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1. Dr. Sam Lee/14_외국이야기

인도의 3지역에 정착한 고대 유대인들

忍齋 黃薔 李相遠 2017. 1. 6.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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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I0F804m8jno

 

2016년 1월 5일 인도 동북부에서 6.7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뉴스에서 2,700년 전에 이주했던 7천 명에 달하는 '브네이 메나시'(Bnei Menashe, ‘신의 자녀들’이란 뜻) 유대인 공동체가 피해를 보았다고 보도를 했습니다. 그때는 "유대인들이 인도에도 많이 사는구나" 하고 말았는데 인도 쪽 히말라야를 다녀오고 난 뒤엔 자세한 곡절이 궁금해 졌습니다. 이스라엘 자료들과 철 지난 뉴스보도를 검색하여 보니 2005년 이스라엘 정부는 300명에 달하는 '브네이 메나시' 인도계 유대인을 받아드렸다고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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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정부가 1931년에 이어 2010년에 실시한 카스트별 인구조사에 의하면 모두 2만여 명의 유대인이 여러 신분과 3 지역에 걸쳐 살고 있습니다. 오랜 힌두교 입장에서는 비 아리아 인종인 타 종교인들이 노동과 생산을 담당할 잠재적 천민계층에 포함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외래 종교의 인도 이주에 관대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인도의 유대인 이주 역사는 기원전으로 소급되는데 모두 3곳의 공동체를 형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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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700년 전 BC 720년 인도 동북부 마니푸르(Manipur)와 미조람(Mizoram)으로 이주한 '브네이 메나시'(Bnei Menashe) 유대인 공동체
 
▲ 인도 동북부 미조람과 마니푸르 지역은 미얀마와 국경을 접하는데, 이곳에 므낫세의 훈손들이 살고 있다.
'브네이 메나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요셉의 두 아들 중의 하나이고 야곱의 손자인 므낫세 지파의 후손들이라고 믿고 있다고 합니다. 인도의 '미조람' 과 '마니푸르'에 사는 이 부족은 그들이 2,700년 전 앗수르에 의해서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때, 이스라엘 땅에서 쫓겨난 지파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브네이 메나시'의 구전에 의하면 이 지파는 이스라엘에서 쫓겨나 동쪽으로 이주하다가 현재 저들이 머무는 중국과 인도 국경지대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추라찬드푸르'(Churachandpur)의 유대인들!
'브네이 메나시' 유대인들 대부분은 안식일을 준수하고, Kosher(음식에 관한 규례), 할례 그리고 정결의 예식을 포함한 유대교 전통과 유사한 저들의 고유한 전통들을 지켜오고 있다고 합니다. 1950년에는 수천 명의 '브네이 메나시'가 이스라엘까지 걸어서 돌아갈 계획을 세웠으나 인도 정부에 의해 저지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니푸르주(州)의 주도(州都)인 임팔공항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 정도 남쪽으로 달려 도착하는 소도시 ‘추라찬드푸르’(Churachandpur)는 미얀마와의 국경에 위치하는데, 이곳에서 유대인 의례와 풍습과 복장을 한 한국인과 비슷하게 생긴 유대인들을 쉽게 볼 수가 있습니다.
 

▲ 이스라엘의 사라진 10개 지파 가운데 한 지파라고 굳게 믿고 있는 미조 종족의 추적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이나 거슬러 올라간다.

2. 2500년 전 BC 562년 유대인 상인들이 인도 서남부 코친에 들어온 ‘코친(Cochin)’ 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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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서남부에 위치하고 아라비아 해와 인도 최대의 벰바나드(Vembanad) 호수와 접점 지역인 코친(Cochin) 항은 인도 케랄라(Kerala) 공항이 지척입니다. 인도에서 가장 깨끗하고 문맹률이 0%인 곳, 인도에서 유아사망률이 가장 낮고 평균 수명이 가장 높은 곳으로 유명합니다.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항구인 코친은 예로부터 케랄라 해상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습니다. 중국과 아라비아 상인들의 전진 기지였던 코친은 근대 들어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열강이 각축을 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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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친 항에서 남쪽으로 향하면 유서 깊은 유대인 마을이 있습니다. 향신료 무역을 중개하며 신 둥지를 틀었던 유대인들은 포르투갈 항해자인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 1469~ 1524)가 상륙하기 이전까지 이곳 상권을 주도했습니다. 카더몬(Cardamon), 후추 등 값비싼 향료들이 코친을 통해 중동과 유럽으로 이동되었습니다. 골동품 거리로 명성을 얻고 있는 유대인 마을 골목에는 향신료 가게와 페르시아 골동품 상점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유대인 마을 끝자락에는 ‘파르데쉬 시나고그’(Pardesh Synagogue)로 불리는 유대인 회당이 들어서 있습니다.
 
