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0. 韓山李氏/01_韓山 李氏

공편공 이유청의 이야기는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 시작부에 나오는 중심 인물 이교리의 이야기

忍齋 黃薔 李相遠 2017. 3. 16.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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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초 홍명희는 성우공 이명직 선생의 영향으로 일본 대성중학에 유학하던 중 부친 홍범식 금산군수가 1910년 경술국치로 자결하자 공부를 접고 돌아와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다. 1928년 조선일보에 소설 《임꺽정》을 연재하였다. 늘 가까이서 지켜보던 독립운동가 지운 김철수 선생은 벽초 홍명희를 이광수, 최남선과 함께 당시 조선의 3대 천재로 꼽았다. 지운 김철수 선생이 벽초 홍명희에게서 직접 들은 바에 의하면 《임꺽정》 초반부에 나오는 중심인물 '이교리'는 실재인물 '이장곤'이 모델이 아니라 연산군 때에 노비까지 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회생하여 고급 관직에 올라 조선조 4대 명신 중의 한 분으로 오른 공편공 '이유청'을 실제 모델로 했다고 한다. 잘못을 바로잡지 못한 이유는 홍명희도 월북하여 북한의 혁명열사릉에 묻어있고 지운 김철수 선생도 조선 초기 공산주의자로서 남한 정권의 감시를 받다 작고하셨기에 바로 잡을 기회가 없었다. 이제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이 남한땅에서 자유롭게 읽히고 또 지운 김철수 선생이 사후 남한 정부에 의해 독립유공자로 훈장을 받고 명예가 회복되어, 이에 '이교리'의 실제 모델이 공편공 '이유청'임을 만천하에 알린다. 공편공 '이유청'은 내 17대조 직계 선조 할아버지이다.


(12世) 한산이(韓山李)씨 11代孫 (목은6세, 牧隱5代孫) 


(12) 11(목은6세,牧隱5代孫공편공(恭編) 이유청 (李惟淸, 1459세조5~1531중종26)은 안소공(安昭이훈(李塤)의 2남3녀중 장남으로 자는 직재(直哉)입니다. 부인 이씨와의 사이에 4남을 두셨습니다. 1486년(성종 1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표연말(表沿沫), 유숭조(柳崇祖) 등과 사유(師儒)로 선발되었습니다. 1491년 지평이 되고 1493년 장령에 승진하였습니다. 1494년 연산군이 즉위한 뒤 다시 지평으로 강등되었다가 1497년(연산군 3)집의에 올랐습니다.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온건하게 처리하려다가 배척되어 영서도찰방(迎曙道察訪)으로 좌천되었습니다. 1504년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다시 연루되어 장(杖)100을 받고 직첩이 환수되었으며 관노(官奴)가 되었습니다. 중종반정으로 정권이 바뀌자 1506년(중종 1) 사헌부집의로 복직되고, 정난공신(定難功臣)2등에 책록되었습니다. 이듬해 대사헌 한성부 좌윤을 역임하고, 1511년 황해도 관찰사, 이어서 1513년에 경기도 관찰사가 되어 선정을 폈습니다. 1517년 다시 대사헌이 되었는데, 1519년 남곤(南袞), 심정(沈貞) 등이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趙光祖) 등을 몰아내는 데 가담하여 공을 세워 우의정이 되고 한원군(韓原君)에 봉하여졌습니다. 1521년 등극사(登極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뒤에 좌의정이 되었다가 기로소에 들어갔습니다. 시호는 공편(恭編)입니다. 한산이문이 조선조에 배출한 상신 4인(14세-이산해 李山海 영의정 아성부원군, 21세-이사관 李思觀 좌의정 효정공, 23세-이경재 李景在 영의정 문간공)중 1명입니다. 


연산군때에 노비 까지 되었다가 중종 반정으로 회생되어 고급 관직에 올라 조선조 4대 명신 중의 한분으로 오른 공편공 이유청의 이야기는 홍명희의 임걱정이라는 소설 시작부에 나오는 중심 인물 이교리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게된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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