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평론가가 일간지 피가로에 광대들에 의해 공연된 파스칼의 명상록이라는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고, 처음 삼주에서 정도로 계획했던 기간 보다 훨씬 길게 연장해 오랫동안 무대에 올리며 베케트에게는 명성을, 극장에는 기사회생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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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케트는고도를 기다리며 처음에는 불어로, 뒤에 영어로 다시 썼습니다. 이는 모국어를 사용하느라 자칫 고정된 스타일의 틀에 빠질 있어, 일부러 언어가 주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베케트가 고도를 기다리며 아니라 다른 작품들을 불어로 작업했던 이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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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이다 보니 장면을 상상해가며 읽어야 하고 이야기를 관통하는 뚜렷한 사건이 없기 때문에 지루해 질수도 있습니다. 베케트의 의도대로 굉장히 간략한 대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화의 내용이나 주제가 모호하고 추상적인 만큼 독자와 관객들에게 해석의 자유가 아주 폭넓게 주어진 작품입니다. 따라서 작품은 자신의 고도를 설정하고 읽으면 아주 재미있고 자유롭게 읽을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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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19-32360-1-PB.pdf

 

 2001035591.pdf

 

 DRAMA Waiting for Godot Script.pdf

 

 valentine.pdf

 

 waitinggodotinsights.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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