▲ 1900년경 인도 코친의 유대인 가족
코친의 유대인은 난민으로 이주해 왔다기보다는 상권을 따라서 오고 간 빈번한 이주가 분명합니다. 16세기 초 이전에는 검은 유대인 ‘고아’(Goa)가 자리를 잡았다면 16세기 초 이후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중동에서 흰 피부의 유대인 ‘칼라(Kala)’가 몰려왔습니다. 검은 피부와 흰 피부의 유대인 쌍방이 다시 갈라지고, 여기다 유대인과 노예 신분의 현지인 첩 사이에서 출생한 카스트(Caste) 상 지위가 낮은 ‘메슈아라림’(Meshuararim)이라고 불리는 제3의 집단이 출현했습니다. 다른 신분의 유대인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지도 못했습니다.
 
▲ 이제는 코친에서 유대인의 흔적을 찾아 보기 어렵다.
번성기를 구가하던 코친의 유대인들은 20세기 중엽 이스라엘 건국 이후 모두 팔레스타인 땅으로 돌아가고 2010년 현재 9명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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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100년 전 뭄바이를 끼고 있는 마하라슈라주(Maharashtra州)에 이주한 ‘베네 이스라엘’(Bene Israel) 유대인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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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현재 '베네 이스라엘' (Bene Israel, 이스라엘 자녀들이란 의미) 인구는 1만3천명으로 인도 서해안 마하라슈트라주(州) 주도인 뭄바이(Mumbai) 주변에 삽니다. 뭄바이는 1995년 11월에 봄베이(Bombay)로 개명하였습니다. 구전으로 전해오던 이들의 인도 정착은 1937년에 책으로 정리되었는데, 이들은 시리아의 왕인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Antiochos Epiphanes, BC 175~163년)의 유대인 박해 당시에 이스라엘 갈릴리(Galilee) 지역에서 탈출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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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75년 배가 뭄바이 남쪽 30마일 부근에서 난파하는 바람에 일곱 가족만이 가까스로 생존하였고, 그때 이들은 모든 경전을 잃었고 가까스로 유대인 기도문만을 기억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몇 가지 힌두 관습들을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안식일과 유대교 축제일을 지켜왔습니다. 출생 자녀들에게는 할례 의식을 준수하고, 음식물에 관한 유대교의 계율을 지키며, 유대교의 신앙고백인 ‘셰마’가 유지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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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 이스라엘(Bene Israel)은 인도 중부와 서부의 마라타(Maratha)족의 근대 언어인 인도-아리안어에서 파생된 마라티어(Marathi 語)를 사용하며,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들은 오랜 세월 힌두교, 자이나교, 불교, 무슬림교와 평화롭게 어울려 살아 왔습니다. 1820년에서 1830년까지의 10년 동안에 ‘영국령(領) 뭄바이’로 불리던 이 도시에 이라크, 이란, 아프간에서 ‘바그다디(Bagdadi) 유대인’ 2,000명이 몰려들어 섬유 공장과 국제 무역상을 운영하며 상권을 휘어잡았습니다.
 
▲ 인도 뭄바이에서 유대인들의 신년 의례인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
이어 1930년대에 들어 마지막으로 도착한 유대인은 유럽에서 온 난민 유대인이었습니다. 흰 피부의 유대인, 검은 피부의 유대인 모두 영어에 능숙했기에 영국 통치하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군대에서도 공훈을 세웠고, 관리, 무역상, 상점주, 장인(匠人) 등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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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뭄바이 대학에 진학해서 히브리어에 전념하여 유대의 고전을 '마라티어'로 번역하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기술자, 법률가, 교사, 과학자로 활약했습니다. 1937년에는 뭄바이에서 유대인 시장(市長)이 나왔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들은 외부 세계와 소통하면서 현대 유대 종교의식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인도의 많은 유대인이 작은 촌락을 떠나 뭄바이와 주변 지역에 모여 살게 되었는데, 이곳에 이 지역 유대인의 대부분인 1만2천여 명의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 인도의 여성 유대인! 완전히 동양인의 모습이다.
2008년 11월 26일 촉발된 ‘인도판 9.11’로 불리는 뭄바이 동시다발 테러에서 171명의 희생자를 내면서 수천 년간 인도인들과 평화롭게 공존해온 뭄바이의 유대인 사회가 흔들리고 있기도 합니다. 이 테러로, 유대교 초(超)정통파 종교시설인 차바드 하우스에서 테러범들에게 인질로 잡혔던 유대교 율법 교사인 랍비 부부 등 유대인 6명이 희생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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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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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이주해 왔던 수많은 유대인은 인도가 1947년 8월 15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새로 건국된 이스라엘로 귀환했습니다. 2010년 인도 정부의 카스트별 인구조사에 의하면 이제 남아있는 인도의 유대인들은 뭄바이 중심의 ‘베네 이스라엘’(Bene Israel) 유대인이 1만3,000명, '브네이 메나시'(Bnei Menashe) 유대인이 7천 명 그리고 ‘코친(Cochin)’ 유대인은 9명만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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