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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광복군 김준엽은 5공 시절 권세를 누리던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의 손자이자 독립운동가 이규학과 조계진의 넷째아들 이종찬을 은밀하게 자신의 서재로 부릅니다. 그리고 마지막 임시정부 광복군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도 대한민국 건국을 임시정부로부터 계산하여 민국 30년이라 했으니 헌법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여'라는 조항을 넣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드디어 비록 노태우가 집권한 제6공화국이지만 제6공화국 헌법에는 김준엽이 주장한 임정법통론이 무사히 통과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여'라는 조항이 구체적으로 실리게 됩니다. 이로써 김준엽은 임시정부 광복군으로서의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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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평안북도 강계에서 태어나 일본 게이오대 동양사학과에 유학 중 일본군 학병에 징집되어 1944년 23세의 나이로 일본군을 탈출하여 광복군에 가담하여 이범석 장군의 부관으로 무장 항일투쟁을 전개함으로써 학병탈출 1호를 기록합니다. 한미연합 조선침투를 준비하다 해방을 맞이합니다. 그 후 함께 정치하자던 김구, 초대 내각 총리 이범석의 내각영입제의 등을 거절하며 중국학과 공산주의 전문가로서 평생 한눈팔지 않고 학자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의 일기에는 전두환에게 고개를 숙일 수 없어 노태우의 총리제안도 거절합니다. 아래 사진은 임시정부 광복군 국내정진대원으로 1945년 8월 20일 중국 산동성 유현에서 동료 노능서와 장준하와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좌로부터 노능서, 김준엽, 장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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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7일 오전 광복군 김준엽은 자신의 임무를 무사히 완수하고 90살의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건국절 운운하는 자들이 있으면 광복군 김준엽을 대신하여 혼쭐나게 야단을 쳐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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