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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돈 한 푼 집에 벌어온 적 없이 국민학생(초등학생) 아들이 월사금 내려고 애호박 팔아모은 돈도 들고 한량 노릇 하러 다니시던 내 아버님을 무척 미워했습니다. 군사독재의 탄압도 피했지만 능력 없는 부모에게서 탈출도 겸해서 미국으로 연구 조교 자리를 구해 도망을 쳤습니다. 어느 날 내 아들이 할아버지는 어떤 사람이고 그 아버지는 또 그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어 훌륭한 분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자식 덕분에 철이 들었고 한량으로 잡기에만 빠져 사신 내 아버지 방원 선생의 삶을 공부했습니다. 육종학의 아버지 우장춘 박사의 조교를 지냈고 창경원 초대식물원장을 지냈고 625 한국동란 때 6사단에서 수류탄부상으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고도 죽음을 넘어 구사일생 살아나 우리 3남 2녀를 이 세상에 있도록 만든 분이셨습니다. 정말 다행하게도 나는 내 아들에게 거짓말을 했던 게 아니었습니다. 내 할아버지도 독립지사의 삶을 사셨고 내 증조할아버지는 3.1운동의 단초가 되었던 1919년 고종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라고 악을 쓰다 일본 기마 헌병들에게 참살당한 애국지사였습니다. 또 그 아버지인 내 고조할아버지는 고종의 퇴위를 함께한 탁지부 주사 성우 이명직 선생으로 1915년 일제에 독살당한 애국 지사셨습니다. 5대가 국가에 헌신한 집안이었습니다. 이 사실들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데에는 그 중심에 조선공산당 창립의 주역 지운 김철수 선생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200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을 때까지 빨갱이로 몰릴까 봐 숨죽여 살았던 집안 어른들의 비겁함 때문이었습니다. 제 증조부 애국지사 이철규 기수님을 페이스북 친구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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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enature/15851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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